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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315건)

또 봄, 봄이 왔다.엄동설한이 다 지나가고 또 봄이 왔다. 산골짜기 얼음 녹아내리는 물소리가, 굳은 땅밑에서도 돋아나는 새싹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개구리가 머리를 치켜들고 뛰쳐 나올 것만 같은 새봄이 왔다.잠깐 지난해 봄을 생각해 본다. 지난해, 2017년 봄은 촛불 시위 최대 결전의 계절이었고 결실을 보는 계절이었다. 2016년 늦가을부터 시작했던 촛불시위는 추운 겨울에도 계속되었고 새봄이 언제 오고 가는지도 몰랐다. 온 국민은 분노로, 절망감으로, 배신감으로, 그러나 오직 한 가닥 새 나라의 소망을 담아 촛불에만 정성을 모았었다. 그 결과로 총성은커녕 안전사고 하나 없이 지성이면 감천, 결국 촛불 혁명을 이루어 냈다. 드디어 탄핵은 이루어졌고 박근혜 정권은 무너졌다. 지금 국정의 썩은 치부들이 모두 파 헤쳐지고 목하 관련자들의 엄중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국정농단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라를 경영해 보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이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었던가 하고 극심한 배신감을 넘어 분노와 비애를 금할 수 없다. 어찌 됐던 우리는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보도를 보니 외국에서도 우리를 프랑스 혁명보다 더 값진 혁명을 이루어 낸 위대한 국민이라 칭찬해 마지않는다 한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통쾌한 일인가. 이러한 일들이 어찌 우리 하나님의 보우하심이 없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우리가 누구이던가. 작은 나라이지만 천여 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아오면서도 반만년 역사를 지키고 발전시켜 오늘을 이루어낸 우리가 아니던가. 일제 치하는 접어두자. 독립 후 70여 년, 그 질곡의 세월을 겪어 오면서도 약소국이던 우리가 세계 7위의 수출 대국을 이루어 낸 것은 세계사에 없는 기적이라 하지 않던가.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제 또 4차 산업혁명이다 AI의 시대다 하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요즘, 우리의 역량을 다시 한번 모아내기만 한다면 또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 만한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랴. N포 세대라 자포자기하며 울부짖는 젊은 세대들을, 금수저, 기득권, 갑을, 철밥통에 낙담하며, 헬조선은 내일에 희망을 걸 수 없는 세상이라며 절망하며 주저앉아 버린 저들을 어찌할 것인가.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정부가 앞장서 나서야 하는 때인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청년세대의 좌절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젊은 청년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들의 넋에 새로운 정기를 불어 넣어 되살아나게 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일어나 뛰게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 약속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던 대통령의 말이 담보되는 세상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만 한다.또 봄, 새봄이 왔다.지금의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일년지계(一年之計)는 재어춘(在於春)하며 일생지계(一生之計)는 재어청(在於靑) 하느니라” 하신 옛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가슴에 되새기며 이 봄, 새로운 포부로, 새로운 패기로 벌떡 일어나 앞을 향하여 돌진해 나아가는 당찬 모습들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立春大乞” 이렇게 말이다.△주진우씨는 2005년 문학세계 수필 부문으로 등단했고 전북문인협회, 두리문학회 회원으로 있다. 전북대 서기관, 전북대병원 상임감사 등으로 30여 년간 근무했다. 전주금암교회 장로다.

오피니언 | 기고 | 2018-02-09 23:02

지난여름은 36도의 불볕더위와 가뭄이 맹위를 떨쳤다. 농민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태웠고 나도 아픔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다가 하필 손톱눈이 아파서 매일 소독하고 약도 먹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를 갔더니 의사가 확대경으로 보더니 3㎜ 정도의 가시를 뽑고 붕대에 반창고까지 붙여 주었다. 그러나 통증은 6일 동안 계속되었고 삼복더위에 샤워도 못 하고 음식도 만들 수 없었다.고문 아닌 고문을 당한 꼴이어서 병원을 옮겨 덜 빠진 가시를 뽑고 또 싸매 놓았다. 확대경으로 보고도 가시를 뽑아내지 못한 의사를 찾아가서 항의하고픈 생각도 있었으나 그만두었다. 잘못 치료한 의사 덕택에 10일간 더위와 씨름하며 인내의 극기 훈련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별로 쓰지 않던 새끼손가락이 이렇게도 소중함을 깨달았다.지난여름의 아픈 새끼손가락은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이란 순간이며 행복에는 지속성이 없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과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우리에게는 몸을 찌르는 가시뿐만 아니라 마음을 찌르는 가시와 삶의 가시가 있다. 예를 들면 흡연의 가시는 성인뿐만 아니라, 중고생을 유혹한다. 20여 년 전, 필리핀 초등학교에서 ‘금연’을 교훈으로 정한 때가 있었다. 이 망국의 풍조가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도시 초등학교 교장실에서 흡연학생과 필요한 학생들의 대화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이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하는 나비효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언젠가 P중학교 옆을 지나는데, 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농구, 축구, 배드민턴 등 그룹별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5~6명의 아이들은 나무 그늘 아래서 예사롭게 흡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충격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수업 시간에 저럴 수가? 우리나라의 미래와 그들의 부모와 학생들이 염려스러웠다. 학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어 슬펐다.순간 1980년도 초반 중학교 3학년 담임 시절 어느 제자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그 남자아이가 골초라는 소문을 귀띔으로 듣고 수시로 호주머니와 가방을 열어 보았는데 담배가 안 나와서 내심 기뻤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 뒷동산 소나무 가지에 숨겨 두고 즐기는 것이었다. 지금쯤 50대 중반은 되었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그 아이에게는 담임교사가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른다.나이는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상급학교에 합격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밀고 끌기를 하다 보니, 미처 따라오지 못한 학생들은 아픔을 감내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그때 나는 좋은 교사가 아니라 가시 같은 교사가 아니었을까?이제 나는 여생 상처를 싸매주는 붕대가 되고 싶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며 산다. 부부와 부모, 자녀, 형제, 친척, 상사와 동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의 수레바퀴가 지구가 궤도를 따라 돌듯이 나도 지구를 감은 둥근 붕대처럼 살면 윤기 나는 삶이 될 것이다.비움의 소통을 연습하련다. 봄에는 회사한 빛깔로 하늘거리던 꽃잎도 여름에는 생명의 창일함이 온 누리를 덮던 초록의 향연도, 꽃보다 더 고운 단풍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떠난다. 인생은 용서하며 용서받으며 살아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휴지통이 하나씩 있다. 이 휴지통에 모든 탐욕을 비우고 베풀며 살고 싶다.△박순희씨는 남원 출생으로 한국방송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문인’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가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8-02-02 23:02

몇 년 전 여름 전주의 불볕더위가 대구 분지를 앞지르며 연일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도시의 난개발 공사로 숲이 훼손되고 아파트 난립으로 바람길이 막혀서 그렇다며 시민들의 불만이 높았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낙후되다 보니 다른 도시로의 인구 유출도 막아내지 못한 채 재정 자립도가 전국 최하위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도시, 그리고 정겹고 아름다운 내 고향 전주를 사랑한다.태어나서 자라고 배운 내 고향 전주는 멋과 맛으로 이름난 예향의 도시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정다감하고 유순하였으며 학자와 양반의 풍모를 지녀 어린 시절만 해도 이름난 교육도시였다. 그리고 그 규모로도 전국 5대 도시에 들었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산업화 바람으로 도시들은 공장이 들어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빌딩들이 치솟기 시작했으며 몰려드는 인구를 소화하기 위해서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리하다 보니 도시들이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전주의 규모는 후순위로 밀려났지만 나는 별로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발전은 좀 더디지만, 비교적 맑은 공기와 적당한 문화 공간이 있고, 체계적이고 부족함 없는 의료시설과 편리한 교통 등은 내 정신적, 육체적 삶을 전혀 불편 없는 전주가 좋았다. 도시가 아담하여 길거리를 나가면 정겨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도시 풍경도 소박해서 아름다웠다.사변 뒤의 어린 시절은 나무들이 주 연료여서 산의 나무들은 물론 심지어 풀조차 남아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우리나라 민둥산의 사진과 부강한 나라의 울창한 숲을 비교하여 보여주며 우리나라 산에 나무를 심기를 역설하시곤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먼 나라 그림으로만 받아들였다.하기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때도 까맣게 물들인 군복 하나 입고 어깨에 힘주던 시절,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던 청춘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산사태를 연례행사처럼 받아들이기만 했지 잘 먹고 잘사는 일이 무엇이며 ‘참살이’가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다. 당시는 한 뼘의 빈 땅이라도 있으면 화초보다 채소 한 포기 심는 일을 더 중히 여겼다. 푸른 산이 국력이라며 학창 시절부터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꾸준했던 나무 심기는 그나마 애국심으로 뭉쳐진 선각자들의 산림정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식목일 즈음이면 소나무와 잣나무 묘목을 들고 나무 심기 행사에 나섰던 내 등 뒤로 따사롭게 내리던 봄 햇살이 학창시절의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그런데 이제는 어디서고 녹음 짙은 울창한 숲이 나를 반긴다. 푸른 숲에 들어서서 적당한 숨을 몰아쉬면 빈 의자는 넉넉한 마음으로 내게 쉴 자리를 내어준다. 햇살을 품은 초록과 연두 잎은 영롱한 빛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내게 다가오며 평화를 준다. 내 몸 안의 모든 찌꺼기가 다 빠져나가는 청량감을 준다.요즘 들어서는 삭막했던 길거리에 푸른 숲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구간마다 융단처럼 돋아난 새파란 잔디에 내 눈의 피로를 씻는다. 많은 이들의 노력이 내 고향 전주를 아름답게 바꿔가고 있다. 전주, 바로 이곳이 ‘참살이 생활’을 추구하는 진정한 우리네의 삶터다. 여름 불볕을 사정없이 되쏘는 포장길에서 강렬한 태양으로 헉헉거리며 뜨거운 숨을 잠시 쉬어갈 도심의 가로수 길은 사막의 오아시스요, 생명수다.△김덕남 씨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에세이스트’로 등단했고 아람수필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물사랑 공모전 은상, 글벗문학회 동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 가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8-01-2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