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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315건)

평소 자주 다니던 산책로가 엉망이다. 도로 공사를 하기 위해 막아버려 다른 길로 돌아다녀야 한다. 늘 다니던 길이 그렇게 되어 버리니 아쉽다. 어느 땐 나도 모르게 그 길로 들어섰다가 되돌아 나오곤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니 자연히 그 길과 멀어졌다. 이제 새로운 코스가 당연한 길이 되어 버렸지만 옛길이 그리워 그 근처를 서성거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달라진 길 모습이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사람들의 발자국 따라 다져졌던 길은 어느새 풀들이 수북해서 선뜻 발 들여놓기가 망설여졌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어지니 순간에 이렇게 되어 버리는구나 싶다. 문득 맹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孟子謂高子曰(맹자위고자왈)/山經之蹊間(산경지혜간)/介然用之而成路(개연용지이성로)/爲間不用(위간불용)/則茅塞之矣(즉모색지의)/今茅塞子之心矣(금모색자지심의)’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산길이라도 사용하면 길이 되지만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다. 지금 그대의 마음을 띠풀이 꽉 막고 있구나.’하는 내용으로 사람의 본성도 마찬가지라서 수양하지 않으면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면서도 실현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누군들 그 사실을 모를까. 알면서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리라.오래된 일이다. 상당히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마음 내키면 아무 때나 드라이브 가고 여행을 다니면서 거리낌 없이 속내를 보이던 사이였다. 한 가지 다르다면 그쪽은 농담을 좋아하고 나는 그런 농담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쪽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농담이고 내 쪽에서 하는 말은 전부 진심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계가 되었다.어느 날, 그쪽에서 오는 농담을 별생각 없이 받아넘겼다. 그런데 친구는 본인이 한 말은 농담으로 했다고 생각하면서 내 말을 진담으로 알아듣고는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나와 결별을 작심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 변명조차 하기 싫어 그 길로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몇 년이 흐른 뒤 정반대의 일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무척 마음 상하는 일을 당했다. 정말이지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만한 일로 정을 끊어 버린다면 내 곁에 과연 친구가 몇이나 남게 될까, 세상 살면서 외톨이가 될까 두려웠다. 어떻게 하든 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내 마음의 상처가 가실 때까지는 자주 마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되도록 오래 대면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결과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시 전처럼 가까운 관계로 회복되었다.먼저 친구와는 그야말로 띠풀로 막힌 길이 되어 버렸고 나중의 친구와는 더는 그런 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기를 넘겼다. 먼저 친구와의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나중의 친구 관계는 내 쪽에서 띠풀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가끔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지나고 나서야 좀 더 현명하게 처신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인생 공부는 왜 꼭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것인지. 하긴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내가 조금은 성숙해졌는지도 모른다.부딪치고 꺾이면서 생긴 상처들을 안고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치받고 일어날 때 어떤 희열을 느끼기도 했고, 극에서 극을 넘나드는 감정의 변화가 때론 삶의 무게를 높여 주기도 했다. 생각이 단순하지 못하다는 것은 맑은 성격이 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삶의 굴곡을 들여다본 경험이 세상을 깊게 보는 눈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어찌 보면 그 친구의 결별이 오히려 내 삶의 길을 올곧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 지침서가 된 듯싶다. 내 본성을 잃어버리거나 어긋나는 일 없이 잘 비껴갈 능력을 키워 준 것이리라.이렇듯, 한 번 겪은 띠풀의 경험이 있었기에 내 안에는 그런 띠풀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김재희는 '수필과 비평'을 통해 등단했으며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장승'으로 등단한 뒤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등을 출간했으며,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전북지부장을 역임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1-25 23:02

가을바람이 불면 술 한 잔이 생각이 난다. 젊은 시절 농사일에 땀 흘리고 잠깐 쉴 때 마셨던 새참이 그립기 때문이다. 막걸리로 시작한 농촌의 술 문화는 이제 약주, 맥주를 거쳐 고량주 까지 진전하여 시골 들녘까지 맥주나 고량주가 배달되는 세상이 되었다. 도시에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마시는 술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작업성과를 독촉하는 상사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이었기 때문에 최고의 맛이었다.어느 날 문득 옛날 임금님의 술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궁금했는데 우연히 임금님이 마시는 우리나라 전통의 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술 이름이 ‘온’이라고 했다. 보통 술은 쌀밥에 누룩을 섞어 빚는다. 쌀이 누룩을 만나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처음 나온 술이 단양주이다. 이 단양주를 다시 한 번 빚으면 이양주가 된다. 이 과정을 12번 반복하고 정제하여 빚은 술이 온이다. 아마 온이라는 술을 만들다가 신하가 술기운에 취해 횟수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술맛이 궁금하였다. 나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 술을 마시면 걱정은 사라지고 보이는 여성은 모두 천국의 미인 같을 것 같았다. 중국 초나라 장왕 때의 일이라고 한다. 어느 날 장왕은 장수들과 늦도록 연회를 베풀며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날이 어두워지자 통 큰 장수가 임금이 특별히 사랑하는 여자의 손목을 슬그머니 잡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아마 술기운에 용기가 생겨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성추행을 당한 그녀는 엉겁결에 장군의 갓끈을 잡아 당겨 끊어버렸다. 그리고 빨리 불을 켜라고 소리를 쳤다. 장왕도 눈치를 챘지만 험악한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기지를 발휘하여 명령한다. “경들은 불을 밝히기 전에 모두 자기 갓끈을 버리시오”라며 연회석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그때 갓끈이 떨어져 나갔던 장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 장수는 그 뒤 초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앞장서서 공을 세워 빚을 갚았다는 임금과 술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50여 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그 때는 가정에서 술을 빚을 수가 없었다. 술은 주조장에서만 제조하여 파는 독과품목이었다. 주세가 국가 수입의 비중을 크게 차지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서민들은 몰래 술을 만들어 보약처럼 마셨다. 당시 시골마을에서는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이웃마을까지 금세 전달이 되어 제조하던 술을 헛간이나 돼지 울에 숨겼다. 그러나 단속하는 사람들은 술에서 풍기는 발효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찾아냈다. 그렇게 발각되면 한번 봐달라고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술을 몰래 제조하다 적발된 뒤에 부과되는 벌금제도는 애주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술 제조가 자유롭게 허용되어 지역마다 특산주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경쟁 사회가 되었다.요즘 우리 사회는 서로를 불신하고 오가는 말들은 사납다. 이럴 때일수록 한 잔 마시고 ‘카!’ 하면서 깍두기를 우지직하게 씹는 얼굴들이 보고 싶다. 좋은 일은 친구 덕이고 잘못 된 일은 내 탓이라며 텁텁한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싶다. 술에 취해 불그스레한 얼굴을 마주보며 마음을 열고 동네 모정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옛 친구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장병선씨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덕진문학〉 〈행촌수필〉 회원으로 문단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전주 덕진공원 문화재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0-07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