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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노장적 생각 (20건)

철이 나기 전, 아주 어릴 적에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다. 출가(出家)를 하면 어떨까? 출가를 해볼까? 원래 출가의 근기를 타고 난 사람이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고 혼자만 품은 채 열병을 앓고 또 앓다가 결행하기 직전에 공표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볍기가 한량없어서 생각이 들자마자 몇 밤도 넘기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말해보았다. 초여름의 이른 오후였다. 적당히 데워진 마룻장에 등을 대고 누워 어머니를 빤히 쳐다보며 종알댔다. 그런데 의외로 어머니께서 내 말을 너무 진지하게 듣고 놀라시자 얼른 포기했다. 훗날 어머니는 내가 등산 가는 것도 싫어하셨다. 저 높은 산에 들어가 어머니 본인이 살고 계시는 낮고 거추장스런 이곳으로 내려오지 않을까봐 걱정하셨던 듯하다. 당신이 낳고 당신이 기르면서도 그 아들의 성정이 얼마나 폴폴 가벼운지는 내내 모르셨던 것 같다. 자식에게 사랑과 기대만 퍼 부으시느라 정작 본바탕을 애써 외면하셨던 그런 분을 괜히 괴롭혀 드렸다. 그렇게 하여 나는 성불(成佛)의 길보다 효자(孝子)의 길을 택했다. 성불은 저 먼 곳에서 빛나는 이상적인 달관의 경지로 보였고 효자는 구구절절 생활의 때가 묻은 이곳의 일 같았다. 그 뒤로 내 어깨와 견줄만한 높이에 있는 것들은 어쩐지 하찮고 심드렁했다. 아주 특별하고 높은 곳에서만 빛나는 어떤 것을 포기한 사람이 갖는 약간 비굴해진 느낌이랄까. 그것을 감추느라 내 어깨 아래의 삶 속에서 얼마간은 더 뻣뻣했는지도 모르겠다. 효성은 어쩐지 땔감들 사이를 직선으로 헤집고 들어와 잠든 먼지들을 다 깨워놓은 석양빛 드는 부엌의 아궁이에서나 일어나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일 같았다. 밥은 나오지만 눈길은 머물지 않는...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내 눈길은 차라리 파르스름한 빛이 남몰래 감도는 젊은 탁발승의 쓸쓸한 ‘삭발’에 닿으려 했다.노자나 장자를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내게 항상 크고 특이한 얘기들을 듣고자 했다. 일상의 규칙들을 무시하면 더 환호하고 내가 학문적으로 이해한 것을 몸소 실천까지 한다고 인정해주기도 했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해도 친구들은 노장(老莊) 학도답지 않다고 했다. 성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비치면 장자의 소유유(逍遙遊)를 배운 사람이 왜 그러냐고 했다. 신발과 옷가지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성선(成仙) 차원 정도의 얘기는 되어야 다들 만족했다. 볕이 낮게 들어오는 봄날 오후, 어느 맥주 집 창가에 앉아 수업에 들어가지 않은 날이었다. 먼저 일어서면서 친구들은 나를 널리 이해한다는 뜻으로 말했다. “쟤는 도가 철학을 하니까 저래. 괜찮아.” 이 일탈은 도가 철학과 아무 상관없다. 게으름이자 방종일 뿐이다. 그저 각자 한 편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들끼리의 부족한 교류였을 뿐이다.구작자(瞿鵲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에는 깜짝 놀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까치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장오자(長梧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오래 산 오동나무라는 뜻을 가졌다. 오동나무[梧]는 깨달음을 나타내는 글자인 ‘오’(悟)자와 발음이 같아서 가끔 섞어서 쓰기도 한다. 여기서 장오자는 깨달음에 이른 도가적 인물을 나타내고, 구작자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사람, 즉 유가적인 인물을 나타낸다. 구작자가 장오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제 스승에게서 들은 얘깁니다만, 최고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인 성인은 세상일에 빠지지 않고, 이익을 좇지 않으며, 해가 닥쳐도 피하지 않고, 무언가 추구하는 것도 없고, 정해진 길을 따르지도 않고,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가 말해지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말한 바가 없으며, 이런 식으로 하면서 이 세상 밖에서 유유자적 한다고 합니다. ‘도’(道)를 실천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기에 장오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말은 황제(黃帝) 정도 되는 사람이라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 당신 스승인 공자가 어찌 알 수 있겠소. 또한 당신도 이런 얘기를 ‘도’를 실천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지나친 단견이오. 달걀을 보고 새벽을 알리기를 바라고, 탄알을 보고 곧바로 새 구이를 찾는 것처럼 급하오. 그냥 당신을 위해서 내 생각을 아무렇게나 말해볼까요? 그러니 편하게 아무렇게나 들어주시오. 해나 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채, 만물과 잘 맞아 서로 어그러지지 않고, 모든 것에 억지로 자기 뜻을 부과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아두고, 가치 판단 기준으로 귀천을 나누지도 않소. 세상 사람들은 온 힘을 들여 힘들게 살지만 성인은 우둔하며, 오랜 세월동안 세상사에 섞여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순수함을 지키고 있소.”(『장자 · 제물론』) 가장 높은 경지나 깨달음 혹은 절대 성숙은 ‘이곳’을 떠나서 훨훨 높이 날아올라, 이곳과 전혀 다른 저 먼 곳의 어디에 안착해 있으면서 이곳을 내려다보는 어떤 것이 아니다. 장오자가 말하듯이 세상사와 함께 하면서 그것들과 어그러지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나아가면서 자신만의 ‘보물’만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 보물을 장자(莊子)는 ‘순수함’(純)이라고 말했다. 바로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질인 것이다. 여기서 자신이 평생 수행해야 할 ‘사명’이 나온다. 그럼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는 바로 그 ‘우둔한’ 성인은 어떤 높이에 있는 사람인가. 장자는 말한다. “해나 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정도의 사람이다. 지식이 되었든 사고의 폭이 되었든 감각이 되었든 간에 해나 달이나 우주의 높이 내지는 넓이에 닿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 후에야 세상사와 어그러지지 않을 사고의 두께를 가진 자로서 자신만의 편협한 잣대로 귀하고 천한 것을 나누어 세상을 대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하는 ‘우둔함’이다. 자신만의 잣대가 없기 때문에 속세에서는 그를 바보나 우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은 오지의 발길 끊긴 산 속을 꿈꾼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들여 숨어들 곳을 찾아 헤맨다. 도시에서의 일을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승리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 속이라도 자신만의 ‘순수함’을 지키지 못한다면, 방만과 게으름을 벗어날 길이 없다. 지력이나 감각이 꼭 ‘해나 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정도가 될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만 유지되어도 매일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삼겹살을 구워먹는 한가한 유흥으로는 자유나 자족의 경지를 맛볼 수 없다. 자족이나 자유의 중심 자리는 항상 ‘자기’(自)가 차지한다. ‘자기’가 지켜져야 자연스럽기도 하고 자유스럽기도 하고 자족하기도 한다. ‘자기’가 지켜지지 않은 자유가 방종이고, ‘자기’가 지켜지지 않은 ‘자족’이 나태함이고, ‘자기’가 지켜지지 않은 ‘자연스러움’은 촌스럽다. 최종 승리의 길은 자신만의 순수함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가 결정한다. 자기가 굳건하게 지켜지는 사람은 절대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도시에 있던 시골에 있던 자신이 중심을 지키면 된다. 자기가 중심을 지키는 한 도시에서도 시골을 살 수 있고, 시골에서도 도시를 살 수 있다. 도시도 이상향이 아니고, 시골도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 이상향이 아니다. 자기가 약한 사람은 도시에 있을 때 시골을 꿈꾸고, 시골에 있으면서 도시를 꿈꾼다. 자기의 순수함을 지키는 사람은 도시에 있건 시골에 있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두 세계를 ‘우둔’하게 실현한다. 자아의 실현이나 완성은 장소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소를 지배하는 자신의 사명이 결정적이다. 자기 자신만 가지고 있는 고유한 그 ‘순수함’이 바로 이상향을 좌우하는 손잡이다. ‘순수함’이 장소를 지배하게 해야 한다.인간의 삶은 따로 있지 않다. 유동적 우주에 섞여가는 한 형태인데,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 자체가 바로 우주적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성 안에 자연성이 들어있고, 자연성이 인간성의 토대다. 이렇다면 인간이 하나의 관점을 고집하며 자기 정체성(整體性)을 주장한다면 매우 정체적(停滯的)이거나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장자는 세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아지랑이나 먼지, 이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생물이 서로 입김을 내뿜는 현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늘이 새파란 것은 진짜 원래부터 그 색깔인 것일까? 아니면 멀리 떨어져서 끝이 없기 때문일까? 9만리 높은 하늘을 나는 대붕 또한 위에서 내려다보면 파랗게 보일 것이다.”(『장자 · 소요유』) 야마(野馬)로 표현되는 아지랑이과 진애(塵埃)로 표현되는 먼지는 정해진 방향 없이 계속 움직인다. 정해놓은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그저 움직일 뿐이다. 왜 움직이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자연이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운동하면서 우주의 완결성을 이루는 것과 같다. 여기서 자유가 태어난다. 장자는 이 문장을 통해 특정 지점에서 결정되는 관점의 기능을 철저히 무화시킨다. 하늘은 여기서 올려다 볼 때만 파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한 가지 기준으로 나를 고정시켜 우주 운행에 방해를 주면 안 된다. 이것이 우주적 원리이고 거대한 성취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이제 나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의 일을 열심히 하면 바로 여기서 저 세상이 구현된다는 것을. 저 세상은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 자유인은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을 관조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이란 것을.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왜 나를 살리는 일인지를. 용서하고 용서 받는 일이 왜 인간의 편협성을 벗어나는 우주적인 사건인지를. 서울 시내의 호텔과 나무 위의 새둥지가 그리 크게 다른 것이 아님을. 협력이라는 것은 나를 줄이고 반대하는 쪽을 수용하는 일이란 것을. 부엌 흙바닥에 쭈그려 앉아 석양빛을 모로 받으며 어머니를 위해 아궁이 불을 살리던 일이 바로 성불(成佛)의 길이었음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기획 | 기고 | 2017-08-15 23:02

인간에게는 초월의 욕구가 있다. 초월이 다 언어를 벗어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초월은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것,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 더 확장되는 것, 더 넓어지는 것, 더 높아지는 것 등등을 한꺼번에 가리켜 하는 말이다. 가장 높고 크게 확장되어 있는 존재로 인간은 일단 ‘신’(神)을 모셔 놓고, 부단히 그곳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초월의 욕구다. 외재적 초월도 가능하고 내재적 초월도 가능하다. 내면으로도 가능하고 외면으로도 가능하다. 정신으로도 가능하고 물질로도 가능하다. 초월의 정도가 자기 통제력의 두께다. 통제력의 내용은 복잡 다단에게 현현한다. 얼마나 초월되었느냐가 얼마나 크게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개인적인 초월의 여정에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고 우주도 있다. 여기에 환경도 있고 인권도 있고 자유도 있고 혁명도 있고 저항도 있고 역사도 있다. 학습도 바로 여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학습과 역사는 매우 밀접하게 붙어있다. 역사적 경험에서 학습에 성공하면 그 역사는 빛나고, 학습에 소홀하면 그 역사는 찬란하기 어렵다. 동아시아의 근대 역사는 서양 침탈로 시작한다. 서양에 대한 반응이 곧 동아시아 역사의 많은 내용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국도 이렇다. 중국의 개항은 1842년 제1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난징조약이 시작이고, 일본의 공식적인 개항은 1854년 미일화친조약이 시작이다. 우리는 서양의 대리인 격인 일본에 의해 강제개항을 당하는데, 바로 1875년 일본이 강화 해협을 불법 침입하여 이듬해에 강제로 맺은 강화도 조약이 그 시발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하고 나서 22년 만에 힘을 키워 다른 나라를 강제 개항시킬 정도가 된 것이다. 물론 강제 개항의 그 시점에 일본과 조선 사이에는 벌써 국력에서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22년이다. 이 22년 동안 일본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바로 학습이다. 서양에 당하고도 그 서양을 배우려는 열기가 왕성했다. 이것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표어에 집약되었다. 이런 점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도 영국을 필두로 한 서양에 굴욕을 당하고 나서 나라 전체가 “서양을 배우자!”(“向西方學習”)라는 구호로 가득 찼다. 조선은 굴욕을 당하고 나서 서양(일본)을 배우자는 자발적 열기가 성숙되지 않았다. 막부정권의 쇄국정책으로 일본은 220여 년간이나 닫혀 있었다. 1853년 7월 8일 오후 5시경 매튜 페리(Matthew C. Perry)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 소위 흑선(黑船, 쿠로후네) 4척이 에도 앞바다에 들어오면서 일본은 엄청난 변화 앞에 직면한다. 쇄국을 유지하려는 막부와 개방을 요구하는 거대국가 미국과의 대결로 판이 전개된 것이다. 물론 막부가 전면적인 쇄국을 시행하면서도 네덜란드를 예외로 두고 서양 연결 통로를 열어둔다거나 1814년에 영일사전을 편찬한다거나 하는 등의 미래를 향한 개방적인 도전을 제한적으로나마 시행한 점이 훗날의 역사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던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때 시대적 사명감을 가진 예민한 지식인들의 투쟁과 학습에 대한 열망은 일본으로 하여금 ‘당황스런 새 판’을 적극적이고 생산적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였다. 뜻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도전적인 자세로 과감하게 역사 속으로 뛰어든다. 여기에 일본 발전의 핵심이 있다. 그들은 역사를 위하려 하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조국을 위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 역사 자체가 되려 했고 자신을 ‘일본’ 자체로 만들려 했다. 이들 가운데 앞장서서 스스로 일본의 ‘역사’로 완성되려 했던 젊은이가 그 시대의 중심에 살았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요시다 쇼인은 우리에게 큰 고통과 치욕을 안겨준 일제 식민지 침략의 이론적 근거인 정한론(征韓論)을 완성하고,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의 기초를 다진 장본인이다. 궁극적으로는 침략자 일본의 심장이다. 흑선을 직접 본 쇼인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그 전에도 서양 문명의 강대한 변화를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구미 열강과의 격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배도 대포도 적수가 안 된다’라는 위기감을 친구에게 편지로 쓸 정도였다. 그러나 기득권과 타성에 젖은 막부는 쇼인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개혁을 도모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강국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마침내 시모다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군의 함선에 접근하여 밀항을 시도하기까지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국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수감된다. 출옥 후에도 일본의 미래를 향한 착실한 행보를 이어간다. 고향 하기(萩)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운영하며 근대형 인재들을 배양하는 데에 힘을 쏟은 것이다.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기서 배양된 인재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력으로 성장하여 일본 근대를 튼튼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토 히로부미도 요시다 쇼인의 제자며, 아베 신조 현 총리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들면서 그를 계승하는 일을 사명으로 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은 쇼인이 강조했던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기까지 하다.근대 이후로 일본과 한국의 국력 차이가 난 근본적인 이유를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이 있었고, 한국에는 요시다 쇼인 같은 인물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내면에 있는 무엇이 ‘요시다 쇼인’을 만들었을까? 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을 밀항까지 감행했던 그의 도전 정신에서 찾는다. 도전은 ‘초월’의 동력이다. 도전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밝고 강한 미래를 보장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결정한다. 페리도 이 점을 주의 깊게 본 듯하다. 요시다 쇼인이 밀항하려고 그의 제자와 함께 군함에 접근한 것을 보고 페리는 말한다. “이 사건은 우리를 매우 감격시켰다. 법을 어기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식을 넓히려는 두 청년의 뜨거운 열정에 놀랐다. ... 지금은 엄격한 법에 억눌렸지만 만약 모든 일본인이 이 두 젊은이와 같다면 일본은 미국만큼 강대해질 것이다.”(Japan Expedition, 1854) 페리는 도전과 발전을 일치시켜 보는 안목이 있었고, 페리의 말대로 일본은 강대해졌다.전번 주에 14명의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하기 시에 갔다. 하기 시의 거리 곳곳에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거나 같이 활동했던 인사들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재밌게 그려진 캐릭터는 매우 친근감을 주게 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써진 업적들은 그들을 존경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일본은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학습의 지속성을 전혀 잃지 않고 있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역사속의 인물들과 그들의 업적을 어려서부터 매우 친근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요시다 쇼인 빵도 있고 과자도 있고 책받침도 있다. 생활 속에서 역사를 학습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가. 역사 학습이 사라졌다. 하기 시에 가려면 후쿠오카 공항을 거치는데, 그 도시에는 구시다 신사(櫛田神社)가 있다. 이곳은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할 때 사용했던 칼이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신사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소원을 써서 걸어 두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한국인들의 소원패도 많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조금이나마 학습했다면, 어떻게 구시다 신사에다가 자신의 소원패를 걸 수 있겠는가. 일말의 자존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학습은 도전을 하게도 하지만 최소한의 기품을 지킬 수도 있게 해준다. 초월의 욕구는 자신을 점점 높고 넓게 확장하므로 시대 의식을 포착하게 한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은, 즉 초월의 욕구가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으려 애쓰기 보다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식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대 의식은 나를 보편의 단계로 확장시키는 방아쇠다. 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을 도전이라고 한다. 젊은이들과 얘기를 하면서 도전을 강조할 때가 있는데, 그 때 나오는 대부분의 질문들이 다음과 같다.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더라도 사회에서 그 실패를 허용하거나 보살피는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았다. 도전하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 위험을 누가 책임지는가?” 도전, 모험 그리고 탐험을 말할 때는 항상 나오는 질문이다. 이것은 나의 매우 협소한 경험인데, 다른 나라 젊은이들에게 도전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곤 했다. “도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내게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도전할 마음이 생기는가?” 초월의 견지에서 볼 때, 도전해서 실패하였을 경우를 걱정하는 질문과 도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질문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크다. 도전은 우선 뒤를 돌아보는 조심성이 결여되어 있어야 미덕이다. 이런 미덕이 갖춰져 있어야만 ‘초월’의 확장이 실현된다. 학습을 통해 두텁고 두터워진 존재는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그가 당기는 도전의 방아쇠는 역사의 순방향에 조준되어 있을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긴 시간 스스로 역사가 될 준비를 진실하게 한 사람은 항상 옳다. 스스로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보상을 기대하거나 결과에 전전긍긍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유롭다. 두려움도 없다.절대 자유와 한계 지우지 못하는 큰 업적을 이루는 경지를 장자(莊子)라는 철학자는 ‘소요유’(逍遙遊)라 말했다. ‘소요유’의 상징은 ‘대붕’(大鵬)이다. 대붕은 원래 작은 물고기였다. 우주의 바다에서 긴 시간 학습한 공력(積厚之功)이 극한까지 커져서 질적인 전환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던 찰나에 바다가 흔들리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9만리를 튀어 올라 새가 되었다. 이것이 ‘대붕’(大鵬)이다. 대붕은 9만리를 튀어 오르는 내내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섬진강 인문학교 교장

기획 | 기고 | 2017-07-18 23:02

어떤 모임에서나 앉자마자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촌스럽다. 무지하고 강박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을 선(善)으로 확신하고 들이미는 행위다. 신념을 전면에 내 세우면서도, 전 인격으로서의 자신은 뒤로 감추고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큰 실례다.보통의 경우 정치와 종교를 주제로 하는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합의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합의점을 찾았다면 아마 논리 너머의 다른 어떤 요인들이 개입되어서일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기본적으로 신념의 활동이다. 매우 세련되고 현란하며 또 권위까지 갖추고 있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게다가 보편성으로 해석될 무늬의 외피까지 두르게 되었지만 일상 안에서는 신념의 차원을 넘지 못한다. 가끔 정치와 종교의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 높은 차원의 포용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분명히 자신의 신념을 조금이나마 양보했을 때다. 신념은 각자에게 진리다. 진리를 양보하고 마음 편할 수는 없다. ‘자기 진리’를 양보하고 여유로울 수 있는 것, 아마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일지 모른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 모두 순교자가 있고 또 그들이 떠받들어지는 한 그것들이 강력한 신념 체계라는 것을 부인 하지 못한다. 신념이 맹목적인 방향으로 자가 발전하면 타협이 원천 봉쇄되는 근본주의로 흐른다. 그런데,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거수일투족은 다 정치행위다. 말 한 마디도 모두 정치행위다. 상황을 자신의 의지대로 끌고 가려는 욕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한 이 정치 행위를 벗어날 수 없다. 삶이 정치 행위라면 인간은 모두 크거나 작거나 혹은 강하거나 약하거나 하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각자의 신념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갖는 것이다. 이것을 장자는 ‘정해진 마음’(成心)이라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진 마음을 스승처럼 모시고 산다. 현자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 똑같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정해진 마음을 기준으로 해서 시비판단을 한다. 그래서 정해진 마음이 없이 시비판단을 한다는 말은 오늘 월(越)나라로 떠났는데 도착은 어제 했다는 말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다.”(『장자 · 제물론』) ‘정해진 마음 - 시비판단- 정치행위- 삶’이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삶의 형태에서라면 어떤 합의도 애초에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각자의 기준은 각자에게 진리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말하는 장자의 얘기를 들으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당신이 논쟁을 한다고 합시다. 당신이 나를 이기고, 내가 당신에게 졌다면 당신은 옳고 나는 틀렸을까요? 내가 당신을 이기고 당신이 졌다면 내가 옳고 당신은 틀렸을까요? 한 쪽은 옳고 다른 쪽은 틀린 경우일까요, 아니면 두 쪽 다 옳은 경우일까요? 두 쪽 다 틀린 경우일까요? 이런 일은 둘 다 알 수 없소. 제3자는 더 알 수 없소. 그렇다면, 누구를 불러 이를 판단하게 할 수 있겠소. 당신과 입장이 같은 사람을 불러 판단하게 한다면, 그는 당신과 같으니까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소. 나와 입장이 같은 사람을 불러 판단하게 하면, 나와 같은 입장이라 공정한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 둘 모두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불러 판단하게 하면, 그는 나하고도 다르고 당신하고도 다르니 역시 공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소. 우리 둘 모두와 입장이 같은 사람을 불러 판단하게 하면, 그는 우리 둘 모두와 같기 때문에 공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소. 그렇다면 나도 당신도 그리고 제3자도 모두 공정한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거요. 그런데 누구에게 기대한다는 말이요?”(『장자 · 제물론』) 이처럼 ‘정해진 마음’에 갇혀 사는 것이 세상 속 인간이다. 이 ‘정해진 마음’을 치장하는 데에 거의 대부분을 쓰는 존재가 또 인간이다. 자신만 모른다. 이 ‘정해진 마음’을 치장하며 사는 한 자신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린 결박된 존재가 되고, 자신이 하는 일은 대부분 과거를 지키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기 어렵다. 어쩌랴. 새롭고 신선한 일은 죄다 자신의 ‘정해진 마음’에서 이탈해서야 가능한 일인 것을...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다가 내달리던 토끼가 밭 가운데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는 것을 보았다. 죽은 토끼를 주워 집으로 돌아 온 농부는 그 다음 날부터 농사는 짓지 않고 그루터기만 지켜보며 또 그런 토끼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하지만 그 뒤로 한 마리도 보지 못하고 결국에는 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말이 출현한 이야기다.어떤 검객이 배를 타고 양자강(陽子江)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강 중간쯤에서 물결이 크게 출렁거리던 차에 차고 있던 칼이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놀란 검객은 급히 작은 단도(短刀)로 칼을 떨어뜨릴 때 앉아있던 뱃전의 한 곳에 표시를 하였다. “이곳이 칼을 떨어뜨린 곳이다.” 건너편 나루터에 도착하여 여유가 생기자 검객은 칼을 찾기 위해 뱃전에 표시한 바로 그 밑의 물속으로 들어갔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말로 회자되는 고사다. 이 두 고사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비웃음을 사지 않을 수 없다. 비웃음이라는 것은 어디서 오는가. 바보 같은 상황에 있으면서 정작 자신은 알아채지 못한 채 어떤 고정된 행위를 벗어나지 못하면 비웃음을 살 수 밖에 없다. 달라진 상황에 다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계속 같은 반응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도 같은 일이다. 다른 시대에 다른 비전을 생산하지 못하고 고정되고 철 지난 틀로 새 시대를 맞자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비웃음이 비웃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비웃음을 사는 행위 때문에 비효율이 발생되어 힘 자체가 빠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처럼 ‘정해진 마음’은 한 번 토끼를 얻은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박혀서 계속 토끼만 기다리게 한다. 토끼를 기다리는 동안 이 농부는 어떤 생산 활동도 하지 못한다. 막연한 심리적 기대가 객관적 사실로 착각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토끼를 주워서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이 너무 커서 지금의 배고픔을 불평할 틈도 없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가는 굶어 죽을 수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오히려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무지하거나 사악한 부류로 몰아붙이기 까지 할 것이다. ‘정해진 마음’에 지배되는 상태가 되면, 그 사람의 온 마음과 행동이 이 ‘정해진 마음’의 변주에 불과해진다. 한 사람이 하는 모든 심리적 활동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로는 ‘심리적 기대’와 ‘심리적 확신’인데,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믿는다. 이처럼 ‘정해진 마음’은 한 사람을 과거에 묶어두고,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토끼를 기다리는 이 농부의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의 「오두」편에 나오는데, ‘오두’는 나라를 망가뜨리는 다섯 종류의 ‘좀 벌레’를 말한다. 즉 나라를 망하게 하는 다섯 가지 요인이라는 뜻이다. 비효율적으로 운용되는 나라에서는 심리적 기대와 객관적 사실을 혼동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우리 경제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7년에 2만 달러대에 진입하고 나서 선진국 진입의 경계선으로 여겨지는 3만 달러의 벽을 여태껏 넘지 못하고 있다. 심한 정체에 빠져 있다. 무엇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새로움이 시도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선진국 진입을 기대하면서 중진국에 이를 때 사용하던 방법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 게다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이르는 일과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일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에 오르는 일은 선진국에서 먼저 닦아 놓은 길, 즉 있는 길을 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일은 없는 길을 열면서 가야 한다. 있는 길을 가는 것과 없는 길을 열면서 가는 길은 차원이 다르다. 뱃전에 긁어놓은 표식만을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는 자신이 배를 타고 얼마나 흘러왔는지를 망각한다. 이 망각은 사람을 맹목적인 상황 속에서 헤매게 만든다. ‘정해진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염치(廉恥)가 없어진다. ‘정해진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는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정해진 마음’이 주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정해진 마음’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자 진실을 지키는 일로 바뀐다. 따라서 아무리 크고 중한 일이라도 그것이 ‘정해진 마음’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면 바로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럴 때 사용하는 비굴한 논리들은 모두 상황을 상대적인 묘사 속으로 끌고 간다.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덜하다”고 하거나 “나만 그런 것이냐”고 하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 한다. 남보다 더 낫기만 하면 된다는 종속적 사고에 빠져 있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남보다 더 나은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남과 다를 뿐만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것이 있어야만 만족할 것이다. 비굴한 논리를 사용하는 것도 자신을 자신의 존엄 위에 세우지 못하고 ‘정해진 마음’ 위에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불행하게도 염치를 잃어버린다. 자신이 뭐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법을 어긴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추천하고, 악의적 표절을 한 사람을 교육부 수장으로 추천한다. 법무장관은 법을 관장해야 하고, 교육부 수장은 표절을 하지 못하도록 감독해야 할 직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한 사람들이나 추천된 사람들이나 모두 아무렇지 않은 양 당당하다. ‘정해진 마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말한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소위 ‘정치’를 버리고 ‘정치 공학’을 선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해진 마음’을 공유한 사람들은 객관적 비판 능력보다는 감성적 동질감에만 의존하면서, 갑자기 호위무사로 등장한다. 자존감이나 품격이나 진실성은 사라진다. 오직 ‘정해진 마음’들의 굳건한 연대만 남는다. 참 무섭고 슬픈 일이다. 이처럼 무섭고 슬픈 풍경 안에서 아무도 몰래 비효율은 두꺼워진다. 우리가 ‘정해진 마음’에 좌우되는 감정을 극복하고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 ‘정해진 마음’에 갇힌 자기를 장례지내라.”서강대 철학과교수·건명원 원장·섬진강 인문학교 교장

기획 | 기고 | 2017-06-20 23:02

인간에게는 이탈의 욕구가 있다.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동작이지만, 사실 이는 매우 긍정적이며 생산적이기도 하다. 모든 생물은 자기 존재를 보존하며 확장하려 애쓰도록 태어났는데, 서로 확장하려 하다가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확장은 다양한 의미에서 기존의 터전에 고착되지 않고 벗어나려는 율동이다. 이것이 이탈이다. 어쩔 수 없이 이탈은 부정의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정반합의 ‘반’이다. ‘합’을 기약하는 ‘반’, 그래서 또 인간은 이탈을 하면서 스스로를 확장한다. 생산적이지 못한 상황에 처한 인간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지루함을 이기려고 그것을 부정한다. 부정이 없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은 얼마나 공격적이며 생산적인가. 부정할 수 있어서 우리는 고정되지 않고 움직인다. 발전도 부정의 한 형식이 빚은 결과다.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부정이 어느 순간에는 또 멈추어 고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정의 죽음이다. 싫증난 한 켠을 부정한 후에 채택한 새로운 한 켠이라고 해서 계속 새롭거나 영원한 선인 것은 아니다. 새로운 부정이 기약될 때만 새롭고 선하다. 부정의 동력이 끊기고,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으면 폐색과 멸망만이 기다릴 뿐이다. 이는 매우 미묘한 원칙이다.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이 점을 주의 깊게 살피고 이중 부정이나 지속 부정을 말했다. 바로 양공(兩空)이니 중현(重玄)이니 하는 것들이다. 장자는 양행(兩行)을 말한다. 시인 이갑수는 이렇게 적었다.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신은 망했다.”(『신은 망했다』 민음사) 사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의 중심 자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신’은 인간이 가고 싶어 하는 방향이거나 완성이거나 원본이거나 모델이거나 초청된 감독자다. 인간 확장의 절정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회를 건설하면서 확장에 가속도를 냈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은 모두 도회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도회적 확장의 절정은 신이 만든 시골을 닮아가야 할 것이다. 도회의 시골화는 이상적인 차원에서 완성된 모습일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의 확장은 시골의 도회화다. 그래서 우리는 도회에 있으면서 시골을 갈망한다. 시골을 갈망하는 농도가 강해질수록 도회에 대한 비판은 격렬하다. 도회에 대한 비판이 격렬해질수록 그는 신적인 영역에 가까워지는 환상을 차지한다. 도회를 공격할수록 진실하고, 신을 닮은 참된 인간으로 치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도회를 떠나지 않는다. 시골에서 도회를 동경하는 것도 도회에서 도회를 비판하는 강도만큼이나 인정을 받아야 공평하다. ‘신은 망했다’는 이갑수의 말이 시골을 택하고 도회를 버리라는 웅변은 아닐 것이다. 신이 망하면서 인간의 승리를 몰래 감추듯이 말해준다. 그런데, 도회의 승리가 시골을 품어야 진정한 완성이 되듯이, 인간의 승리도 신의 승리를 품을 수 있다. 도회에 살면서 배타적 자세로 도회를 부정하고 시골을 갈망하는 것으로는 아무리 격렬해도 성숙한 완성의 길이 아니다. 시골과 도회가 상호 교차되거나 포섭되는 길만이 인간적인 완성에 가깝다. 이것도 사실은 부정이 부정으로 고착되지 않고, 스스로 부정되어 다시 새로워지는 한 형태다. 이것이 진정한 완성이다.스스로를 생태주의자로 자리매김하는 어느 분의 인터뷰 대상자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마당에 난 민들레의 꽃대를 꺾어 피리 만드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시골 출신이면서도 난생처음 민들레 피리를 만들어 불어보았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민들레 피리를 불 때, 나는 잠시 잊었던 시골의 정서를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 이야기가 깊어갈수록 그는 매우 절실하고 진실한 사람임을 드러냈다. 생태주의의 철저한 복원을 꿈꿨다. 시골을 건설해놓고 망한 신을 살려내려는 전사 같았다. 당신이 사용은 하지만, 사실은 냉장고도 부정한다고 했다. 강남에 살지만, 사실은 많이 가지는 생활 방식을 부정한다고도 했다. 인터뷰 중간쯤에서 나는 지식의 생산이나 창의력이 탐험이나 모험과 깊게 연관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서양에는 직업으로서의 탐험가가 먼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동양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자 그 분은 탐험이 오히려 삶의 환경을 악화시켰다고 강조한다. 탐험을 통해서 대륙 간에 교류가 활발해지고, 이 교류가 세상의 생태 환경을 악화시켰다고 한다. 지식의 생산이나 생산된 그 지식을 통한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도 추구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그냥 단순한 서양추수주의일 뿐이며 결과적으로 삶을 나쁘게 끌고 가는 악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천성을 해칠까봐 문명의 이기인 기계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노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그 이야기의 반 만 알고 있었다. 나는 나머지 반을 이야기 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조용히 있었다. 『장자』의 「천지」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얘긴즉슨 다음과 같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여행길에 밭에서 일하는 노인을 보았다. 굴을 뚫고 우물에 들어가 항아리로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그러자 자공이 힘겹게 일하는 그 모습이 딱해서 두레박이라는 기계를 쓰면 하루에 백 이랑도 물을 줄 수 있고 아주 편하니 그렇게 해 보시라고 권했다. 그러자 노인이 웃으면서 기계를 쓰면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생겨나서 순진 결백한 본래의 것이 없어지고, 그러면 또 정신이나 본성의 작용이 안정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서 도가 깃들지 않게 되니 기계를 안 쓰는 것이지 기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크게 느껴진 자공은 넋을 잃었다가 30리나 걷고 나서야 제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자공은 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을까? 문명의 착실한 건설을 주장하는 스승 공자와 전혀 다른 생각을 펼쳐 보이면서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근본주의적 철저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자공에게도 제자가 있었다. 그 제자하고 나눈 대화를 보면 자공이 왜 그리 놀래고 또 감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안색이 변하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놀랜 자공을 보고 그 제자는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서 그렇게 놀래신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자공이 말해준다. 자공은 원래 스승인 공자로부터 옳은 것을 하고 공을 이루려고 애쓰며 수고를 덜하고도 큰 효과를 거둬야 한다고 배우고 그 가르침을 최고로 알았는데, 이 노인네는 확실히 근본의 도를 지키고 있어서 덕과 육체와 정신이 모두 온전하니 확실히 공자보다도 훨씬 더 성인의 도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경탄한 것이다. 자공이 머리속에 그린 성인의 도는 일의 편리함이나 거짓 기교 따위로 자유롭고 소박한 원래의 마음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고, 마음이 원치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온 세상 사람들이 칭찬해도 돌아보지 않고, 모두가 비난해도 들은 채를 않는다. 성인의 도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자공에게 기계가 주는 편리함을 누리다가 거짓 기교에 빠져 본마음을 잃지 않으려 하는 이 노인네의 모습은 자공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 했다.귀향 후에 공자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아마 자공의 속마음에는 그 노인네를 스승보다 더 높이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의할 점은 장자라는 책에는 ‘중언’(重言)이라는 기법이 사용되는데, 그것은 유명한 사람의 입을 통해 필자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다. 권위에 기대 설득력을 배가시키려는 기술이다. 당연히 여기에 나오는 공자는 『논어』 속의 공자라기보다는 도가적 사상가로서의 공자다. 공자가 자공에게 그 노인네는 도가 정신을 잘못 배워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즉 자신의 내면만 다스리고 외면을 다스리는 법은 모른다고 일러준다. 참된 본성 만 품고 무위자연의 순박한 모습을 지키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정신으로 속세적인 삶을 살면서도 유유자적하는 경지를 보여야 제대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 장자는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어야 최고지, 어느 한 편만 지키는 것은 아직 부족하다고 분명히 말한다.양자택일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장자』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도 한 쪽 만을 택해서 장자를 문명 부정론자로 끌고 간다. 이런 일은 노자를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도덕경』에는 분명히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즉 “무위하면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고 쓰여 있는데, 양자택일의 전사들은 ‘무위’만 보고 ‘무불위’는 애써 외면한다. 하지만 사실 노자의 시선은 모든 일이 잘 이뤄지는 현실적인 효과로서의 ‘무불위’에 가 있다. 노자의 사상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물러서는 것도 앞서기 위해서다. 『도덕경』 제7장에 분명이 기록되어 있다. “후기신이신선”(聖人後其身而身先), 즉 뒤로 물러서지만 결국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편을 지키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는 일만 챙기고, 책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는 일은 애써 외면한다. 노자나 장자나 모두 문명 부정론자가 아니다. 철저한 문명론자다. 다만 다른 또 하나의 문명을 주장할 뿐이다. 문명 비판을 문명 부정으로 바로 끌고 갈 일이 아니다. 문명 비판이 문명부정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또 하나의 문명을 초청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대립된 두 면 가운데 하나를 취하는 데 익숙하다. 이 쪽 아니면 저 쪽을 택하면서 상대방에게도 그러기를 은연중에 강요한다. 한 쪽을 택한 후,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순수하고 절실하고 진실한 삶의 태도로 여기기도 한다. 이단이나 극단적 근본주의는 다 이런 곳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두면을 동시에 장악하거나, 두 면 사이의 경계에 처하지 않으면 전면적 인식이나 진보적 삶은 구현되지 못한다. 이것을 부정하다가 저것에만 빠지는 것은 부정의 고착화다. 지속 부정을 통해 부정을 살아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이탈이다. 한 쪽을 택하면 과거에 박히고, 경계에 서면 미래로 열린다. 한 쪽을 택하면 이념화되기 쉽고, 경계에 서면 생산적인 효과를 낸다. 한 쪽을 택하면 얼굴에 짜증기가 새겨지고, 경계에 서면 밝고 환해진다.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기획 | 기고 | 2017-05-23 23:02

이 단어를 떠 올리면 느리고도 느리게 평정이 흔들린다. 이런 비슷한 기분이 들 때 착 가라앉는다고 표현하곤 했던 것 같은데, ‘착’이라는 단어가 바늘 끝처럼 거슬린다. 어딘가에 딱 달라붙어버린 느낌. 그래서 유동성이 제거되어 상승이나 승화의 기운은 아예 휘발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밀폐성의 답답함. 그러나 내 기분은 사실 ‘착’을 울타리 치는 이런 느낌들과는 많이 다르다. 차라리 좀 붕 뜬 기분 같기도 하다. 부력을 받는 중량감. 그러면서 흘러가는 그런 상태다. 이 단어는 바로 ‘죽음’이다.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초입의 조금 늦은 초저녁이었다. 나는 마당에 덕석을 깔았다. 거기 둘러앉아 우리 식구들은 닭백숙을 먹을 것이다. 엄마가 준비를 하시는 동안 모깃불을 피우고 덕석에 벌렁 누웠다. 하늘에는 초저녁 별들이 부산스러웠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벌써 서둘러 달려가는 별똥별도 있었다. 별똥별은 달리다가 가속도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이유 없이 별똥별의 궤적을 내 안의 어딘가에 한참 동안 가둬두었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인지를 모를 정도로 잠깐이었다. 항상 하던 일을 하면서 잠깐 누운 순간에 나는 아주 다른 세계로 급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 경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하다.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써 본다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것으로서 태초 같기도 하고 종말 같기도 하였다. 음험한 어떤 기운이 모든 땀구멍에다가 표식을 달아 놓고 나를 훑으며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나는 한기가 서린 그 기운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냥 무너졌고, 방향을 잃었으며, 끝없이 추락했다. 구체적으로 체온도 떨어졌다. 닭백숙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웃으며 다가오시는 엄마도 갑자기 남이 되었다. 누나와 동생의 재잘거리던 소리들도 내게 다가오지 못하고 그냥 먼 곳에서 멈추어 웅성거릴 뿐이었다. 매우 무서운 경험이다. 닭백숙을 한 점도 뜯지 못하고, 나는 별똥별이 남긴 기억 속의 궤적을 따라 희미하게 소멸되어갔다. 몇 날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우물에서 기력을 놓고 쓰러지기 전까지. 잠들기 전에는 항상 그 덕석의 찬 기운을 느꼈다. 긴 시간동안 그것은 하나의 의식이 되어버렸다. 내 기운은 방향 없이 소멸되면서 맥없는 분말처럼 소실점도 갖추지 못한 채 흩어지고, 정신은 안개처럼 흐려진다. 체온이 내려가다가, 공포도 아니고 두려움도 아니지만 모호하게 무섭기만 한 어떤 한기에 의해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갑자기 온 몸에 식은땀이 나면서 나는 축축해진다. 그 축축함은 그늘진 깊은 계곡 큰 낙엽 아래의 음습한 어떤 곳 같기도 하다. 많은 것을 습관처럼 감추기만 하는 응큼한 파충류의 눈 주위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사실 수시로 덤비는 그것들에 속수무책인 채 몇 십년동안 그저 식은땀만 흘리다 잠들었다. 나는 매일 이런 의식을 치르며 잠든다.그런 의식을 치르기 시작하던 16살에 나는 분명히 딴 사람이 되었다. 그 단절 같은 두려움 앞에서 원래 열심이던 것에는 게으름을 피우고, 눈길을 주지 않던 것들에 눈길을 주었다. 허용된 모든 것이 지루해 죽을 맛이었다. 대신 금지된 것들은 죄다 재밌고 좋아서 깊이 빠져들었다. 내 성실성의 초점도 대상을 바꾸었다. 대학에 가는 일보다 정체 모를 ‘의미’가 커보였다. 그런데 그 내면의 두려움은 오히려 내게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만용과 거친 숨결을 주었다. 방탕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이 금보다 귀하다는 것을 천천히 배워나갔다. 무엇보다도 내가 금방 죽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밤마다 치르는 의식은 내게 인생의 유한함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이보다 더 큰 학습은 없었다. 어찌 보면, 나는 내가 금방 죽는다는 이 체득 위에 흔들리며 서 있기 시작했고, 서 있던 그 자리는 점점 견고해졌다. 또 알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내가 예뻐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이나 내 아내나 내 아들들까지도 모두 금방 죽는다는 것을. 금방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체득은 언뜻 생각하면,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포기해버리려 할 것 같지만, 정 반대로 내게 두려움 대신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강한 의지를 주었다. 순간에 대한 체득은 필연적으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낳게 한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흔들어서 무한 확장하려는 예술적인 높이의 도전으로 이끌어주었다. 시를 읽고 외우게 하였다. 문자보다는 그 문자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였다. 이제는 더욱 분명히 안다. 죽음에 대한 체득이 삶을 튼실하게 북돋운다는 것을. 이것은 모든 크고 위대한 성취의 가장 강력한 비결이다.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바람직한 일보다는 자기가 바라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장자』(莊子)는 매우 두꺼운 책이다. 그 안에서 장자가 한 많은 얘기들은 인간의 무한 확장을 도모한다. 그것을 장자는 ‘소요유’(逍遙遊)라는 단어로 묘사했지만, 절대자유라고 말해도 된다. 「제물론」에 나오는 말이다. “해와 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채, 만물의 흐름과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혼돈의 상태 그대로 두고 귀천 같은 것은 구별도 하지 않는다.”(「제물론」편) 한 인간이 우주를 겨드랑이에 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좀 친절하게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자』를 펼치자말자 읽히는 내용은 더욱 광활하다. “우주의 북쪽 바다에 몇 천리나 되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았는데, 변해서 붕(鵬)이라는 새가 되었다. 붕의 등 넓이도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른다. 힘차게 날아올라 날개를 펼치면 마치 하늘 가득 드리운 구름 같다. 이 새는 바다가 크게 출렁거려 대풍(大風)을 일으킬 때, 그 기운을 타고 천지(天池)라고 불리는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소요유」편) 곤은 그냥 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긴 시간의 축적을 통해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기를 키워야 한다. 크기가 충분히 커진 어느 날 우주의 바다(그냥 바다가 아니다)가 출렁대며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거대한 날갯짓을 해 구름을 뚫고 9만리를 솟구쳐 오른다. 상승하는 동력이 극점에 이르러 멈추는 순간 존재 차원에 극변이 일어나 새가 되는 것이다. 적후지공(積厚之功), 즉 두텁게 쌓은 공력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 장엄한 전 과정을 장자는 높은 창공에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긴 여정으로 묘사했다. 이것은 위대한 승리의 여정이다. 그 안에는 삶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헌신이 깃들어 있다. 성실한지도 모를 정도로 펼치는 무극의 성실이다. 어떻게 이 정도의 삶이 가능할까? 이 정도의 삶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근저의 힘은 무엇일까? 한참 그것을 찾던 어느 날 내 눈에 한 구절이 들어왔다. 곤이 붕이 되어 남쪽으로 날아가는 이 장엄한 성실성의 기초는 모두 이 한 구절에 담긴 체득에서 나온다. 내가 별똥별의 궤적을 내 안의 어딘가에 감추곤 하던 시절, 지붕은 초가에서 슬레이트로 바뀌었지만 벽은 여전히 흙벽이었다. 나뭇단이 쌓인 부엌은 특히 석양볕이 길고 낮게 들어왔다. 부엌에 찾아드는 석양볕은 흙벽의 갈라진 틈새를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는데, 겨우 책받침 두께 정도에 불과했다. 당연히 흙벽의 갈라진 틈은 책받침보다도 얇다. 그 틈의 간격을 천리마가 달리며 지나치는 시간은 얼마나 짧을까? 아마 순간보다도 더 순간적이고, 찰나보다도 더 찰나적일 것이다. 이 얇은 두께의 틈새를 보통은 극(隙)이라고 한다. 장자에 의하면, 우리의 일생은 고작 이 찰나적인 간격을 천리마가 지나치는 그 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고 갈파한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체득으로 이끈다고 앞에서 말한 바로 그 한 구절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천리마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이다. 홀연할 따름이다!”(「지북유」편) 장자가 말하는 무한 확장, 덕후지공, 절대 자유, 위대한 성취들은 모두 금방 죽는다는 이 처절하고도 두려운 체득에 푹 빠졌다가 건진 결과들이다. 순간에 대한 체득만이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강한 욕망을 갖게 한다. 장자 철학의 핵심은 절대적으로 이 한 구절의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자가 살았던 자유롭고 투철한 삶은 모두 죽음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기초로 한다.죽음은 경험되지 못한다. 경험하는 순간 경험하는 주체의 의식이 원래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이탈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제3자의 일로 다가올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전부다. 내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금방 죽는다’는 말을 듣거나 의식하는 당시에는 평정이 허물어지고 내면이 동요하기 때문에 체득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잠깐 지나면 ‘금방 죽는다’는 문장이 나의 일로 남지 않는다. 나에게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죽음’으로만 존재하지 죽어가는 일로서의 ‘사건’으로 의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보자. ‘죽음’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죽어가는 일’이 있을 뿐이다. 체득은 ‘죽음’에 대하여 내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건’으로 직접 경험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죽어가는 사건’을 내가 경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다만, 죽음의 구체적 상황 비슷한 경우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수는 있다. 나에게 직접 닥치는 ‘사건’으로 체득하려면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평정’이 무너지며 내면이 동요하는 그 경험의 시간을 계속 늘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기억하고 의식하는 수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운명처럼 우연히 다가와서 집요하게 머물러 죽음을 ‘사건’으로 대면할 수 있기도 하지만, 보통 그런 경우는 매우 희박하므로 우리는 튼실한 삶을 위해 죽음을 의식적으로 자주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다. 인생이 짧디 짧다는 것을 항상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나는 ‘금방 죽는다’는 사실과 ‘죽어가는 사건’의 실재성을 연속적으로 붙들어 놓고 싶다. 그것이 삶을 튼실하게 하는 비결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 “나는 금방 죽는다”고 서 너 번 중얼거린다. 그러면 적어도 그 날 하루는 덜 째째해질 수 있다. 최소한 그날 오전까지 만이라도 덜 째째해질 수 있다. 나 자신을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곳에 두는 일을 그나마 조금 줄일 수 있게 된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쓸 수 있게 된다.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사는 것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나는 아직 덜 죽은 것이 분명하다. 더 철저하게 죽어버려야겠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기획 | 기고 | 2017-03-28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