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0. 『심리록』에 담긴 죄와 공정한 판결

2018-08-30     기고

“억울함이 없게 하라” 법의 올바른 판결에 대한 태도이다. 조선 시대에는 일어나는 모든 살인사건의 경우 왕의 심리(審理)를 받고 최종 판결을 받았는데, 특히 정조는 죽은 자나 살아 있는 범인이 억울한 일이 없도록 진실을 밝히고, 오래전 판결 난 사건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재수사를 명령해 한 치의 억울함이 없도록 했다. 유독 살인사건 심리에 관심이 많은 정조는 본인이 심리한 사건을 모아 『심리록(審理錄)』을 편찬하게 했다.

『심리록』에는 전주(全州) 옥사(獄事)의 살인사건에 대한 기록이 있다. ‘물 대기를 다투다가 구타하여 죽게’한 신적문 사건과 ‘절을 하지 않은 광대를 때려 죽게’한 주갑득 사건, ‘놋그릇을 잃어버리고 의심하여 불로 지져 죽게’한 이기석 사건, ‘싸움 말리는 여인을 때려 죽게’한 김명옥 사건 등이다. 모두 작금에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유형이다. 그 중 양시돌이란 자가 한설운을 살해하고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위장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 있다. 목을 매어 죽었다는데 목을 매었다는 시렁의 높이가 목을 매기에 낮고, 시신에 목을 맨 자국이 없었으며 얼굴 등에 상처가 있는 것에 주목했다. “<상처> 두개골이 붓고 딱딱했으며, 뺨에 구멍이 뚫리고 자암색(紫黯色)이었다. <실인> 얻어맞은 것이다.” 범인인 양시돌이 진술을 번복하다 ‘술을 마시고 다투다가 구타하여 살해한 것’을 자백해 자살로 처리될 뻔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당시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원나라 왕여(王與)가 시신을 검시(檢屍)하는 방법과 규정에 관해 쓴 『무원록(無寃錄)』을 토대로 세종시기에 조선의 상황과 법률에 맞도록 개편한 『신주무원록』과 영조시기의 『증수무원록』을 수사 지침서로 활용했다. 정조는 『증수무원록』을 보완해 한글본도 제작, 배포하여 철저한 검시와 체계적인 수사를 통해 억울한 희생이나 피해자가 없도록 엄정하게 진행토록 하였으며 이를 기록에 남겼다. 양시돌 사건 기록을 검토한 정조는 “『무원록』에 ‘죽은 뒤에 목을 맨 것은 빛깔이 백색이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애초 검험 때에는 어찌하여 이것을 기준으로 증거로 삼지 않았는가? 사실을 조사하여 장문하라”고 지적을 하여 체계적인 수사를 하고 자살로 위장된 사건의 억울함을 풀게 했다.

정조의 『심리록』에는 살인범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그 뜻을 기리게 하고 무죄 판결을 내린 이례적인 기록이 있다. 강진(康津) 김은애의 옥사이다. “천하에 살이 에이고 뼈에 사무치는 원한으로는 정숙한 여자가 음란한 짓을 하였다는 모함을 받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다….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은 잘못이 없고 원수는 갚아야 한다는 것을 환히 알게 하였으며, 평범한 부녀자가 살인죄를 범하고 도리어 이리저리 변명하여 요행으로 한 가닥 목숨을 부지하길 애걸하는 부류를 본받지 않았다…. 윤리와 강상이 없고 기절이 없는 자는 금수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반드시 풍교에 일조가 될 것이다.” 정조가 김은애 옥사를 판결하며 내린 말이다.

정조는 당시 이덕무(1741~1793)에게 김은애 옥사의 내막과 판결을 기록하게 하여 후세의 본보기로 삼고자 하였다. 그 서문에 “상감(정조)께서 모든 옥안(獄案)을 심리하시다가 김은애를 살리게 하시고, 나에게 명령을 내려 「은애전(銀愛傳)」을 지어 『내각일력(內閣日曆)』에 싣게 하셨다”고 되어 있다. 제목의 ‘은애’는 범인 김은애를 가리킨다.

“전라도 강진에서 노파가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범인은 18세의 새댁 김은애로 밝혀졌다. 은애에게 목숨을 잃은 노파는 기생 출신의 몸에 부스럼이 있는 자로, 집이 가난하여 은애네 집에서 먹을 것을 자주 빌렸는데 은애의 어머니가 때로 거절하자 앙심을 품게 되었다. 노파는 친척인 최정련이 은애에게 마음이 있자 부스럼약 값을 받기로 하고, 정련에게 은애와 사통했다고 발설하면 혼인을 성사시켜 주겠노라고 약조한다. 이에 정련은 은애의 오빠에게 은애와 통정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노파는 은애와 정련에 관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마을에 소문이 퍼졌지만, 김양준이라는 사람은 거짓 소문임을 확신하고 은애를 아내로 삼았다. 은애가 혼인을 한 후에도 노파와 정련은 추잡한 말로 은애를 모함했다. 살해되기 전날 노파는 사람들 앞에서, 은애가 배반하고 다른 데로 시집가는 바람에 정련이 약값을 주지 않아 자신의 몸이 더 망가졌으므로 은애는 원수라고 하였다. 그들의 계속된 시달림을 받은 은애는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자 칼로 노파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런 후 정련도 죽이려 했지만, 그의 집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어머니가 말리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살인 후 관아에 자수한 김은애는 그동안 쌓였던 원한과 사건 내막을 밝히며 자신이 노파를 죽이긴 했지만, 관에서 자신을 무고한 노파를 벌한 것이 없으니 대신 최정련을 죽여 줄 것을 청하였다.”

조사를 마친 강진 현감은 “상황은 이해가 되나 사람을 죽였기에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했으며 좌의정에 이르기까지 같은 의견을 갖고 정조에게 최종 판단을 청했다. 하지만 정조의 생각은 달랐다. 정숙한 여인을 모함했으니 그 원통함이 살인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조는 김은애를 무죄판결하고 석방하도록 명한 후, 지방관에게 김은애가 최정련에게 복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후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최정련은 정조의 세심한 지시 덕분에 은애로부터 목숨은 부지했던 것 같다.

정조와 뜻을 같이했던 정약용은 살인사건에 대한 법의학과 판결을 종합해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유배지에서 남겼다. 한자 “흠(欽)”은 ‘공경하다 존경하다’는 뜻과 ‘삼가다 구부리다’의 뜻을 품은 것으로 『흠흠신서』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그 누구도 억울함이 없도록 정의롭게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법을 존중하면서도 죗값을 치르게 함에 있어 신중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공정함과 마음까지 어우르는 판결을 주장하면서도 정약용은 관대한 처벌을 반대했다. 특히 술김에 벌어진 살인에 대해 관대하게 처벌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타고난 어리석음은 하늘이 만든 재앙이지만 술주정의 재앙은 스스로 지은 것이므로 이를 똑같이 용서할 수 없으며 이른바 ‘주사(酒邪)’로 인한 감경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술김에 지은 죄와 관대한 판결도 그렇지만 억울한 상황들은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김은애 옥사’와 ‘양시돌 옥사’처럼 원통함을 풀어주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일들은 시대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성추행범으로 모함을 받고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사건과 수많은 미투 사건 그리고 ‘약촌오거리 사건’과 ‘삼례나라 슈퍼사건’ 등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다가 무죄로 밝혀진 사건들이 있다. 불공정한 판결이나 적폐에 의해 신뢰가 무너진 일들은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통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며 선조들의 현명한 판결을 살펴보고 복기하여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