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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상임고문은 - 대기업 임원·장관·당 대표 거친 5선 국회의원

정세균 고문은 별명이 세 가지다. 이들 별명에는 그의 인생 이력이 녹아있다. 하나는 진촌. '진짜 촌놈' 또는 '진안 촌놈'의 줄인 말이다. 우리나라 오지(奧地)의 대명사인 무진장 출신으로, 어린시절 뭐가 찢어지게 가난했다. 중학 진학도 언감생심할 정도였다.

 

또 하나는 빵돌이. 전주 신흥고에 다닐 때의 별명이다. 검정고시로 고교에 입학했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했다. 3년 내내 1, 2등을 다퉜지만 먹고 자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교내 매점에서 빵을 팔았다.

 

당시 신흥중을 다니던 서거석 전북대 총장이 후배 빵돌이다. 마지막으로 미스터 스마일.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붙여진 것이다. 이는 '스'쳐도 웃고, '마'주쳐도 웃고, '일'부러 웃자는 그의 인생 모토가 담겨있다.

 

정 고문은 6·25 전쟁 발발로 포연이 자욱하던 1950년 9월 장수군 장계면에서 4남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량으로 면의원을 지냈다. 젖먹이 때 진안군 동향면으로 옮겨 능길초등학교와 주천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그 또래 아이들이 멱감고 참새 잡으러 다녔지만 그는 소꼴을 베고, 몸에 부치는 나뭇짐을 져야 했다.

 

그 당시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이른 아침, 등굣길에 친한 친구가 외면을 했다. 월사금을 못내 학교를 다니지 않던 그 친구는 소를 끌고 들판으로 가던 참이었다. 그 때 막연하게 정치를 생각했다. 돈이 없어도 최소한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 뒤 동네 담벼락에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가 붙을 때마다 유심히 살펴봤다.

 

그는 고등학교를 세 군데 다녔다. 무주 안성고를 6개월도 채 못다니고 전주공고로 진학했다.

 

또 인문계를 가고 싶어 무턱대고 신흥고 교장을 찾아갔다. 다짜고짜 "공고에서 1등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는데 신흥고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까지 달라고 했다. 이후 그는 신흥고 100년 역사에 최초로 국회의원이 됐고, 총동문회장으로 빚을 갚았다.

 

3수 끝에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고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단 유신시절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그 때 이화여대 영문과에 다니던 경북출신의 아내를 만났다.

 

대학졸업 후 쌍용그룹에 들어가 시멘트 영업에서 기계부품, 신발까지 국제영업의 일선에서 뛰었다. 국내 9년, 미국 9년 등 18년 동안 실물경제를 익혔다. 상무로 퇴직하고 1996년 15대 국회에 입문, 무진장 임실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했다.

 

그리고 이번 4·11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로 옮겨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홍사덕을 큰 차이로 눌렀다. 그 사이 민주당 전북도지부장, 중앙당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당 의장, 최고위원, 산자부 장관 등을 거쳤다.

조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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