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수 완주우체국장(55)은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을 매달 한 번씩 찾는다. 지난 2월부터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에 '힐링 시네마 in 전주'의 영화 심리치료 강연을 위해서다. 37년차 시골우체국장인 그는 암을 이겨내고 6년 전부터 영화로 심리를 치유하는 영화평론가로 새로운 인생을 순항 중이다.
이제는 누구나 영화를 보는 시대라지만 영화를 더 특별하게 보게 된 작가. "왜 영화를 보는가"라는 질문에 "영화를 통해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모두가 마지막 도착점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사회적 자아로 내면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대다수 우리들에게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영화의 맛을 보고 나면 왜 좋은지 안다"는 답변에는 그것이 바로 치유과정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일 중독자'로 스스로를 혹사해오던 그에게 8년 전 몸이 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때 나이 마흔여덟, 위암 진단이었다. 공무원 생활 28년 만에 느닷없이 첫 병가 신청을 한 뒤 그는 속울음을 많이 삼켰다. 짐을 정리해 전남 여수 요양 병원으로 향하면서 울긋불긋 단풍 터널을 지나서야 눈물이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서러워서 눈물밖에 안 납디다."
매주 말기암 환자들을 마주해야 하는 요양병원은 그를 더욱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아파 죽으나 그냥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도저히 못 견딜 것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벼랑 끝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웃음 치료. 스스로 '미친 놈 같다'면서도 최불암 웃음 '파하'를 터뜨리며 병세가 호전을 보이자 또 '적당히' 못하고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 번 왕복 10시간씩 쏟아가며 악바리 근성을 보였더니 이제는 병이 못 견디고 나가버렸다.
심리 치료는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졌다. "2000년대 초반에 영화'패치 아담스'를 처음 봤을 땐 아무런 감흥도 못 느꼈는데, 2006년 볼 때 정말 가슴이 찡한 거에요." 대학원에서 평소 즐겨보던 영화로 심리치료까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는 영화평론가 심영섭씨가 운영하는 영상응용연구소의 영화치료 전문가과정에 발을 디뎠다. 전북도민일보에 영화평을 투고한 것을 계기로 글도 쓰게 됐다.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오고 나니 새로운 언어에의 욕망과 집착에서 좀 멀찍이 떨어질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의 이야기들이 글로 걸어나왔다.
개인적으로 영화'패치 아담스'와 '길버트 그레이프'처럼 내면의 울림을 전하는 영화를 선호한다. 완벽주의 성향은 여전해서 웃음·영화 심리치료 강의에서 평소 '솔'톤의 목소리로 똑소리나게 강연을 해서 '똘똘이 스머프 명강사'가 됐다. 우석대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영화치료 3급 과정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의 매달 강연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깊게 교감하는 중.
"영화'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 보셨어요? 그 영화의 엔딩 장면을 보면 일본 후지산 밑 호수가 나오거든요. 후지산이 거꾸로 그림자처럼 보여요. 일본 현대무용 '부토춤'(그림자춤)을 추는 장면도 그렇죠. 이런 장면만 갖고도 무의식을 얼마든지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힐링이 넘쳐나는 세상에 내면과 자의식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의 영화 이야기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의미와 치유를 포기하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예전엔 일이라는 '조강지처'에 전념했는데, 이제는 웃음·영화 치료라는 '애인'에게 더 많이 고개를 돌린다. 앞으로 2년에 한번 씩은 '애인'(평론집 출간)을 만날 거라는 고백도 했다. 굳이 어려운 영화이론을 대지 않더라도 그의 글은 마음의 창(窓)으로 위안을 얻는 기쁨을 준다. 그의 새로운 '애인'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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