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9-20 19:06 (목)
청춘예찬 (451건)

딱 10년만이었다. 어떻게 하면 줄인 교복 치마를 들키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수많은 규제와 단단한 울타리가 있던 곳.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다고 매일 말하던 곳. 나의 십대 반항이 무성했던 학교를 찾았다. 같은 재단의 여중, 여고를 나온 터라 단 몇걸음 만으로도 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공모에 응시하는데 생활기록부가 필요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온라인으로도 서류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좋아진 세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늙은 젊은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꿈 꾸고 살던 때꾸역꾸역 학교를 찾아가 그 시절은 몰랐던 다른 시선의 나를 보았다. 역시나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성적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에 적극 동의하던 나였다. 그럼에도 의식 한켠엔 꽤나 공부를 잘 하던 학생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기대했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아주 편협한 성적표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잘하는 것만 잘하는 나였다. 좋은 것만 기억하는 나였구나. 어찌 보면 선호하지 않은 과목에 양, 가가 확실한 ‘양가집 처자’였다. 성적에 적잖은 실망을 하였지만 그 시절 이런 성적을 받고도 좋은 것만 기억에 넣어둔 10대의 내가 대견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장래희망’이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고3이라는 시간 속에 나의 꿈이 변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단지 희망이었을 뿐인데, 점점 ‘장래현실’이라도 되는 마냥 선명하고 될 만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열네살 나의 장래희망 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아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최고의 경지가 그 지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문화재의 제도가 국악 예술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갖는 요즘 의 나와는 다른 시선의 나였다. 그리고 열아홉, 6년의 시간 속에 빈칸은 채워지고 또 채워지며 결국은 ‘국악인’이라고 적혀있었다. 육성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포괄적일 수 있다니. 범위는 커지고, 경계는 넓어졌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꿈이었다. 그 시절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뚜렷한 꿈이 있는 네가 부러워, 나는 커서 뭘 하고 있을까?’ 사실 나는 그저 꿈을 적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직업란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니 꿈이 생겼다. 그것이 나의 희망이자, 그 해 장래희망이었다.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생긴 책상에서 공부하던 아이들. 서로가 같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던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푸르고 또 푸른 靑春의 한 때를 지나고 있기도 하고, 청춘인 줄 모르고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꿈꾸며 사는 인생이 무모하고, 허황된 얘기라 비웃음을 사는 나이 같지만, 그 시절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꾸역꾸역 꿈을 꾸고 살았다. 장래희망 빈칸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도 그랬다.장래 희망 속 나로 살고 있어 다행그 날, 큰 서류봉투에 학생기록부와 함께 자기소개서라기보다 자기소설에 가까운 종이를 몽땅 밀어 넣고 공모에 응했다. 오랜만에 10년 전 나를 바라보는 일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공모의 당락보다 훨씬 갚진 것을 얻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 청춘에 국한 되지 않고 우리는 모두 꿈꾸며 살아간다. 그것은 모른 체 하느냐, 바라보느냐의 관점일 뿐. 10년 전 장래희망 칸 속의 나로 살고 있어 참 다행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8-22 23:02

사랑 가득한 유치원 교사를 꿈꾸던 스무 살, 사범대 새내기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의 관심은 온통 졸업 후 교사가 되어 만나게 될 어린이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쏠려 있었다. 무엇이든지 알고 싶었고, 모든 것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각종 개론 수업을 시간표에 빼곡히 채워 넣어 다녔고, 그 중에서도 ‘교육학개론’은 나의 대학생활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과목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을 들으며 보았던 EBS 지식채널-e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영상은 아직까지도 종종 떠오른다.10년 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현실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과외, 과외 종목 평균 3.13개, 10명 중 7명은 학교에 가기 싫다, 하루에 부모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30분이라는 응답 30%, 친구와 노는 시간 거의 없다는 응답 30%, 가출 충동을 느껴본 적 있다는 응답 53.3%, 자살 욕구를 경험해본 적 있다는 응답도 27%, 자살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성적 문제. 위 영상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는요 학원에서 시험 보면 영어는 항상 100점 맞아요. 근데 수학은 꼭 한 두 개 틀려요. 정말 속상해요.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 속 초등학교 2학년 예영이(가명)의 말이다. 나는 약 6년 전 교육열이 높다는 동네의 한 사립 유치원에서 교육 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유치원에 등원하기 전에 이미 각종 학원에 다녀오는 아이들을 보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위 영상은 약 10년 전의 것임에도 지금 초등학생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고학력과 좋은 학벌이 반드시 명예와 부를 가져다주지 않게 되면서 이에 대한 강박적인 매달림은 다소 적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결코 능력주의 사회가 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개인의 노력보다는 물려받을 자산이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신분제 철폐를 외치며 근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참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2007년의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과중한 학업 부담에 힘겨워 했다면, 지금은 여기에 집단 따돌림이 더해진 듯하다. 집단 따돌림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괴롭힘의 강도도 훨씬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나와 다르면 배제하고, 나보다 못하면 짓누른다. 나보다 많이 가진 것 같으면 아첨하고, 덜 가진 것 같으면 꺼려한다. 신분제 사회와 비슷한 면이 참 많다.이처럼 지나친 등수 경쟁이나 집단 괴롭힘 등 어린 초등학생들이 빚어내는 풍경을 바라보며 성인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요즘 애들은 애들 같지 않아.” 하지만 특별한 목적 없는 지나친 경쟁이나 누군가를 이유 없이 배제하는 무리 짓기, 모두 우리 성인들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린이들은 어딘가 별천지에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성인이 병든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멀쩡할 리 없다. 어린이들 힘든만큼 우리 사회 병들어2016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그것이 힘든 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는 뜻이다. 사범대 새내기 시절 나는 어린이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했고, 그 호기심을 충실히 따라갔다. 그렇지만 그 꿈은 희미해져 버렸고, 지금은 따라간 그 길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졌다. 나는 교사가 되지 않았고, 그만큼 씁쓸해졌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8-08 23:02

최근 지역의 한 청년단체가 지역청년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를 펴냈다. 2016년 1월부터 4개월에 걸쳐 청년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전주시 청년실태 및 정책수요조사이다. 청년들의 삶에 대한 기초자료가 희박한 ‘지역’에서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위한 조사와 분석을 한다는 것은 결과물의 내용도 주목할만 하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크다 하겠다. 물론, 연구자들이 기 언급한 바 있듯 1,000여명이라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모집단의 대표성에 대한 우려 등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그간 ‘막연한 느낌’으로만 알고있던 지역청년들의 문제와 정책수요를 보여주고 정책제안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성과라 하겠다.일자리 등 삶의 여건 향상 정책 필요지역의 청년들이 응답한 청년실태 및 정책수요는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었으나, 우리가 예상하는 결과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역의 청년들이 느끼는 팍팍한 현실과 삶의 욕구예측에 대한 정량적인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그런데 보고서를 살펴보다가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한 응답비율을 보고 고민이 들었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이슈가 되었던 청년수당에 대한 응답비율을 보면, 정책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혼과 미혼, 학력 및 계열 등 응답자의 범주별로 상이한 결과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듯 청년들 사이에서도 ‘계층’의 문제가 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세대에서의 계층화는 우리나라처럼 계층간 이동이 점점 어려운 사회구조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될 위험이 크다. 지금의 구조라면, 점점 양극화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흔히 우리 세대는 부모세대보다 기대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암울한 얘기다.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더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나라는 자녀의 교육에 부모세대가 자신의 노후자금까지 투자한다는 것이다. 즉 이는 청년실업, 자식세대의 빈곤이 부모세대의 빈곤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부모세대의 격차가 청년세대의 격차를 낳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청년세대의 빈곤이 향후 노인빈곤과 세대 내의 계층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청년문제는 청년 ‘만’의 문제로 국한지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청년도,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일자리 등 삶의 여건을 향상시키는 정책과 더불어 향후 대두될 수 있는 양극화와 같은 문제까지 소통하며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양극화 문제도 함께 소통하며 고민을어느덧 내가 전주시 청년 다울마당에서 활동한 지도 거의 1년이 되었다. 그간 부침도 있었지만 나름의 성과와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욕심만큼 많은 청년들을 만나고 미처 이루지 못한 점들은 여전히 아쉽다. 전주시 청년 다울마당은 올해 제정된 ‘전주시 청년희망도시 구축을 위한 조례’를 기반으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향후 출범할 체제는 지속적으로 지역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시정에 반영하며 정책을 함께 고민하는 참여의 장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전주시와 청년들의 행보에 지역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응원을 바란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6-27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