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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태건 작가 - 김영관 '나의 문턱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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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관 - <나의 문턱을 넘다> 표지

날이 흐리다. 반쯤 열어둔 창 안으로 습한 공기가 밀려온다. 아스팔트 도로위로 내리꽂히는, 함성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고 싶다. 비 오는 날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 앞엔 ‘갓 구운 빵’ 같은 시집이 있다. 김영관의 시집 ‘나의 문턱을 넘다’(천년의 시). 세상에 나온 지 채 보름이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시집이다. 이미 김영관 시인은 ‘박새 몇 마리 귓속에 살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수필집 ‘11남매 이야기’를 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김영관은 대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하며 도시에 살지만 고향에 마음의 뿌리를 두고 산다. 농부는 땅에 묻혀도 계절이 바뀌면 다시 태어난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온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산나무에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깃든다. 김영관의 시에는 가난하지만 희망을 잊지 않고 사는 순박한 시간들에 대한 경의로 가득하다. 도시의 생활이 각박할수록 순수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 또한 간절해진다. 이 간절한 마음을 찾아 김영관의 시심은 더욱 깊고 따뜻한 곳으로 뻗어나갔을 것이다. 

시집 곳곳에 나타나는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자연에 대한 경의로 야외에 나간 인상파 화가 같다. 김영관은 교사 시인이기도 한데 5부에 수록된 ‘시로 쓴 생기부’는 제자들에 대한 인상으로 풍성하게 그려낸 풍경화같다. 그런데 생기부에는 객관적이고 개량화된 내용으로만 채워져야 했다. 그래서 그가 제자의 인상을 정성스럽게 받아 적은 글들은 시가 되었다. 학생들이 집에 돌아간 저녁의 교무실에 홀로 남아서 생기부를 시로 쓰는 김영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빗소리가 교실 창문을 넘어 올 것만 같다. 

시집을 덮으며 카라바조의 그림 <의심하는 성 토마스>가 생각났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토마스)에게 스승이 말했다.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그런데 제자는 정말로 스승의 몸에 손가락을 넣는다. 옷자락을 헤쳐 보이는 스승의 모습은 착잡해 보인다. 망설이면서도 상처를 만져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제자의 표정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카라바조는 흑사병 이후, 발흥하는 종교개혁의 요구와 이성주의 태동을 의심하는 도마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시를 읽고 나자 눈이 아프다. 상처를 후비는 손가락 같다. 자고나면 물가가 뛰는 세상이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김영관은「나무를 새기며1」에서 시 쓰는 행위는 곧 나무에 상처를 새기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는 ‘토마스’처럼, 시인은 조각도를 들고 나무에 기억의 무늬를 새긴다. 인간이 살아온 무늬가 곧 인문(人文)이다. 김영관이 보여준 가치는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오래된 가치다. ‘좀처럼 길을 내주지 않는 나무에 조금씩 새기는 시인의 길은 안 보이는 것을 상상하는 힘으로 단단하다. 김영관의 무늬를 손끝으로 따라 읽으며 올 여름은 여여하겠다.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박태건 시인은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시와반시 신인상,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를 비롯하여 인문서 『익산 문화예술의 정신』, 『마을, 오래된 미래를 담다』, 『익산, 도시와 사람』, 『전북의 재발견』, 『전북문화지도』, 『강을 거닐다』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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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관 - <나의 문턱을 넘다> 표지

날이 흐리다. 반쯤 열어둔 창 안으로 습한 공기가 밀려온다. 아스팔트 도로위로 내리꽂히는, 함성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고 싶다. 비 오는 날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 앞엔 ‘갓 구운 빵’ 같은 시집이 있다. 김영관의 시집 ‘나의 문턱을 넘다’(천년의 시). 세상에 나온 지 채 보름이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시집이다. 이미 김영관 시인은 ‘박새 몇 마리 귓속에 살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수필집 ‘11남매 이야기’를 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김영관은 대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하며 도시에 살지만 고향에 마음의 뿌리를 두고 산다. 농부는 땅에 묻혀도 계절이 바뀌면 다시 태어난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온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산나무에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깃든다. 김영관의 시에는 가난하지만 희망을 잊지 않고 사는 순박한 시간들에 대한 경의로 가득하다. 도시의 생활이 각박할수록 순수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 또한 간절해진다. 이 간절한 마음을 찾아 김영관의 시심은 더욱 깊고 따뜻한 곳으로 뻗어나갔을 것이다. 

시집 곳곳에 나타나는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자연에 대한 경의로 야외에 나간 인상파 화가 같다. 김영관은 교사 시인이기도 한데 5부에 수록된 ‘시로 쓴 생기부’는 제자들에 대한 인상으로 풍성하게 그려낸 풍경화같다. 그런데 생기부에는 객관적이고 개량화된 내용으로만 채워져야 했다. 그래서 그가 제자의 인상을 정성스럽게 받아 적은 글들은 시가 되었다. 학생들이 집에 돌아간 저녁의 교무실에 홀로 남아서 생기부를 시로 쓰는 김영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빗소리가 교실 창문을 넘어 올 것만 같다. 

시집을 덮으며 카라바조의 그림 <의심하는 성 토마스>가 생각났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토마스)에게 스승이 말했다.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그런데 제자는 정말로 스승의 몸에 손가락을 넣는다. 옷자락을 헤쳐 보이는 스승의 모습은 착잡해 보인다. 망설이면서도 상처를 만져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제자의 표정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카라바조는 흑사병 이후, 발흥하는 종교개혁의 요구와 이성주의 태동을 의심하는 도마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시를 읽고 나자 눈이 아프다. 상처를 후비는 손가락 같다. 자고나면 물가가 뛰는 세상이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김영관은「나무를 새기며1」에서 시 쓰는 행위는 곧 나무에 상처를 새기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는 ‘토마스’처럼, 시인은 조각도를 들고 나무에 기억의 무늬를 새긴다. 인간이 살아온 무늬가 곧 인문(人文)이다. 김영관이 보여준 가치는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오래된 가치다. ‘좀처럼 길을 내주지 않는 나무에 조금씩 새기는 시인의 길은 안 보이는 것을 상상하는 힘으로 단단하다. 김영관의 무늬를 손끝으로 따라 읽으며 올 여름은 여여하겠다.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박태건 시인은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시와반시 신인상,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를 비롯하여 인문서 『익산 문화예술의 정신』, 『마을, 오래된 미래를 담다』, 『익산, 도시와 사람』, 『전북의 재발견』, 『전북문화지도』, 『강을 거닐다』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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