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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451건)

정확히 10년 전, 수능을 앞두고 대학 캠퍼스 생활과 이십대의 앞날을 그리던 시기.많은 친구들이 ‘인서울’을 목표로 열을 내던 날들이 있었다. 학창시절 제일가는 성공의 척도이자 우열을 가리던 의미의 그 말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을 뜻하기도 했다. 어떤 이에게는 학업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졸업 후 취업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가려는 선점과도 같은 걸음이었다. 하지만 아마 대부분은 십대의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벗어난 온전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으리라. 지역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젊음의 청춘들. 그곳을 향하는 저마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청년과 농업 상생할 수 없을까사실 도내 청년 인구는 서울뿐 아니라 타 지역으로의 인구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전주만 그런 것은 아니고 타 지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주를 떠나는 청춘들은 곧, 지역을 떠나는 청춘들, 그리고 서울을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대할 수 있다. 차고 넘치는 곳임을 알고도 청춘들은 서울로 간다. 지역을 떠나 많은 청춘들이 중앙과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청년들이 그들의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취업’이다. 특히 전북은 이렇다 할 대기업이 없는 열악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북에서 청년 인구가 증가한 곳은 완주군이 유일한데, 이는 현대자동차나 KCC와 같은 대기업이 완주산단에 밀집돼있고, 혁신도시 조성으로 인한 인구 유입 때문일 것이다. 완주군을 제외한 도내 시군의 청년층의 인구유출은 꽤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대기업 유치만이 지역의 청춘들의 발목을 잡아 둘 유일한 방법일까. 그렇지는 않다. 대기업으로 취업할 수 있는 청년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것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지역색’을 띠어도 무방하다고 보는데, 농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내 현실을 반영한다면 청년과 농업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기업이 일하기 좋은 전라북도에서 나아가 청년에게 젊음의 열정을 꿈꿀 수 있는 기회의 지역이 되어야 한다. 청년 창업이나, 청년 일자리 창출에 쏟는 재정과 시간적 호흡을 길게 가질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숙제처럼 이루어지는 지원은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누가 그러고 싶겠냐만은 망하기 위해 창업하는 식의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또한 청년문제가 일자리 창출에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문화, 복지차원에서도 탄탄히 이루어져야 한다. 벌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건강한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이 탄탄해야 건강한 나라얼마 전 필자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역에서 성공하는 청년 예술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왜 꼭 지역인가?’ 나는 대답했다. ‘모두가 중앙을 향하는 시대, 조금 외진 곳이라도 삶의 터전에서 인정받고 꾸준히 활동하는 것. 그 자체로도 아직 칭찬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지역이 탄탄해야 전체가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고, 나는 지역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건강한 청년 예술인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 나의 대답이 허황된 말뿐이 되지 않기 위해, 청년들 적극적인 자세와 사회의 협조적 구조가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10-17 23:02

얼마 전 필자는 소리극 ‘시대를 노래하다’ 〈삼포가〉를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제목 속에서 소설 ‘삼포로 가는 길’을 떠올렸다. 소설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삼포가〉는 청춘의 자화상과도 같다. 포기하며 사는 세대, 즉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판소리극이다. 젊은이들은 무엇에 행복을 느낄까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삼포세대’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인간관계와 집을 포기한 ‘오포세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청춘의 모습을 ‘칠포세대’라고 한다. 신조어로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 건강, 학업, 노후, 이미지, 양심, 종교, 정치, 애국까지 포기한 ‘15포세대’ 까지 등장했다.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또 기록하고 싶었다. 역사적으로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시대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두려움을 갖지 않고 시대를 비판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러자니 내가 살고 있는 세대의 문화를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이 필요했다. 과연 청춘은 무얼 얻고 또 무엇을 포기하며 사는가?작년 봄 쯤 책을 하나 읽었다.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시 노리토치의 작품으로 20대 젊은이들이 겪는 일본 사회와 사토리 세대라 일컬어 지는 청춘의 모습을 담은 책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은 행복하다 말하고 있다. 뭔가 모순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제목에서 우리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와 흡사한 면들을 미리 겪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적 장기침체를 겪는 일본은 정규직 취업이 힘들고 계약직과 파견직이 태반이다. 그것마저도 힘들어 파트타임이나 편의점 알바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난을 모르고 사는 청춘들 또한 허다하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부모님 아래서 소위 ‘캥거루족’이라 일컫는 삶을 살아간다. 아마 그들은 지금의 50~60대 부모를 자신들이 봉양해야 하는 10여년 후쯤에야 더 큰 경제적 어려움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나라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이기도 하다.그 후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며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가 궁금해졌다. 미래가 보이지는 않는 사회에서 그들은 꿈을 잃었을까? 혹은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지점에서 만족하는 것들이 주는 안이함에 익숙해졌을까? 아마 거시적 관점에서의 행복감은 아님이 분명하다. 당장 마실 수 있는 맥주 한 캔에 행복을 찾는 미시적 관점의 만족감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것이 삶의 행복지수로 이어졌으리라. 가진 것에 만족하고, 현실에 수긍하며 사는 삶에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그야말로 ‘미래’가 사라졌다. 작가가 말한 ‘끝나지 않은 일상’만 남았을 뿐이다. 전적으로 동감했다. 꿈을 잃었고, 하고 싶은 꿈보단 해야 하는 일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었다. 한참 열렬히 반항적이고, 사회 모순에 저항하던 옛 청춘의 모습은 희미해졌다. 좁은 취업의 길속에서 기득권의 입맛대로 깎아지고 훈련되어진 젊은이들. 기성세대와 사회가 원하는 보기에 알맞은 순종적 청춘의 모습으로 선명해졌다.미래가 안 보인다고 꿈을 잃었을까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청춘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포기하며 사는 인생이라고 단정 짓는 어른들의 시선에 갇혀버린 청춘들이 때 이른 달관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청춘’이라는 단어로도 가슴 뛰게 행복하고,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는 특별함이 빛을 잃었다. 그러나 청춘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은 나인가, 사회인가? 왠지 불안하게 행복한 젊은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9-19 23:02

딱 10년만이었다. 어떻게 하면 줄인 교복 치마를 들키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수많은 규제와 단단한 울타리가 있던 곳.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다고 매일 말하던 곳. 나의 십대 반항이 무성했던 학교를 찾았다. 같은 재단의 여중, 여고를 나온 터라 단 몇걸음 만으로도 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공모에 응시하는데 생활기록부가 필요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온라인으로도 서류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좋아진 세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늙은 젊은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꿈 꾸고 살던 때꾸역꾸역 학교를 찾아가 그 시절은 몰랐던 다른 시선의 나를 보았다. 역시나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성적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에 적극 동의하던 나였다. 그럼에도 의식 한켠엔 꽤나 공부를 잘 하던 학생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기대했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아주 편협한 성적표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잘하는 것만 잘하는 나였다. 좋은 것만 기억하는 나였구나. 어찌 보면 선호하지 않은 과목에 양, 가가 확실한 ‘양가집 처자’였다. 성적에 적잖은 실망을 하였지만 그 시절 이런 성적을 받고도 좋은 것만 기억에 넣어둔 10대의 내가 대견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장래희망’이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고3이라는 시간 속에 나의 꿈이 변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단지 희망이었을 뿐인데, 점점 ‘장래현실’이라도 되는 마냥 선명하고 될 만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열네살 나의 장래희망 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아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최고의 경지가 그 지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문화재의 제도가 국악 예술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갖는 요즘 의 나와는 다른 시선의 나였다. 그리고 열아홉, 6년의 시간 속에 빈칸은 채워지고 또 채워지며 결국은 ‘국악인’이라고 적혀있었다. 육성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포괄적일 수 있다니. 범위는 커지고, 경계는 넓어졌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꿈이었다. 그 시절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뚜렷한 꿈이 있는 네가 부러워, 나는 커서 뭘 하고 있을까?’ 사실 나는 그저 꿈을 적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직업란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니 꿈이 생겼다. 그것이 나의 희망이자, 그 해 장래희망이었다.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생긴 책상에서 공부하던 아이들. 서로가 같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던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푸르고 또 푸른 靑春의 한 때를 지나고 있기도 하고, 청춘인 줄 모르고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꿈꾸며 사는 인생이 무모하고, 허황된 얘기라 비웃음을 사는 나이 같지만, 그 시절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꾸역꾸역 꿈을 꾸고 살았다. 장래희망 빈칸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도 그랬다.장래 희망 속 나로 살고 있어 다행그 날, 큰 서류봉투에 학생기록부와 함께 자기소개서라기보다 자기소설에 가까운 종이를 몽땅 밀어 넣고 공모에 응했다. 오랜만에 10년 전 나를 바라보는 일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공모의 당락보다 훨씬 갚진 것을 얻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 청춘에 국한 되지 않고 우리는 모두 꿈꾸며 살아간다. 그것은 모른 체 하느냐, 바라보느냐의 관점일 뿐. 10년 전 장래희망 칸 속의 나로 살고 있어 참 다행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8-22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