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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76건)

미인대회 당선자 이름이 ‘김마포’다. 이름이 특이하다는 사회자의 말에 그 아가씨,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마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지어주셨답니다.” 그 말을 듣고 사회자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말죽거리 같은 데서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겠다, 너는.’ 물론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우리나라 도처에는 공항이 있다. 김포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 광주국제공항, 무안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도시 이름에 ‘국제’만 갖다 붙였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별로 국제적인 것 같지 않은 공항까지 예외가 없다. 영락없이 앞서 언급했던 ‘김마포’다. 아니다. ‘김미인마포’다.나라 밖 뉴욕에는 JFK(John F Kennedy) 공항이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 파리의 드골(De Gaulle) 공항이다. 몽골 가는 비행기를 타면 칭기즈칸 공항에 내려준다. 인디라 간디 공항이 어디에 있을지는 불문가지다. 모두 굵직한 자취를 남긴 그 나라의 역사적 인물에서 따온 이름들이다. 스페인에는 동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피노키오 공항이 있다고 한다.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개장됐다. 내부에는 국내외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다고 한다. 하긴 그래 봤자 ‘제2여객’일 뿐이다. 기왕 ‘아트포트 ‘(Art+ Airport=Artport)’를 표방할 거였으면 20세기 비디오아트 창시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우리 예술가 이름을 붙여서 ‘백남준터미널’ 같은 명칭을 쓸 수는 없었을까. 물론 다른 적절한 이름도 좋다.우리 지역 거점 국립대학에 가면 ‘인문관’이 있다. 그 옆에 한옥 양식을 접목해서 지은, 퍽이나 ‘간지’ 나는 건물 하나가 들어섰는데, 외벽을 보니 ‘인문사회관’이라고 적혀 있다. 과연 인문학과 사회학의 융복합인가? 우리 지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그 분의 아호를 빌려다 ‘가람관’ 같은 명칭을 붙였으면 어땠을까. 물론 이 대목은 사족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8-01-23 23:02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생각나니까 아예 생각을 안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말조차 우스갯소리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을 무려 여덟 번이나 반복한 것이다. ‘생각은 깊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정도로 충분했다. 한마디로 모양이 같은 단어는 하나의 문장 안에 반복해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새해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더라도 소소한 계획은 세워야 할 것 같아요.’ 비교적 짧은 문장에 체언인 ‘계획’, 용언인 ‘세우다’를 각각 두 번씩 썼다. 문장의 기본 틀까지 무너진 건 아니므로 뭐가 문제일까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새해에는 소소한 계획이라도 세워야 할 것 같아요.’와 같이 둘 중 하나는 얼마든지 생략할 수 있다. ‘두 사건 모두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는 어느 신문 기사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체언인 ‘사건’을 두 번 썼기에 하는 말이다. ‘둘 다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나 ‘두 사건 모두 미제로 남았다.’가 훨씬 간결하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사람이나 만날 생각은 없다.’와 ‘아무 생각 없이 누구나 만나려는 건 아니다.’를 비교해 보라는 뜻이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처럼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이 경우는 각각의 문장에 모양이 같은 단어를 두 번 이상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앞에 나온 단어를 다음 문장에서 반복하는 것도 좋은 습관은 아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라고 변화를 줘서 쓸 줄 아는 센스가 필요하다. ‘고양이 먹이 주실 때 점포 밖에서 주세요.’는 어느 공공장소에서 발견했다. 용언인 ‘주다’를 두 번 썼지 않은가. ‘고양이 먹이는 점포 밖에서 주세요.’라고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체언이든 용언이든 부사어든 모양이 같은 단어는 한 문장에 반복해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좋은 문장을 쓰려는 이들이 꼭 새겨두었으면 한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8-01-16 23:02

모르긴 해도 ‘사랑’을 가장 자주 써왔지 싶다. 대중가요 가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내다 보니 그 속뜻까지 다양하게 물었던가 보다. 나훈아는 굵고 낮게 깔리는 특유의 저음으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불렀던가. 그 이름조차 정겨운 옥분이라는 이름의 가수는 음정을 다소 위태롭게 흔들면서 향기로운 꽃보다 진한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노래했다.끊일 듯 말 듯 허스키한 음색과 어우러져 더욱 애절하게 들렸던 장은숙의 은 커터칼에 베인 듯 온몸이 다 쓰리고 아프다. ‘사랑은 머물지 않는 바람 무심의 바위인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어둠의 분신인가’를 묻다가 ‘세상에 다시 태어나 사랑이 찾아오면 가슴을 닫고 돌아서 오던 길로 가리라’고 어금니를 깨물며 다짐하고 있으니.이별은 그토록 아프기만 한 걸까. ‘리별은 美의創造입니다 / 리별의 美는 아츰의 바탕(質)업는 黃金과 밤의 올(絲)업는 검은비단과 죽엄업는 永遠의生命과 시들지안는 하늘의 푸른꼿에도 업습니다 / 님이어 리별이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엇다가 우슴에서 다시사러날 수가 업습니다 오오 리별이어 / 美는 리별의創造입니다’ 만해 한용운이 쓴 다.사랑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 이별이 아픈 만큼 사랑도 깊었을 터,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 우리네 어리석음이라니. 사랑이 이별이고, 이별이 곧 사랑이다. 하여, 세상 어디에도 이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만한 게 없다는 만해의 역설에 공감한다.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 몫까지 사랑하겠어요.’ 어느 카페 벽에 걸린 글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10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났던 그 ‘바보’를 뜬금없이 떠올린다. 무릇 사랑이란 자식에게든 연인에게든 이웃에게든 내가 가진 것을 바보처럼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 사랑하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고,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서 사랑밖에 난 모른다고 했던 심수봉의 노래를 여럿이 함께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새해 아침이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8-01-09 23:02

작년 12월 28일 오전 11시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50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주민센터 뒤 공원 나무 밑에 상자가 있으니 가져가시고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써주세요.” 상자 안에는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담겨 있었다. 세어보니 무려 5천만 원이 넘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든 한해였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선물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A4 용지도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2000년부터 연말이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려 17년째 이어져 온 일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면서 거액을 내놓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끝끝내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몰래’ 가져다 놓은 금액을 합하면 무려 5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 그 후원금 덕택에 4,000여 불우한 가정을 보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전주 시민들이 언젠가부터 그를 ‘얼굴없는 천사’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2009년에 그가 상자 안에 남겼던 메모도 시민들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걸 보면 ‘천사’의 원조는 아무래도 그의 어머니였지 싶다.노송동주민센터를 지나다가 작은 비석을 보았다. ‘당신은/어둠 속의 촛불처럼/세상을 밝고 아름답게/만드는 참사람입니다/사랑합니다’ 상투적인 문구여서 하나도 시 같지 않은데 그 어떤 시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풍편에 듣자니 시에서는 적잖은 예산을 들여서 ‘천사의 길’을 조성해서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철없는 언론사 기자들은 또 그의 얼굴을 기어이 밝혀내고야 말겠다면서 ‘잠복근무’까지 선 적도 있는 모양인데, ‘천사’가 그걸 과연 바랄지는 의문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12-26 23:02

‘망년회’를 거쳐 정착된 ‘송년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연중행사다. 가까운 친구들 몇몇이 모여 정담을 나누거나, 직장이나 단체의 구성원들끼리 만나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 소망을 묻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송년회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나 혼자만의 송년회는 어떨까. 따뜻한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카페에서도 좋고, 눈 덮인 겨울 산과 들판을 바라보면서도 제격이겠다. 한 해 동안 자신이 벌인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사무치도록 후회되는 일은 없었던가, 뿌듯하게 거둔 성과는 또 어떤 것이었는가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새해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을 설계해보는 것도 좋겠다.어느 자치단체의 공공도서관 직원들은 송년회를 좀 특이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가만 보니 웬 현수막 시안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제목은 ‘2017 완주군립도서관 17대 뉴스’였다. 지난 한 해 동안 도서관 사업을 추진하면서 거둔 성과나 주요 실적을 중요도에 따라 글자의 크기와 순서를 조절해서 빼곡하게 배치했는데, 그걸 송년회장 한쪽 벽에 걸 거라는 것이었다.1. 제2회 대한민국 책읽는 지자체 대상 2년 연속 수상 2. ‘올해의 책’ 저자 김제동의 ‘그럴 때 있으시죠’ 휴먼 콘서트 개최 3. 둔산영어도서관 3층 증축으로 서비스 확대(어린이자료실 분리) 4. 차별화된 이서혁신 공공도서관 건립 추진 5. 전주완주 도서관 이용관련 업무협약 체결 6. 기부리딩 기부리더 캠페인 기증 증가(두배 모금, 1000권 기증) 등등.한 해 동안 추진해 온 여러 가지 사업에서 다양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자체 뉴스를 열일곱 가지나 선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현수막을 걸어놓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해를 다짐할 줄 아는 센스 만점 구성원들이 있는 한 이 조직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거라는 믿음이 갔다. 그러다 문득, 속으로 빙긋 웃었다. 그럼 내년에는 열여덟 가지 뉴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19 23:02

부하 직원인 박 대리가 문자를 보냈다. ‘저한태 맛껴주시면 열씨미해보겟읍니다’라고 적어서. 이걸 읽은 ‘과장님’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욕을 높이 사서 기획서 작성을 선뜻 맡겨주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저한테 맡겨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더라면 물론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라는 이름의 공모전을 연다. 시, 소설, 수필 등의 창작 활동에 뜻을 둔 많은 이들이 몇 날씩 밤을 밝혀 쓴 작품을 신문사에 보낸다. 그리고 당선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나날을 보낸다. 장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응모작 수는 수백 편(혹은 천 편 이상)에 이르는 게 보통이다. 응모된 작품의 심사는 크게 예심과 본심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한다.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1차적으로 대략 5∼10편을 가려내는 게 예심이다. 본심에서는 그걸 꼼꼼하게 읽고, 각 작품들의 장단점을 비교해서 당선작 한 편을 최종적으로 선정한다. 그런데 응모된 대부분의 글은 심사위원들이 끝까지 읽어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설이나 수필의 경우 처음 한두 문장에만 눈길을 주고는 준비된 박스 속에 가차 없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길어야 한 단락 정도 읽어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글의 첫머리에 구사한 문장에서 앞서 박 대리가 보낸 문자처럼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가 몇 개 보이는 순간 그 글은 끝장이라고 보면 된다. 심사위원들은 기본적인 단어나 문장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응모자가 쓴 글이라면 그 내용 또한 안 봐도 비디오일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단어를 모아 문장을 쓰고, 그것들을 모아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말 맞춤법에 맞는 단어야말로 좋은 문장을 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12 23:02

치킨이 국민 야식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닭도리탕 또한 백숙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적 닭요리 중 하나다. 토막 낸 닭고기에 고추장, 파, 마늘, 간장, 설탕 따위의 양념과 물을 넣고 끓인 음식이 닭도리탕인데, 그 이름이 속수무책으로 탄압받고 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서도 ‘닭도리탕’을 두드리면 대번에 붉은 밑줄이 그어진다. 표준말이 아니니 당장 ‘닭볶음탕’으로 바꿔 쓰라는 것이다.고스톱 판 용어로 ‘고도리’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다섯 마리 새’다. ‘닭도리탕’이 괄시당하는 까닭은 혹시 그 말 때문인 건 아닐까. ‘닭도리탕’에 든 ‘도리’가 ‘새’의 뜻을 가진 일본말인 것 같아 껄쩍지근헝게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억지소리일까? 천만에다. 그것 말고는 ‘닭도리탕’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까닭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도리’를 순우리말 ‘도리다’에서 따온 것으로 풀이하면 안 될까. ‘닭의 살을 도려서 끓인 탕’으로 보자는 것이다. 설령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말이라고 치자.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민족적 자존심을 들먹일 것인가. ‘닭새탕’이어서 이상하다는 건가. ‘처갓집’은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라면 ‘새’ 대신 ‘볶음’을 굳이 집어넣은 것도 오십 보 백 보다. ‘볶음’과 ‘탕’은 조리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은가. 둘은 하나의 음식 이름으로 나란히 어울려 쓸 수 없다. ‘김치찌개튀김’, ‘고등어조림무침’ 같은 이름을 들어봤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일제로부터 오랜 식민 지배를 받은 탓에 우리 생활 속에 일본말 흔적이 넘쳐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걸 우리말로 순화시키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 해도 모두에게 익숙한 ‘닥도리탕’을 패대기치고, 발음도 복잡한 ‘닥뽀끔탕’을 굳이 써야겠는가. ‘가락국수’라는 좋은 우리말 두고 일본말인 ‘우동’은 와리바시로 잘도 집어 드시지들 않는가. 정작 없애야 할 친일의 잔재가 수도 없이 많은데 애꿎은 ‘닭도리탕’만 갖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2-05 23:02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중에 포스트잇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대여섯 장씩 거기에 뭔가를 적어서 책갈피나 책상 바닥, 컴퓨터 모니터 등에 붙이곤 한다.사실 ‘포스트잇(Post-it)’은 3M이라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사무용품 중 하나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변한 경우다. 포스트잇은 붙였다 떼었다를 여러 차례 반복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오늘날 메모지의 대명사로 위상을 굳혔다.포스트잇에는 전화번호를 적기도 하고, 그날 반드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업무를 기록하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걸 잊지 않으려고 몇 개 단어로 요약해서 적어두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은밀히 전달할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박 팀장이 있어서 항상 든든하네∼.’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려는데 부장님 글씨가 틀림없는 이런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이 모니터 한가운데 붙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오전의 그 일, 고마웠습니다. 아주아주 많이요…^^’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사무실 책상에 캔 커피 하나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 이런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건 또 어떤가.살다 보면 가까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종종 생길 것이다. 번거로운 일을 도와준 후배나 친구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해준 상사 덕택에 회사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튼실하게 닦기도 할 것이다. 그게 고마워서 캔 음료 같은 걸로 마음을 전할 때가 있다.캔 커피 하나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이 1,000원이라고 가정하자. 그걸 그대로 전하면 액면가대로 1,000원어치 마음밖에 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포스트잇에 짧은 몇 마디 말을 적어서 붙인 캔 커피는 그 몇 배 혹은 몇십 배의 가치를 발휘하지 않을까. 일상에서 흔히 쓰는 포스트잇은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엽서이기도 한 것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8 23:02

‘바람의 아들’을 모르는 야구팬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프로야구 해태와 기아타이거즈에서 활약했던 ‘야구천재’ 이종범의 별명이다. 선수시절 그는 뛰어난 타격 솜씨를 보여주었다. 유격수로서 수비 능력도 발군이었다. 게다가 한 시즌 도루 최다 신기록까지 갖고 있다. 운동선수에게 붙여진 별명 중 이처럼 시적인 게 또 있을까 싶다.기아타이거즈의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으로 막을 내린 2017시즌 KBO리그에서 기자들과 팬들의 애정어린 관심을 받았던 선수가 있다. 고졸 신인이 그 어렵다는 전 경기 출장에 최다안타 기록까지 갈아치웠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버지의 별명에 빗대어 사람들은 그 어린 야구선수를 ‘바람의 손자’라고 불렀다. 넥센히어로즈 소속 이정후 선수 얘기다. ‘이정후(19·넥센)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넥센을 울렸다.’는 인터넷 신문기사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우리 문장에 쓰이는 괄호는 소괄호( ), 중괄호{}, 대괄호[ ]가 있다. 이중 중괄호는 문장 안에 직접 쓰지 않는다. 가장 흔한 건 기사처럼 소괄호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그 쓰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한글맞춤법에 따르면 소괄호는 언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쓴다고 되어 있다. ‘기호식품(嗜好食品)인 커피(coffee)’, ‘5·18민주화운동(1980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와 같은 어구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사에서는 물론 소괄호를 올바로 썼다. 하지만 이어 쓴 조사 ‘∼이’는 그렇지 않다.앞서의 기사를 보면 ‘이정후’라는 이름 다음에 ‘19·넥센’을 작은 괄호 안에 적어 넣었다. 참고하라는 뜻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괄호 안에 든 말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 소리에 맞춰 주격조사 ‘은/는’이나 ‘이/가’를 써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이정후(19·넥센)이’가 아니고 ‘이정후(19·넥센)가’라고 써야 옳다는 뜻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