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삼례문화예술촌 ‘맛있는 클래食’…소시지를 곁들인 헨델? 엄숙함 벗고 식탁에 오른 클래식

2018-08-22     기고

“여러분, 집중하지 마세요~!” 몰입해 있는 관객들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집중하지 말라는 그녀의 행동에 관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클래식은 일상의 공기, 바람, 때론 먼지와도 같이 특별할 것 없는 말 그대로 일상이어야 한다는 그녀. 엄숙함과 경직된 태도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클래식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바순 연주자이자 클래식 음악강사, 요리하는 오너 쉐프로 활동하고 있는 임지윤 씨(37, 요다지 대표) 이야기다.

지난 20일 아침 10시. 삼례문화예술촌에서는 특별한 음악강좌가 진행됐다.

이름하여 ‘맛있는 클래食’. 그 밑에 붙은 부제는 더 흥미롭다. ‘파스타보다 유명한 음악가: 이탈리아 로시니’. 통상 클래식 앞에 붙는 많은 형용사 중 ‘맛있는’은 참 낯선 조합인지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그래서일까. 정원 20명 모집에 40여 명이 넘게 신청해 순식간에 마감이 됐다고 하니, 클래식이 이렇게 인기 있는 강좌였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의 불모지라 해도 과하지 않을 완주에서 색다른 컨셉과 커리큘럼으로 사랑받고 있는 ‘맛있는 클래食’의 강사 임지윤 씨를 만났다.

- ‘맛있는 클래食’의 인기가 상당합니다. 예상했는지.

어느 정도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로 호응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바순 연주자로서 내 바순을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알리고 클래식을 즐겁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는데요. 중요한 건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인데, 음식이 그 연결고리가 될 수는 있겠구나 싶었죠.

- 그 생각이 적중한 거네요.

연주자 입장이 아닌 향유자 입장에서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고민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왜 사람들이 가요나 팝처럼 클래식을 즐기지 않을까, 왜 어려워할까, 이해를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클래식을 너무 경직되게, 엄숙하게만 받아들이는 풍토, 태도가 대중과 클래식의 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지 않나. 마음을 열어야 감동이 생기는 건데. 그런 면에서 음식은 마음을 열어주는 아주 좋은 열쇠였던 거죠.

- 커리큘럼 제목만 봐도 위트가 느껴져요. 보통 바흐와 헨델은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로 불리는데 여기선 ‘소시지보다 유명한 독일 음악가’로 소개하고 있네요.

‘맛있는 클래食’의 컨셉은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음악과 그 나라 대표 음식을 함께 맛보며, 즐기는 클래식 감상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음식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클래식도 균형 있게 듣는 게 좋은데, 의외로 한쪽으로 치우쳐 듣는 경우가 많아요. 소개하고 싶은 음악가들이 많지만 제 생각에 클래식 음악의 베이스라고 생각되는 5개국 9명의 음악가를 선정해 국가별 대표 음식도 맛볼 수 있게 커리큘럼을 구성해 봤습니다.

- 전체 5강으로 되어 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시죠.

1강은 독일 편으로 ‘소시지보다 유명한 음악가 바흐와 헨델’을 준비했는데요. 그들의 음악과 생애사를 감상하고 마지막 순서로 소시지와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잘게 썬 양배추를 발효시켜 시큼한 맛이 나는 독일식 양배추 절임)를 맛볼 수 있도록 준비했고요. 2강은 오스트리아 편인데 ‘비엔나커피보다 유명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주제로 역시 아인슈페너(Einspanner, 커피)와 자허토르테(Sacher torte, 케이크)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3강과 4강은 러시아의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프랑스의 드뷔시와 에릭 사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었는데, 각각 보르쉬(Borsch, 스프)와 블리니(Blini, 팬케이크), 라따뚜이(Latatui, 스튜)와 프로마쥬(Fromage, 치즈)를 준비해 참가자분들 모두 즐거워하셨어요. 오늘이 마지막 5강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분인 로시니를 소개하면서 이탈리아 대표 음식인 브루스케타(Bruschetta, 에피타이저)를 곁들여 즐기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참가자분들에게 색다른 경험이었을 같아요. 반응은 어땠나요.

지금까지 음악회를 하면서 받았던 그 어떤 반응보다도 따뜻하고 열렬했다고 할까요. 심지어 강좌가 끝난 후 직접 기른 거라고 하면서 호박을 선물한 관객분도 계세요. 연주회가 끝나면 꽃다발만 받아봤는데(웃음), 이런 게 완주다운 멋스러움이겠구나 싶었어요.

- 바순 연주자이면서 오너 쉐프로도 일하고 있는 데, 이런 이력이 커리큘럼을 기획하는데 영향을 끼쳤겠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바순을 시작했는데,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졸업 때까진 바순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대학 졸업 후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는데 우연찮게 메네스 음대 석사과정 시험을 치르게 됐고 덜컥 합격을 하는 바람에 여러 의미로 제 삶의 터닝 포인트를 겪게 됐어요. 남편을 만나 100일 만에 결혼도 하고(웃음). 당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편은 3Job을 가졌고, 저도 레슨, 베이비시터, 식당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러면서도 요리 전문 채널은 꼭 챙겨서 볼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에 들어와 음악활동하면서 ‘마스터 쉐프 코리아 시즌1’이라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지원해 마스터 쉐프 합격 앞치마를 받기도 했고요. 돌아보면 그런 경험들이 쌓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과 요리, 두 개를 다하게 된 것 같아요.

-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한데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조만간 지금 운영하는 ‘요다지’ 안에 ‘음악 전문 독립서점’을 열 계획이에요. 제 취향대로 선택한 음악 관련 전문서적을 갖다 놓을 거고요. 무엇보다도 바순을 사랑하고 평생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고 있지만 요리, 그림, 렉쳐,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한 방식이 될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맛있는 클래食’은 ‘저만의 방식으로 준비한 독주회’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친하지 않은 클래식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클래식은 엄숙하고 격식을 지켜서 관람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시고요. 클래식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공기, 바람, 때론 먼지와도 같은 특별할 것 없는 말 그대로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송은정(문화기획가·완주문화재단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