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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76건)

남자와 여자로 성이 태생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니 세상에는 별의별 해괴한 일이 다 벌어진다. 수많은 희로애락의 대부분이 거기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요즘 TV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뉴스 중 하나를 바라보는 심정도 참 답답하다. 심지어는 국가간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이나 전쟁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적도 있다고 하니 말 다했지 않은가.남자와 여자를 극명하게 차별하는 곳이 있다. 공공 사우나와 화장실이다. 제아무리 죽고 못 사는 남녀라도 그 앞에서는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일부 국가에는 남녀공용 대중목욕탕도 있는 모양인데, 가본 사람 얘기로는 분위기가 영 별로(?)라고 한다. 어떤 남자는 여장을 하고 여탕에 들어갔다가 적발되어 처벌을 받기도 한다.남녀 화장실을 별도로 마련해놓고 그걸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쓰거나 그려서 출입문에 붙이는 문자나 그림이 비주얼 시대의 흐름에 맞게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걸 ‘남’과 ‘여’로 간명하게 적었다. 요즘에야 물론 ‘MAN’과 ‘WOMAN’이 대세다.색깔로 구분하는 곳도 있다. 그럴 때는 으레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 계열을 쓴다. 거기에 남녀의 이미지를 다양한 그림이나 선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신랑과 각시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 붙인 곳도 있다. 이 경우도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MAN’이나 ‘WOMAN’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어떤 남자 화장실은 선 채로 오줌발 힘차게 날리는 모습을 이미지화해서 구분하기도 한다.그런 것들에 적잖이 식상해져서일까. 아예 ‘남자’라고 우직하게 써 붙인 화장실 표지판이 오히려 신선하게 와 닿는다. 로마자에 온갖 그림이나 세련된 이미지로 장식된 것들만 봐 와서 그럴 것이다. 아니, 본질적으로는 그게 아닐 것이다. 겉만 화려하게 포장해서 눈속임을 일삼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 탓일지도 모르겠다.

오피니언 | 기고 | 2018-02-20 23:02

형제끼리 사소한 일로 토닥거릴 때마다 어른들이 가끔 들려준 말이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 특히 형이나 언니를 따로 불러 앉혀 놓고 타이르곤 했다. 네가 너그럽게 양보하라고, 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졌는데 어떻게 이겼다는 거지? 그게 사실은 ‘져주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걸 머리가 좀 굵어진 다음에 깨달았다.누군가가 부럽다는 건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명문대학에 합격한 친구, 대기업에 취직한 아들을 둔 이웃, 자신의 집보다 서너 배 넓은 아파트의 주인, 수십억 원짜리 연봉 계약을 체결한 프로야구 선수, 철철이 먼 나라로 떠나는 여행가, 젊은 나이에 고속으로 승진해서 기사 딸린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대기업 임원이 누군들 부럽지 않을까.지위가 높거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들만이 아니다.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부르는 후배,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투명하고 매끄러운 피부, 이날 이때까지 치과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고 말하는 노인, 몸에 밴 포용적 리더십으로 부하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상사, 야참까지 그렇게 먹어대는 데도 전지현처럼 날씬하게 유지되는 몸매 등이 그런 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고 적힌 낙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해묵은 옛말 하나를 떠올린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 했던가. 죽었다 깨나도 너는 그런 연봉 못 받는다, 타고난 음치는 또 어쩔 것이며, 제아무리 다이어트해도 그 키에 전지현 몸매라니 가당키나 한 일이냐. 거기에 되묻는다.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면 평생 못 오르는 거 아닐까.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사촌이 논을 샀으면 직접 가서 봐야지요, 그렇다. 맞다. 가서 보는 거다. 부러워서 배 아플 시간과 열정이 있으면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얼마에 샀는지 알아야 자신도 논이든 빌딩이든 살 수 있을 거 아닌가. 부러워만 하면 진다. 부러워할 줄도 모르면 평생 지고 살 수밖에 없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8-02-06 23:02

미인대회 당선자 이름이 ‘김마포’다. 이름이 특이하다는 사회자의 말에 그 아가씨,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마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지어주셨답니다.” 그 말을 듣고 사회자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말죽거리 같은 데서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겠다, 너는.’ 물론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우리나라 도처에는 공항이 있다. 김포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 광주국제공항, 무안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도시 이름에 ‘국제’만 갖다 붙였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별로 국제적인 것 같지 않은 공항까지 예외가 없다. 영락없이 앞서 언급했던 ‘김마포’다. 아니다. ‘김미인마포’다.나라 밖 뉴욕에는 JFK(John F Kennedy) 공항이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 파리의 드골(De Gaulle) 공항이다. 몽골 가는 비행기를 타면 칭기즈칸 공항에 내려준다. 인디라 간디 공항이 어디에 있을지는 불문가지다. 모두 굵직한 자취를 남긴 그 나라의 역사적 인물에서 따온 이름들이다. 스페인에는 동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피노키오 공항이 있다고 한다.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개장됐다. 내부에는 국내외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다고 한다. 하긴 그래 봤자 ‘제2여객’일 뿐이다. 기왕 ‘아트포트 ‘(Art+ Airport=Artport)’를 표방할 거였으면 20세기 비디오아트 창시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우리 예술가 이름을 붙여서 ‘백남준터미널’ 같은 명칭을 쓸 수는 없었을까. 물론 다른 적절한 이름도 좋다.우리 지역 거점 국립대학에 가면 ‘인문관’이 있다. 그 옆에 한옥 양식을 접목해서 지은, 퍽이나 ‘간지’ 나는 건물 하나가 들어섰는데, 외벽을 보니 ‘인문사회관’이라고 적혀 있다. 과연 인문학과 사회학의 융복합인가? 우리 지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그 분의 아호를 빌려다 ‘가람관’ 같은 명칭을 붙였으면 어땠을까. 물론 이 대목은 사족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8-01-23 23:02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생각나니까 아예 생각을 안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말조차 우스갯소리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을 무려 여덟 번이나 반복한 것이다. ‘생각은 깊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정도로 충분했다. 한마디로 모양이 같은 단어는 하나의 문장 안에 반복해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새해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더라도 소소한 계획은 세워야 할 것 같아요.’ 비교적 짧은 문장에 체언인 ‘계획’, 용언인 ‘세우다’를 각각 두 번씩 썼다. 문장의 기본 틀까지 무너진 건 아니므로 뭐가 문제일까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새해에는 소소한 계획이라도 세워야 할 것 같아요.’와 같이 둘 중 하나는 얼마든지 생략할 수 있다. ‘두 사건 모두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는 어느 신문 기사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체언인 ‘사건’을 두 번 썼기에 하는 말이다. ‘둘 다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나 ‘두 사건 모두 미제로 남았다.’가 훨씬 간결하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사람이나 만날 생각은 없다.’와 ‘아무 생각 없이 누구나 만나려는 건 아니다.’를 비교해 보라는 뜻이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처럼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이 경우는 각각의 문장에 모양이 같은 단어를 두 번 이상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앞에 나온 단어를 다음 문장에서 반복하는 것도 좋은 습관은 아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라고 변화를 줘서 쓸 줄 아는 센스가 필요하다. ‘고양이 먹이 주실 때 점포 밖에서 주세요.’는 어느 공공장소에서 발견했다. 용언인 ‘주다’를 두 번 썼지 않은가. ‘고양이 먹이는 점포 밖에서 주세요.’라고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체언이든 용언이든 부사어든 모양이 같은 단어는 한 문장에 반복해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좋은 문장을 쓰려는 이들이 꼭 새겨두었으면 한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8-01-1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