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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451건)

얼마 전 연사로 참여했던 강연장에서 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은 타고난 건가요? 타고난 재능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부모의 DNA 중 우성인자에 의한 선천적인 능력? 그렇다고 하기 에는 나의 부모님과 친가, 외가 친척들, 조상님까지도 미술업계에 종사하셨다는 분은 계시지 않았다. 혹은 재능이 있었지만 개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다. 부모님도 두 분 모두 손재주가 좋으시니 말이다. 영혼 통하듯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일그렇다면 과연 나는 정말 타고났을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유치원 때? 그것보다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것을 내밀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나의 이름이 쓰여 진 스케치북에는 매번 다른 사람들의 그림으로만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그림을 바라보기만 하던 꼬맹이의 첫 그림 입문은 바로 ‘먹지’의 존재를 알고부터였다. 그때부터 집에 있는 동화책 속 공주님이란 공주님은 죄다 베껴 그려지는 대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그림은 몇 번 이고 베꼈다. 그림의 검정 라인이 덧그려진 나의 선들로 인해 너덜거렸다. 그러다 조금 더 크니 상상 속 공주님을 직접 그리게 되고, 집에 있는 사물을 보고 그리고, 풍경을 그리게 되더라. 나는 그냥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였지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많았던 것이 선천적인 부분이라면 그렇달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들이는 만큼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타고난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 일은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만큼 피아노 또한 좋아했다. 아직 손이 덜 자라 피아노를 칠 수 없을 만큼 작은 아이였을 때, 특별히 떼쓰는 것 없이 순했던 내가 피아노 학원 앞만 지나가면 그 앞에 앉아 울고불고 해서 엄마를 당혹케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꽤 긴 시간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던 피아노가 어찌 보면 미래의 직업으로 선택하기에 더 알맞았을지도 모른다. 한두 번 콩쿨에 나가 입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에서의 공포심과 실수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피아노는 나의 흥미에서 점점 멀어졌고 학원을 가는 것이 괴롭게만 느껴졌다.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것이 참 힘들다.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할라치면 평정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강연을 망치고 돌아와 이불킥하기 일쑤이다.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림 공연을 할 때만큼은 예외다. 오히려 그들의 에너지를 받아 작품에 원 없이 표출한다. 그렇게 아낌없이 쏟아 그림을 완성하고 난 뒤 돌아서서 관객을 바라보았을 때의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살지 말자나에게 피아노와 그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영혼이 통하듯 오롯이 집중해서 그 행위에 빠질 수 있는 어떤 힘이지 않을까 싶다. 소울 메이트처럼 직업에도 소울 매치(Soul match)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두 해를 나만의 소울 매치를 창조하기 위해 보내왔다. 그리고 2017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길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지라도 남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맞추어 살기 위해 나의 몸과 영혼을 깎아 우겨넣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신은미 씨는 성신여대를 졸업하고 전주한옥마을에서 아트샵 새라바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1-02 23:02

나는 대학시절 남들 보기에 ‘쓸 데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전공 특성상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면 취업에는 큰 지장이 없었던 덕분이었다. 기말 시험을 보러 가다가 눈 내리는 거리의 모습에 감명 받아 갑자기 그대로 남산에 가서 풍경을 본다거나,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으면 망설임 없이 관련된 다른 전공의 수업을 수강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물론 시험에 불참한 과목은 재수강을 하게 되었고, 쟁쟁한 전공생들 사이에서 얻은 타 전공수업 학점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그토록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기회는 그 때가 아니면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일그러던 어느 여름, 계절학기로 개설된 ‘성의 철학과 성윤리’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무려 지하철로 열 정거장이 넘는 다른 학교까지 가서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주변에서는 쓸 데 없이 멀리까지 가서 학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을 듣지 말라는 조언을 했지만, 나는 그 수업을 듣고야 말았다.그리고 그 수업에서 나는 지금까지 마음에 새기고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말을 듣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불쾌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때 이것을 단순한 감정의 경험에서 끝내지 않고, 그 기분의 기저에 깔린 원인을 찾아 이성적인 언어로 표현해보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한다면 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한 마디로, 불평만 하지 말고 상황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보자는 말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규칙이나 제도 등에 의해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나만 그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인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일하면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을 자주 보는데, 그런 노력들 덕에 이런 법률도 제정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일할 때에도 막연한 답답함을 적극적으로 말로 풀어보면서 그 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관련 법령을 찾다 보면, 승소의 기쁨을 누리는 때가 많다. 모두가 수강하지 말라고 말렸던 저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배움이다. 이 정도면 살면서 다소 쓸 데 없는 짓을 일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삶의 많은 부분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오히려 삶의 많은 부분 지탱해주는 힘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이 가면, 나는 이십대를 지나 서른 살이 된다. 그동안 계속 밖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이십대 초반에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밑거름을 만들어둔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른 살을 앞두고 다시 삼십대를 견뎌낼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일구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은 무엇인가 편치 않다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 왔다면, 이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를 때가 아닐까. 새롭게 삼십 대를 맞이한 시점에서의 ‘쓸 데 없어 보이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보려 한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2-26 23:02

이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12월이 되자 아직도 올해의 여러 날이 남았건만 우리 모두는 벌써 한해 마무리와 새해 맞이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2016년 12월 다이어리의 빈칸을 미처 채우지 않은 채 필자도 2017년 새 다이어리에 올해의 12월 칸을 적어 나가고 있다. 불안한 20대 청춘들이 그렇듯 본인 또한 희망적이고 도전적이 한해를 꿈꾸기보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들에 대한 안도와 평안을 찾는 한 해에 만족을 했더랬다.억지로 만족하던 삶그냥, 그런대로나는 원래 불안하고 소위 말하는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이니, 외부적 요인들이 흔들리거나 사회적 질서가 어긋나도 별 대수로운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미래는 꿈꾸는 것이라기보다 원래 불확실한 것이라 그런대로, 안정적인 직장은 내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이미 포화상태인 그런대로, 예술가는 가난한 것이라고 하니 부족한 그런대로. 나는 ‘억지로’ 만족하는 삶을 꾸려나갔다. 그것은 비단 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 주위의 친구들이 그랬고, 20대의 청춘들이 그랬으며, 2016년을 살아가는 나의 이웃들이 그러했다. 방관하는 삶을 자처했고, 책임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꺼려했다. 그러니 뉴스를 보려하지 않았고,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해 사회나, 이웃을 돌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그러던 내가 뉴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간이 역행을 한 것 아니냐, 어떻게 지금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뉴스가 굉장히 자극적으로 연출된 드라마를 보는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한 나라를 이끄는 소위 어른이라 불리는 정치인, 기업 총수들은 조사를 하는건지, 농담을 하는건지 모를 정도였다. 개그show보다도 웃긴 티비show가 청문회라는 포장을 하고 전파를 탔다. 평소엔 세상 모든 이치를 알던 사람들이 그저 ‘잘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만 연신 되풀이했다. 응징으로써의 행동이 아닌 희망으로써의 미래 시민의 아픔 앞에 국가와 국민을 말하던 ‘어른들’,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 우리는 어쩌면 훨씬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순실의 시대라고 표현되고 있는 이 사회는, 사실은 상실의 시대 안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만 그득한 느낌이다. 야만의 시대서 희망을 찾다하지만 희망은 있다. 누군가 국민은 현재 분노하는 마음이니 감정이란 것은 시간이 흐르면 사그라들고, 무뎌지기 마련이니 잠시 기다리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분노라는 단어로 국한 지어지는 감정 그 이상이다. 잘잘못을 따지고 그것에 응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고를 뛰어 넘어, 퇴보하는 사회에 대한 경계이며,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절절한 열망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지경 세상. 모순된 사회 앞에 우리는 조금 더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오피니언 | 기고 | 2016-12-12 23:02

며칠 전 한 청년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대학모임에서 만난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각자 자신 있는 영역을 분담하여 출판과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글을 좋아하는 그는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있었다. 소위 일류라고 말하는 대학을 다니는 엘리트들이었다. 사람들의 기대와 정해진 길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가 원하는 일을 찾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실천의 어려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상황들, 시선, 두려움, 결정 장애, 게으름 등에 의해 민들레 홑씨와 같은 나의 결심은 땅에 안착하지 못하고 바람에 쓸려 날아가 나뭇가지에 걸리고 동물의 털에 붙기도 하고 강에 떨어져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흘러가버리고 만다. 그렇게 하염없이 떠다니는 홑씨들만 몇 십 포대는 족히 넘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온전한 상태의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씨앗이 반 토막 나있거나 또 어떤 것은 안이 썩어 있기도 하다. 그런 것들은 잎을 틔우기도 전에 문제가 생긴다. 내가 옳다고 믿어 실행한 일이었건만 막상 속을 뜯어보니 독선이었고 이기적이었다. 그런 과거의 경험들은 결국 건강한 씨앗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자양분이 된다. 12월의 냉각된 공기는 온몸을 타고 흐르며 세포 하나하나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올 한해 있었던 모든 일들을 회상하며 만족, 보통, 불만 표에 체크하듯 나를 평가한다. 그 기준은 ‘얼마나 실행 했나’였다.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다. 연말이 되면 부랴부랴 갈아엎어지는 아스팔트처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2016년의 부족한 만족도를 높여 줄 실적을 조금 더 올려보고자 나의 버킷리스트를 꺼내 뒤적여 본다.긴 시간동안 생각만 하고 선뜻 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바로 ‘타투’였다. 몸에 평생 남을 무엇인가를 새기는 행위에 대해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그들의 우려로 항상 제지당해야만했던 흐물거리던 나의 의지를 이번에야 말로 빳빳하게 세워본다. 그렇게 나의 오른쪽 손목에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꽃심’이라는 말이 있다. 전주의 정신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심은 만물의 중심 옴파로스(배꼽)를 의미한다. 나에게 아로새겨진 이 꽃은 앞으로 나의 중심과 의지를 잡아주는 부적이 될 것이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것을 해버리고 나니 마음 한켠이 홀가분해 왔다. 그리고 마치 신통한 부적인 양 용기가 생겼다. 차근히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본다. 이번에는 급하지 않게 다음 목표와 기간을 설정한다. 원하는 것을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노라면 마치 사랑할 때의 그것처럼 설레고 생기가 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신호들은 어차피 내가 그 일을 잘 해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들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오롯이 집중만 하면 된다. 끊임없이 민들레 홀씨를 퍼뜨리자시끌벅적함에 휩쓸릴 12월보다는 담백하고 진정성 있게 나를 들여다보는 연말을 보내기로 한다. 매해 초 마다 흐지부지 되고 마는 작심삼일의 계획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오늘도 여전히 나의 민들레 홑씨들은 정처 없이 이것저곳을 떠돌고 있다. 그렇다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흘러가던 씨앗들이 언젠가는 비로소 흙을 만나 찬란하게 피어나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씨앗을 만들고 퍼뜨려야 한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2-05 23:02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인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기꺼이 포기한 괴물 같은 1%들 때문에 나머지 99%가 유례없는 국가적 수치심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토록 비정상적인 1%가 어떻게 한국사회를 이끄는 리더 집단이 되었을까. 1%의 사람들에 대한 99%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99%의 사람들은 1%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먹고사는데 급급해서호스텔 운영이라는 개인사업을 하면서 필자의 삶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첫째, 시간 통제가 잘 안 된다. 게스트가 이용한 객실 침대 시트를 교체하고 다양한 커피 메뉴를 익히고 매월 한 차례씩 진행하는 강연회를 준비하다 보면 그새 한 주가 지나가 버린다. 정신없는 일상이 정신없는 국가 상황을 압도한다. 둘째, 한 주에 한권씩 책을 읽던 습관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책은 정기적으로 계속 구매하지만 반절 읽기도 전에 새로운 한 주를 맞는다. 이런 삶이 계속되다 보면 누가 어떤 정치를 하든지 사회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내 삶에 큰 영향이 없을 거 같은 착각마저도 든다. 무엇이 오랜 시간 지켜졌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진중하게 이유를 찾아 봤다. 먹고 사는 일이 이유였다. 먹고 사는 일이 일상에서 너무 비중이 커진 게 문제였던 것이다. 필자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의 99%도 마찬가지다. 일이 좋아서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많이 해도 먹고 사는 일이 잘 해결이 안 된다. 공자는 인간은 배가 따뜻해야 인과 예를 안다고 했다.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은 이들에게 정치니 도덕이니 당파니 연대니 별 의미 없다. 경제적 가난은 생각의 가난으로 또 행동의 가난으로 이어져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적극 나설 수 없게 하는 큰 요인이다.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다시 교육이다. 아니 어쩌면 역사상 교육이 필요한 제일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과는 다른 교육이어야 한다. 고작 1%만 획득하는 대학간판을 위해 99%가 고유의 적성과 능력을 포기해야 하는 교육이 아니다.먼저 금융교육이 필요 하다. 한국사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은 의도적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99%에 대한 금융교육에 인색하다. 자본주의에 살게 하면서 ‘자본’에 대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단지 열심히 살아 노동과 시간을 맞바꾸는 일만을 가르친다. 그런데 어디 부를 독점하는 1%가 99% 보다 더 열심히 노동해서 돈을 축적하는가? 99%가 먹고 사는 일에서 해방되지 못 하는 건 개인의 역량보다 교육 시스템의 구조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금융·인문 교육에서 해결책을여기에 인문교육이 더해졌으면 좋겠다. 인문학이나 인문정신을 뜻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은 로마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가로 꼽히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만든 말이다. 키케로에 의하면 인문정신이란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점잖고 충실한 사적 삶을 영위한 덕성이다. 공공영역에 적극 참여라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추게 할 인문교육은 우리에게 왜 진행되지 않을까. 비판과 의심이 아닌 체제 순응에 맞춰진 교육에 너무도 오랜 시간 습성화 돼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짧게는 고교 3년,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12년. 거기에 또 대학 4년. 길어도 너무 긴 교육과정 시간 동안 제대로 된 금융교육과 철학을 비롯한 인문교육이 한국 사회에만 없다는 건 정말 우연일까? 이러한 교육제도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1%인가 99%인가.

오피니언 | 기고 | 2016-11-2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