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4-23 10:24 (화)
오목대 (4,725건)

무슨 생각으로 TV를 봤을까? 지난 일요일에 난 TV를 통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검찰출두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TV를 켰는지,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정말로 기억이 없다. 애초부터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검찰 출두를 앞두고 잘못을 시인하거나 죄를 인정하는 사람을 여태껏 본적이 없다. 게다가 우병우 전 수석이다. 국민의 눈에 상당한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도 그는 당당하고 뻣뻣하게 행동해 왔다. 애초부터 미안해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그런데 난 보고야 말았다. 기자를 쏘아보는 그 눈빛…. 섬뜩했다. 권력이 여전히 그의 수중에 있었더라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또 그는 앞으로 어떤 행동을 보일까.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현장취재에 나선 기자는 일반인이 아닌 공인이다.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국민을 대신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기자를 째려보는 행위는 단순히 기자 개인에 대한 도발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도전이고 모욕이다. 이는 국민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권력에 대한 맹신과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하긴 그런 착각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검찰의 수사와 관련해서 많은 뒷말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귀빈대접이니, 황제소환이니 하는 말들이 그 것이다. 검찰이 자신의 수사대상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담소를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서 행여나 추울까봐(실외도 아니고 실내인데도) 겉옷까지 마련해줬다. 팔짱 끼고 웃으면서 조사받는 모습의 사진은 흡사 우 전 수석이 검찰에게 앞으로의 수사 내용과 방향을 지시하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술래잡기는 원래 조선시대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경이 울리면 순라(나졸)들을 풀어 통금을 어긴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것을 흉내 내어 만든 놀이라고 한다. 이 놀이에서 순라(巡邏)가 도둑을 잡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히려 도둑이 순라를 잡는다면 그것이 바로 되술래잡기다. 한 마디로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기자를 째려보는 우 전 수석의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검찰도 반성하자.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적 사건도 아니고 비리의혹에 대해 차 대접은 너무 과분하지 않은가. 그러고도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성원 논설위원

오피니언 | 이성원 | 2016-11-08 23:02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퇴근하는 넥타이부대는 주로 사무직에 종사하는 소시민들이다. 생산현장의 노동자들과는 달리 시위나 집회에 참여해 본 경험이 별로 없고 투쟁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가 강하고, ‘바꿔봐야 그 X이 그 X’이라는 생각에 여간해서는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에 무관심하다거나 정치를 모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들의 정치에 대한 지식과 절망감이 때로는 술자리를 빌려 표출되고 분노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날이 바뀌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그저 별 탈 없이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넥타이부대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30년 전인 87년 6월 항쟁 때이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온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고, 연일 시위가 이어졌다. 사무실의 넥타이부대들은 점심이나 퇴근 시간에 시내를 오가면서 시위대와의 거리를 점차 좁히더니 6월 10일 전국적으로 펼쳐진 반독재투쟁에서는 큰 무리를 이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고, 누가 누구에게 권유한 것도 아니었는데 하나씩 둘씩 자발적으로 모이다보니 커다란 세력이 됐다. 그 엄청난 규모에 시위를 주도한 측도, 거기에 참여한 넥타이부대도 모두가 놀랐다. 그렇게 해서 무너뜨린 것이 독재권력이었고, 쟁취한 것이 대통령직선제였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서슬퍼런 독재권력의 칼날을 압도한 것이다. 이런 넥타이부대가 최근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순실씨 국정농단으로 일컬어지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또 SNS 등을 통해서 각종 정보를 퍼 나르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소시민이지만 집안에서 가장인 그들의 참여와 행동은 곧 온국민의 저항운동이고, 거부할 수 없는 물길이기 때문이다.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거국내각 등 수습책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습보다는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정치권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30년전 6월 항쟁 때에도 6·29 항복선언을 얻어냈지만, 대선에서는 독재정권의 계승자에게 또다시 권력을 내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선 눈 앞의 이해관계나 내년 대선에서의 유불리 등만을 따지다가는 또다시 비슷한 잘못을 범하지 말란 법이 없다. 민심을 잘 읽고 민심을 따르라. 민심이 곧 천심이다. 이성원 논설위원

오피니언 | 이성원 | 2016-11-02 23:02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국가기념일과 상관없이 요즘 ‘각종 데이’가 넘쳐난다. 오죽하면 애주가들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원래 먹는 날, 화끈하게 먹는 날, 수도 없이 먹는 날, 목이 터져라 먹는 날, 금세 먹고 또 먹는 날, 토하면서 먹는 날,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먹는 날’이라고 했을까. 그렇다고 무슨무슨 데이를 꼭 상술로만 보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공감을 받지 못하면 그들만의 데이가 될 것이고, 특별한 이벤트가 일반의 많은 공감대를 얻을 경우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그저 즐기면 그 뿐이다. ‘각종 데이’중에는 식품과 관련된 게 유독 많다. 인삼데이(2,23)·삼겹살데이(3,3)·오이데이(5.2)·유기농데이(6.2)·육포데이(6,4)·고기데이(6,6)·추어탕데이(7,2)·엿데이(7,7)·라면데이(8,8)·쌀데이(8,18)·구구(치킨)데이(9,9)·와인데이(10,14)·애플데이(10,24)·한우데이(11,1)·가래떡데이(11,11) 등이 그 예다. 8월8일은 장어데이기도 하다. 풍천장어로 유명한 고창군이 이날을 장어데이로 삼은 것은 장어를 먹고 팔팔하게 살아보자는 의미와 활발하게 움직이는 장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오늘은 한우데이다. 2008년 한우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한우 소비 촉진을 위해 정한 날이다. 한우가 최고라는 의미로 ‘1’이 3번 겹치는 날을 정했다거나(4번 겹치는 날은 이미 가래떡데이여서), 한자로 소우(牛)를 파자하면 3개의 1이 나온 점에 착안했다고 한다. 전통적 가치관인 천지인 사상을 모티브로 해서 ‘3’(1+1+1)을 표현하는 11월1일로 정했다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2008년은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이 타결된 후 이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로 전국이 들끓었으며, 그 와중에 한우데이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아픈 역사도 함께 안고 있다.올해도 1일을 전후해 전국 각지에서 ‘대한민국이 한우 먹는 날’이벤트를 개최한다. 한우협회 전북도지회는 4일부터 이틀간 전북도청 광장에서 ‘대한민국이 한우 먹는 날’을 연다. 한우고기 할인판매 행사, 한우비빔밥 1000명분·불고기덮밥 500명분 나눔행사, 어린이 한우 그리기대회 등이 마련된다. 부정청탁방지법 시행 후 한우 소비가 줄고 가격이 내려가면서 농가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한다. 그렇고 그런 데이가 아닌, 축산농가에게 힘을 보태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김원용 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원용 | 2016-11-01 23:02

전주에서 차량 통행량이 가장 많다고 할 수도 있는 왕복 6차선 도로의 한 켠에 B나이트클럽이 있다. 나이트클럽 앞 주변은 영업시간이 아닌 낮과 초저녁엔 사람 통행이 별로 없어 한산하지만 나이트클럽 영업시간인 밤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나이트클럽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저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부류도 있겠지만 대부분 친구끼리, 동료끼리 1·2차 정도의 술자리를 거친 후 그날 모임의 막판을 장식하기 위해 찾는 부류가 많다. 그들은 빠르고 강한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그날의 스트레스를 술기운과 함께 날려버린다. 모처럼 마신 술을 깨고, 스트레스도 풀고, 친구·동료들 간 우의도 다질 수 있는 기회이니 나이트클럽은 얼마나 즐겁고 유익한 공간인가. 상당수 연예인들이 그랬듯, 전북 군산 출신의 인기 배우 김성환씨도 무명시절 서울 무교동의 유명 나이트클럽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대중가요 ‘인생’이라는 히트곡도 있는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섞은 구성진 입담과 노래로 대중 마음을 사로잡아 성공할 수 있었다. 요즘도 가수 등 대중 인기가 좋은 연예인들은 나이트클럽에 곧잘 출연한다. B나이트클럽 앞 대로변은 한밤중으로 갈수록 클럽 손님과 택시, 승용차 등으로 크게 붐빈다. 큰 사거리에서 200여m 가량 떨어진 대로변에 택시와 승용차가 주정차 대열을 이루는 바람에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일반 통행차량들은 잠시 병목현상에 시달린다. 자칫 충돌 등 접촉사고가 날 수 있어 서행 안전운전 해야 한다.이 곳에서 서성대는 남녀는 거의 대부분 취객이다. 나이트클럽에서 열심히 춤춰 취기가 내렸을 수 있겠지만 술취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 곳 나이트클럽을 드나드는 취객들의 상태는 올들어 왕복6차선 대로의 중앙선에 설치된 플래스틱 분리대가 말해준다. 진북터널사거리에서 마전교쪽으로 길다랗게 설치된 중앙분리대는 B나이트클럽 앞 쪽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취객들이 도로를 무단횡단하면서 중앙분리대를 부숴버린 것이다. 이번 것은 예전 분리대보다 단단해 보였지만, 취객들의 힘은 대단했다. 교통사고 예방 차원에서 설치된 도심 중앙분리대 수난은 비단 이곳 뿐만이 아니다. 보행자는 물론 자동차도 중앙분리대를 깔아뭉개고 유턴 등 불법을 자행한다. 요즘 대통령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국정의 중앙분리대가 파손된 탓이다.김재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10-27 23:02

경남 남해의 독일마을은 요즘 관광명소가 됐다. 196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됐던 독일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하도록 조성된 곳이 남해 독일마을이다. 산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입지, 빨간 지붕에 하얀 벽돌의 전통적인 독일 양식의 주택, 부인의 나라에서 여생을 함께 할 각오로 한국에 온 파란 눈의 독일인 등이 어우러져 ‘한국 속의 작은 독일’로 특화된 관광지다. 독일의 이국문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를 모태로 한 10월 맥주축제가 독일마을의 브랜드로 떠올랐다.전북에서도 재독교포들을 위한 독일촌 건설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과 무주군이 2003년도 적상면 일대에 독일의 한적한 농촌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독일촌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재독교포들을 위한 30세대의 주택을 만들고, 무주 특산품인 머루주를 독일 와인식으로 개발하며, 독일 관련 문화테마단지를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남해와 달리 무주계획은 이후 무산돼 아쉬움을 남겼다.무주 독일촌 건설계획은 당시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으로 있던 김제 출신의 백영훈 박사가 주도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입안했던 백 박사는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서독 정부의 원조가 필요했고, 한국의 독일박사 1호인 그가 서독경제협력단 일원으로 파견됐다. 그러나 해외신인도가 낮았던 한국에 상업차관이 순탄하지 못했다. 차관 조건으로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 파견을 제안해 성사시킨 주인공이 바로 백 박사였다. 독일의 원조와 독일로 간 2만여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굳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그렇게 이국만리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한국의 발전과 그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산 이들에게 최근 독일을 무대로 펼치는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승마놀이’는 깊은 절망감을 줄 것 같다. 힘든 노동에도 근검절약으로 고국에 해마다 5000만 달러의 거액을 송금했던 산업일꾼들의 역사는 출처도 알쏭당쏭한 돈을 펑펑 써댄 두 모녀에게는 딴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됐던 백 박사가 독일에서 쌓은 공적과 이미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각종 비리 의혹에 얽힌 최씨에 의해 허물어진 것도 아이러니다.반세기 세월 속에 이제는 하얀 머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파독 광부·간호사 30여명의 최근 전주 방문이 그래서 더 먹먹하다. 김원용 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원용 | 2016-10-26 23:02

“남에 돈가지고 지랄하느라 시간이 없나보구나 ㅎ 능력없으면 니네부몰원망해. 잇는 우리부모가지고 감놔라배놔라하지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최근 SNS나 인터넷상에 떠도는 글 중의 하나이다. 한 여학생이 애초 SNS에 올린 것을 한 언론이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글을 쓴 배경은 지난 2014년 이화여대 수시전형에서 승마부문 체육특기자로 합격한 뒤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문장이 썩 빼어난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공감을 받기도 쉽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계층의 망탈리테(mentalite·정신구조)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그 중의 하나로 작용하는 듯하다. 이 여학생의 부모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정윤회·최순실 씨이다.안타까움 속에서도 다행스러운 면은 있다. “돈도 실력”이고 ‘능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언이 그것이다. 각종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특혜는 없다”며 잡아떼고 버티는 기성세대 권력에 비하면 대단히 솔직하다. 그러나 솔직함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대학입학을 앞둔 어린 여학생의 심성치고는 너무 때가 묻었고 시커멓다. 부모의 돈을 자신의 권력으로 치환시키고 즐기려는 그 사고에는 뻔뻔함과 용렬(庸劣)함이 배어 있다. 그야말로 ‘민중은 개 돼지’라는 안하무인이 느껴진다. 상황이 이러한데, 네티즌들이 아무리 욕을 하고 죽창드립을 달면 무엇 하겠는가?그런데 최근에는 이 돈이 ‘부모의 돈’이 아니고 그녀의 부모가 국민들에게서 소위 ‘삥’ 뜯은 돈일 가능성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그녀의 모녀는 지금 언론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세상은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으로 온통 시끄럽다. 경찰관 사무실에 4만5000원 상당의 떡상자를 보낸 민원인은 김영란법 위반 1호로 재판을 받게 됐다. 학부모에게서 케이크를 받아 아이들과 나눠먹은 교사는 공무원행동강령을 위반했다며 중징계 위기에 몰렸다. 그런데 대학 입학부터 학점 취득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으로 일관됐고, 국민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삥 뜯어 초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혹투성이의 이 사건에 대해서는 왜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가? 이쯤 되면 부정청탁은 그 내용보다는 누가 했느냐가 중요한 모양이다. 도대체 뭣이 중허냐고 국민들은 묻고 있다.이성원 논설위원

오피니언 | 이성원 | 2016-10-25 23:02

선거가 일상이 되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대표를 뽑는 일이 늘었다. 그 만큼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원리로 작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그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귀중한 목숨을 민주 제단에 바쳤다. 그 희생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표를 선출할 때 이성적인 판단 보다는 감성의 지배를 받아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먹고 살기가 힘들다 보니까 선거를 할 때마다 분위기에 휩싸여 감성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있다. 선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후보의 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투표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방선거나 농수축산림조합장 선거 때도 후보가 내건 공약이나 정책 등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후보와의 사사로운 관계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소지역주의나 연고성이 판단 기준이 된다. 지방선거 때는 지역정서에 의존해서 특정 정당만 보고 찍는 경우도 많았다.대통령 선거는 지역주의가 크게 작용한다. 후보 출생지가 어디냐에 따라 표가 왔다 갔다 했다. 국민들이 자신의 한표가 중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지역 연고에 의한 묻지마식 투표가 이뤄졌다. 보수 진보 보수 정권으로 뒤바꿔지면서 대통령을 잘 뽑는 게 자신한테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이 막중하다. 권력이 대통령한테로 집중되다 보니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국회에서 헌법을 고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도민들도 대선 때 곧장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한 묻지마식 투표를 해왔다. 90% 넘게 일방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드문 사례다. 본인들이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될 때는 기뻤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임기 내내 우울했다. 사실 한풀이에 가까운 선거를 했다. 그렇다고 개인의 삶과 지역발전이 바뀌지는 않았다. 대선이 일년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대선은 외교 안보 국방은 말할 것 없고 경제상황이 악화될 위험에 처해 있어 중요하다. 도민들은 그간 냉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선거를 모두 경험했다. 얻은 결론은 연고주의에 의한 선거가 국론분열과 지역감정만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금 선거판은 양당구조를 더 고착시키는 구조다. 그래서 지난 4·13 총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그 피해가 어떻게 드러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후보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 철학부터 시작해서 어떤 경험을 해왔고 그가 내세운 공약과 비전은 뭣인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불통과 권한 행세로 나라를 망칠 수 있다. 백성일 상무이사·주필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10-24 23:02

참여정부의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씨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그야말로 거대한 빙하가 돼 정국을 강타했다. 회고록에 나오는 참여정부의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과 관련된 대목 때문인데, 문재인 의원이 논란의 핵심에 있다. 송민순은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참여정부가 UN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측의 입장을 타진한 후 기권 결정을 했는데 당시 북측의 입장을 묻자고 한 장본인이 바로 문재인이라고 썼다. 이에 문 의원은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기억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 내렸다”고 쓴 송민순 회고록의 사실관계 확인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물론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일구삼언하지 말고 진실을 밝히라고 한다. 전북에도 똑같은 사건이 있다. 송민순 회고록 파문은 10년 전 일이지만, 삼성이 새만금에 20조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은 불과 5년 전 일인데 거짓말 투성이다. 삼성이 지난 5월 약속 5년 만에 “새만금투자계획이 없다”고 밝혀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삼성 투자와 관련해 김완주 전 도지사는 “삼성의 새만금투자 요청이 있어서 정부에 연결해 줬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측 인사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전북도와 삼성이 주도한 것”이란다. 이는 김완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김완주 측은 무반응이다. 전북에서 삼성은 금융과 생활가전, 스마트폰 장사로 쌈짓돈을 쓸어담고 있지만 정작 지역투자가 전무한 외부 ‘빨대기업’이다. 투자하면 좋겠지만 투자 안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삼성의 새만금투자 철회 결정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이명박정부가 LH공사 본사를 경남 진주혁신도시로 돌리는 바람에 흉흉해진 전북 민심을 달래기 위해, 또 이 문제 때문에 정부와 동병상련의 입장에 처했던 김완주 전 도지사와 짜고 이반민심 수습용으로 ‘삼성 새만금투자쇼’를 걸판지게 벌였다는 의혹, 삼성은 그저 정권 압력에 못이겨 이명박·김완주 광대놀이에 출연한 보조역일 뿐이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도백 시절 ‘매우 나쁜 짓’을 했다는 의혹과 비난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계속 침묵하는 건 대단한 인내다. 그의 현역시절 행태와 다르다. 그건, 이제 전북에서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 아닐까. 문재인과 김완주, 닮은꼴이다. 김재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10-20 23:02

전주기접놀이 콘텐츠 사용을 놓고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사)전주기접놀이보존회가 지난해 한국전통문화전당 개원식에 초빙된 문화단체의 공연이 보존회의 콘텐츠 도용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보존회는 15년간 공들인 콘텐츠를 허가 없이 이용함으로써 공연질서를 문란케 해 법적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공연단체는 삼천동과 평화동의 여러 마을에서 전승된 민속놀이에 대해 보존회의 허가를 받을 사항이 아니라고 맞섰다. 전주시가 나서 보존회가 콘텐츠 특허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접놀이의 보존에 공헌해온 만큼 향후 공연 때 보존회를 통해 공연하도록 조치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전주시민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민속놀이를 두고 연희자들 사이에 논란이 빚어진 것은 이례적이었다. 전주기접놀이가 세상에 빛을 보기 위한 용틀임이었나 보다. 전주기접놀이가 제57회 한국민속예술제에 전북대표로 출전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 받았다. 기접(旗接)놀이는 깃발을 갖고 노는 놀이다. 용이 그려진 깃발이어서 용기놀이라고도 부른다. 매년 백중때 모악산을 배경으로 전주시 삼천동과 평화동 일대에서 1940년대까지 연례행사로 행해졌으나 이후 간헐적으로 전승되다 중단됐다. 여러 마을이 참여해 용기이어달리기, 용기놀이, 용기부딪치기, 합굿 등을 통해 농사철의 피로를 씻고 친목을 다지는 민속놀이였다. 마을에서 치러진 마지막 기접놀이는 1956년 평화동 중평마을(당시 완주군 난전면)에서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1895년 제작된 중평마을 용기의 회갑을 기념해서다. 당시 기접놀이에 11개 마을에서 참가해 1주일간 열렸으며, 마을 공동재산인 논 3000평을 팔아 비용을 감당했다고 한다. 이후 맥이 끊겼던 기접놀이가 1970년대 중반 풍남제에서 재현됐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오늘의 기접놀이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1997년 삼천동 계룡리를 중심으로 보존회가 창립되면서다. 전주기접놀이보존회로 뭉친 회원들이 이듬해부터 매년 정월 대보름과 백중에 삼천동 일원에서 연희를 펼치며 그 맥을 이어온 것이다.맥을 잇는 과정에서 이런 우여곡절을 거쳤기에 전주기접놀이의 대통령 수상은 더욱 값지다. 큰 기지개를 켠 전주기접놀이가 박제된 콘텐츠에서 벗어나 과거 마을에서 진행됐던 것처럼 매년 모악산 자락에 휘날릴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용기를 자유자재로 흔들 수 있는 농촌 장정도 없는 현실에서 너무 큰 바람일까.김원용 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원용 | 2016-10-19 23:02

어떤 기관장을 만났더니 불쑥 김영란법 이야기를 꺼냈다. 며칠 전 다른 기관과 MOU를 체결했는데,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하더라는 것이다. 업무적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갑을 관계는 더더욱 아니지만,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봐 조심스러웠다는 것이다. ‘꼭 그래야 했느냐’는 질문은 여기서 별 의미가 없다. 행여라도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개인적인 모임도 뒤로 미루고 눈치만 살피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시범케이스’는 군대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다. 시범케이스에 걸리면 사소한 잘못에도 가혹한 처벌과 모욕이 뒤따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일부러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군 복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 공포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안다.그러나 김영란법은 사람들 간의 건강한 교유(交友)를 가로막고 우리 사회를 꽁꽁 얼어붙게 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 아니다. 본래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부정과 부조리, 불의를 뽑아내고 그 자리를 공정과 정의로 채우자는 취지이다.사실 우리나라의 부패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는 34개 OECD 회원국 중에서 27위에 그치고 있다. 점수도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OECD 평균 69.9점에 비해 크게 낮다. 아시아권에서도 싱가포르(85점)이나 일본(75점), 홍콩(75점), 부탄(65점), 대만(62점) 등에 비해 떨어진다.이처럼 만연한 부패를 추방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기에 국민들의 박수 속에서 김영란법이 탄생할 수 있었고, 국민들도 다소의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려는 마음이다.그러나 현재 김영란법을 대하는 우리의 사회 분위기는 본말이 전도된 것 같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자는데 건강한 부분이 긴장하고 있다. 큰 도둑들은 여전한데 서민들은 생활의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법이 잘못된게 아니라 권익위의 해석이 너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추방해야 할 것은 연줄에 의존한 부정한 관계이지, 신뢰에 바탕을 둔 건강한 사회관계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주도 돼서 국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물어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어떨까?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성원 논설위원

오피니언 | 이성원 | 2016-10-18 23:02

그간 전북이 산업화에 뒤처져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여건이 안 좋았으나 부가가치가 높은 농식품산업만 잘 육성하면 전북의 미래는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 전북은 농식품 분야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산학연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농촌진흥청 등 농업 관련 기관이 혁신도시에 있고 우수한 농업인력을 배출하고 연구기능을 갖춘 전북대학교 그리고 국내 굴지의 종합식품제조업체인 하림그룹이 있어 타 지역보다 여건이 좋다.2015년 기준으로 세계식품시장 규모는 5조5600억달러로 3조900억달러의 IT시장과 1조7800억 달러의 자동차 시장을 합한 것 보다 그 규모가 커지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간다. 아시아 태평양 식품시장 규모와 비중도 2014년을 시작으로 유럽식품시장을 능가하고 있다. 동북아 식품시장 규모는 14억5000만명으로 4억7000명인 EU보다 크다. 이 광활한 소비시장이 불과 2시간권에 속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물류 운송비 절감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전북이 일찍 농식품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한 것은 잘한 일이다. 물류거점을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처럼 새만금신항으로 잡았고 연구거점을 와게닝겐 URC와 같이 농촌진흥청 전북대학교 각 대학 농업연구소 그리고 핵심거점을 푸드밸리처럼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로 잡았다. 문제는 고정관념화돼 있는 경직된 사고를 어떻게 바꿔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그간 우리 농업은 소농가적 사고와 노동집약적 사고 그리고 비자본가적 사고로 움직여 왔다. 자연히 생산성이 떨어져 경쟁력이 없었다. 이 같은 경직된 사고를 기업가적 사고, 설비집약적 사고 그리고 자본가적 사고로 바꿔 놓아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경작지 면적이 우리와 비슷한 네덜란드의 농업인구가 7만인데 우리는 110만명이나 된다. 7만도 잘 훈련되고 교육받은 농업 전문가라는 것이다. 그간 적성을 고려치 않고 점수에 떠밀려서 농대에 진학한 농대생들마저 농업 현장으로 투입되지 않은 우리와는 대비된다. 네덜란드는 1950년대 이후에 규모화 전문화를 이뤘다. 그 때부터 단백질식품 생산 기반을 확대했다. 이미 농식품산업의 글로벌화를 진행했던 것이다.식량 자급률이 23.8%밖에 안 되는 우리는 농식품산업을 국가경제 의존형 1차산업에서 시장경제 지향적 산업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농어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내건 게 잘못이었다. 농업을 경제논리로가 아닌 정치논리로 접근한 게 오늘의 농업을 피폐하게 만든 주범이다. 전북은 네덜란드의 성공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농식품분야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도와 정치권도 산학연이 잘 운영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도민들도 새만금사업과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이 전북의 미래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이들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오피니언 | 백성일 | 2016-10-17 23:02

‘세월이 가면 길가에 피어나는 꽃따라/나도 피어나고/바람이 불면 흔들릴라요/세월이 가면 길가에 지는 꽃따라/나도 질라요/강물은 흐리고/물처럼 가버린/그 흔한 세월//내가 지나온 자리/뒤돌아다보면/고운바람결에/꽃피고 지는/아름다운 강 길에서/많이도 살았다 많이도 살았어/바람에 흔들리며/강물이 모르게 가만히/강물에 떨어져/나는 갈라요-김용택 시인의 -’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로 가는 길은 오래전 문화관광부가 ‘걷고 싶은 길’로 선정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에서 생명을 얻는다. 옥정호를 거쳐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물줄기는 김용택 시인이 살고 있는 ‘진뫼 ‘ 앞으로 찾아든다. 천담과 구담, 장구목을 거쳐 적성으로 곡성으로 흐르는 물길. 그 길의 끝은 남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시인은 90년대 초반, 천담분교에 근무했던 꼭 2년 동안 진뫼에서 천담에 이르는 이 길을 걸어 학교를 오갔다. 진뫼마을에서 천담까지는 꼭 4km, 십리길이다. 이 길 옆으로 흐르는 물길은 강이라 할 수 없을 만큼 한껏 몸을 좁히고 있다. 이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온갖 들꽃들이 피어나고 진다. 그 시절, 시인은 이 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여겼다. 그는 이 길을 오가며 철철이 피는 들꽃들의 이름을 알아내고 기억했다. 싸리꽃 달맞이꽃 쑥부쟁이 며느리 밑씻개 오이풀 여귀……. 수없이 많은 꽃들이 길을 따라 피고 졌다. 그러나 그가 기억했던 아름다운 들꽃 중에는 다음해에 피지 않는 꽃이 더 많았다. 해가 바뀌면 또 다른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었다. 시인의 마을을 찾아오는 문학기행단들은 시인과 함께 이 길을 따라 천담과 구담을 거쳐 장구목까지 걸었다. 이 길에는 그 흔한 전봇대 하나 세워지지 않았다. 길과 길의 끝에는 마을과 마을이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길을 일상적인 통행로로 사용하지 않았다. 자연 생태의 순정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비결이 거기 있었다. 이 길은 지금 잘 다듬어진 산책길로 모습을 바꾸었다. 자잘 자잘한 돌들이 뒹굴던 흙길 대신 걷기 편한(?) 포장길이 놓였다. 자연의 순정이 훼손된 감이 없지는 않으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가는 길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마음 순해지는 가을이다. 어수선한 시절, 걷고 싶은 길 하나쯤 마음에 넣어두길 원하는 독자들께 이 길을 권한다.

오피니언 | 김은정 | 2016-10-14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