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너를 기다리는 시간

2018-07-02     기고
소풍을 손꼽아 기다려보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이가 있을까.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기대와 설렘은 떠나기 전날 밤에 정점을 찍어서 때로는 밤새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막상 떠난 소풍은 피곤하기만 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즐거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 싶다.

하루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목욕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게 살려면 약혼을 하고, 일 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은 당신은 ○○을 하라고 말한 이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고 하니 앞서 말한 ‘○○’이 무엇일지는 대충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더 큰 아파트에 입주할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은 고달파도 행복하다. 계약한 신차를 기다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또한 소풍과 다를 바 없다. 드디어 입주한 아파트가 당장은 운동장처럼 넓어 보여도 그런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새로 출고된 자동차의 ‘신차 냄새’ 또한 자주 맡다 보면 금세 무감각해진다. ‘자동화’되는 것이다.

미래 어느 날 몹시 사랑하는 그와 함께할 달콤한 시간을 떠올리는 오늘은 얼마나 행복하랴. 그래서 가장 완벽한 사랑은 짝사랑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거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는 구절은 <어린 왕자>에서 읽었다. 그걸 다시 보며 빙긋 웃다가 김용택 시인의 <매화>를 문득 떠올린다. ‘매화꽃이 피면 / 그대 오신다고 하기에 / 매화더러 피지 말라고 했어요 / 그냥, 지금처럼 / 피우려고만 하라구요’ 시인들은 참 행복하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