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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76건)

부하 직원인 박 대리가 문자를 보냈다. ‘저한태 맛껴주시면 열씨미해보겟읍니다’라고 적어서. 이걸 읽은 ‘과장님’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욕을 높이 사서 기획서 작성을 선뜻 맡겨주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저한테 맡겨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더라면 물론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라는 이름의 공모전을 연다. 시, 소설, 수필 등의 창작 활동에 뜻을 둔 많은 이들이 몇 날씩 밤을 밝혀 쓴 작품을 신문사에 보낸다. 그리고 당선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나날을 보낸다. 장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응모작 수는 수백 편(혹은 천 편 이상)에 이르는 게 보통이다. 응모된 작품의 심사는 크게 예심과 본심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한다.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1차적으로 대략 5∼10편을 가려내는 게 예심이다. 본심에서는 그걸 꼼꼼하게 읽고, 각 작품들의 장단점을 비교해서 당선작 한 편을 최종적으로 선정한다. 그런데 응모된 대부분의 글은 심사위원들이 끝까지 읽어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설이나 수필의 경우 처음 한두 문장에만 눈길을 주고는 준비된 박스 속에 가차 없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길어야 한 단락 정도 읽어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글의 첫머리에 구사한 문장에서 앞서 박 대리가 보낸 문자처럼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가 몇 개 보이는 순간 그 글은 끝장이라고 보면 된다. 심사위원들은 기본적인 단어나 문장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응모자가 쓴 글이라면 그 내용 또한 안 봐도 비디오일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단어를 모아 문장을 쓰고, 그것들을 모아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말 맞춤법에 맞는 단어야말로 좋은 문장을 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12 23:02

치킨이 국민 야식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닭도리탕 또한 백숙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적 닭요리 중 하나다. 토막 낸 닭고기에 고추장, 파, 마늘, 간장, 설탕 따위의 양념과 물을 넣고 끓인 음식이 닭도리탕인데, 그 이름이 속수무책으로 탄압받고 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서도 ‘닭도리탕’을 두드리면 대번에 붉은 밑줄이 그어진다. 표준말이 아니니 당장 ‘닭볶음탕’으로 바꿔 쓰라는 것이다.고스톱 판 용어로 ‘고도리’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다섯 마리 새’다. ‘닭도리탕’이 괄시당하는 까닭은 혹시 그 말 때문인 건 아닐까. ‘닭도리탕’에 든 ‘도리’가 ‘새’의 뜻을 가진 일본말인 것 같아 껄쩍지근헝게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억지소리일까? 천만에다. 그것 말고는 ‘닭도리탕’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까닭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도리’를 순우리말 ‘도리다’에서 따온 것으로 풀이하면 안 될까. ‘닭의 살을 도려서 끓인 탕’으로 보자는 것이다. 설령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말이라고 치자.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민족적 자존심을 들먹일 것인가. ‘닭새탕’이어서 이상하다는 건가. ‘처갓집’은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라면 ‘새’ 대신 ‘볶음’을 굳이 집어넣은 것도 오십 보 백 보다. ‘볶음’과 ‘탕’은 조리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은가. 둘은 하나의 음식 이름으로 나란히 어울려 쓸 수 없다. ‘김치찌개튀김’, ‘고등어조림무침’ 같은 이름을 들어봤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일제로부터 오랜 식민 지배를 받은 탓에 우리 생활 속에 일본말 흔적이 넘쳐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걸 우리말로 순화시키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 해도 모두에게 익숙한 ‘닥도리탕’을 패대기치고, 발음도 복잡한 ‘닥뽀끔탕’을 굳이 써야겠는가. ‘가락국수’라는 좋은 우리말 두고 일본말인 ‘우동’은 와리바시로 잘도 집어 드시지들 않는가. 정작 없애야 할 친일의 잔재가 수도 없이 많은데 애꿎은 ‘닭도리탕’만 갖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05 23:02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중에 포스트잇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대여섯 장씩 거기에 뭔가를 적어서 책갈피나 책상 바닥, 컴퓨터 모니터 등에 붙이곤 한다.사실 ‘포스트잇(Post-it)’은 3M이라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사무용품 중 하나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변한 경우다. 포스트잇은 붙였다 떼었다를 여러 차례 반복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오늘날 메모지의 대명사로 위상을 굳혔다.포스트잇에는 전화번호를 적기도 하고, 그날 반드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업무를 기록하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걸 잊지 않으려고 몇 개 단어로 요약해서 적어두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은밀히 전달할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박 팀장이 있어서 항상 든든하네∼.’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려는데 부장님 글씨가 틀림없는 이런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이 모니터 한가운데 붙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오전의 그 일, 고마웠습니다. 아주아주 많이요…^^’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사무실 책상에 캔 커피 하나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 이런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건 또 어떤가.살다 보면 가까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종종 생길 것이다. 번거로운 일을 도와준 후배나 친구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해준 상사 덕택에 회사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튼실하게 닦기도 할 것이다. 그게 고마워서 캔 음료 같은 걸로 마음을 전할 때가 있다.캔 커피 하나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이 1,000원이라고 가정하자. 그걸 그대로 전하면 액면가대로 1,000원어치 마음밖에 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포스트잇에 짧은 몇 마디 말을 적어서 붙인 캔 커피는 그 몇 배 혹은 몇십 배의 가치를 발휘하지 않을까. 일상에서 흔히 쓰는 포스트잇은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엽서이기도 한 것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8 23:02

‘바람의 아들’을 모르는 야구팬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프로야구 해태와 기아타이거즈에서 활약했던 ‘야구천재’ 이종범의 별명이다. 선수시절 그는 뛰어난 타격 솜씨를 보여주었다. 유격수로서 수비 능력도 발군이었다. 게다가 한 시즌 도루 최다 신기록까지 갖고 있다. 운동선수에게 붙여진 별명 중 이처럼 시적인 게 또 있을까 싶다.기아타이거즈의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으로 막을 내린 2017시즌 KBO리그에서 기자들과 팬들의 애정어린 관심을 받았던 선수가 있다. 고졸 신인이 그 어렵다는 전 경기 출장에 최다안타 기록까지 갈아치웠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버지의 별명에 빗대어 사람들은 그 어린 야구선수를 ‘바람의 손자’라고 불렀다. 넥센히어로즈 소속 이정후 선수 얘기다. ‘이정후(19·넥센)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넥센을 울렸다.’는 인터넷 신문기사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우리 문장에 쓰이는 괄호는 소괄호( ), 중괄호{}, 대괄호[ ]가 있다. 이중 중괄호는 문장 안에 직접 쓰지 않는다. 가장 흔한 건 기사처럼 소괄호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그 쓰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한글맞춤법에 따르면 소괄호는 언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쓴다고 되어 있다. ‘기호식품(嗜好食品)인 커피(coffee)’, ‘5·18민주화운동(1980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와 같은 어구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사에서는 물론 소괄호를 올바로 썼다. 하지만 이어 쓴 조사 ‘∼이’는 그렇지 않다.앞서의 기사를 보면 ‘이정후’라는 이름 다음에 ‘19·넥센’을 작은 괄호 안에 적어 넣었다. 참고하라는 뜻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괄호 안에 든 말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 소리에 맞춰 주격조사 ‘은/는’이나 ‘이/가’를 써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이정후(19·넥센)이’가 아니고 ‘이정후(19·넥센)가’라고 써야 옳다는 뜻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1 23:02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그 비슷한 속담이 몇 개 있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가 그것들이다. 모두 공짜를 경계하는 말들이다.대머리가 되거나, 쥐약이 묻어 있으니 먹으면 죽을지 모른다는데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걸까. 전문가들은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그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내기 어려운데 지난겨울의 ‘그녀’처럼 돈 있고 빽이 든든한 부모를 둔 이는 명문대학도 쉽게 가고, 수십억짜리 말도 탄다는 것이다. ‘재능기부’라는 말도 일종의 공짜를 바라는 심리에서 나온 거 아닐까 싶다. 개인이 오랜 시간 혼신의 노력을 투자해서 성취한 재능을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쓰겠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재능기부는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열정 페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대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재능 중 하나는 열정일 것이다. 그걸 헐값에 쓰겠다고 사탕 바른 말이 ‘열정 페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편의점 점주들이 알바비를 놓고 ‘꺾기’를 일삼는 것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젊은이들의 열정을 한순간에 식혀서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열정 페이’라는 이름의 ‘공짜’ 심리다. 날로 먹겠다고 덤비는 어른들의 몹쓸 심보다. 이건 어른들뿐 아니라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 모두 반드시 경계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를 경계하는 말이 참 많다. 그걸 하나로 묶으면 이거 아닐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1-14 23:02

얼굴이든 몸매든 외모에 신경을 참 많이들 쓴다. 젊은층에서 더욱 그렇다. ‘쌍수’에 앞트임과 옆트임으로 눈알을 왕방울만하게 만드는 건 기본이다. 코를 높이고, 입술도 까뒤집는다. 섹시해 보인대나 어쩐대나. 멀쩡한 다리뼈에 보형물을 넣어서 ‘롱다리’까지 만든다는 얘기도 들었다. 외모지상주의가 고착화된 사회 분위기 탓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다.물론 여기저기 도드라지는 까만 점 몇 개를 레이저로 지져내거나 여드름을 관리하는 것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그 둘만 해결해도 얼굴이 한결 환해진다. 그런데 몰라서 그렇지 메이크업의 기본은 미소이고,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밝게 웃고, 꾸준히 절제하면서 살면 나만의 개성 있는 모습을 얼마든지 가꾸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를 만났을 때에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요즘 누리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그에게 사과를 해야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을 흔히들 쓴다. 어떤가. 혹시 얼굴의 까만 점이나 여드름 자국 같은 게 보이지 않는가. ‘만났을 때에도’, ‘즐거움 중에’, ‘사과를 해야지만이’를 ‘만났을 때도’, ‘즐거움 중’, ‘사과를 해야’라고 쓰자는 말이다. ‘I am Ready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느 포스터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뭣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 슬그머니 시비 내지는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군인 제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모델의 비현실적인 모습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문법을 무시하면서까지 굳이 덧댄 영어 표기( ‘ready’라고 써야 할 걸)와, 여드름 같은 군더더기 단어는 별로였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나만이’에서 ‘나만’에 붙은 보조사 ‘∼이’는 꼭 필요한 걸까. 그냥 ‘나만’을 써도 뜻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짧은 영어 문장으로 다시 눈이 간다. 남의 나라 말처럼 간결하게 쓰면 좀 좋을까. ‘나만의 선택’ 같은 식으로…. 새겨둘 일이다. 얼굴의 까만 점이나 여드름 자국 같은 군더더기를 빼내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1-07 23:02

긍게 어쩌라고…? 신호대기를 하다가 앞차 유리창 한쪽에 적힌 ‘까칠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꼬마 공주들이 타고 있어요!!’라고 적힌 것도 있었다. 이건 숫제 한술 더 뜨지 않았는가. 저한테나 귀한 딸이지, 남들한테도 공주일까. 조금 빈정거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그런 문구는 ‘초보운전’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그건 초보 운전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게 진화를 거듭하다 보니 나온 게 ‘어제 면허 땄어요’,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당∼’, ‘sorry 장롱면허’ 따위일 것이다. 거기까지는 애교로 보아줄 수 있었다. 그런데 ‘까칠한 아기’니 ‘공주’ 따위를 적어 붙이면 그걸 바라보는 다른 운전자는 어쩌라는 건가. ‘꽃미녀 타고 있음 예쁘게 봐주세용∼’은 한술 더 떴다. 하긴 ‘절세미녀가 타고 있어요!’도 보았으니 그만하면 말 다했다. 지가 저더러 꽃미녀라네? 절세미녀라고? 예쁘면 뭐든 다 용서된다는 해괴망측한 말까지 떠오른 적도 있다.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를 F1 경주대회처럼 지그재그로 추월해서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어르신께서 운전하고 계심’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배배 꼬인 눈동자에서 힘을 좀 빼보기로 했다. 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라지 않았던가. 까칠한 아기든 꼬마 공주든 더없이 귀엽고 소중한 아이들을 자주 태우고 운행하는 차겠지. 이 순간에도 그런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젖병을 물고 있을지도 몰라. 젊은 엄마나 아빠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뭐. 돈 드는 일도 아니잖아? 그런 상상을 하면서 빙긋 웃다 보니 신호대기하는 잠깐의 무료함을 덜 수 있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내게 건넨 말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앞서 그 속뜻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다. ‘역지사지’야말로 세상살이의 금과옥조다. ‘내가 타고 있지롱∼ 운전은 안 하니까 걱정하지마’ 옆에 그려진 젖병과 기저귀 찬 아기, 귀엽지 않은가.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0-31 23:02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께서 남긴 말씀이다. 천지간 삼라만상이 저마다 존재 의미를 갖고 있으니 산을 물이라 우기지 말고, 물 또한 산이라고 억지를 쓰지 말라는 뜻이 그 안에 담겨 있다. 한마디로 욕심을 버리고 순리에 따라 살아가라는 것인데, 그분의 깊은 뜻이야 헤아려 처신하되 문장만은 이런 식으로 쓰지 말 일이다.그림 속의 ‘이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이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는 대부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문장이다. 우리나라 TV 방송사에서는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직전에 이런 걸 먼저 보여준다.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봐도 무방한 연령대를 미리 지정해서 안내해 주자는 뜻일 게다. 그런데 공영방송에서 문장을 이런 식으로 써도 되는지는 의문이다.문장에는 주어와 서술어가 있다. 이 둘은 문장의 뼈대를 이룬다. 그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무엇이 어찌한다(나는 사랑한다), 무엇이 어떠하다(누나는 예쁘다), 무엇은 무엇이다(이것은 책이다)가 그것이다. 이걸 확장시켜서 ‘나는 그녀를 몹시 사랑하고 있다’, ‘누나는 코하고 입술이 특히 예쁘다’, ‘이것은 할아버지께서 내게 물려주신 책이다’와 같이 쓴다.그림 속 문장의 경우 세 번째 틀에 해당된다. 이 문장의 주어는 ‘이 프로그램은’이다. 물론 서술어는 ‘프로그램입니다’이다. 그런데 주어와 서술어에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썼다. 매우 좋지 않은 글쓰기 습관이다. ‘이 노래는 가왕 조용필이 작사 작곡해서 부른 노래다’, ‘그의 모습은 내 모습 같다’와 같은 식으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앞서 보았던 ‘이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이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는 ‘이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이 시청할 수 있습니다’라고 ‘프로그램’ 하나를 빼고 써야 옳다. 물론 거기 크게 적힌 순우리말 ‘누구나’를 살려서 ‘이 프로그램은 누구나 시청할 수 있습니다’라고 쓰면 더 좋겠지만….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0-24 23:02

방송국 아나운서들 있잖아요? 아, 대왕께서는 ‘방송국’이나 ‘아나운서’를 잘 모르시겠구나. 아무튼요, 그 사람들 말이죠, 걸핏하면 뉴스 시간에 ‘달(達)한다’를 입에 달고 살거든요? ‘참석자가 100여 명에 달한다’, 뭐 이런 식으로요. 그 ‘달한다’를 순우리말 ‘이른다’라고 바꿔 써주면 좀 좋을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 말이 맞죠?지난겨울에도 그랬어요. 못된 작자들 때문에 엄청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추위에 떨었거든요. 그 사람들도요, 기자들이 녹음기를 들이댈 때마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臨)하겠습니다’라고 그러더라고요? 사실은 ‘그녀’도 그랬거든요. 그런 말버릇도 고쳐야 해요. 앞으로는 ‘검찰 조사를 성실히 받겠습니다’라고 쓰지 않으면 혼쭐을 내겠다고 해주세요. ‘앞으로는’을 쓰고 보니 생각나는데요, 다들 ‘앞으로’라고 쓰면 될 걸 굳이 ‘향후(向後)’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회초리로 종아리에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때려주세요. ‘조식(朝食)’, ‘중식(中食), ‘석식(夕食)’을 알리는 행사 진행자들이나 음식점 주인들한테도 기껏 한 글자 차이니까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으로 고치라고 타일러주세요.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가까운’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인접(隣接)한’이라고 쓰는 걸까요. 어느 식당에 갔더니요, ‘조리시간은 약 30분 정도 소요(所要)됩니다’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소요’되다니요. 하긴 다들 그렇게 써요. ‘서울까지 소요시간’처럼요. 이러다가 순우리말 ‘걸립니다’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종료(終了)되었다’라는 말도 그래요. ‘끝났다’가 있거든요.나랏말씀이 중국 것(한자)하고 달라서 한글을 맹갈으셨다고 하셨잖아요. ‘어린 백셩’들을 위해서요. 제가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만 말씀드렸는데요, 그 ‘어린 백셩’들이 한자말을 하도 많이 써서 순우리말은 씨가 말라가고 있다는 거 혹시 아세요? 아, 그림의 ‘셈하는 곳’은 뭐냐고요? 조선족이 모여 사는 중국 어느 도시의 음식점에서 발견한 거랍니다. 얼마나 정겹던지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0-10 23:02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리포트는 원고지에 펜으로 써서 작성했다. 쓰다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부지기수였다. 작성한 리포트는 까만색 철끈으로 묶어서 담당 교수의 연구실로 갖고 갔다. 교수가 부재중일 때는 다시 방문하는 번거로움도 기꺼이 감수했다.대학생 K는 리포트를 들고 담당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간다. 노크 따위는 생략하고 문을 벌컥 연다. 마침 교수가 책상에 앉아 있다. K군은 화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문 채 성큼성큼 걸어가서 과제물을 책상에 던져놓는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없이 연구실을 유유히 걸어 나온다.이런 일이 가능할까. 누군가의 방에 들어갈 때 노크는 상식일 것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서 교수와 눈이 마주치면 리포트를 제출하러 왔다고 말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내키지 않아도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 한마디쯤은 건네고 연구실을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그런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그렇긴 한데 리포트를 작성하는 방법이나 전달하는 양상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앞서 봤던 K군 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요즘은 대부분의 리포트를 PC로 작성한다. 그걸 프린트해서 제출한다. 담당 교수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는 게 일상화되어가는 추세이기도 하다. 직장의 동료나 선후배들 사이에도 ‘파일첨부’ 기능을 활용해서 문건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K군과 같은 이들이 의외로 많다. 달랑 파일만 첨부해서 보내면 그걸로 끝이다. 이메일로 리포트를 전송하면 담당 교수의 ‘받은 편지함’에 보낸 사람 이름이나 아이디와 함께 제목도 뜨게 되어 있다. 그런데 달랑 ‘제목 없음’이다. 심지어는 이걸 누가 보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어떤 문건을 전송할 때 짧은 인사말을 몇 마디라도 곁들이면 좀 좋을까. ‘선배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자료를 이제야 찾았네요. 도움이 많이 되었으면 해요. 조만간 한번 뵐게요.’와 같은 식으로…. 이런 정도로만 써도 서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겠다 싶어서 하는 말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9-2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