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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 화풍을 일군 천경자 화백(1924~2015)의 고향은 전남 고흥이다.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던 천 화백은 10년 전 고향에 드로잉과 판화 60여점을 기증하고, 고흥군은 종합문화회관 내 천경자전시실을 마련했다. 그러나 천 화백측이 고흥군의 관리 부실을 이유로 기증 작품을 회수 조치하는 바람에 천경자 전시실은 고향에서 사라졌다. 대신 천 화백을 기리는 전시관은 현재 부산의 부경대에 세워지고 있다. 고흥은 안이한 대응으로 결과적으로 큰 문화적 자산을 놓친 셈이 됐다.남원시가 건립 중인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의 이름을 놓고 논란이 이는 모양이다. 전북미술협회가 “작품 기증을 이유로 생존 작가의 이름을 시립미술관 명칭에 넣는다는 것은 개인미술관을 국민의 혈세로 지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남원시립미술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다. 그러나 이미 4년여 전에 ‘김병종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관 건립이 추진돼 개관을 앞둔 상황에서 명칭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가 의아스럽다.생존 예술인의 이름을 붙인 기념관을 만드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함은 당연하다. 생존 작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존 인물의 이름을 붙인 기념물은 절대 안 된다는 것도 편견이다. 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의 이름을 딴 거리나 공원, 시설물 등이 부지기수다. 도시의 위상과 자부심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병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문제도 생존 작가의 문제가 아닌, 그럴 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느냐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남원의 간판 미술가로 내세우기에 역부족이거나, 남원 연고의 미술가 중 훨씬 뛰어난 화가가 있는 데도 굳이 시립에 ‘김병종’이름을 고집한다면 문제다. 독보적 존재는 아닐지 몰라도, 김병종 교수(서울대 미대)는 현재 세계 각국의 갤러리에서 초대를 받고 있고,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할 만큼 명성을 갖고 있다. 자치단체에 있는 또 하나의 미술관이 아닌, 김병종이라는 이름과 색깔을 담은 미술관으로서 가치가 더 클 것이라는 이야기다.전북미술계로서는 국내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작고하거나 현직에서 활동하는 지역의 원로 화가들도 개인 미술관 하나 없는 실정에서 김 교수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김 교수는 더욱이 지역 미술인과 교류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지역에서 어렵게 추진하는 미술관을 놓고 이제야 명칭으로 시비를 거는 것은 대승적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작고, 원로 화가들을 기리는 미술관을 더 만들고, 김 교수의 노하우를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는 게 전북미술계가 할 일이다.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08-02 23:02

요즘 행정안전부 안팎에서는 전북부지사를 역임한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과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이 나란히 ‘차관’에 발탁된 것이 큰 화제라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행안부에 단 4명밖에 없는 1급 실장중 전북 출신이 2명이었는데 이들 모두 차관에 등용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특정 정부 부처에서 2명씩 차관에 발탁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점을 고려하면 행안부 주변에서 겹경사로 여기고 있는것도 무리는 아니다.전북도 안팎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북부지사를 지낸 사람중 차관에 발탁된 경우는 3년전 이경옥 전 행안부차관이 처음이었다. 난다 긴다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역대 전북부지사 중 그 누구도 차관에 발탁되지 못했다.경상도나 충청도 등지에서 부지사를 지내고 차관이 되는 일은 많았지만, 전북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이경옥 전 차관이 첫 발탁된 이후 이번에 심보균 행안부 차관과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이 나란히 등용되자 도민들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다.그런데 이들 2인의 얽힌 사연 또한 향우들 사이에 훈훈한 에피소드로 전해진다.심보균(56) 행정안전부 차관이 심덕섭(54) 국가보훈처 차장에 비해 나이는 두살이 많지만 공직은 심덕섭 차장이 늘 앞서왔다.고창 출신으로 고창고,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심덕섭 차장은 행정고시 30회인데, 김제 출신으로 전주고,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심보균 행안부 차관은 행정고시 31회로 공직에 늦게 입문했기 때문이다.청와대 비서실, 행안부 국장, 전북도 부지사를 지낼때 심덕섭 차장이 한발 앞서면서 바통을 주고 받았다.지인들은 이들이 평소 깍듯이 존대를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무척 가까웠다고 회고했다. 지난 5월말, 늘 뒤를 따르던 심보균 기획실장이 심덕섭 지방행정실장 보다 먼저 행안부 차관에 발탁되면서 관계에 위기가 왔지만 이들 2인의 우정은 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기수 파괴 발탁에 의해 자칫 금이 갈 수도 있는 이들의 우정은 서로의 이해와 배려 덕분에 유지됐다는 것.고시 선배지만 심덕섭 실장은 상관인 심보균 차관 사무실을 스스럼없이 찾았고, 심 차관 또한 심덕섭 실장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는게 지인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최근 완주를 방문한 김부겸 행안부장관은 지역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동행한 심덕섭 지방행정실장에 대해 “차관급 자리(새만금청장)에 발탁하려고 무척 힘을 썼는데 잘 안됐다, 능력과 품성을 갖추고 있으니 잘 될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는데 실제로 김 장관의 말이 현실이 됐다.차제에 우정을 지키면서도 국가와 지역사회에 더 기여하는 심보균, 심덕섭 2인의 모습이 기대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8-01 23:02

선출직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깜’도 안되는 사람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낯 두껍게 한자리씩을 꿰차는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뒤로 빠지고 안해야 할 사람들이 선출직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말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것처럼 지방의원이 되는 순간부터 올챙이적 시절은 잊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농촌이나 도시 할 것없이 진정성을 갖고 시·군의원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심이 간다. 유권자 눈에는 지방의원을 거의 염불 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질 낮은 사람들로 보고 있다.무보수 명예직으로 부활했던 지방의원이 유급직으로 전환하면서 잘못 운영돼 간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 이유는 선거자금을 많이 써서 당선되다 보니까 본전 생각이 나서 엉뚱한 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방의원은 알게 모르게 애경사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300만원 정도 받는 의정비 갖고서는 턱도 없다. 움직이면 돈 들어가는 구조라서 자금 마련을 위해 나쁜 짓에 손대게 돼 있다. 직업이 없어 일정한 수입이 없는 의원들은 경제적 고통이 심하다. 자연히 의정활동 보다는 먹고 살려고 검은 손들과 유착관계를 맺는다.유권자는 빈수레가 요란하듯 지방의원을 목에다 힘이나 주고 다니는 사람 정도로 여기지만 집행부가 보는 시각은 다르다. 지방의원을 일단 상전으로 모신다. 잘못해 눈밖에 났다가는 자신의 신분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갑으로 대한다. 반면 단체장과 정당이 같고 학연 혈연 지연 등 정실관계로 서로가 얽혀 있어 원칙대로 못하는 면도 많다. 지방정치도 중앙정치와 마찬가지로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지역구를 갖고 있어 지역 일을 하려면 집행부한테 예산편성 등 아쉬운 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자기들끼리는 운영의 묘를 기한다고 하지만 자칫 공생관계로 가면서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처음부터 뒤전이다.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깜’도 안되는 사람들이 나선다고 설친다. 현재 추세로 가면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논 당상처럼 보인다. 국민의당이 죽을 쒔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 일색으로 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민주당 공천경쟁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문제는 당 공천이 정실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 지금부터는 깜이 안되는 사람을 공천하면 안된다. 의정활동은 뒷전이고 인사나 이권개입을 일삼는 현역은 무조건 낙천시켜야 한다. 도덕성에 흠결이 있고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사람도 곤란하다.말만 번지르하게 잘하는 교언영색형도 안된다. 단체장 검증이 더 문제다. 지난 선거 때 법정선거 비용 보다 ‘실탄’을 많이 쓴 단체장은 잘 살펴봐야 한다. 임기 동안 한 일도 없는데 표를 얻으려고 치적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도 안된다. 정책판단 ‘미스’로 예산을 낭비한 경우도 안된다. 인기영합주의 정책과 이벤트 정치로 환심을 사는 단체장을 떨어뜨려야 지방자치가 발전한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07-31 23:02

봉준호 감독의 신작 가 예외 없이 화제를 몰고 왔다. 그 배경은 여럿이지만 이번에는 영화시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큰 화제다. 는 개봉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등 신선한 발상과 과감한 시도,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한국영화의 성장을 주도해온 봉준호 감독이 4년 만에 내놓는 차기작인데다 세계 최대 콘텐츠 스트리밍 기업인 넷플릭스의 투자로 제작됐다는 점, 거기에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의 작품답게 제 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가 국내 개봉 된 것은 지난 6월 말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국내의 극장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3대 멀티플렉스가 상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국내 극장의 50%가 넘는 점유율을 갖고 있는 CGV였다. 뒤를 이어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가세했다. 이유는 의 유통방식에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개봉을 극장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가 동시 상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에 투자한 는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면 영화와 TV프로그램 등 영상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이들 3대 멀티플렉스는 스트리밍서비스와 동시 상영할 경우, 영화산업의 질서를 흐리게 될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외형상으로만 보자면 1300만 명 관객을 동원, 한국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세운 을 만든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 멀티플렉스로 부터 외면 받게 된 처지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상영은 중소형 극장들과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서비스 기업 가 맡았다. 인터넷(NET)과 영화(flicks)를 합성해 이름을 만든 는 1997년 DVD를 우편과 택배로 배달하는 서비스로 시작해 10년 뒤 인터넷 스트리밍까지 사업을 확장시켜 지금은 세계 최대 회사로 성장했다. 새로운 발상으로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 분야를 주도해온 는 지난 2013년 미국 최대 케이블 방송의 가입자 수를 넘어섰으며 2014년 조사한 결과로는 미국에서 주문형 동영상 서비스 소비자의 50%가 이용자였다고 한다. 이 회사는 2012년부터 콘텐츠를 구입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넘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의 유통 방식이 몰고 온 논란은 진행 중이다. 분명한 것은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제 영화시장 플랫폼의 환경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07-28 23:02

3평짜리 시골 창고에서 직원 3명으로 출발한 일본전산의 창업주이자 CEO인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창업 30여년만에 주요 사업인 모터를 기반으로 140개 계열사와 직원 13만명, 매출액 8조원의 전장 부문과 가전부문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신화를 만들었다. 그의 성공 신화는 (김성호 저)를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그 중에서 신입사원 채용 방식이 단연 눈길을 끈다. 초창기 시골의 작은 회사에 입사하려는 젊은 인재가 많지 않은 실정에서 나가모리는 머리에 든 지식보다 열정을 가진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방안을 택했다. 그 테스트가 ‘큰 소리로 말하기’ ‘밥 빨리 먹기’ ‘화장실 청소하기’ ‘오래 달리기’와 같은 독특한 방식이다.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자신감이 있고, 밥 빨리 먹는 사람이 결단력과 일을 빨리 처리한다고 보았다. 화장실 청소를 통해 기본 자질을 평가하고, 오래달리기를 통해 끈기를 살핀 것이다.괴팍하기까지 한 이런 정도의 방식은 아니더라도 이색적인 신입 사원 채용방식을 시도하는 국내 기업들도 적지 않다. 등산복 생산업체인 블랙야크가 산행 면접과 텐트 설치로 평가하는가 하면, 현대자동차는 대학 캠퍼스와 도서관 등을 다니며 ‘찾아가는 캐스팅’ 방식을 도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장체험 면접, 마라톤 면접, 술자리·노래방 면접 등 가까이서 지원자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기업에서 취업사이트에 등록된 구직자의 이력서를 검색해서 채용하는 ‘그림자 채용’방식도 등장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의 채용이든 취업문을 뚫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특정 지역과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까지 받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일자리 창출을 가장 앞세우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외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새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때 ‘블라인드 채용’을 하기로 했다. 면접자가 지원자의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적 조건, 학력 등을 채용과정에서 인식할 수 없도록 해 불필요한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취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 채 서류 심사도 통과하지 못하고, 업무와 무관한 자격증 쌓아올리기 등으로 비용과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취준생들에게 환영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경우 상대적으로 차별이 적었던 점을 고려할 때 민간 기업으로 확대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07-27 23:02

무릇 희비가 교차하는 것이 세상살이다. 기쁜 일만 있어야 하겠지만, 살다 보면 마가 끼고, 불운이 생긴다. 사면초가에 처한 항우의 진영에서 우미인가가 흐른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지경인데, 시운이 불리해 말도 달리지 않으니, 애통하구나 우미인 그대를 어찌할꼬. 항우는 패하여 죽고, 우미인은 자결했다. 한 때 하늘 찌르던 초패왕의 기개는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김제의 한 장인 이야기다. 그는 전통창호에 매진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 1월6일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9호 목가구(전통창호)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장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은 4개월만에 취소됐다. 그가 무형문화재 지정일인 1월6일 이전인 2016년 12월28일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비록 보유자 지정이 취소돼 안타깝게 됐지만, 고인은 누가 뭐라해도 전통창호의 맥을 지켜온 장인이었음을 증명해 보였다. 20년 가까이 전북무형문화재 판소리(흥보가) 보유자로 활동해 온 이모씨는 지난 4월 무형문화재 인정이 해제됐다. 이씨가 전주대사습놀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심사와 관련하여 돈을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 대중의 사랑도 한껏 받았던 인기 소리꾼 조모씨가 심사 비리 때문에 무형문화재를 박탈당한 전철을 이씨가 밟은 것이다. 이씨 사건으로 촉발된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내홍은 최근에야 가닥이 잡혔다. 전북현대축구단은 감독과 선수들의 노력, 축구팬 등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성원 등에 힘입어 컵대회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 왔다. 하지만 심판 매수 사건에 연루,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해당 스카우터가 지난달 자살했다. 나라 전체를 들썩거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사건만 큰 사건이 아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조직위가 엊그제 ‘오자’ 논란이 된 대상 작품에 대한 수상 결정을 취소했다. 해당 작가가 오자 사실을 신고했음에도 불구, 대상 결정을 밀어붙이고 언론 지적도 무시하더니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이다. 어쨌든, 주최측이 ‘오자’의 치명성에 중독돼 시비 가리기를 포기했던 건 심히 유감이다. 전라북도기능경기대회를 비롯, 시·군과 단체 등에서 치르는 수많은 공개 행사의 심사를 심사위원과 주최측이 ‘우리끼리만 합의하면 돼’ 하고 작당한다면, 그건 자살행위다. 전북도와 시·군, 단체 등은 지금이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점검할 일이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7-26 23:02

요즘 한창 유행하는 단어가 ‘들쥐’또는 ‘들쥐근성’이다. 물난리가 난 상태에서 유럽 연수를 떠났다가 비판에 직면한 충북 도의원이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외유를 비판하는 여론을 향해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서 비롯됐다. 그가 말한 레밍(lemming)은 흔히 ‘집단 자살 나그네쥐’로 불리는 설치류로, 우두머리 쥐를 따라 맹목적으로 달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사람들의 맹목적인 집단행동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주로 쓰는데, 최근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에 ‘김학철’, ‘레밍’이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그가 일부 언론을 들쥐라고 했는지, 아니면 일부 국민이나 사회집단에 대해 들쥐라고 했는지 속내는 알길이 없지만 차라리 아무말 말고 “죄송하다”고 했으면 여론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주민들 눈에는 “물난리를 만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어도 해외연수 예산을 쓰지못하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지방의원들이 들쥐”라고 여길법하다.충북에서 있었던 일이고 우리와 상관없다고 할 일이 아니다. 도내 도의회나 시군의회에서 지역민의 아픔을 외면한채 우르르 해외에 몰려다니거나, 혈세를 가지고 장난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각종 공연이나 체육대회때 무료티켓으로 우르르 떼지어 몰려다니는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런 현상이 바로 주민들 눈에는 들쥐근성으로 보인다. 화제는 다르지만 충북도의원 보다 한세대 전에 들쥐근성을 거론한 이가 있다. 10·26에 이은 12·12사태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자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은 1980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레밍과 같아서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해 큰 설화에 휩싸인 바 있다. 신군부가 등장하자 언론들이 알아서 기는 식으로 전두환 장군을 적극 미화하고 국민들도 살아있는 권력에 순응하는 꼴을 보고 한 말이었다. 당시 그는 “한국인은 들쥐 같다. 그들은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간에 따라간다.또 그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지 불문하고 따라 간다”고 지적했다.국민 자존심을 건드린 그의 표현에 울화가 치밀었으나, 한쪽에선 일개 소장에 불과한 사람(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한 나라의 권력을 마음대로 유린해도 용인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해석했다.위컴이 한국인을 들쥐근성 운운했지만 이후 역사를 보면 그의 말은 옳지 않았다.신군부의 집권은 5·18 광주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했고, 결국 수 많은 땀과 피, 그리고 시간이 걸렸지만 민주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들쥐를 거론해 큰 코 다친 2인의 행보가 참 묘하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겸 논설위원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7-25 23:02

지방의원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각 정당마다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이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어도 섣불리 나서질 못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 주변에서 대선 등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주로 공천을 받아 지방의원에 진출하는 형편이다. 도내의 경우 민주당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이 있지만 비례대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쪽에서 시·군의원이 선출된다.농촌지역은 굽은 소나무 선산 지킨다는 말처럼 오래동안 농촌에 뿌리를 박고 산 사람들이 후보군을 형성한다. 인구가 많은 도시는 학생운동을 했거나 정당 주변에서 맴돈 사람 등 후보군이 많아 공천경합이 치열하다. 대개 공천권을 지구당 위원장이 행사하는 관계로 전문직들이 공천신청을 꺼린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일컫는 지방자치는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그 지역살림살이를 도맡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가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26년이 지났어도 큰 성과를 못내고 있다. 물론 중앙정부에서 아직도 지방분권 확대 실시에 따른 각종 권한을 넘겨 주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인적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특히 정당공천을 받아 시·군의원이 된 경우 단체장과 당이 같아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가 은밀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지방의원들이 단체장을 견제한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법정선거 비용보다 많은 선거자금을 쓰고 당선되기 때문에 본전 확보를 위해 알게 모르게 이권개입에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간 관행으로 치부돼왔던 재량사업비 집행을 놓고 업자와 은밀하게 거래를 하다 적발되는 등 비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문제는 일정한 직업없이 의원 된 사람들이다. 현재 자치단체에 따라 의정비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시·군의원은 월 300만원 도의원은 연간 5000만원의 의정비를 받는다. 하지만 이 돈 갖고서는 애경사 챙기기에도 버겁다. 이 때문에 검은 돈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의원들이 집행부 인사와 이권개입에 나서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이 아니다.시·군의원 만이라도 공천제를 폐지해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철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 없다. 깨끗하고 생산적인 의회를 만드는 것도 백년하청이 될 수 있다. 그간 각 당에서 지방의원 공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로 지켜지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재정권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 못지 않게 지방의원에 대한 공천권 폐지가 중요하다. 지구당위원장이 친소관계에 따라 공천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항상 악의 씨앗이 돼 왔다. 반듯한 시군의원을 뽑으려면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라도 공천권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 지방의원에 대한 공천권이 정당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 보다 적폐로 작용돼 왔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07-24 23:02

백과사전을 사전의 설명으로 보자면 ‘일반 사전과는 달리 인간 문화, 사회생활. 학예 전반에 관한 사항을 통합 분석하고 정리해 해설한 사전’이다. 백과사전의 기원은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시대의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의 대저작 가 그것이다. 총 37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고대세계의 천문 지리 인문 자연학 등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집대성 한 것으로 고대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 받는다. 현대적 백과사전의 시작은 1728년 프레임 체임버스가 내놓은 두 권짜리 이다. 이 백과사전은 이후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달랑베르나 디드로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시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프랑스의 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었다. 특히 디드로는 이 의 편찬에 평생을 바쳤는데, 사전의 집필과 간행에 참여한 계몽사상가들과 함께 백과전서파를 형성해 18세기 후반의 혁명사상을 성숙시켰으며 이들의 활동은 결국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백과사전식의 저서를 편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기가 있었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학풍의 일면으로 주도했던 작업이다.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안정복의 , 이수광의 , 이규경의 등이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분류될 수 있는 저서들이다. 그렇다면 백과사전 편찬 작업이 오늘에도 이어졌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출판인이자 여러권 책을 펴낸 저자이기도 한 서해문집의 김흥식 대표는 우리나라의 백과사전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최근 한 강연에서도 그는 변변한 백과사전 하나 갖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개탄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백과사전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은 1980년의 동아백과사전이 처음이다. 뒤를 이어 브리태니커 한국판 백과사전이 나왔지만 내용을 보면 온전히 우리 것이라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민족문화백과사전이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민족문화를 중심으로 다룬 것이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문명을 제대로 기록한 백과사전을 우리는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백과사전은 단순히 객관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과 지식의 보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백과사전은 그 내용도 미흡하거니와 20년 전쯤 발간이 중단된 이후 더 이상 개정판이나 증보판을 만날 수 없다. 한나라 문명의 집합체랄 수 있는 백과사전을 갖지 못한 나라는 불행하다. 대한민국의 문명과 그 흔적을 제대로 기록한 백과사전의 존재가 절실한 이유다.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07-21 23:02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 놓은 사진가, 근대 사진의 완성자로 불린다. 그가 사진 작업과 관련해 남긴 유명한 말들이 많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라든가, “사진을 찍을 때 한 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이고, 찰나에 승부를 거는 이유는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라는 등 수없이 많다. 그는 사진 작업을 하면서 촬영 순간의 여건, 사진가의 느낌 등을 매우 중시했다. 카메라는 사진가 눈의 연장이고, 촬영 순간의 모든 것들을 중시하여 어떠한 조작도 허락하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빛으로 촬영하는 것을 고집했고, 트리밍 조차 불허할 만큼 사실에 엄격했다. “사진에는 새로운 종류의 조형성이 있는데, 그것은 촬영 대상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적인 윤곽의 생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은 가문의 풍부한 자본력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08년생인 브레송은 대학 진학에 실패, 결국 저명 미술가의 개인지도를 2년간 받으며 예술가로 성장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22세이던 1931년에는 아프리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1932년에는 신형 ‘라이카’ 소형카메라를 구입해 언제 어디서든 대상을 촬영할 수 있게 됐다. 결정적 순간 포착이 한층 쉬워졌다. 그는 사진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라이카 카메라는 내 눈의 연장이 되어 그것을 발견한 뒤로는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나는 삶을 ‘포착’하겠다고, 즉 살아가는 행위 속에서의 삶을 간직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숨 막히는 듯 한 느낌을 맛보며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어쩌면 세계의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브레송이나 카파 등 저명 사진작가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쯤의 산과 들, 바다, 거리, 전쟁터 등을 ‘헤매며’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자 할 것이다. 자연의 빛 속에 노출된 대상은 작가의 뇌리를 스치는 찰나의 구도에 맞춰지고, 작가의 느낌과 손가락 끝이 일치하며 셔터가 눌러지면 모든 것은 끝난다. 2012년과 2014년 전주의 도시개발 역사를 카메라에 담아 사진집과 전시로 대중에게 다가섰던 허성철 사진작가가 이번엔 사진과 그림을 결합한 작품들을 모아 ‘색을 해석하다’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전주우진문화공간에서 열고 있다. 그의 이번 작품들은 자연 그대로의 사진이 아니다. 그림과 사진을 디지털 작업으로 합성해 완성한 ’포토페인팅’이다. 브레송의 작품처럼 사실적이지 않지만, 한지 위에 펼쳐진 또 다른 아름다움이 보인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7-20 23:02

한 때 ‘양심냉장고’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인적과 차량 통행이 드문 한밤중에 몰래카메라로 정지선을 잘 지킨 차량을 찾아내는 형식의 한 TV 프로그램( ‘이경규가 간다’)이 히트를 치면서다. 모범 시민에게 준 상품이 ‘양심’이 붙은 냉장고였다. 개그맨 이경규씨는 이 프로그램으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교통법규 준수라는 공익적 반향도 상당했다. 냉장고가 널리 보급됐을 때인 데 왜 하필 냉장고가 상품이었을까. 일단 크기가 커야 그림이 산다는 시각적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 거기에 양심을 보관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살리기에도 냉장고가 제격이었을 터다. ‘양심냉장고’가 유행한 지 20년을 뛰어넘어 최근 ‘나눔냉장고’가 유행이다. 양심냉장고가 냉장고를 상품으로 걸어 ‘양심’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면, 나눔냉장고는 냉장고를 매개로 ‘나눔’의 정신을 앞세운다. 냉장고 자체와 냉장고를 채우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두 냉장고에 담긴 뜻과 지향하는 정신은 비슷하다. ‘나눔냉장고’는 신선한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의 특성을 활용한 나눔운동으로, 전국적으로 그 반경을 넓히고 있다. 부산 감천1동에서는 ‘우렁각시 나눔냉장고’라는 이름으로, 광양시 중마동에서는 ‘나누고 채워지는 나눔냉장고’로, 경기도 오산에서는 ‘누구나 나눔냉장고’ 등으로 음식나눔운동을 펴고 있다. 도내에서도 올 연초 완주군 이서면에서 ‘행복채움 나눔냉장고’사업을 시작했으며, 그 뒤를 이어 익산시 어양동행정복지센터에서도 ‘한소반나눔냉장고’가 운영되고 있다. ‘나눔냉장고’의 출발점은 독일의 음식공유운동(Food Sharing)이다. 2011년 음식쓰레기의 심각성을 고발한 ‘쓰레기를 맛보자’(Taste the Waste)라는 다큐멘터리 상영을 계기로 나눔냉장고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휴가 갈 때 냉장고를 비우거나 파티가 끝난 후 남은 음식물을 버리는 대신 나눔냉장고에 채우는 형태로 자리잡게 됐단다. 독일의 경우 이 운동을 통해 윤리적인 소비 혹은 음식물쓰레기 감소를 통한 환경보호쪽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분위기다.아직 대중화가 덜 된 우리의 경우 ‘냉장고나눔’이 시혜적 성격이 강하다. 각 가정에서 먹던 음식을 내놓는다는 것도, 남이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 것도 그리 흔연스럽지 못한 게 우리의 실생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끼니 해결이 어려운 가정에 냉장고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적지 않다. 최근 이서면의 ‘행복채움 나눔냉장고’에 ‘이 냉장고가 저더러 살아보라고, 버텨보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다”고 적힌 메시지가 화제가 되고 있단다. 나눔냉장고에 얽힌 감동들이 이어져 더 크게 진화하길 기대한다.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07-19 23:02

군주 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일컬어 ‘주군’이라고 하는데,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다. 그런데 우스갯 소리로 그런 최고 권력자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왕비’라고 한다.우리역사에 있어 가까운 조선시대를 예로들면 특정 성씨 가문에서 왕비를 많이 배출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집안의 배경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의 경우 가장 많은 왕비를 배출한 가문은 청주 한씨로 무려 5명이나 된다. 세조를 도와 정권을 잡은 한명회가 바로 청주 한씨다. 안동 김씨, 파평 윤씨, 여흥 민씨는 왕비를 각각 4명씩 배출했고, 청송 심씨 가문에서는 3명의 왕비가 나왔다.시대는 흘러 공화국이 되면서 왕이 아닌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렸지만, 제왕적 권한을 쥔 역대 대통령은 왕이나 마찬가지였고, 당연히 영부인도 왕비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영부인들은 때로는 숨어서, 때로는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국모에 준하는 예우를 받아왔다.영욕이 교차했지만, 저마다 대통령의 옆에서 국가운영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이 돼주고, 각별한 내조를 펼쳤는데 충북 청원군에 있는 옛 대통령 별장 청남대를 찾으면 역대 영부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사람이 먼저다”를 구호로 내걸며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파격적인 탈권위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부인에 대해서도 김정숙 여사라고 표현하는 언론도 있다.정치적으로 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의 길항작용속에서 큰 파도를 넘고 있지만, 고공 인기몰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일거수 일투족 또한 세간의 큰 관심사다. 그런데 얼마전 고사리같은 초등생들의 손편지에 화답한 김정숙 여사의 행보가 전북인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사소해 보이는 행사였으나 약속지킨 영부인의 행보가 어린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13일 전주교대 군산부설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합창을 했는데, 이는 두 달 전 군산부설초등학교 학생 457명이 문 대통령 내외에게 보낸 응원 편지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학교를 찾은 김 여사는 “여러분이 마음을 제게 보내줘서 제가 여기에 온 것처럼, 진심을 전하면 그 마음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정성 가득한 손편지에 고마움을 전했다.어릴때 직접 본 영부인의 이미지가 학생들이 성장한 뒤에도 평생 밝은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7-18 23:02

지방자치제가 부활한지 26년이 지나 정착 단계에 놓여 있음에도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현재 지방의원들이 1991년 부활된 초창기 의원들보다 자질과 역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91년 출발 당시 무보수 명예직이었는데 2006년 유급제로 전환하면서 지방의회가 생산적이질 못하고 오히려 돈 잡아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유권자들이 많다.지방의회는 국회처럼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우선이다. 조례를 제정하고 집행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승인하고 사무감사까지 실시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하기는 커녕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로 전락,예산만 낭비한다고 생각해 일각에서는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일부 자격 미달의원은 사적이익을 위해 각종 이권이나 공무원 인사에 개입, 지탄을 받고 있다. 특히 직업이 없어 일정한 수입이 없는 의원은 문제가 심각하다. 의원 배지 단 것을 무슨 큰 완장이라도 찬 것처럼 행동, 알게 모르게 검은 돈 유혹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기초의원 의정비는 월정수당과 의정활동비를 합쳐 월 300만원 정도다. 도의원은 연간 5000만원 수준이다. 문제는 재량사업비 집행과 정당공천이다. 현역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이 공천권을 갖고 있어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공천이 당선으로 이어지는 관계일 때는 뒷거래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대선 때 여야 모두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국회의원들이 공천권 행사에 따른 달콤한 맛에 길들여져 흐지부지 됐다.지방의회 원 구성때마다 볼썽사나운 감투 나눠먹기는 여전하다. 인구가 적은 농촌군은 모든 의원의 간부화로 4년 임기 중 의장단 상임위원장 그리고 몇차례의 특위 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이처럼 감투에 강한 집착을 보인 이유는 의장이 되면 연간 2500만원~3000만원 안팎 부의장은 1200만~1500만원 가량의 업무추진비를 쓸 수 있다. 상임위원장도 1000여만원에 별도 사무실이 주어지고 의장은 전용차량에 비서까지 두는 등 눈에 안보이는 혜택도 만만치 않다.상당수 유권자들은 일부 지방의원들을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서기 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사적 이익 챙기는 사람 정도로 바라다 보고 있다. 선거 때 쓴 본전을 챙기려고 주민 위주의 의정활동 보다는 각종 이권개입에 혈안이 돼 있는 것으로 본다. 다선인 고령의원들은 ‘보이지 않은 손’역할을 하면서 실리만 챙긴다.“돈 없는 사람들은 의정비 받아 갖고는 의정활동 하기가 힘들다”면서“애경사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알게 모르게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검은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때 유권자들이 옥석구분을 잘해서 제 역할을 못한 의원들의 의회 진입을 막아야 지방의회를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07-17 23:02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 408호)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문화재청이 궁궐 담장과 후원 영역의 정비를 마치고 왕궁리 유적 전체를 개방한 덕분이다. 백제 중흥의 꿈을 담고 있는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600∼641) 때 조성된 왕궁성(王宮城)이다. 오랫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이 공간은 1989년,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으로 발굴이 시작됐다. 왕궁 터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2004년. 역사학계는 계획적인 설계에 의해 궁성을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왕궁 유적의 면면을 주목했다. 궁성 건물지를 건립하기 위해 기반을 다진 석축과 계단 역할을 하는 월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리한 후원, 뒷간이 있었던 자리까지 그동안 확인된 백제 시대 왕궁의 어느 것보다도 완전한 형태의 궁성 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495미터, 동서로 230 미터의 거대한 석축성벽과 대규모 왕궁성,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쏟아졌다. 드러난 왕궁의 실체는 화려했다. 새로운 건물지와 함께 ‘王宮寺’가 새겨진 명문기와와 중국청자편, 철제솥 등 중요유물 3천여 점이 발굴됐다. 궁성 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공방 자리에서 출토된 금세공 유물은 특히 아름답고 정교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왕궁의 존재는 오래전 확인됐지만, 궁성의 내부 구조와 생활공간 등의 흔적이 구체적이고 대대적으로 확인된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이후 10여년, 정비 사업을 모두 마치고 궁궐 담장과 후원까지 공개한 왕궁리 유적은 경이롭다. 궁궐 담장은 안쪽과 바깥쪽을 잘 다듬어진 화강석으로 쌓아 올렸으며 백제 유일의 정원 유적으로 꼽히는 후원은 구불구불한 물길, 네모난 연못, 화려한 돌로 꾸민 정원을 안고 있다. 왕궁 터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안게 된 과제가 있다. 익산 왕궁리 유적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기록과 유물이 없는 역사는 야사로 묻히기 마련이지만 왕궁리 유적은 왕궁 터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기록과 유물에 궁성의 실체를 얻었다. 게다가 왕궁리 유적 일대를 돌아보면 삼국 시대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와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진 쌍릉,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가장 큰 석불이 있는 석불사 등 백제유적이 이어진다. 백제는 비록 패망의 역사를 안고 사라졌지만 700년이란 시간 위에 찬란한 역사를 쌓았다. 중국 문화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그것을 자기화하고 가치를 더해 일본이나 가야와 같은 이웃나라에 전파하는 문화교류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만 존재할 뿐 왕궁리 유적은 여전히 백제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 실체의 규명이 더 절실해졌다.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07-14 23:02

주민 직선으로 단체장과 지방의원 등을 선출하는 것을 두고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 문이 다시 열린 것은 1991년(지방의원)과 1995년(단체장)이다. 선거는 이제 한 해 걸러 치를 정도로 일상이 됐다. 5년마다 대통령선거, 4년마다 국회의원선거, 또 4년마다 지방선거를 치르고, 사고 지역이 생기면 재보궐선거까지 치른다. 일상화 된 선거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다. 선거꾼들이 생겨났고, 패거리정치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 장벽이 생겼다. 질 낮은 후보와 당선인이 적지 않고, 돈봉투나 이권 등으로 표를 매매하는 일이 근절되지 않았다. 허위사실을 퍼뜨리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후보들이 당선을 위해 주민 사탕발림 공약을 남발한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있다. 그 어원은 ‘증거’란 뜻의 라틴어 마니페스투(manifestus)다. 1834년 영국 보수당 대표였던 로버트 필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며 구체적인 공약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매니페스토가 확산됐다. 영국 토니블레어 총리가 1997년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매니페스토 10대 정책을 구체화, 국민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2006년 5.31지방선거 때 부터라고 할 수 있다. 후보 공약의 실현 가능성 등을 따지고 평가하자는 운동이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전개됐고, 공직선거 후보들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민선 6기 단체장들의 임기 1년을 남겨둔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단체장들의 지난 3년간의 공약 이행 정도를 평가, 발표했다. 전문가와 활동가로 조성된 매니페스토 평가단이 전국을 대상으로 공개된 자료를 모아 분석한 후 해당 지자체에 소명기회를 준 뒤 최종 발표한 것이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공약이행률 54.6%, 주민소통분야 최우수등급 성적을 받았다. 김승환 교육감도 최우수등급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기초자치단체에서는 김승수 전주시장과 이환주 남원시장, 박성일 완주군수, 김종규 부안군수가 공약이행 완료분야, 2016 목표 달성 분야, 주민 소통 분야의 합산 총점이 80점을 넘어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군산, 진안, 무주, 순창은 우수 등급을 받았고, 익산과 김제 등 재보궐선거 등 특수사정이 있는 지역은 평가에서 제외됐다. 매니페스토 평가의 장점에도 불구, 현실감은 다소 떨어진다. 예를 들어, ’군산조선소 결국 폐쇄’란 현실 앞에서 주민들이 ‘참 잘했어요’라고 박수칠까.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7-13 23:02

국민의당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한 때 집권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의기양양했던 시절이 언제였던지 싶다. 저지른 원죄가 있어 ‘자업자득’이란 비판에도 속절없다. 민심이 박근혜 전 정권을 향한 촛불만 혹독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그 많던 지지층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걸 국민의당도 믿기 힘든 상황일 게다. ‘문준용 의혹제보 조작사건’은 분명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한 중대한 범죄다. 당원 개인의 충성심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선거에 이용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의당이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면 석고대죄로도 부족하다. 새로운 정치의 기치를 걸고 탄생한 정당이 기존 정당에서도 용납하기 힘든 일을 벌였다면 더 이상 존재의 가치와 이유가 없을 터다. 검찰 수사와 법원 판단 등을 통해 진위가 가려지겠지만, 국민의당이 조직적으로 이런 일까지 벌였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심정적으로도 그러지 않았기를 바란다.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민심은 더욱 혹독한 것 같다. ‘문준용 의혹제보 조작사건’파문에 휘말린 후 국민의당은 5개 원내정당 중 지지율 꼴찌로 추락했으며, 특히 텃밭인 호남에서 자유한국당에도 뒤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7~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지율은 3.5%로, 전국 평균 지지율(3.8%)에도 못미치는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의당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던 것 같다.이 와중에 국민의당 소속 전북 국회의원들의 존재감이 없다. 대선 과정에서도 그렇고, 대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전북 국회의원 10명 중 7명이 국민의당 소속이다. 전북 출신의 비례대표 의원 3명을 포함하면 국민의당에서 차지하는 전체 1/4이 넘는다. 국민의당 성패는 곧 전북 정치권의 미래와 직결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무력감에 빠진 모습이다. 전북 정치의 오늘인 셈이다.국민의당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다면 지역정치의 큰 손실이라고 본다. 지난 총선에서 전북이 국민의당을 압도적으로 선택한 배경이 있었다. 특정 정당의 독식구조가 가져온 폐해였다. 집권당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 문제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인의 개인적 입지나 내년 지선을 앞두고 여러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전북에서 국민의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이야기다. 벌써 탈당 대열에 오른 기회주의 정치인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간판으로 전북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국회의원들은 창당의 명분을 살리고 지켜야 한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옳다. 이제부터가 시험대다.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07-12 23:02

각 지역마다 유독 특정 분야에서 돋보이는 이들이 있다.예를들면, 경남 창녕은 작은 군 지역에 불과하지만, 정치권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박영선 국회의원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전남 고흥군의 경우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김일, 복서인 유제두·백인철 등 힘이 센 사람이 많다.경기도 이천은 정치주먹 이정재, 유지광을 비롯, 경호실장을 지낸 곽영주·차지철 등 희한하게도 권부 주변의 인사가 많다.그런가하면 내로라하는 재벌은 경남 진주 출신이 많고, 사무관 이상 고위 관료는 유배지로 유명했던 경남 남해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전북의 경우 조선시대 이래, 의정부와 6조 등 요즘으로 치면 내각에는 많지 않았고, 사간원·홍문관 등 소위 언관쪽에 많았고, 일제시대 이후에도 언론, 문화예술계 등에 많이 포진한 특징이 있다.박권상, 조세형, 최일남, 박실, 김원기 등 이름만대면 알만한 언론계 원로중 전북 출신은 너무나 많다.그중에서도 광복이후 전북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게 있으니 바로 바둑의 메카라는 점이다. 부안 출신인 조남철 초대 국수는 1945년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 한국 현대 바둑의 초석을 닦았다. 조 국수 이외에도 전북출신 이창호 국수, 정수현 9단, 강훈 9단, 최규병 9단 등 프로와 아마바둑의 강자가 즐비하다. 부안 줄포에 바둑공원이 있는게 심심해서 그냥 있는게 아니다.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가 “바둑 두실줄 아십니까”하고 묻자, “모릅니다” 했다고 한다. 그러자 상대가 말을 턱 놓으면서 “그럼 장기는 둘줄 아는가”하더란다. 그것도 모른다고 하자, “너 그럼 고누는 할줄 아나”하고 하대를 하더란다. 같은 유흥을 하더라도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품격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바둑이 어느 정도의 격을 갖춘 기예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장 바둑에서 일본식 현대바둑으로 형식이 바뀌기는 했지만, 우리 조상들이 바둑을 얼마나 품격있게 여겼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한국기원이 최근 인공지능의 침공에 맞설 바둑인을 양성하는 소위 ‘바둑인 10만 양병’을 위해 나섰다. 한국기원은 1000개의 교실에서 배출한 4만 여명의 수강생들이 인공지능시대에도 바둑의 가치를 지켜낼 ‘현대판 10만 양병’의 전초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과연 바둑의 메카 전북에서 조남철, 이창호의 뒤를 이을 사람이 나올지 궁금하다.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7-11 23:02

큰 선거든 작은선거든지간에 선거는 돈 잡아 먹은 하마다.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더 그렇다. 후보들이 자기 돈 보다는 남의 돈 갖고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선거자금이 자칫 족쇄가 된다. 세칭 실탄이라는 선거자금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득을 취할려는 베팅족 돈부터 시작해서 선거 막바지에는 검은 돈까지도 물불 안가리고 쓴다. 법정선거비용이 명시돼 있지만 그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도지사 선거를 빼 놓고서는 경쟁이 붙은 지역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돈을 많이 썼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만 안됐을 뿐이지 검은 돈이 많이 오갔다. 아마추어들은 무서워서 못 쓰지만 그래도 프로들은 그 틈바구니속에서 알게 모르게 돈질을 했다.후보는 선거때 말고도 공천 받을 때까지 많이 쓴다. 그간 지역에도 자칭 선거전문가라고 하는 브로커들이 생겨났다. 이들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냐에 따라 공천이 왔다 갔다하는 경우가 있다. 유권자가 적은 군수선거는 지역에서 몇몇이 좌지우지한다. 이들은 돈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라서 어느쪽으로 줄서느냐가 중요하다. 후보의 상품이 좋으면 덜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강투석이다. 유권자들이 민도가 높아져 공약과 정책을 들여다 보고 투표할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자신과의 이해관계나 사소한 인연이 작용해 표를 찍기 때문이다. 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을 모르겠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캠프를 차리기 전부터 조직관리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중전화통처럼 흔적없이 돈이 들어간다. 선거판은 움직이면 돈이 들어가게 돼 있다. 영수증 처리도 할 수 없는 돈의 성격 때문에 1억 정도는 금방 사라진다. 5만원짜리 고액권이 나오면서 선거판도 인플레가 일어났다. 통상 단체장 초선때가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당선 되면 그 이후부터는 순풍에 돛단듯 자기돈 크게 안쓰고 선거운동을 한다. 그래서 현직이 재선에 유리하다. 단체장은 권한이 많다. 산간부는 유권자가 군수로부터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죽어라고 민다. 선거자금은 화약고나 다름 없을 정도로 판도라 상자다. 잘못 열렸다가는 모두가 죽게 돼 있다. 그래서 선거자금을 댄 측근들은 선거 후 수면 아래서 잇속을 챙기려고 바삐 물갈퀴질을 한다. 먹이사슬구조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시장 군수가 독단으로 시 군정을 펼치지 못한다. 공천 준 위원장 눈치와 실탄을 만든 사람 그리고 선거판을 누빈 측근들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선거 때 빌린 본전과 이자까지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선거꾼들이 ‘보이지 않은 손’역할을 한다. 주민을 위한답시고 그럴싸하게 명분을 만들어 사업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주 등 각 지역별로 집사가 누구고 보이지 않은 큰손이 누구인지 소문 나 있다. 선거 때 빚져서 당선된 사람들은 선거자금에 볼모로 잡혀 그래서 발뻗고 편히 못잔다. 지금부터 또 무소불위와 같은 완장을 차려고 법망을 피해 냉 온탕을 넘나든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07-10 23:02

전주시가 어제(7월 6일)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주완판본 서체’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하는 선포식을 열었다. ‘완판본’은 조선시대 전주지역에서 출판된 목판본을 이르는데, 전주를 뜻하는 ‘완산(完山)’의 ‘완’자와 목판(木板)의 ‘판’에 책을 나타내는 ‘본(本)’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전라감영에서 제작한 책의 목판본인 감영본과, 민간에서 제작된 목판본인 방각본이 따로 있으니 완판본에도 완판본 감영본(완영판)과 완판본 방각본이 있을 터다. 전주시가 무료 배포한 완판본 서체는 전라감영의 목판본 서체를 바탕으로 제작한 글꼴이다. 완판본의 글꼴을 현대적 서체로 처음 개발한 것은 지난 2014년, 사회적 기업 마당에 의해서다. 컴퓨터 글꼴로 만들어진 ‘완판본 마당체’는 컴퓨터에 탑재되어 일반인이 사용하는 폰트로서의 기능을 위해 원형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글꼴 디자인의 요소를 보완해낸 아름다움으로 주목을 받았다. 실제 책이나 인쇄물의 글꼴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일반인 뿐 아니라 전문디자이너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유료로 보급하는 한계 때문에 쓰임은 확산되지 못했다. ‘전주완판본 서체’는 전주시가 이 서체를 다시 여섯 종류의 서체로 확장하고 고어체까지 더해 완결성을 이어낸 글꼴이다. 복원의 의미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무료 배포에 나섰으니 그 가치와 의미가 더 커졌다. 오늘까지 남아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된 ‘완판본’은 모두가 전라감영에서 제작한 감영본이다. 전라감영에서 전주 향교로 옮겨진 이후 완판본은 향교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비좁은 공간 안의 습기와 병해충의 공격으로 적지 않은 판본들이 썩거나 훼손되어 원형을 잃었다. 지난 2004년 정리 작업을 위해 전북대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는 판본은 5천여 개에 이른다. 1800년대 각 지역의 감영에서는 책이 제작됐다. 전라감영의 목판본이 남아 있는 것도 그 덕분인데, 전국의 감영에서 제작된 판본 중에서도 전라감영 판본만큼 대량으로 남아 있는 예는 없다. 사료로서의 가치 뿐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전주시에 앞서 글꼴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무료 배포에 나선 자치단체들은 여럿이다. 서울시나 제주를 비롯한 도시들이 이미 자체 서체를 개발해 도시의 이미지를 높이고 브랜드를 강화하는 ‘글꼴 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완판본’은 다른 자치단체들이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서체와는 그 의미와 가치가 다르다. 단순히 미적 기능이나 디자인적 요소만을 강조하여 도시 정체성을 살려낸 글꼴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우리만의 서체인 까닭이다.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07-07 23:02

‘옳거니 그르거니 상관말고 산이든 물이든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가시가 돋혀 있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노래한 이 시는 고려 말기 나옹선사가 지었다고 한다. 작자 미상 설도 있다. 논설위원실에 근무한 선배 누군가가 이 시를 원고지에 써서 한 켠에 붙여 놓았는데, 130자짜리 전용 원고지와 볼펜 글씨가 크게 바랜 것으로 미뤄 볼 때 20년 전으로 추정된다. 나옹선사 작품이 맞다면, 이 시는 700년 정도의 시공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전해 오고 있는 명작이다. 원고지에 볼펜을 꾹꾹 눌러 ‘청산은 나를 보고’를 쓴 선배도 이 시를 끔찍이도 사랑한 것이리라. 사실 ‘청산은 나를 보고’는 매일 세상을 비판해야 하는 논객들의 사무실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1976년 병진년에 강암 송성용 선생이 전북일보 새 출발 3년째에 쓴 논정필직(論正筆直) 같은 작품이 어울린다. 어쩌면 매일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지적하고, 대안을 말해야 하는 논객이기에 청산이 속삭이는 귓속말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얼마 전 완주군 용진에 있는 완주소목학교에 들렀는데, ‘직업에 귀천없다’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걸어두고 있었다. 요즘 온갖 전동공구가 나와 현장에서 사용되지만, 옛날 목수는 나무를 자르고, 켜고, 마름질해서 톱질과 대패질, 끌질 등 모든 과정을 온몸으로 해내야 했다. 고단하고 ‘천’한 직업이었다. 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논객들의 경우, 목수들이 겪는 육체적 고됨은 없지만 불특정한 대상들을 향해 지적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짧은 한세상 살면서 웃고 칭찬하며 살기도 바쁜데, 제 아무리 직업정신이라고 하지만, 숱한 날들 남이 하는 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옳다고 그르다고 다퉈본 들, 그래서 옳다는 세상이 열렸다고 한 들, 오로지 그것만이 참이고 진실인가. 지금은 구름 껴서 우중충하지만, 구름 걷히면 그 어디든 청산이니 세상만사에 성내지 말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아 가게나. 평생 논객으로 살다 지난 주 청산으로 간 김승일 전 전북일보 주필의 명복을 빈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7-0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