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9-25 00:07 (화)
금요수필 (315건)

노련한 등산가는 늘 나침반을 지니고 다닌다.나침반은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사용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금방 꺼내 길을 쉽게 찾기 위한 것이다. 보통사람들도 나침반을 지니고 산다. 자기만의 어떤 특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가는 것을 정상으로, 나쁜 상태에 직면했을 때는 올바른 상태로, 낮은 단계일 때는 높은 단계로 가려는 의지 등 삶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일을 행하게 된다. 어떨 때는 특별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기약 없는 인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생이라는 굴레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단계는 아니더라도 주관적인 판단 속에는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나침반이 있다.어느 해 가을, 용머리 고개 튀김집에서 갓 구워 올린 꽈배기 냄새가 코앞을 가로막았다. 반세기 전 아버지가 사주시던 꽈배기가 그 집 창가에는 진열되어 있다. 그 앞에는 낯모르는 어린 학생이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호주머니를 뒤지며 돈을 찾는 것 같았다. 아마 돈이 없거나 잃어버린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 없이 그의 손에 꽈배기를 쥐여주었다.꽈배기를 보니 문득 시골 오일장 생각이 났다. 그때 아버지는 비를 맞으며 봉투 하나를 들고 오셨다. 젖은 봉투에는 쫄깃하고 달콤한 꽈배기가 있었다. 그 냄새는 방안에 가득했다. 어머니는 꽈배기의 숫자를 세어보고 분명 열 식구인데 한 개가 부족한 아홉 개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라보시니 아버지는 시장에서 먹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꽈배기 반절을 뚝 잘라 아버지 입에 넣어 주셨다. 그러더니 그의 반절을 막내 입에 넣어 주고 나머지는 어머니의 입에 넣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었다. 가난이라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형제들의 숫자만큼 정이 숨어 있었다. 비록 꽈배기처럼 꼬이는 일이 많았던 내 삶 속에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 행복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한평생 살면서 모든 것들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삶이 사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남이 준 것들이다. 아파트는 건축업자가 지은 것을 산 것이다. 책도 옷도 승용차도 모두가 내가 잠깐 빌려 쓰고 죽을 때 놓고 갈 물건이다. 아니 내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놓고 가야 한다. 그렇게 할 바에야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횔덜린의 「반평생」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 후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아아, 나는 어디에서 이 겨울에 / 꽃들을 찾을 수 있을 거나 /또 햇빛과 지상의 그림자는 /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거나 / 깃발들이 덜컹거리는 / 바람 속에서 벽들은 / 말없이 차갑게 서 있는 데.”나침반을 가지고 등산하듯 인간의 삶도 서정적인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언어가 깨끗하고 단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매사가 긍정적이다. 거친 파도가 노련한 어부를 만들 듯 대가를 크게 치른 사람은 인생의 나이테도 굵고 깊다. 나이테 속에는 넉넉한 나침반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의 추억을 거울삼아 세상을 밝게 사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를 불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나와 함께 지내왔던 물건들을 후손들에게 후회 없이 주고 가겠다는 지혜로운 생각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성공한 사람이 되기보다 차라리 평범한 삶 속 행복한 사람을 꿈꾸어야 하겠다.△ 정곤 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작촌예술문학상을 수상했다. 덕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7-28 23:02

시대가 변하는 요즈음, 직업에 대한 인식도 급변하고 있다는 걸 교직 사회에서도 느낀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말하던 ‘군사부일체’라는 고어적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존경심이 담긴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늘 교사들에게 자랑스러운 표현이었다. 우리 부모는 적어도 자녀들 앞에서는 ‘아무개 선생’이라 호칭하지 않았고 반드시 ‘선생님’이라 했고 우리 세대도 그랬다. 그런데 요즈음 부모님들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어떤 말로 호칭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아직도 대부분의 학부모는 ‘선생님’이라고 존경의 뜻을 담아 지칭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매스컴을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우울해질 때가 많다.요즘 학부모 중에는 흔히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를 떠나서라도 적어도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를 자기 집안의 하인을 다루듯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학교에 찾아와서 교사에게 삿대질하면서 훈계조로 말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붓거나 신체적 가해를 하는 학부모도 있다는 교단의 현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필자는 이제 머지않아 정년을 앞둔 사람으로서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본다. 그 시절 함께 했던 대부분의 동료들은 아이들을 정말 자식처럼 여겼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자기 반 아이들의 학력을 높여보겠다고 퇴근 시간 가까이 데리고 앉아 부족한 공부를 시켰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겐 사비를 털어 옷을 사주고 신발도 사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자기 반 아이들의 집까지 일일이 방문하여 가정 형편을 살피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의 손이 미처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손발을 씻겨 주고 머리를 감겨주면서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고, 학부모들 또한 교사는 자기 자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참으로 고마우신 선생님으로 항상 대해 주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교사들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같지 않다.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나치다 싶을 만큼 학생 인권은 강조하고 있는데 교사의 인권은 추락하고 있어 일부 학부모들이 이를 악용하고 존중하지 않은 풍토가 그중 하나라 생각된다.또 사회적 분위기도 교사 입장에서 소극적인 지도를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예전처럼 학생들의 손발을 씻겨 주고 머리를 감겨주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원은 성추행으로 고발될 수 있다.예전에는 일기장을 통해 반 아이들의 분위기를 짐작하고 아이들의 고충을 파악하여 해결해 주던 일도 많았었는데 이것이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단정 지어지면서 일기 검사는 물론이거니와 이젠 아이와 단둘이 앉아서 상담조차 하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이 되었다. 한마디로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믿으면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교사들은 선생님으로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자녀 교육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가다듬고 먼저 선생님과 상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보면서 배운다. 부모들이 선생님을 무시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분명 언젠가는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부모들이 선생님께 했던 방식으로 부모를 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진정으로 존중받는 교직 사회는 교사와 학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학생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생과 교사의 소중한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기대해 본다.△ 전순자 씨는 동시를 쓰는 아동문학가로 익산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익산 망성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7-21 23:02

항상 손을 붙들고 다녔는데, 두 손녀의 식성이 서로 달라 오늘 처음 각자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작은 손녀가 그만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천 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심정으로 1층, 2층을 몇 바퀴 돌고 구내방송도 하고 자주 다니던 곳에서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얼굴이 사색이 된 할머니는 이미 눈이 멀고 귀가 먹어 버렸다. 그러나 곁에 있던 외손주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시식코너에서 제가 좋아하는 과일 조각을 찍어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그러니까 할머니, 생각 좀 해 보세요. 집에 갔을 것 같아요?”다급해서 딸에게 혹시 손녀가 집에 왔느냐고 확인 전화하는 걸 보고 하는 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손녀는 이쑤시개에 제가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꽂아 들고는 의기양양하게 우리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녀를 보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그러자 손녀도 할머니를 끌어안고 그만 눈물바다를 이루었다.“봐요, 할머니. 내가 곧 올 것이라고 했잖아요?”조급해서 얼이 빠진 할머니와 태연한 손녀 사이에는 이미 생각의 큰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언제까지나 손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과잉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할머니와 손자들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우리는 가끔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올챙이는 올챙이 때 생활에 충실하고, 개구리는 개구리 때 생활에 충실하다 보니 그렇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다.촛불 혁명에 이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깨끗한 인사로 채우겠다고 장담하고 시작했는데, 첫 단추부터 격이 맞지 않게 되었다. 핑계 삼아 쓰는 말은 ‘관례’였다는 것, 즉 그 시대는 그것이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맞지 않으니 결격 사유가 되어 임용을 막을 수밖에 없다는 또 다른 주장이다. 이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청문하는 사람에게는 ‘너는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느냐?’라고, 후보자에겐 ‘그래도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느냐?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흐름은 한 사람을 생각이 다른 두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나는 아직도 아내의 생각을 읽어 내지 못한다. 내가 집에 있고 싶을 때는 어디로 나들이 가자고 하고, 자식들에게 먹일 것을 사주고 싶을 때는 우리 둘이만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리고 TV 시청에 빠져 있을 때마다 사정없이 채널을 바꾸곤 한다. 사십 년을 함께 호흡하며 살아오면서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부부 일심동체’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요사이의 아내의 행동을 보면서 다른 사람 같이 나를 낯설게 한다.나는 가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었다. 내 생각은 이런데 왜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생각을 하고 저런 행위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정당한데 그들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내가 맡았던 어린이들에게 내 생각만을 강요하며 그들 생각의 싹을 잘라냈던 것이다. 같이 지내던 동료들에게도 그들의 방식을 온통 무시하고 내 생각만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후회스럽다.세월이 흐르니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세상은 두 사람이,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보완해주며, 서로를 위해 살아야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을 말이다.△조내화 수필가는 2006년 에세이스트를 통해 등단했으며 현재 남원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수필집 〈섬진강에 삶을 묻고〉가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7-14 23:02

35년 전쯤 장수 산서에서 전셋집에 살 때의 일이다. 가을이 되자 집안의 감들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열려 수확할 날만을 고대하다가 일요일에 나무를 잘 타는 날다람쥐 여동생을 오라고 했다. 식구들도 달려들어 집안 감나무에 열린 대봉시를 열 접쯤 땄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잠자는 꼬맹이는 여동생에게 맡기고 남편과 나는 남원 시내에 있는 공중목욕탕을 갔었다.그런데 다녀오니 여동생이 별꼴을 다 봤다며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나간 뒤 얼마 지나 날씨도 흐리고 바람이 불어 비가 오려나 싶어 빨래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 쪽에서 시커먼 신발이 살강 위로 훌렁 올라가더란다. 그래서 철렁한 가슴을 추스르고 누구냐며 당장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단다. 그랬더니 까까머리 애송이 중학생이 겁에 질려 떨며 내려오더란다. 그래서 왜 들어왔느냐고 물었더니 저 윗마을에 사는데 동생이 감 따는 것을 보고 먹고 싶다고 해서 감 몇 개 가지러 들어왔단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며 나가려는 아이를 불러 비닐봉지에 감을 몇 개 담아서 보냈다고 했다. 그 뒤 행위가 미심쩍어서 인생 착의를 자세히 물으니 윗마을이 아니라 바로 옆집에 사는 남학생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것이 좀 괘씸하기는 했지만 대봉시를 그렇게 많이 따놓고 미리 옆집에 나눠주지 못한 자신이 어리석었다 싶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그런데 다음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심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한 달 전쯤인가 퇴근해서 벽장에 십만 원쯤 넣어 둔 월급봉투가 몇 만 원이 빈 것이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가져가려면 다 가져가지 반만 가져갔겠느냐며 나에게 엉뚱한 소리 하지 말라고 믿어주질 않았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삭이며 혹시나 하는 맘이 들어 퇴근 후 그 집 어머니에게 가서 어제 있었던 감 도둑 사건을 말씀드리고 월급봉투 이야기도 하며 아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월급봉투를 그대로 두었으니 지문 검색을 하면 다 나 올 거니까 만약 아들에게 물어 그 돈을 가져갔다면 곱게 돌려주시고 아니면 지서에 가서 손도장 하나만 찍어주시라고 말하고 집에 왔다. 그리고 지서에 전화를 걸어 돈 봉투에서 돈을 꺼내 간 경우 지문감식을 하면 도둑을 잡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시골에서는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이 전화 후에 누가 이런 문의를 해오면 봉투만 있다면 꼭 잡을 수 있다고 대답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기다리면서도 혹시 애먼 사람을 의심했나 싶어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쯤 지났을까?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그 집 어머니가 봉투를 들고 와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그 돈을 받고 다시 곰곰 정황을 살펴보니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간 집안의 소소한 일들이 이상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주말에 집을 비울 때마다 허름한 걸음쇠를 열고 제집 드나들 듯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중학교에 근무하는 남편을 통해 그 학생을 닦달해 보니 그 녀석의 소행이 드러났다.누가 시골인심이 후하다고 했는가?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 사는 곳은 선악이 함께 공존한다. 옆집과 사이에 있던 돌담이 점점 무너지던 것 등이 이제야 이해가 되면서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방비를 했지만 어쩐지 씁쓸했다.지금은 쉰이 넘었을 딸 부잣집 외아들 그 아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훈계를 하겠지? 몇 년 전 남원을 갔다 오는 길에 그 동네를 한 번 들려 보니 옆집은 양옥으로 재건축하였는데 우리 살던 집은 온데 간데없이 잡초만 무성했다.△수필가 박영숙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문학관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늘푸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7-07 23:02

부모에게 자녀교육이란 가장 우선이 되는 중요한 덕목이요,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방법에 대하여는 상반되는 두 가지 유형인 ‘캥거루키드’와 ‘셀프키드’를 비교해 본다. ‘캥거루키드’란 누군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를 말하고, ‘셀프키드’란 무슨 일이나 스스로 하도록 아이에게 맡겨두는 것을 말한다. ‘캥거루키드’의 부모는 옷 벗고 손 씻어라, 학원가라, 숙제해라, 텔레비전을 꺼라, 등등의 잔소리와 함께 모든 일에 일일이 다 참견한다. 그래서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숨넘어가게 몰아붙이며 간섭하는 과잉보호를 하거나 학원 증후군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셀프키드’의 부모는 무슨 일이나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맡겨둔다. 지금은 비록 아이가 더디고 미숙해서 흡족하지 않지만,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을 존중해 주고 박수쳐 주며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 잘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다. ‘캥거루키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학원 강사로부터 공부를 떠먹여 준다. 그러다 보니 타인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생활을 하며 칭찬과 상 같은 외재적인 동기를 좋아한다. 그러기 때문에 성격이 의존적이고 우유부단하며 자율성이 부족하여 남이 시키는 일이나 하고 다른 사람의 뒤나 따라 다니며 리더가 되지 못 한다.그러나 ‘셀프키드’는 자기 스스로 공부 계획을 짜고,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생활한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습관과 실천하는 힘이 생겨 취사선택을 잘한다. 또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 자립심이 강하고, 개척 정신과 리더십이 매우 강한 아이가 된다.떠먹여 주는 공부를 해온 ‘캥거루키드’는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이 약해서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진다. 그러나 ‘셀프키드’는 스스로 떠먹는 공부를 해 오면서 공부하는 방법이나 요령을 스스로 터득하며 자기주도적 학습력을 키워왔기에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성적이 좋아지고, 고등학교 때는 더 좋아지며, 대학 생활을 최상위로 성취하게 된다.또 다른 면에서 보더라도 자기주도 학습을 잘하는 ‘셀프키드’는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수업 준비를 하고 질문을 많이 한다. 반면 타인주도 학습을 하는 ‘캥거루키드’는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할 줄 모른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스트레스 푼다고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많다.부모의 자녀교육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조급하게 생각하며 떠먹여 주고, 간섭하고, 일일이 다 챙겨주는 ‘캥거루키드’로 양육하는 것은 피동적이며 소극적이고 장차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가 힘든 어른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하루의 계획, 일주일의 계획, 한 달의 계획, 일 년의 계획, 미래를 향한 목표나 꿈을 스스로 정하고, 거기에 합당한 공부를 스스로 터득하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생활하는 ‘셀프키드’로 양육하면 적극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고 책임지는 능력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교육은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다. ‘캥거루키디’와 ‘셀프키드’를 비교해 보면서 어떻게 우리의 아이를 양육할 것인가에 대하여 부모들은 고민하고 노력하여야 할 것이며, 국가와 사회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적합한 교육정책과 사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박종은씨는 고창교육장을 역임했고, 현재 고창예총 회장을 맡고 있다. 〈카이로스〉 등 7권의 시집과 산문집 2권을 발간했고, 영랑문학상과 전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6-30 23:02

△김덕남씨는 전주 용소초등학교장으로 퇴임했다. ‘물사랑 공모전’ 은상, ‘글벗문학회 공모전’ 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아람 수필문학회’ 부회장, ‘대한 문학 작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어디 가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집 아줌마가 방긋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저-기요” 나는 우물쭈물하다 건성으로 대답했다.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간다는 사적인 일까지 그녀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아, 네-” 하며 나의 무성의하고 애매한 대답에도 충분히 알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제 갈 길을 갔다. 그녀도 나에게서 명확한 대답을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라 그저 습관적이고 의례적인 인사치레에 불과했다.우리가 흔히 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전쟁이 잦았던 우리의 역사 속에 밤새 아무 변고 없이 잘 자고 일어났느냐는 뜻의 애환이 섞인 의식적 안부 인사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보면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인사말도 애환의 의미가 담겼지만, 꼭 식사를 했느냐는 물음보다는 친근감에서 통용되어오던 인사말이다. 우리가 주고받는 인사말 중에는 이같이 통념적인 인사를 주고받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데 ‘어디 가느냐?’는 인사말은 친근감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 인사를 받고 ‘굳이 개인적인 행보까지 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충 성의 없이 얼버무림을 할 때가 있다. ‘어디 가세요?’ 보다는 ‘옷이 잘 어울려요.’ ‘인상이 참 좋으세요.’ 등 가볍고 현실적인 인사를 해 주면 참 좋을 텐데 굳이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거나 참견하고 싶어 하는 인사말이 우리 세대의 인사다. 계산이 빤한 도시 깍쟁이보다 정이 넘치는 순수한 시골 아낙들일수록 더 그렇다. 재치 있고 경위 바른 젊은 세대들은 그런 일이 적은 편이다. 정말 궁금하여 가는 곳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타인의 목적지까지를 묻는 사생활 침해적인 그런 인사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서구 문화가 많이 접목된 요즈음은 ‘좋은 아침입니다.’ ‘반가워요.’ 등 밝고 경쾌한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런데 간혹 소비자 서비스 차원에서 아리따운 여인이나 멋스러운 남자가 느닷없이 ‘사랑합니다.’라는 닭살 돋는 인사말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어느 공공 기관과 통화를 했을 때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받고 무척 쑥스러웠는데 이제 그 인사말이 상점까지 심지어 우리 교회 신부님과 신자 상호 간의 인사로까지 발전되어 많이 익숙해졌다. 우리 일상에서 이렇게 습관화되지 못해 어색했던 인사말도 생활화되면 의식이 바뀌고 그 의미가 더욱 정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며칠 전 은행에 갔을 때였다. 촌로가 들어와 번호표를 뽑고 소파로 다가오더니 앉아 있던 또래의 노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이, 자네 여긴 어쩐 일인가?” 은행에 무슨 일로 왔는지 알고 싶어 묻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안 그 노인도 “응, 그냥 왔네.”라는 허망한 답변을 건넸다. 진정으로 궁금해 알고 싶었다면, 그런 대답으로 충분했을까?“언제 밥이나 한번 먹세.” 인사를 건넸던 노인은 또 부질없는 기약의 인사를 던진 뒤, 무관심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가 버린다. 그날 은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랫집 처녀와 마주쳤다. “유정 씨, 어디가?” “네. 안녕하세요?” 내가 묻는 인사말과는 아랑곳없는 인사를 던지고 해맑게 뛰어간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나 또한 무엇 때문에 남의 목적지를 궁금한 것처럼 물어봤을까? “안녕!” 또는 “잘 지냈어?”라는 적절한 인사말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사말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고,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영위하는데 필요하다. 따라서 인사말의 기본은 길이와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 인사말들은 무엇일까? 항상 서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6-23 23:02

긴긴밤 국민들의 손에 들린 촛불의 열매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논공행상이 이뤄질 무렵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분이 정권교체를 이루어 주신 것으로 제 꿈은 달성되었습니다. 정권교체는 갈구했지만, 권력은 탐하지 않습니다.”라는 감동적인 몇 마디 말들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신 분들…. 대통령의 패권이라는 분들이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그분들을 닮은 사례가 우리 고장에도 있었다. 90년대 전주시에 치매 병원과 보건소를 지어 시민들의 건강을 보살피려고, 치매 가족들의 짐이 버거워서 부양의무를 포기하려는 의도에서 전주에 국고를 지원받아 치매 병원을 신축하려고 보건소장이 복지부에서 받아온 국비의 덫에 걸렸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국고를 환수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이라도 나서서 그 일을 해내도록 하려면 내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상의가 다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4급 보건소장직을 버리고 어느 보건소 관리의사로 갔던 그분은 자신의 사생활보다는 먼저 시민들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기반 구축에 노력하는 지도자였다. 치매 병원이 시민들에게 줄 혜택을 생각하고 자기희생을 감수했다. 문 대통령의 패권이라 지칭되던 삼철도 “친문 프레임, 삼철 낡은 언어 거둬 달라.”며 스스로 사라지듯,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떠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는 말이 뇌리에 스친다. 대통령의 정치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떠난 멋있는 분들, 왠지 그분들의 뒷모습을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의로운 나라, 위대한 국민들의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국민이 이기는 통합의 나라,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를 염원했고, 그 품은 뜻을 이뤄냈으니 여한이야 없겠지만 떠난다는 것이 홀가분하기만 했을까. 생각하면 그때처럼 짠하다. 그 후 대통령 행보에서 ‘이런 대통령도 있구나.’ 감탄하며 보름이 지났다. 국민들의 빈 마음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새 정부의 인사 발표에 감동했다. 파격적인 탕평인사다. 사람마다 이번 대통령은 멋지게 잘해 낼 거라며 신뢰를 보낸다. 특히 인사가 만사라는데, 이번에 대통령의 10대 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성 평등한 대한민국”이다. 전에 여성 공무원들 근무하던 곳이 주로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 식품의약부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장관인사가 파격이다. 유엔 내에서는 입지전적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비외무고시 출신인 여성이 외교부장관에 발탁되고,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며 육군 최초 여성 헬리콥터 조종사를 국가보훈처장으로 발탈하다니…. 뭔가 달라도 다른 통념을 뛰어넘은 통합, 탕평, 파격 인사다. 여성들의 그 단단했던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여성도 사회적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곳,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여성을 승진시키고 싶어도 경력 단절이 문제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진정으로 탕평이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여성 공무원들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7~80년 당시 여성 공무원들은 승진이란 걸 몰랐다. 이유는 근평을 남자직원에게 양보해야 했고, 양보를 거절하는 여직원은 조직에서 따돌림을 받았다. 남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가 양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고착되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대개 7급 정년을 하였고 후에 6급 정년이 몇 명 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대통령의 인사 기조에 맞춰 시군에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들에게도 4급, 5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 국민과 소통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새 시대의 인사답게 남녀 차별을 두지 않는 통합적인 탕평적인 파격적인 멋진 인사를 기대해 본다.△ 박귀덕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잃어버린 풍경이 말을 건네오다’ 등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부회장과 전북수필 회장을 맡고 있으며 〈작촌문학상〉을 받았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6-09 23:02

△김두성씨는 수필가이자 교육학박사다.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해 수필집 ‘나의 작은 행복’ 등을 냈다. 한국문인협회 남원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남원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어머님! 어머님께서 자나 깨나 심혈을 기울여 키워주신 큰아들 두성이가 어머님 영전에 섰습니다. 그동안 쏟아주신 어머님의 정성과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서도 생활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며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영전에서 지금까지 불효가 실감이 납니다.어머니께서 떠나시던 날 아침, 한동안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 그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뵈었던 모습과 말씀들은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먼 곳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버팀목이 되어주셨는데, 이제 어떻게 지탱해 나갈지 모르겠습니다.어머님의 부음을 받고 달려오신 이모들과 외삼촌들께서 하신 말씀들이 생각납니다. 다섯 시누이 틈 속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집살이를 하셨다던 말씀을 듣고 새삼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울컥 쏟아지는 울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같은 아파트 통로에 살 때, 내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주차를 확인하신 후에 밤잠 이루셨다던 어머님…. 7년이 넘게 대상포진, 간경화, 간암 등의 질환으로 고생하시면서 정신력으로 버티어 오시다가, 끝내는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시던 어머님! 그런 와중에서도 손주 녀석, 등록금 걱정을 해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새삼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느꼈습니다.이런 정성과 사랑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습니까?저희들 몸과 마음, 여기저기에 깊숙이 묻어있는 어머님의 관심과 정성을 저희가 만 분지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님! 처음에 이 글을 쓰다가 한참 동안 쏟아지는 눈물이 뒤범벅되어 다시 썼습니다.한마디로 저는 어머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유난히도 못난 이 자식을 사랑해 주셨던 어머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잘못 하였을 때 “내가 어떻게 키워왔는데 이 모양이냐” 하고 한탄하시던 말씀이 종종 생각납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분발하려고 무던히 발버둥 쳤습니다. 어머님, 아시죠? 어머님! 비록 76년간의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어머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깨끗하고, 정직하고, 용감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 봉사 하셨던 어머님에게 최고의 사랑을 보내면서, 어머님께서 항상 함께하셨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어머님!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못다 사신 어머님 몫까지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주위 사람, 나아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욱 인정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더욱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어머님의 자식이 되겠습니다.부디부디 편히 천국의 하늘나라에서 모든 근심 걱정 벗어버리시고, 저희 내외, 손주, 손녀 잘살아가는 모습, 자랑스럽게 되어가는 모습, 즐거운 마음으로 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어머님! 저희들, 항상 어머님과 함께하겠습니다.어머님의 큰아들, 두성이가 이글을 드립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6-02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