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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는 차이 즉, 서로 다름이라는 다양성 가운데서 존재한다. 다양한 개체 속에서 균일하거나 유사한 개체 또는 집합체를 통해 양식이 만들어 지고 이에 맞게 다양한 개체들이 규격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식화는 그 목적이 미적이거나 기능적일 수 있지만 규격화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특정 목적과 기능에 따라 규격화된 개체들은 다양한 속성, 즉 다양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에 있어 규격화는 늘 경계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배척해야할 대상 또한 아니다. 이는 마치 갈등구조와도 같이 느껴진다. 다양성 그리고 양식화와 규격화... 규격화된 미의식을 추구하였던 고전주의와 이에 대한 파격을 통해 다양성의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던 낭만주의처럼 말이다.민요 규격화에 따른 장·단점우리나라 전통공연예술에서도 양식화와 규격화에 의해 다양성을 잃어버린 개체들이 있다. 삶의 현장에서 불리던 토속민요가 전문가들이 불러 지역의 구분 없이 향유되었던 통속민요의 양식에 맞춰 규격화 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악보화 될 때도 마찬가지로 통속민요의 어법으로 해석되어 서양의 오선보에 기록되다보니 토속민요의 다양성이 쉽게 규격화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생활과 밀접해 현장성과 즉흥성이 생명인 민요가 공연예술화 과정에서 점점 더 규격화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사물놀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사물놀이는 무대예술로 양식화된 대표적인 전통공연예술이다. 1978년 2월 서울 대학로의 ‘공간사랑’이라는 자그마한 무대에서 네 명의 연주자가 경기·충청지역의 ‘웃다리풍물’을 연주하였다. 풍물굿이 무대라는 정형화된 공간에서 연주된 것도 또 앉아서 연주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두 달 후 이곳에서 ‘사물놀이’라는 단체명으로 두 번째 공연을 한다(처음에 사물놀이는 단체의 이름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꽹과리, 장구, 북, 징 네 개의 악기로 연주하는 양식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때부터 김용배,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네 명의 연주자들은 풍물굿을 무대 예술화 하여 관객과 새롭게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산업화와 서구화로 잊고 살았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으며 전통의 소중함과 가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때 전통문화하면 사물놀이를 연상할 정도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하였는데 무엇보다 더 주목할 점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미 잊힌 풍물굿을 사물놀이 통해 다시 찾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연희자와 참여자를 무대와 객석으로 엄격히 구분시켜 풍물굿의 대동적인 신명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춤과 노래, 재담, 재주, 연극적 요소인 잡색 등의 총체적 연희를 배제하여 종합예술적인 성격을 축소시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풍물굿이 양식화되고 규격화되며 다양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대예술로 양식화된 개체를 즉, 목적과 기능에 따라 규격화된 개체를 원 속성의 개체와 동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양식화와 다양성의 갈등 구조무속음악과 관련이 있는 시나위, 시나위의 허튼 가락을 양식화한 산조 또 이들과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판소리 그리고 이들 근간에 존재한 민요. 이 모든 음악들이 공연예술로 규격화되며 다양성을 잃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장성과 즉흥성 또한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성을 위해 규격화된 이들을 다시 해체하여 원래의 상태로 돌려보내야 할까? 아니면 공연예술로 양식화된 이들의 다양성을 최대한 담을 수 있는 규격을 고민해야 할까? 어렵다! 역시 다양성 그리고 양식화와 규격화 이들은 갈등 구조로 얽혀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2-13 23:02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다말고 어려워서 여러 번 덮어버렸다. 인터넷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찾은 적도 있다.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 등 우주여행에 관한 영화를 여러 편 찾아서 보았다. 어떤 오기 같은 것이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내셔날 지오그래픽에서 만들어놓은 ‘코스모스’ 동영상을 발견했다. 13부작을 다운받아서 일주일 넘게 집중해서 보았다. 역시 우주는 광대하고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결론만을 확인했으나 시간만 소비한 것은 아니었다. 우주달력 속 인류는 티끌에 불과우주달력은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한 빅뱅을 1월 1일 0시로 하고, 지금 현재를 12월 31일 자정으로 가정하여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1년으로 축소해서 만든 압축달력이다. 한 달은 10억년이고, 하루는 4천만 년이다. 태양은 8분 전의 과거고, 달빛은 1초 전의 과거다. 여기까지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그러나 사람이야기가 나오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리는 12월 31일 9시 45분에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350만 년 전이다. 모세는 7초 전, 싯달타는 6초 전, 예수는 5초 전, 모하멧은 3초 전에 태어난다. 그 짧은 시간에 이들은 인류 정신의 한 축을 구축했다. 12월 31일 11시 59분 46초에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문자를 모르고 살던 인류의 모든 것이 멸실되는 것을 간신히 막을 수 있는 시간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마련되었다. ‘코스모스’를 읽다보면 빛이 우리들과 가까이 있으면 ‘태양’이 되고 우리에게서 멀리 있으면 ‘별’이 된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 이름 지었을 뿐 그것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중심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는 우주 공간을 분별하기 위해 임의의 점 하나를 찍는다.(올해는 우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참으로 민망한 시국이다). 이 임의의 점을 중심 혹은 정상이라고 믿으며 거기에 집착하고 그에 따른 온갖 힘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임의의 점은 언제든 쉽게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쉽게 지워버릴 수 있다. 우주의 무한함을 증명하기 위한 일시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사람도 생물이므로 유전자가 증식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이다. ‘시간은 모든 것이고, 인간은 시간의 사체일 뿐이다’는 마르크스의 서늘한 말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것도, 사실은 드넓은 우주에 찍힌 아주 작은 임의의 점일 뿐이다.사람이라는 생물이 유전자를 보전하는 도구이고, 시간의 사체일 뿐이라는 말 앞에서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었던 자만심 내지는 교만함이 슬그머니 무너지게 된다.지금의 나는 자유로운가지금 나는, 삶의 본질에 대해 의연한가? 세상의 균형과 불균형을 똑같이 아름답게 바라보는가? 지금 나는, 임의의 점 하나에 집착하고 몰두했던 시간들을 내려놓고 자유로운가? 멸실되지 않을 역사와 정신을 위해 글을 쓰는가? 나의 글과 나의 행동은 서로에게 당당한가? 2016년이 저물어가는 12월에 이런 질문들이 나는 부끄럽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2-06 23:02

요사이 며칠간 온 국민들은 새로운 드라마를 JTBC 8시 뉴스에서 보았다. ‘순실의 시대’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국민들은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 절망감에 빠져버렸다. 유신시대, 재정 러시아의 라스푸틴, 정난정 등 과거 절대왕정시대에만 있을 법한 일, 상식적인 모든 것을 초월한 사건이 현실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4대강 사업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기반이었던 건설업으로 국가 세금을 낭비하더니, 이 정권에서는 최순실과 차은택이란 인물이 문화계를 뒤흔들고 국민의 세금을 사적 자금화하였다. 국정 전반이 절단된 작금의 사태박근혜 정권 초기에 임명된 유진룡 장관은 문화 영역에서 이력을 쌓아온 정통 관료 출신으로 문화계 안팎에서 능력과 소신을 갖춘 인사라고 평가를 받아왔다. 대선기간과 취임초기에 창조경제 기반 하에 문화융성을 국정 최고의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유 장관 및 전문가들이 추진하였다. 하지만 중도 탈락하게 된다. 이 때 빠진 그림이 최근에 드러났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최순실씨가 ‘국가 이미지 통합’ 등의 사업으로 문화계 예산에 영향력 행사를 계획하면서, 2014년 7월 유진룡 문체부 장관을 물러나게 하고, 문화계 황태자인 차은택의 대학원 스승인 김종덕 홍익대 교수가 문체부 장관으로 부임하고, 한달후인 8월 차씨는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에 위촉된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문체부 내 ‘유진룡 라인’ 1급 공무원 6명이 사표를 내고 이 중 3명이 문체부를 떠났다. 그해 11월에는 차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되고, 12월에는 차씨의 오랜 지인인 제일기획 상무 출신의 송성각씨가 콘텐츠 진흥원장으로 임명되고, 이로써 차씨는 문체부에서 가장 많은 예산이 배정된 문화창조 융합본부장을 맡게 된다. 이와 같이 1년간 문화융성 사업의 전반을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융합벨트 등으로 재구성하고, 대통령, 청와대, 문체부, 콘텐츠진흥원,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 최상층의 정책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 사업의 관리 및 집행, 사업의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장악한 것이다. 작금의 사태는 국정 전반이 절단된 것이며,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새로운 산업 시대를 준비해야할 역량이 몇몇 개인의 농단에 의해 오염된 것이다. 국가 전반의 체계 구축이 중요사항이지만, 미래의 먹거리이고 계속 성장하고 있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지속하며, 창업 벤처 흐름을 유지할 수 있고, 투명한 사업 진행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 마련이 시급하다. 국정조사로 의혹 가려내야이를 위해 첫째,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철저한 국정조사로 의혹을 가려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6조원에 육박하는 문체부 예산안이 논의 중이다. 특히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은 2019년까지 7000억원 규모로 내년 예산 1278억원이 투입된다. 두 번째, 미르재단에서 보듯 동반성장이란 명목으로 대기업에 세금 지원하는 사업은 폐지돼야 한다. 세 번째, 문화예술계를 블랙리스트라는 유신시대에 성행하던 행태로 규제하고 압박했던 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모든 사업에서 인맥이 우선시되는 풍토가 개선되어야 한다. 네 번째, 이 사건을 계기로 콘텐츠산업 및 문화예술계에서는 현재 선진국들의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콘텐츠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장기적 발전 방향과 정책이 논의되어 차기 정권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바란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1-0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