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숏!숏! 2013 '비상구' 이상우 감독

2013-04-23     김정엽

‘변태’ 감독, 한국 영화계 이단아. 이상우 감독(42)은 사람 속깨나 긁는 영화를 제작해왔다. 자신의 영화 ‘엄마는 창녀다’ , ‘아버지는 개다’ 등에서 가족 간 불통으로 이어지는 지옥도를 그려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금기시된 부모를 ‘개’, ‘창녀’로 내몬 그의 영화적 실험은 언짢고 불편하다. 하지만 혹독하고 매운 결말에 다가갈수록 다시 화해로 돌아온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숏!숏!숏! 2013’에 출품할 ‘비상구’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그와 전화로 만났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영화에서 보여준 과격함과는 다르게 수줍음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올해 영화제의 폐막작 ‘와즈다’의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을 극찬했다. “용기가 많은 분 같다.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감독이 그것도 여성의 성장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는 것. 그가 유일하게 건드리지 못한 금기에 도전하는 감독에게 경외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의 전작들도 만만치 않았다. 하이파 감독 못지않게 너무 센, 아니 경악 자체에 가까운 작품을 내놨다. 지난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지옥화’부터 ‘나는 쓰레기다’까지, 그가 영화 심의를 받을 때마다 제한 상영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때문에 그는 요즘 ‘자체 검열’을 한다.

이런 그에게 전주국제영화제는 해방구다. 영화제는 검열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영화제가 열리는 고사동 일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청량리 일대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를 편하게 하는 요소다.
우선 여기서 그에게 씌워진 몇 가지 오해를 풀고 가자. 그 중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느냐는 것. 유감스럽게도 그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실제로 그의 카카오톡에는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이번에 출품하는 영화 ‘비상구’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거침이 없는 그로 돌아왔다. 김영하의 원작 소설 ‘비상구’를 읽어 봤냐고 묻자 “솔직히 난 책을 잘 안 읽는다. 그런데 ‘숏!숏!숏! 2013’ 때문에 책을 읽었고, 바로 ‘내가 만들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을 무대로 벌어지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내 고등학교 시절 방황했던 것과 닮았다. 당시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막 살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고민과 내가 하는 고민이 맞닿아 있었다”고 답변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두 명이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네 명의 주연으로 나눠 서로에 대한 결핍을 이야기하며 한국사회의 무기력함을 과감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단골 레퍼토리가 빠졌다. 가족을 모티브로 영화를 찍었던 그는 이번에는 가족이 배제됐다. 원작소설에 가족 이야기가 없기도 했거니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전작에서는 롱 테이크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컷 편집을 주로 하면서 영화의 속도감을 강조했다. 그렇다 해도 그를 흠모하는 팬들은 실망할 필요가 없을 듯.

그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영화 내용은 여전히 ‘하드코어’ 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주변사람들이 자꾸 영화에 카메오나 주연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이번에도 나왔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것은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이미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바비’에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광팬들에게 잠시 실망감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바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남의 돈 들여 찍은 첫 영화고, 또 상업배우와 함께 했다는 것. 그는 “내가 왜 맨날 강한 영화만 찍어야 하느냐”며 “순한 영화도 찍어보고 싶었다”고 항변했다. 그의 ‘변절 아닌 변절’을 방송인 김구라에 비유하자 “김구라씨를 좋아한다. 그도 욕을 많이 먹었지만 이제는 날카로운 개그로 자리 잡지 않았냐? 닮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팬들의 계속된 요구가 신경 쓰이는가 보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자극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자신의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으면 한다”는 간절한 심정을 전했다. “내 영화는 다운로드로만 본다. 이제 당당히 극장에 걸고 싶다” 는 감독은 내년에 50억 가량 제작비가 투입되는 상업영화를 찍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변절(?)에 손가락질 하지말자. 김구라를 용서해준 문희준의 마음을 기억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