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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노후수행마을] 절 떠난 노스님들 "남은 것 모두 비우고 가리"

원로스님들 안정적 노후생활 위한 전국 첫 복지시설 / 평생 몸에 익은 시간표대로 각자의 하안거 마무리

▲ 원로스님들의 말년 수행을 위해 조성된 고창 선운사 노후 수행마을. 스님들이 모두 수행 중인지 마을엔 조용하고 평화로운 기운만이 감돌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2시30분 고창 선운사 노후 수행마을. 스님들이 마실을 나갔는지 수행마을은 텅텅 비었다. 20분 경내를 둘러봤을까. 멀리서 스님 세 분이 '싸드락 싸드락' 걸어오는 게 보였다. "뒷방 늙은이를 뭐하러? 죄다 쓸 데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재곤 스님은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석 달간 선원 문밖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을 매진하는 하안거(夏安居·음력 4월 보름~7월 보름) 해제 전날. 주지스님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인생의 끝자락에 와 있는 스님들은 평생 몸에 익은 시간표대로 각자의 하안거를 마무리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11년 조성된 고창 선운사 노후 수행마을은 원로스님들의 안정적 노후생활을 위해 조성된 전국의 첫 복지시설이다. 전통한옥을 지어 의탁할 곳이 없는 스님들을 수행자답게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계획된 것. 평생 수행에 전념하고도 스님이 몸담고 있는 절이 가난할 경우 오갈 데가 없게 되는 일이 생기면서 불교계의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 천주교, 원불교는 원로 성직자들을 위한 나름의 복지체제가 있으나 조계종단은 이제서야 논의를 시작한 단계. 일부 스님들이 노후를 생각해 '뒷돈'을 챙기면서 생긴 껄끄러운 사건이 앞뒤 사연이다.

 

친환경생태마을로 조성되는 수행마을은 스님들이 혼자 또는 2~3명이 한 집에 거주하게 된다. 법만 스님은 "선농일치의 정신을 계승해 집마다 텃밭도 만들었다"면서 "수익사업을 통해 스님들에게 수행연금은 물론 의료복지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 조건은 선운사 혹은 말사에서 머리를 깎고 65세 이상 출가한 지 20~30년 이상 된 스님들만 가능하다는 것. 몸이 편찮은 스님들에겐 우선권도 주어진다. 현재 수행마을엔 재곤·재덕·종안 스님이 지내고 있다.

 

재곤 스님은 기자가 고른 돼지 감자차를 내놓으며 마치 해제 법문을 하듯 말문을 열었다.

 

"더위가 극성이지만 다 한때입니다. 그 때에 꺾여선 안되지요. 세상살이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 말 못할 사정이 있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면 답이 안 보이죠. 가을바람이 불면 더위가 자취를 감추듯 상황을 받아들이면 극복할 의지와 용기가 생깁니다."

 

그도 그럴 듯 스님 역시 뜻하지도 않은 순간에 대흥사·선운사 등 주지스님을 덜컥 맡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단순한 진리는 "수행자들이 간절히 정진하는 만큼 사찰은 발전한다는 것". 스님은 삶 위에서 만난 부처들과 삶을 나누고 함께 경험을 쌓으며 가장 소중한 수행을 해온 듯 했다. 직접 창건한 절까지 미련없이 헌납하고 이곳에 들어온 스님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지금 여기'와 '이 순간'.

 

"이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한 번의 기회와 한 번의 만남, 인연이죠. 나와도 미리 약속하지 않았는데, 이뤄졌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웃음으로 대하고, 따뜻한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돼지 감자차가 여러 잔이 오가자 스님은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산과 나무에게 들으라는 듯 일어서라고 했다. 어쩌면 하안거는 수행을 위한 수행 외에도 불자들에게 삶 속에서 분별심 없이 늘 긍정적 사고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는 게 아닐까. 수행은 어찌 보면 스님들보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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