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6-24 18:50 (월)
문화마주보기 (645건)

얼마 전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네 사람이 도시의 한 여숙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선택을 했다. 고독하지 않으려고 동반자를 불러들였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고독하다는 숙명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의 선택은 엄연한 현실이 되어 각자의 몫으로 돌아갔다.“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독백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 한 지식인의 우유부단한 내적 고백을 드러낸 것이다. 이 경구는 햄릿의 친구인 철학자 이름을 따 호레이쇼 철학이라고 명명된 바 있지만, 지금은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즐겨 사용하는 흔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좀 더 깊은 곳에 있다. 햄릿이 제기한 ‘선택’의 문제는 단순히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나는 그런 선택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것은 목숨을 건 ‘죽느냐’ ‘사느냐’ 사이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어느 중년 가장의 이야기나, 수험생의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햄릿식 독백은 그들에게는 사치스런 넋두리가 되었을 줄도 모른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결단이 그들을 얼마나 고독하고 절망스럽게 했을까? 그러나 운명의 갈림길에서 인생을 회의하는 우유부단한 햄릿식 독백이 때로는 죽음에서 삶으로 선택을 달리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팡세’의 저자였던 파스칼은 인간의 삶이란 궁극적으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도박 앞에 직면한 가련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 결과 그는 기독교적 신앙을 진실의 길로 나아가는 ‘선택’의 문제로 보았고,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신앙 고백록인 ‘팡세’를 썼다.키에르케고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택’ 그 자체가 인간 삶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한다는 관점에서 이를 삶의 본질적인 형식으로 보았다. “결혼할 것인가? 만일 한다면 후회할 것이요,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역시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날의 삶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무수한 선택을 통하여 삶의 내용을 메워 나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그 갈림길에서 망설인 기억이 있다. 갈림길을 만났다고 해서 되돌아 올 수는 없다. 미지의 길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도 한 길을 택하여야 한다. 그것이 운명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인생행로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갈등을 겪고 있다. 로버트 프르스트의 시 ‘택하지 않은 길’이 있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을 걷다가 두 갈래 길을 만난다. 망설이다가 그는 한 길을 택한다. 그가 택한 길은 사람들이 적게 다닌 풀이 무성하게 자란 험난한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훤히 트인 편한 길보다 내 힘으로 개척하고 싶은 욕망으로 험난한 길을 택한다. 길을 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크지만, 내가 택한 길로 인하여 인생은 달라질 것이라는 신념으로 그 길을 간다.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신에게 묻기도 하지만, 신도 모르는 고독한 운명과 동거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9-12 23:02

통영 문인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미당시문학관에 가는 길에 고창 선운사에 들렀다. 여름길에서 만난 녹음 속에서 동백도 제 자리를 찾아 숲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동백숲에서는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물소리 들으며 도솔암까지 올라갔다가 물소리 따라 내려왔다. 여염집 마루처럼 친근하고 인정스러운 만세전 마룻바닥에 시원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땀을 거두었다. 우리는 다시 동승하여 한 마장 정도의 미당시문학관으로 갔다. 미당시문학관은 적요했다. 나이가 지긋한 안내인은 나를 알아보았다. 그분을 따라 통영 문인들이 전시실을 돌며 해설을 듣는 동안 나는 혼자 문학관 맨 윗 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찾지 않는 곳이지만 미당시문학관에 오면 나는 여기로 올라왔다. 우선 소요산 너머로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을 쐴 수 있고, 선운리 전경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어 좋았다. 바로 눈 아래로는 미당의 생가가 있고, 거기서 잠깐 눈을 들어 보면 저만치 미당의 무덤이 있다. 그 왼쪽 멀지 않은 곳에 미당이 닮았다는 숱 많은 머리털과 큰 눈을 가진 외할아버지의 집터가 있다. 미당의 태어남과 죽음이 부르면 달려올 만한 곳에 있었다. 뒤돌아보니 지금도 소쩍새가 우는 소요산과 소요산 넘어가는 질마재가 그림처럼 다가서고 있었다. 미당 시의 신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미당의 태어남과 죽음이, 시와 삶이 손바닥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또 하나의 설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속에 미당시문학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말 많은 세월의 이야기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발아래, 문인들이 관람하고 있는 전시실에는 미당 생애의 빛과 그림자였던 국화옆에서의 시와 친일시가 낮과 밤을 같이 하고 있다. 그 분은 가셨지만, 짙은 그림자는 남아 빛을 덮어 누르고 있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있는데 오히려 빛은 희미해지고 그림자는 더욱 짙어져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왜 빛보다 그림자 아래로 모여 드는가? 아픔 같은 것이, 한숨 같은 것이 소요산 넘어가는 구름처럼 한 번 가고 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마음만 먹으면 바람은 언제든지 구름을 몰고 소요산을 찾아올 것 같다통영에 가면 여러 곳에서 김춘수, 유치환 등의 시비를 볼 수 있다. 그 시비가 통영을 아름다운 시인의 고장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통영의 자연 뿐만 아니라 시의 정서로 마음을 치유하고 온다. 그런데 우리 고장 고창 읍내에 가면 미당의 시비를 볼 수 있는가? 미당시문학관을 찾은 통영 분들에게 어두워지는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옥상에 서 있다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그분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미당시문학관까지 내 안내는 끝났다. 우리는 여기서 헤어졌다. 그분들은 남도로 내려간다 한다. 그분들이 떠난 뒤 미당이 걸었을 옛 초등학교 운동장을 나도 걸었다.미당시문학관에도 동백나무가 있었다. 거기 동백나무에서도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제 새끼에게 제 노래를 불러주는 동박새가 미당시문학관 뜰에도 살고 있었다.△ 정군수 관장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전북시인협회장, 전북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하고 신아문예대학 문창과 교수, 혼불선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7-18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