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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칼럼 (112건)

최근 전북 교육계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잇달았다. 부안여고 체육교사에 의한 지속적인 학생 성추행 사건, 도교육청 인권센터 조사를 받던 부안 상서중 수학교사의 자살,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번민하다 몸을 던진 전주 서곡 여중생과 정읍 학산 여중생 투신 자살 사건 등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사건들에 대한 전북 교육당국과 김승환 교육감의 상식을 벗어난 납득할 수 없는 태도와 발언이다. 김 교육감은 최근 부안여고 교사의 유가족을 만나 한마디로 ‘억울하면 법대로 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교육계 수장으로서 교육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에 따른 유감 표명과 유족들에 대한 위로와 사과를 예상했던 도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동이었다는 평가다.이전에 있었던 교사 자살 사건에서도 김 교육감과 교육당국은 유족에게 ‘잘못한 것이 없으니 법대로 처리하자’는 방식으로 사건을 대했다. 심지어는 “더 밝혀지면 다친다”며 고인의 명예를 깎아내리며 유족을 협박하는 듯 한 입장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지도자면 자신이 관할하는 집단에서 대형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큰 틀에서 대도민 사과나 유감 표명을 먼저 한 후에 행정의 잘못이 있다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지도자의 덕목이다. 하지만 필자는 김 교육감이 단 한 번이라도 유사 사건에 대해 기본적이며 상식적인 행동이나 입장을 보여줬던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 김 교육감은 고인의 빈소에 조문한 적도 없으며 겨우 교육청 직원이 문상을 다녀갔다.사실 헌법학자인 김 교육감은 오래전부터 법을 맹신하면서 모든 일을 ‘법·법·법’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법은 알다시피 전통과 문화, 역사, 관습의 하위개념이다. 윤리와 도덕에 우선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실정법이 가진자와 권력자에 유리하다는 것 쯤은 세 살배기도 다 안다. 국민 대다수가 여전히 법은 서민이나 시민의 편이 아니라고 여기는 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기도 하다. 법이 만사를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릇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예의와 수치를 안다는 데 있다’는 성현의 말씀이 떠오른다. ‘자비와 사랑, 측은지심’은 인간이 인간다우며 짐승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최근의 사태를 보면 김 교육감의 과거 행적이 오버랩된다. 김 교육감과 관련 “상주인데 젊어서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친아버지 상에도 가지 않았다”는 익산 어르신들의 기자회견, 고향이 광주인데 익산으로 바꿔 말한 사실, 전북대 법대 교수 임용 당시 동료 교수들이 논문 등을 문제 삼아 거의 한 학기 동안 임용 철회를 주장했던 사실, 장로로서 교회 분규에 적극 가담해 목사를 비판했다가 신도들에게 폭행당해 입원했던 일 등이 언론에 보도되고 도민 사이에 회자됐다. 필자는 김 교육감이 출마해 당선이 된 뒤에는 이 모두가 과거의 일이기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 사고에 대한 김 교육감의 대응방식을 보노라면 개인사에 따른 트라우마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깝다. 그러나 현재 김 교육감은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자 전북 교육계의 수장인 이상 개인의 과거사에 영향을 받아 행정을 펼치면 안된다. 김 교육감의 임기는 아직도 적지않게 남아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건으로 탄핵되기 전까지 ‘다음 대선은 왜이리 오래 남았나’하며 절망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요즈음 김 교육감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에 잠기는 게 필자만의 상념일까? 그럼에도 김 교육감이 남은 임기 동안 사람과 동물을 구별짓는 ‘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전북교육의 아픔과 성처를 치유해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10-20 23:02

일찍이 강준만 교수는 진보 진영에 대해 뼈아픈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싸가지 없는 진보’란 저술이다. 많은 공감과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한 글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철학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과하여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해 업신여기며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 진보진영의 배타성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로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태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기회였다. 아무리 목적이 옳다 하더라도 과정인 수단과 방법이 그르다면 목적이 훼손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이치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왜 진보진영에게 제시했던 것일까? ‘부안 성희롱 의혹 교사 자살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전북교육청의 일처리 방식이나 사안에 대한 답변 태도를 보면 전북교육당국의 모습이 강준만 교수가 말했던 완장 찬 ‘싸가지 없는 진보’ 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어떠한 사안에 대한 잘못된 결과보다 사안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를 보며 더욱 분개하는 경우가 많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했다. 하지만 ‘부안 자살 교사 사건’을 대하는 교육청의 태도는 사과는 없이 언론에 흘린 내용들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상황이 바뀐다. 감사과정에서 당사자도 인정했다. 학생 진술도 바뀔 수 있다.” 등 본질 흐리기, 물타기와 색깔 덧씌우기를 일삼는다. 이미 여러 진술과 조사는 정당성을 상실했는데도 여전히 버티며 강변하려 든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이러한 태도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유족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보태며 공분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어두웠던 시절, 뉴스에서 이미 고인이 되신 ‘김근태 의장’에 대해 사정당국의 의도대로 무시무시한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아가는 조직표와 소위 ‘피의 사실’을 발표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고사하고 피의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권과 인권은 말살되었다. 각본과 연출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를 마치 사실인양 읊어 원하는 인물로 낙인 되고 매도되었다.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결국은 저들의 여론 조작과 공포 조장에 의해 순치되어 갔다. 밀실에서 반인간적인 고문과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피의 사실에 의해 한 인간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공안 사건에서 대동소이했다. 공권력에 의한 고문살인과 폭력, 법의 심판을 받기 이전의 피의 사실 공표 및 사건 조작에 정면으로 맞서며 당당히 소신과 철학을 밝히고 스스로 영어의 몸이 된 숱한 청년과 시민들이 있었다. 모든 죄는 법원의 판결이 나기까지 무죄이며 예단은 금물이다. 재판 이전의 피의 사실 공표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숭고한 가치이며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해낸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사전에 피의 사실 공표가 이루어지고 있다. 속보 경쟁과 특종 의식, 시청률 등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사정과 행정 당국이 자신들의 목적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이를 교묘하게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법과 원칙은 구호가 아니라 일상에서 단 한 사람의 피해자가 없도록 노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는 가치이다. 최근 성희롱 문제가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가부장적 남성이 아직도 사회변화에 발 빠르게 맞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성희롱과 같은 민감하며 다툼이 있는 사안은 사건 처리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단 질러 놓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전북 교육당국이 법과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착각하면 과거 공권력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잘못된 공권력에 의한 무서운 결과를 몸으로 체득하며 불의에 싸워 얻어낸 기본권을 더 이상 욕보여서는 안 된다. 감동이 없는 행정은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전북교육청의 자세와 태도를 보며 강준만 교수의 글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9-0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