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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76건)

모르긴 해도 ‘사랑’을 가장 자주 써왔지 싶다. 대중가요 가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내다 보니 그 속뜻까지 다양하게 물었던가 보다. 나훈아는 굵고 낮게 깔리는 특유의 저음으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불렀던가. 그 이름조차 정겨운 옥분이라는 이름의 가수는 음정을 다소 위태롭게 흔들면서 향기로운 꽃보다 진한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노래했다.끊일 듯 말 듯 허스키한 음색과 어우러져 더욱 애절하게 들렸던 장은숙의 은 커터칼에 베인 듯 온몸이 다 쓰리고 아프다. ‘사랑은 머물지 않는 바람 무심의 바위인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어둠의 분신인가’를 묻다가 ‘세상에 다시 태어나 사랑이 찾아오면 가슴을 닫고 돌아서 오던 길로 가리라’고 어금니를 깨물며 다짐하고 있으니.이별은 그토록 아프기만 한 걸까. ‘리별은 美의創造입니다 / 리별의 美는 아츰의 바탕(質)업는 黃金과 밤의 올(絲)업는 검은비단과 죽엄업는 永遠의生命과 시들지안는 하늘의 푸른꼿에도 업습니다 / 님이어 리별이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엇다가 우슴에서 다시사러날 수가 업습니다 오오 리별이어 / 美는 리별의創造입니다’ 만해 한용운이 쓴 다.사랑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 이별이 아픈 만큼 사랑도 깊었을 터,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 우리네 어리석음이라니. 사랑이 이별이고, 이별이 곧 사랑이다. 하여, 세상 어디에도 이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만한 게 없다는 만해의 역설에 공감한다.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 몫까지 사랑하겠어요.’ 어느 카페 벽에 걸린 글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10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났던 그 ‘바보’를 뜬금없이 떠올린다. 무릇 사랑이란 자식에게든 연인에게든 이웃에게든 내가 가진 것을 바보처럼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 사랑하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고,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서 사랑밖에 난 모른다고 했던 심수봉의 노래를 여럿이 함께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새해 아침이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8-01-09 23:02

작년 12월 28일 오전 11시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50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주민센터 뒤 공원 나무 밑에 상자가 있으니 가져가시고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써주세요.” 상자 안에는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담겨 있었다. 세어보니 무려 5천만 원이 넘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든 한해였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선물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A4 용지도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2000년부터 연말이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려 17년째 이어져 온 일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면서 거액을 내놓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끝끝내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몰래’ 가져다 놓은 금액을 합하면 무려 5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 그 후원금 덕택에 4,000여 불우한 가정을 보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전주 시민들이 언젠가부터 그를 ‘얼굴없는 천사’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2009년에 그가 상자 안에 남겼던 메모도 시민들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걸 보면 ‘천사’의 원조는 아무래도 그의 어머니였지 싶다.노송동주민센터를 지나다가 작은 비석을 보았다. ‘당신은/어둠 속의 촛불처럼/세상을 밝고 아름답게/만드는 참사람입니다/사랑합니다’ 상투적인 문구여서 하나도 시 같지 않은데 그 어떤 시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풍편에 듣자니 시에서는 적잖은 예산을 들여서 ‘천사의 길’을 조성해서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철없는 언론사 기자들은 또 그의 얼굴을 기어이 밝혀내고야 말겠다면서 ‘잠복근무’까지 선 적도 있는 모양인데, ‘천사’가 그걸 과연 바랄지는 의문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12-26 23:02

‘망년회’를 거쳐 정착된 ‘송년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연중행사다. 가까운 친구들 몇몇이 모여 정담을 나누거나, 직장이나 단체의 구성원들끼리 만나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 소망을 묻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송년회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나 혼자만의 송년회는 어떨까. 따뜻한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카페에서도 좋고, 눈 덮인 겨울 산과 들판을 바라보면서도 제격이겠다. 한 해 동안 자신이 벌인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사무치도록 후회되는 일은 없었던가, 뿌듯하게 거둔 성과는 또 어떤 것이었는가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새해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을 설계해보는 것도 좋겠다.어느 자치단체의 공공도서관 직원들은 송년회를 좀 특이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가만 보니 웬 현수막 시안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제목은 ‘2017 완주군립도서관 17대 뉴스’였다. 지난 한 해 동안 도서관 사업을 추진하면서 거둔 성과나 주요 실적을 중요도에 따라 글자의 크기와 순서를 조절해서 빼곡하게 배치했는데, 그걸 송년회장 한쪽 벽에 걸 거라는 것이었다.1. 제2회 대한민국 책읽는 지자체 대상 2년 연속 수상 2. ‘올해의 책’ 저자 김제동의 ‘그럴 때 있으시죠’ 휴먼 콘서트 개최 3. 둔산영어도서관 3층 증축으로 서비스 확대(어린이자료실 분리) 4. 차별화된 이서혁신 공공도서관 건립 추진 5. 전주완주 도서관 이용관련 업무협약 체결 6. 기부리딩 기부리더 캠페인 기증 증가(두배 모금, 1000권 기증) 등등.한 해 동안 추진해 온 여러 가지 사업에서 다양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자체 뉴스를 열일곱 가지나 선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현수막을 걸어놓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해를 다짐할 줄 아는 센스 만점 구성원들이 있는 한 이 조직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거라는 믿음이 갔다. 그러다 문득, 속으로 빙긋 웃었다. 그럼 내년에는 열여덟 가지 뉴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19 23:02

부하 직원인 박 대리가 문자를 보냈다. ‘저한태 맛껴주시면 열씨미해보겟읍니다’라고 적어서. 이걸 읽은 ‘과장님’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욕을 높이 사서 기획서 작성을 선뜻 맡겨주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저한테 맡겨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더라면 물론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라는 이름의 공모전을 연다. 시, 소설, 수필 등의 창작 활동에 뜻을 둔 많은 이들이 몇 날씩 밤을 밝혀 쓴 작품을 신문사에 보낸다. 그리고 당선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나날을 보낸다. 장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응모작 수는 수백 편(혹은 천 편 이상)에 이르는 게 보통이다. 응모된 작품의 심사는 크게 예심과 본심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한다.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1차적으로 대략 5∼10편을 가려내는 게 예심이다. 본심에서는 그걸 꼼꼼하게 읽고, 각 작품들의 장단점을 비교해서 당선작 한 편을 최종적으로 선정한다. 그런데 응모된 대부분의 글은 심사위원들이 끝까지 읽어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설이나 수필의 경우 처음 한두 문장에만 눈길을 주고는 준비된 박스 속에 가차 없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길어야 한 단락 정도 읽어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글의 첫머리에 구사한 문장에서 앞서 박 대리가 보낸 문자처럼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가 몇 개 보이는 순간 그 글은 끝장이라고 보면 된다. 심사위원들은 기본적인 단어나 문장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응모자가 쓴 글이라면 그 내용 또한 안 봐도 비디오일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단어를 모아 문장을 쓰고, 그것들을 모아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말 맞춤법에 맞는 단어야말로 좋은 문장을 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12 23:02

치킨이 국민 야식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닭도리탕 또한 백숙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적 닭요리 중 하나다. 토막 낸 닭고기에 고추장, 파, 마늘, 간장, 설탕 따위의 양념과 물을 넣고 끓인 음식이 닭도리탕인데, 그 이름이 속수무책으로 탄압받고 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서도 ‘닭도리탕’을 두드리면 대번에 붉은 밑줄이 그어진다. 표준말이 아니니 당장 ‘닭볶음탕’으로 바꿔 쓰라는 것이다.고스톱 판 용어로 ‘고도리’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다섯 마리 새’다. ‘닭도리탕’이 괄시당하는 까닭은 혹시 그 말 때문인 건 아닐까. ‘닭도리탕’에 든 ‘도리’가 ‘새’의 뜻을 가진 일본말인 것 같아 껄쩍지근헝게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억지소리일까? 천만에다. 그것 말고는 ‘닭도리탕’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까닭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도리’를 순우리말 ‘도리다’에서 따온 것으로 풀이하면 안 될까. ‘닭의 살을 도려서 끓인 탕’으로 보자는 것이다. 설령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말이라고 치자.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민족적 자존심을 들먹일 것인가. ‘닭새탕’이어서 이상하다는 건가. ‘처갓집’은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라면 ‘새’ 대신 ‘볶음’을 굳이 집어넣은 것도 오십 보 백 보다. ‘볶음’과 ‘탕’은 조리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은가. 둘은 하나의 음식 이름으로 나란히 어울려 쓸 수 없다. ‘김치찌개튀김’, ‘고등어조림무침’ 같은 이름을 들어봤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일제로부터 오랜 식민 지배를 받은 탓에 우리 생활 속에 일본말 흔적이 넘쳐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걸 우리말로 순화시키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 해도 모두에게 익숙한 ‘닥도리탕’을 패대기치고, 발음도 복잡한 ‘닥뽀끔탕’을 굳이 써야겠는가. ‘가락국수’라는 좋은 우리말 두고 일본말인 ‘우동’은 와리바시로 잘도 집어 드시지들 않는가. 정작 없애야 할 친일의 잔재가 수도 없이 많은데 애꿎은 ‘닭도리탕’만 갖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05 23:02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중에 포스트잇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대여섯 장씩 거기에 뭔가를 적어서 책갈피나 책상 바닥, 컴퓨터 모니터 등에 붙이곤 한다.사실 ‘포스트잇(Post-it)’은 3M이라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사무용품 중 하나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변한 경우다. 포스트잇은 붙였다 떼었다를 여러 차례 반복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오늘날 메모지의 대명사로 위상을 굳혔다.포스트잇에는 전화번호를 적기도 하고, 그날 반드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업무를 기록하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걸 잊지 않으려고 몇 개 단어로 요약해서 적어두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은밀히 전달할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박 팀장이 있어서 항상 든든하네∼.’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려는데 부장님 글씨가 틀림없는 이런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이 모니터 한가운데 붙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오전의 그 일, 고마웠습니다. 아주아주 많이요…^^’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사무실 책상에 캔 커피 하나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 이런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건 또 어떤가.살다 보면 가까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종종 생길 것이다. 번거로운 일을 도와준 후배나 친구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해준 상사 덕택에 회사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튼실하게 닦기도 할 것이다. 그게 고마워서 캔 음료 같은 걸로 마음을 전할 때가 있다.캔 커피 하나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이 1,000원이라고 가정하자. 그걸 그대로 전하면 액면가대로 1,000원어치 마음밖에 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포스트잇에 짧은 몇 마디 말을 적어서 붙인 캔 커피는 그 몇 배 혹은 몇십 배의 가치를 발휘하지 않을까. 일상에서 흔히 쓰는 포스트잇은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엽서이기도 한 것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8 23:02

‘바람의 아들’을 모르는 야구팬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프로야구 해태와 기아타이거즈에서 활약했던 ‘야구천재’ 이종범의 별명이다. 선수시절 그는 뛰어난 타격 솜씨를 보여주었다. 유격수로서 수비 능력도 발군이었다. 게다가 한 시즌 도루 최다 신기록까지 갖고 있다. 운동선수에게 붙여진 별명 중 이처럼 시적인 게 또 있을까 싶다.기아타이거즈의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으로 막을 내린 2017시즌 KBO리그에서 기자들과 팬들의 애정어린 관심을 받았던 선수가 있다. 고졸 신인이 그 어렵다는 전 경기 출장에 최다안타 기록까지 갈아치웠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버지의 별명에 빗대어 사람들은 그 어린 야구선수를 ‘바람의 손자’라고 불렀다. 넥센히어로즈 소속 이정후 선수 얘기다. ‘이정후(19·넥센)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넥센을 울렸다.’는 인터넷 신문기사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우리 문장에 쓰이는 괄호는 소괄호( ), 중괄호{}, 대괄호[ ]가 있다. 이중 중괄호는 문장 안에 직접 쓰지 않는다. 가장 흔한 건 기사처럼 소괄호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그 쓰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한글맞춤법에 따르면 소괄호는 언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쓴다고 되어 있다. ‘기호식품(嗜好食品)인 커피(coffee)’, ‘5·18민주화운동(1980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와 같은 어구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사에서는 물론 소괄호를 올바로 썼다. 하지만 이어 쓴 조사 ‘∼이’는 그렇지 않다.앞서의 기사를 보면 ‘이정후’라는 이름 다음에 ‘19·넥센’을 작은 괄호 안에 적어 넣었다. 참고하라는 뜻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괄호 안에 든 말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 소리에 맞춰 주격조사 ‘은/는’이나 ‘이/가’를 써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이정후(19·넥센)이’가 아니고 ‘이정후(19·넥센)가’라고 써야 옳다는 뜻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1 23:02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그 비슷한 속담이 몇 개 있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가 그것들이다. 모두 공짜를 경계하는 말들이다.대머리가 되거나, 쥐약이 묻어 있으니 먹으면 죽을지 모른다는데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걸까. 전문가들은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그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내기 어려운데 지난겨울의 ‘그녀’처럼 돈 있고 빽이 든든한 부모를 둔 이는 명문대학도 쉽게 가고, 수십억짜리 말도 탄다는 것이다. ‘재능기부’라는 말도 일종의 공짜를 바라는 심리에서 나온 거 아닐까 싶다. 개인이 오랜 시간 혼신의 노력을 투자해서 성취한 재능을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쓰겠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재능기부는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열정 페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대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재능 중 하나는 열정일 것이다. 그걸 헐값에 쓰겠다고 사탕 바른 말이 ‘열정 페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편의점 점주들이 알바비를 놓고 ‘꺾기’를 일삼는 것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젊은이들의 열정을 한순간에 식혀서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열정 페이’라는 이름의 ‘공짜’ 심리다. 날로 먹겠다고 덤비는 어른들의 몹쓸 심보다. 이건 어른들뿐 아니라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 모두 반드시 경계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를 경계하는 말이 참 많다. 그걸 하나로 묶으면 이거 아닐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1-14 23:02

얼굴이든 몸매든 외모에 신경을 참 많이들 쓴다. 젊은층에서 더욱 그렇다. ‘쌍수’에 앞트임과 옆트임으로 눈알을 왕방울만하게 만드는 건 기본이다. 코를 높이고, 입술도 까뒤집는다. 섹시해 보인대나 어쩐대나. 멀쩡한 다리뼈에 보형물을 넣어서 ‘롱다리’까지 만든다는 얘기도 들었다. 외모지상주의가 고착화된 사회 분위기 탓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다.물론 여기저기 도드라지는 까만 점 몇 개를 레이저로 지져내거나 여드름을 관리하는 것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그 둘만 해결해도 얼굴이 한결 환해진다. 그런데 몰라서 그렇지 메이크업의 기본은 미소이고,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밝게 웃고, 꾸준히 절제하면서 살면 나만의 개성 있는 모습을 얼마든지 가꾸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를 만났을 때에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요즘 누리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그에게 사과를 해야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을 흔히들 쓴다. 어떤가. 혹시 얼굴의 까만 점이나 여드름 자국 같은 게 보이지 않는가. ‘만났을 때에도’, ‘즐거움 중에’, ‘사과를 해야지만이’를 ‘만났을 때도’, ‘즐거움 중’, ‘사과를 해야’라고 쓰자는 말이다. ‘I am Ready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느 포스터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뭣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 슬그머니 시비 내지는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군인 제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모델의 비현실적인 모습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문법을 무시하면서까지 굳이 덧댄 영어 표기( ‘ready’라고 써야 할 걸)와, 여드름 같은 군더더기 단어는 별로였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나만이’에서 ‘나만’에 붙은 보조사 ‘∼이’는 꼭 필요한 걸까. 그냥 ‘나만’을 써도 뜻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짧은 영어 문장으로 다시 눈이 간다. 남의 나라 말처럼 간결하게 쓰면 좀 좋을까. ‘나만의 선택’ 같은 식으로…. 새겨둘 일이다. 얼굴의 까만 점이나 여드름 자국 같은 군더더기를 빼내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1-07 23:02

긍게 어쩌라고…? 신호대기를 하다가 앞차 유리창 한쪽에 적힌 ‘까칠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꼬마 공주들이 타고 있어요!!’라고 적힌 것도 있었다. 이건 숫제 한술 더 뜨지 않았는가. 저한테나 귀한 딸이지, 남들한테도 공주일까. 조금 빈정거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그런 문구는 ‘초보운전’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그건 초보 운전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게 진화를 거듭하다 보니 나온 게 ‘어제 면허 땄어요’,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당∼’, ‘sorry 장롱면허’ 따위일 것이다. 거기까지는 애교로 보아줄 수 있었다. 그런데 ‘까칠한 아기’니 ‘공주’ 따위를 적어 붙이면 그걸 바라보는 다른 운전자는 어쩌라는 건가. ‘꽃미녀 타고 있음 예쁘게 봐주세용∼’은 한술 더 떴다. 하긴 ‘절세미녀가 타고 있어요!’도 보았으니 그만하면 말 다했다. 지가 저더러 꽃미녀라네? 절세미녀라고? 예쁘면 뭐든 다 용서된다는 해괴망측한 말까지 떠오른 적도 있다.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를 F1 경주대회처럼 지그재그로 추월해서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어르신께서 운전하고 계심’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배배 꼬인 눈동자에서 힘을 좀 빼보기로 했다. 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라지 않았던가. 까칠한 아기든 꼬마 공주든 더없이 귀엽고 소중한 아이들을 자주 태우고 운행하는 차겠지. 이 순간에도 그런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젖병을 물고 있을지도 몰라. 젊은 엄마나 아빠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뭐. 돈 드는 일도 아니잖아? 그런 상상을 하면서 빙긋 웃다 보니 신호대기하는 잠깐의 무료함을 덜 수 있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내게 건넨 말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앞서 그 속뜻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다. ‘역지사지’야말로 세상살이의 금과옥조다. ‘내가 타고 있지롱∼ 운전은 안 하니까 걱정하지마’ 옆에 그려진 젖병과 기저귀 찬 아기, 귀엽지 않은가.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0-3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