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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부채'단선'·'접선'의 명인들 "태극선은 혼을 담은 그릇…합죽선은 음양의 조화 표현"

▲ 전주가 낳은 큰 정치인 소석 이철승의 친필.

전주(全州)부채는 전국 제일이다. 질 좋은 한지가 나는 전주는 객사에 선자청이 있어 부채와 연관된 문화가 곳곳에 깊이 배여 있다. 전주 월드컵경기장도 부채를 본 딴 모습이다. 또 전주 부채의 명맥은 오늘날에도 고고히 이어지고 있다. 장인들은 사비를 들여 3층 규모의 부채 전시관과 사설 부채 박물관을 운영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단선과 접선 분야의 명인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조충익(67)·엄재수(52) 선자장(扇子匠)을 만났다. 엄재수 명인은 고(故) 엄주원 명인에 이어 2대째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기도 하다. 선자란 부채를 뜻한다.

 

● 조충익(태극선) 선자장

- ‘태극선은 나의 영혼’이란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이걸 만드는 데 있어서 제 혼을 넣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어 놓은 뒤 내 부채를 보며 날 평가합니다. 태극선은 내 혼을 담는 그릇입니다.”

 

-태극선의 매력에 빠진 계기는.

 

“삼(三) 태극이란 한국의 근본이자 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매력에 빠져서 돈을 떠나서 하게 됐습니다. 또 나는 정말 열심히 스스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무슨 일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천직으로 생각했고,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몰두했습니다.”

 

-부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온고지신이라고 하지요. 근본은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만 따져서 처음부터 그대로 답습만 하면 발전이 안 돼요. 고려 때 청자가 있었지만, 조선으로 오면서 분청사기도 나오고 백자도 나옵니다. 하나의 예술품이 또 되는 거예요. 그게 발전입니다. 조선인데 고려 때 얘기만 하면 안 되듯, 이제는 대한민국이니 고려·조선을 토대로 대한민국에 맞는 걸작을 창출해야 됩니다. 예술품이란 새로운 미의 창조입니다. 옛 재료와 기법·기능에 나의 새로운 생각을 덧댄 것입니다. 기능인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로 승화돼야 합니다.”

 

-만드신 태극선이 많이 사용되는 곳은 어딘가요.

 

“국제 체육행사 때 선수들 태극선을 꾸준히 만들었는데, 남북 교류 활성화로 남북한이 동시입장하면서 한반도기를 사용해 납품이 끊겼어요.(웃음) 지금은 한국관광공사에서 홍보물로 국제회의를 한다든지, 그런 곳에 기념품으로 종종 보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주를 예향, 전통문화와 예절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형식적으로 하는 말 같습니다. 가령 시(市)나 도(道), 국가차원에서 외부에 선물을 할 때 의뢰를 하지 않아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 자부심을 갖고 활동하는 기능장에게 주문해서 선물을 하면 주는 사람이 얼굴이 나고,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기능장도 체면이 서는 겁니다. 이 부문이 아쉽습니다.”

 

-전통문화 계승이 보다 원활하게 될 방안은 뭐가 있을까요.

 

“문화재를 사회에서 별로 인정을 안 해줍니다. 후세에게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 괜찮을 것이다’이런 말이 안 먹혀요. 체계적인 정책을 세워서 문화재나 기능장이 되면 ‘명예를 얻고 먹고 사는 문제가 보장 된다’고 한다면 이거 하지 말라고 해도 젊은 사람들 물밀 듯 하려 할 겁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불가항력이란 게 있어요. 내 힘으론 할 수 없는 걸 국가에서 정책을 세워서 노력해야합니다.”

 

● 엄재수(합죽선)선자장

-합죽선이 음양의 조화를 표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료 대부분이 음의 기운을 가졌습니다. 대나무도, 한지도 그렇지요. 문양의 경우 박쥐는 중성입니다. 낙죽에는 양의 첫 꽃인 매화를 많이 그리고요. 그런데 이걸 음력 5월 5일, 양의 기운이 가장 큰 시기부터 사용을 하지요. 음의 기운을 가진 것을 겨울에 만들어서 여름에 사용해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천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업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 접함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어요.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색다르게 만들고, 이런 것들이 선친 눈에 띠었지요. 유물 사진을 보고 그걸 복원하는 과정이 있는데, 옛 사진만 보고도 ‘이리저리 했겠다’라는 게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쉽게 잘 하는 게 천직 아닐까요.”

 

-과거 부채를 복잡함과 사치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표현하셨어요.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치밀합니다. 재료 구하기도 쉽지 않아 귀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가령 합죽을 0.4㎜로 얇게 깎아내고, 7가지 종류의 겉대를 붙여서 이렇게 하나를 만듭니다. 복잡하지요.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갑니다. 완전한 수작업으로 색다르고 특이하게 하다 보니 똑같은 게 나오지 않고 느낌이 다른 부채들이 나와요. 또 부채는 조선시대에도 사치품이었습니다. 합죽선은 양반들이 의관 중 하나로 여길 정도로, 자신의 첩으로 여길 정도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고리 같은 걸 금 무늬로 만들기도 했고, 선추(부채에 다는 노리개)의 경우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합니다. 쌀이 귀했던 당시에 부채 한 자루가 쌀 한가마니 가격이었다고 합니다.”

 

-합죽선 가격이 적당하다고 보시는지.

 

“저가품도 있지만 약 25만원에 일반품은 구매 가능합니다. 황칠선은 50만원으로 시작해서 400만원까지 하고요. 황칠선은 기본적으로 4개월 정도 공들여 만듭니다. 일반품은 3개월 정도 걸리지요.”

 

-부채에 전주의 얼이나 혼이 들어가 있다고 봐도 될까요.

 

얼이란 역사성과 맞물리는 겁니다. 선자청이 중앙에 없어진 상황에서도 전주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는 것은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는 의지가 컸다는 것입니다. 왜란 때 전주사고가 있어서 오늘날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듯, 우리 완전한 도시에서 부채를 지켜오며 그 부채 속에 담는 옛 정신도 지켜온 것입니다.

 

-부채를 만드는 기준이 있다면.

 

“사용할 수 없는 부채는 안 만듭니다. 부채는 생활 속에서 쓰는 거고, 그게 예술적으로 승화가 돼야 합니다. 사용과 휴대가 편한 부채를 만드는 것이 제가 부채를 꾸준히 만드는 기준입니다.”

 

● 전주 부채는 각종 국제행사 의전 단골, 반기문 총장에게도 선물

▲ 삼태극 문양의 아름다운 태극선. 세미한 대나무 가지로 이뤄졌다.

부채는 크게 단선(團扇, 둥글부채)과 접선(摺扇, 쥘부채)으로 나뉜다.

 

단선 중 유명한 것은 올림픽 개막식 등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 흔드는 태극선(太極扇)이고, 접선 중에서는 대나무 겉대를 얇게 깎아 합하여 만든 합죽선(合竹扇)이 최상품이다.

 

전라도 감영 소재지로 선자청(扇子廳)이 있던 전주는 부채의 수요가 많아 다수의 선자장들이 생활했다. 또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 명성의 전주 한지와 수많은 대가들의 선면화(扇面畵, 부채그림) 역시 전주가 부채 특산지로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옛 단오진선에서도 전주 부채는 단연 으뜸이었다.

 

근래에도 이 같은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송하진 당시 전주시장은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 엄재수 선자장이 제작한 합죽선을 선물했다. 또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실험 퍼포먼스에 사용된 합죽선도 전주에서 만든 것이다. 과거 LA·서울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 체육행사에 선수단 개막식 의전용으로 조달된 태극선은 조충익 선자장 작품이다.

 

조충익·엄재수 선자장은 전주에서 죽전선자방, 부채박물관이라는 사설 부채 전시관·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조선후기부터 일제 강점기, 산업화 시대에 이르는 부채의 변천사를 되짚어 볼 수 있고, 세계의 부채도 관람할 수 있다. 부채는 무더운 여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조상들의 멋스런 삶의 양태가 배인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도 전주에서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올곧게 ‘외길’을 걷는 명인들이 예술혼에 휩싸여 부채를 제작한다. 문명의 이기로 전통의 가치가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 전통문화가 명맥을 이어가는 현장인 것이다.

▲ 전주가 낳은 큰 정치인 소석 이철승의 친필.

전주(全州)부채는 전국 제일이다. 질 좋은 한지가 나는 전주는 객사에 선자청이 있어 부채와 연관된 문화가 곳곳에 깊이 배여 있다. 전주 월드컵경기장도 부채를 본 딴 모습이다. 또 전주 부채의 명맥은 오늘날에도 고고히 이어지고 있다. 장인들은 사비를 들여 3층 규모의 부채 전시관과 사설 부채 박물관을 운영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단선과 접선 분야의 명인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조충익(67)·엄재수(52) 선자장(扇子匠)을 만났다. 엄재수 명인은 고(故) 엄주원 명인에 이어 2대째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기도 하다. 선자란 부채를 뜻한다.

 

● 조충익(태극선) 선자장

- ‘태극선은 나의 영혼’이란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이걸 만드는 데 있어서 제 혼을 넣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어 놓은 뒤 내 부채를 보며 날 평가합니다. 태극선은 내 혼을 담는 그릇입니다.”

 

-태극선의 매력에 빠진 계기는.

 

“삼(三) 태극이란 한국의 근본이자 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매력에 빠져서 돈을 떠나서 하게 됐습니다. 또 나는 정말 열심히 스스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무슨 일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천직으로 생각했고,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몰두했습니다.”

 

-부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온고지신이라고 하지요. 근본은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만 따져서 처음부터 그대로 답습만 하면 발전이 안 돼요. 고려 때 청자가 있었지만, 조선으로 오면서 분청사기도 나오고 백자도 나옵니다. 하나의 예술품이 또 되는 거예요. 그게 발전입니다. 조선인데 고려 때 얘기만 하면 안 되듯, 이제는 대한민국이니 고려·조선을 토대로 대한민국에 맞는 걸작을 창출해야 됩니다. 예술품이란 새로운 미의 창조입니다. 옛 재료와 기법·기능에 나의 새로운 생각을 덧댄 것입니다. 기능인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로 승화돼야 합니다.”

 

-만드신 태극선이 많이 사용되는 곳은 어딘가요.

 

“국제 체육행사 때 선수들 태극선을 꾸준히 만들었는데, 남북 교류 활성화로 남북한이 동시입장하면서 한반도기를 사용해 납품이 끊겼어요.(웃음) 지금은 한국관광공사에서 홍보물로 국제회의를 한다든지, 그런 곳에 기념품으로 종종 보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주를 예향, 전통문화와 예절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형식적으로 하는 말 같습니다. 가령 시(市)나 도(道), 국가차원에서 외부에 선물을 할 때 의뢰를 하지 않아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 자부심을 갖고 활동하는 기능장에게 주문해서 선물을 하면 주는 사람이 얼굴이 나고,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기능장도 체면이 서는 겁니다. 이 부문이 아쉽습니다.”

 

-전통문화 계승이 보다 원활하게 될 방안은 뭐가 있을까요.

 

“문화재를 사회에서 별로 인정을 안 해줍니다. 후세에게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 괜찮을 것이다’이런 말이 안 먹혀요. 체계적인 정책을 세워서 문화재나 기능장이 되면 ‘명예를 얻고 먹고 사는 문제가 보장 된다’고 한다면 이거 하지 말라고 해도 젊은 사람들 물밀 듯 하려 할 겁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불가항력이란 게 있어요. 내 힘으론 할 수 없는 걸 국가에서 정책을 세워서 노력해야합니다.”

 

● 엄재수(합죽선)선자장

-합죽선이 음양의 조화를 표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료 대부분이 음의 기운을 가졌습니다. 대나무도, 한지도 그렇지요. 문양의 경우 박쥐는 중성입니다. 낙죽에는 양의 첫 꽃인 매화를 많이 그리고요. 그런데 이걸 음력 5월 5일, 양의 기운이 가장 큰 시기부터 사용을 하지요. 음의 기운을 가진 것을 겨울에 만들어서 여름에 사용해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천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업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 접함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어요.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색다르게 만들고, 이런 것들이 선친 눈에 띠었지요. 유물 사진을 보고 그걸 복원하는 과정이 있는데, 옛 사진만 보고도 ‘이리저리 했겠다’라는 게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쉽게 잘 하는 게 천직 아닐까요.”

 

-과거 부채를 복잡함과 사치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표현하셨어요.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치밀합니다. 재료 구하기도 쉽지 않아 귀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가령 합죽을 0.4㎜로 얇게 깎아내고, 7가지 종류의 겉대를 붙여서 이렇게 하나를 만듭니다. 복잡하지요.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갑니다. 완전한 수작업으로 색다르고 특이하게 하다 보니 똑같은 게 나오지 않고 느낌이 다른 부채들이 나와요. 또 부채는 조선시대에도 사치품이었습니다. 합죽선은 양반들이 의관 중 하나로 여길 정도로, 자신의 첩으로 여길 정도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고리 같은 걸 금 무늬로 만들기도 했고, 선추(부채에 다는 노리개)의 경우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합니다. 쌀이 귀했던 당시에 부채 한 자루가 쌀 한가마니 가격이었다고 합니다.”

 

-합죽선 가격이 적당하다고 보시는지.

 

“저가품도 있지만 약 25만원에 일반품은 구매 가능합니다. 황칠선은 50만원으로 시작해서 400만원까지 하고요. 황칠선은 기본적으로 4개월 정도 공들여 만듭니다. 일반품은 3개월 정도 걸리지요.”

 

-부채에 전주의 얼이나 혼이 들어가 있다고 봐도 될까요.

 

얼이란 역사성과 맞물리는 겁니다. 선자청이 중앙에 없어진 상황에서도 전주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는 것은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는 의지가 컸다는 것입니다. 왜란 때 전주사고가 있어서 오늘날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듯, 우리 완전한 도시에서 부채를 지켜오며 그 부채 속에 담는 옛 정신도 지켜온 것입니다.

 

-부채를 만드는 기준이 있다면.

 

“사용할 수 없는 부채는 안 만듭니다. 부채는 생활 속에서 쓰는 거고, 그게 예술적으로 승화가 돼야 합니다. 사용과 휴대가 편한 부채를 만드는 것이 제가 부채를 꾸준히 만드는 기준입니다.”

 

● 전주 부채는 각종 국제행사 의전 단골, 반기문 총장에게도 선물

▲ 삼태극 문양의 아름다운 태극선. 세미한 대나무 가지로 이뤄졌다.

부채는 크게 단선(團扇, 둥글부채)과 접선(摺扇, 쥘부채)으로 나뉜다.

 

단선 중 유명한 것은 올림픽 개막식 등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 흔드는 태극선(太極扇)이고, 접선 중에서는 대나무 겉대를 얇게 깎아 합하여 만든 합죽선(合竹扇)이 최상품이다.

 

전라도 감영 소재지로 선자청(扇子廳)이 있던 전주는 부채의 수요가 많아 다수의 선자장들이 생활했다. 또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 명성의 전주 한지와 수많은 대가들의 선면화(扇面畵, 부채그림) 역시 전주가 부채 특산지로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옛 단오진선에서도 전주 부채는 단연 으뜸이었다.

 

근래에도 이 같은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송하진 당시 전주시장은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 엄재수 선자장이 제작한 합죽선을 선물했다. 또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실험 퍼포먼스에 사용된 합죽선도 전주에서 만든 것이다. 과거 LA·서울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 체육행사에 선수단 개막식 의전용으로 조달된 태극선은 조충익 선자장 작품이다.

 

조충익·엄재수 선자장은 전주에서 죽전선자방, 부채박물관이라는 사설 부채 전시관·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조선후기부터 일제 강점기, 산업화 시대에 이르는 부채의 변천사를 되짚어 볼 수 있고, 세계의 부채도 관람할 수 있다. 부채는 무더운 여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조상들의 멋스런 삶의 양태가 배인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도 전주에서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올곧게 ‘외길’을 걷는 명인들이 예술혼에 휩싸여 부채를 제작한다. 문명의 이기로 전통의 가치가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 전통문화가 명맥을 이어가는 현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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