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9-21 17:21 (금)
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76건)

커피가 생활에 뿌리를 깊이 내린 지도 꽤 오래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밥이나 김치일 것 같은데 사실은 커피라고 한다. 어느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수만 해도 10만 개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커피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믹스 커피와 카페 커피다. 1990년대 들어 대중화된 믹스 커피는 커피와 프림과 설탕을 섞어서 간편하게 타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전에는 입맛에 따라 스푼으로 각각의 양을 조절했다. 그렇게 탄 ‘양촌리 커피’를 마시고 찐 살은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아도 안 빠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코코넛에서 추출한 식물성 경화유지인 프림이 비만과 각종 실현관계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설도 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로 대표되는 카페 커피를 지금처럼 자주 마시기 시작한 건 아마 10여 년 전부터일 것이다. 웬만한 한 끼 식사 값에 버금가는 카페 커피는 종류도 맛도 다양하다. 에스프레소(espresso), 아메리카노(americano), 카페라떼(caffe Latte), 카푸치노(cappuccino), 카페모카(cafe mocha), 카라멜마끼아또(caramel macchiato) 등이 그것이다.“나는 가비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얼 먹어도 쓴맛이 났는데, 가비의 쓴맛은 오히려 달게 느껴지는구나.” 영화 에서 고종 황제는 그렇게 한탄한다.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아내 명성황후를 그리며 그는 커피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으로 즐겼던 이가 바로 고종 황제 부부였다는 항간의 ‘썰’도 있다.어느 한적한 카페 벽에는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고 적혀 있었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라고 했던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Charles-Maurice de Talleyr and)의 ‘커피 예찬’을 집약한 말이다.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감이 퍽이나 매혹적으로 여겨졌던 건, 악마에게라도 유혹을 당하고 싶어서였을까.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8-01 23:02

‘정이란 무엇일까 / 받는 걸까 주는 걸까 / 받을 땐 꿈속 같고 / 줄 때는 안타까워….’ 가수 조용필이 40년쯤 전에 불렀던 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정’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이라고 적혀 있다. 어쨌든 정은 인간 본성의 하나로서 다양한 행위를 만들어내는 속성을 지녔다. 사람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도 정이다. ‘정’은 종류도 다양하다. 붙기도 하고, 쏟기도 하며, 흐르다가 깊어지기도 하는 것이니 그렇다. 그중 가장 흔한 게 ‘온정’이다.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정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게 만드는 힘은 ‘열정’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게 오래 가지 못하고 식어 버리면 ‘냉정’해진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다 보면 ‘미운 정’도 들고 ‘고운 정’도 쌓인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있다. 분노가 극심할 때 가끔 입에 담는 말이다. ‘정’도 마찬가지다.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그게 지나치면 정이 거꾸로 솟아서 화를 버럭 내지르게 된다. 그게 바로 속 좁은 어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역정’이다. 떨어지기도 하는 게 정이다. 남녀가 헤어질 때는 일부러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정을 ‘떼려는’ 것이다. 그런 일을 자꾸 반복하는 사람한테는 나머지 정인 ‘정나미’가 떨어지게 된다. 물론 더 심해지면 ‘오만정’이 다 달아날 것이다. ‘덧정’이라는 것도 있다. ‘덧니’처럼 ‘더해지거나 덧붙은 정’이다. 한 곳에 정이 붙으면 그 주변 것까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정을 말한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고 했다. 바로 ‘덧정’을 이르는 말이다. ‘정을 쏟고 정에 울며 / 살아온 내 가슴에 / 오늘도 남모르게 / 무지개 뜨네….’ 앞서 언급했던 조용필의 은 이렇게 끝난다. 누군가에게 쏟든, 아니면 그 누군가 때문에 울든, 주든 받든, 결국은 내 가슴에 오늘도 남모르게 무지개 떠오르는 게 바로 ‘정’ 아닐까. 정에 굶주린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이들의 삶이 풍요로워 보이는 까닭이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7-25 23:02

형편이 어려워서 쇼핑을 꾹 참아왔던 여자가 모처럼 큰맘 먹고 백화점을 갔더란다. 호기심에 명품 브랜드 옷 매장을 들러서 요모조모 들여다보긴 했는데, 가격표를 보니 도대체 살 엄두가 안 나더란다. 매장 종업원 아가씨는 명품 백을 든 사모님한테는 상냥하게 안내를 해주면서도 자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더란다. 한참 뒤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 그 아가씨, 여자가 들여다보고 있는 옷을 시큰둥하게 설명해주더니 한마디 툭 던지더란다. “이건 좀 고가 제품이라 아주머니 같은 분이 구입하시기는 좀….” 그 소리를 듣고는 그 여자, 옷값을 즉석에서 12개월 할부로 긁어버렸다더란다.어느 한우고기 전문식당 간판을 올려다보니 ‘저희 업소에서는 5성급 이상 특급호텔에서만 사용하는 최고급 엄선된 고기만을 취급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거기 적힌 대로 최상급 품질의 한우고기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는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고기의 품질은 ‘5성급 이상 특급호텔’ 식당에서 소고기를 자주 먹어본 사람이나, 그 분야의 전문가 아니고서는 주인의 ‘처분’에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뭘까.간판에 적힌 문구에 배배 꼬인 눈길을 던지자면 대충 이런 뜻이 들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업소에서는 최고급 소고기만 취급하니까 값이 비싸다. 평소 5성급 이상 특급호텔에서 식사하시는 분들만 오시라. 큰맘 먹고 돈 한 번 제대로 쓰시고자 하는 분까지는 물론 환영이다….’ 상호로 쓴 ‘우미소’는 ‘소 우(牛)’와, 소리 없이 빙긋 웃는 걸 가리키는 한자어 ‘미소(微笑)’를 결합해서 만들었을 터. 전날 마신 술이 아직 덜 깨서였을까. ‘소가 웃을 일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었다. 간판에 그려진 소는 웃고 있지 않았는데도….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7-11 23:02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자비를 설파한 이는 부처다. 그 또한 근간은 ‘사랑’이다. 영어로는 당연히 love다. 한자어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는 이 ‘愛’를 여러 분야에 즐겨 써왔다. 애용품, 애국심, 애국가, 부부애 같은 말은 숫제 귀에 못이 박혀 있다. 그 옛날 호방한 선비들한테는 애첩(愛妾)이 있었다. 영화 제목 ‘애마부인’과, 북쪽 사람들이 즐겨 쓰는 ‘경애하는’까지 ‘愛’는 어디든 갖다 붙이면 좋은 말이었다.여자들 이름에도 자주 썼던 ‘애’는 두말할 것 없이 모두 ‘사랑 愛’다. 요즘에는 여자들 이름으로 ‘愛’는 찬밥 신세다. 촌스러워서일까. 그렇다고 예로부터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에 뿌리를 튼실히 내린 가운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게 최고의 미덕임을 철석같이 믿어 왔던 우리가 그 좋은 말을 함부로 내칠 리는 없을 터….여자들 이름에서 속절없이 밀려난 ‘愛’가 최근 들어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광고나 선전 문구가 대표적이다. ‘음악愛 빠진愛’, ‘가을은 독서愛 계절’, ‘나愛 사랑’ 같은 식으로 마구 쓰는 것이다. 그림의 ‘흡연 愛티켓 / 차茶에도 예절이 있듯이 / 흡연에도 예절이 있습니다’도 거기에 해당된다. ‘愛티켓’에 쓴 한자 ‘愛’의 뜻은 당연히 ‘사랑’이다. 이걸 우리말로 바꾸어 읽으면 ‘에’가 아니고 ‘애’다. 요즘 愛들이 한자를 아무리 몰라도 그 정도는 누구나 안다. ‘예의’를 뜻하는 영어 ‘etiquette’의 우리말 표준 발음 또한 ‘애티켓’이 아니라 ‘에티켓’이다.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서 한자말 ‘愛’를 우리말 ‘애’와 ‘에’로 모두 쓰기로 정한 적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愛티켓’이 무슨 ‘사랑(愛)을 나누는 티켓(ticket)’이라는 뜻도 아니지 않은가. 기왕지사 愛를 갖다 쓸 바에는 ‘흡연 愛티켓 / 차茶愛도 愛절이 있듯이 / 흡연愛도 愛절이 있습니다’와 같은 식으로 ‘愛’를 원 없이 쓰고 볼 일 아니었을까.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7-04 23:02

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한 사람이나 사물을 뜻하는 수식어로 ‘국민’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국민배우는 안성기, 국민가수는 조용필, 국민타자는 이승엽이라는 식이다. 국민야식은 치킨, 국민중화요리는 짜장면이다. 국민술은 모르긴 해도 막걸리보다는 소주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안주는? 입맛이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자리의 임자는 삼겹살이지 싶다.일찍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 아, 이것마저 없다면’이라고 쓴 바 있는 ‘국민시인’ 안도현의 두 줄짜리 짤막한 시가 그 증거라고 하면 논리가 좀 궁색할지 모르겠다. 하긴 쓰는 시 따로, 좋아하는 안주 따로이긴 한가 보다. 시인을 잘 아는 이의 귀띔에 따르면 그는 삼겹살보다 생선회를 더 선호하는 편이라니…. 그럼에도 시인이 소주와 삼겹살의 궁합을 맞춰 시를 쓴 까닭은 우리 술꾼들의 보편적인 취향이나 정서가 그러해서일 것이다.왜 아니겠는가. 직장 회식을 비롯한 여러 모임의 술과 안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건 누가 뭐래도 소주와 삼겹살이다. 특히 우리 술꾼들의 소주와 삼겹살 애호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들이객들이 피워내는 삼겹살 지글거리는 냄새는 어김없이 소주를 부른다. 소주 안주로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 게 채 30년도 안 되었다는 걸 요즘 젊은 술꾼들은 제대로 알기나 할까.삼겹살은 단백질과 산성 기름 덩어리이기 때문에 사실은 같은 산성인 소주하고 궁합은커녕 함께해서는 안 될 상극이라는 식품연구가들도 있다지만 그까짓 게 무슨 대수랴. 누구 말처럼 짜장면에는 단무지, 생맥주에는 치킨인 것을…. 시인의 발상처럼 가까운 이들과 정겹게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상추에 풋고추와 마늘을 얹고 쌈장을 발라 먹는 삼겹살이 없었더라면 이 땅의 술꾼들은 이 풍진 세상을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왔을까 싶기도 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 아, 이것마저 없다면’을 다시 읽는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는가, 이 시의 제목이 이라는 사실을….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6-27 23:02

‘안녕(安寧)’은 탈 없이 편안한 상태를 이르는 한자어다. 그 말에서 비롯된 ‘안녕하세요?’는 일상화된 우리 식 인사말이다. 역사적으로 외침이 잦았던 탓에 밤새 혹은 못 본 사이 별 탈 없이 잘 지냈느냐고 묻는 것이 반갑게 건네는 인사말이 되었을 거라는 항간의 ‘썰’도 있다. 하긴 요즘에도 밥 먹었느냐고 묻는 인사말을 버젓이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영어권 사람들은 시간대에 따라 ‘굿 모닝’, ‘굿 에프터눈’, ‘굿 이브닝’ 따위의 인사말을 쓴다. 이웃 대륙 사람들의 인사말도 그들과 꼭 닮았다. 아침에는 ‘자오샹 하오[朝上好]’, 오후에는 ‘씨아우 하오[午後好]’라고 한다. 밤에는 물론 ‘완샹 하오[晩上好]’다. 일본 사람들도 비슷하다. ‘오하요 고자이마쓰’, ‘곤이찌와’, ‘곰방와’로 나눠 쓰기 때문이다.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안녕하세요?’다. 그 다섯 음절로 정겨운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녕하세요?’는 밝고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건네는 게 좋다. 주저하거나 망설일 까닭이 없다. 물론 거기에 몇 마디 덧붙이면 금상첨화겠다. “안녕하세요, 선배님?”이라고 호칭도 붙이고, “와아…, 부장님, 지금 매고 계신 넥타이 정말 잘 어울리는데요?”라는 말까지 덧대면 친근감을 높여서 소통이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싶다.아랫사람이 인사할 때도 무뚝뚝한 어조로 “응.”이나 “그래.”라고만 대답하지 말 일이다. “역시 우리 박 대리의 패션 감각은 남다르단 말이야?”와 같은 몇 마디 말로 후배의 심장을 뜨겁게 데워줄 줄 아는 센스 만점 선배나 직장상사가 되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하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안녕하세요?’라면서 봄꽃 같은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는 이를 향해 이맛살을 구겨 보이는 일은 누구도 쉽지 않다. 어느 찻집에 들렀다가 ‘내가먼저 건넨인사 돌아오는 밝은미소’라고 적힌 문장을 발견했다. 전통적인 4·4조 음률에 전체 16글자짜리 그 빤한 내용의 표어가 왠지 정겨웠다. 세상이 밝아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일까?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6-20 23:02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빨강 ….’ 박성우 시인이 쓴 이라는 시의 일부다. 시인은 수많은 색깔 중 하나인 ‘빨강’으로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이미지를 시 속에서 재미나게 그려냈다. 빨강은 원초적이다. 빨강 불덩이 태양은 생명의 근원이다. 빨강은 신성한 권위의 상징이다. 괴테는 빨강을 ‘색의 왕’이라고 했다. 교황과 주교들의 귀여운 빵모자도 빨강이다. 은막의 스타들을 영화제에 이끄는 것도 빨강(레드) 카펫이다. 원수들이 의장대를 사열할 때도 빨강이다. 빨강은 사랑을 뜨겁게 달구는 심장이다. 사랑하는 그녀를 향해 불타는 사랑을 전달하는 데는 빨강 장미가 안성맞춤이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 했으니 빨강은 또 아름다움 자체다. 매혹과 유혹의 색이다. 에로티시즘이다. 야해 보이고 싶은 여인들은 입술에 빨강을 칠한다. 빨강은 굳은 결의와 죽음을 상징한다. 과거 독립투사들은 거사에 앞서 손가락으로 혈서를 써서 결의를 굳게 다졌다. 노동자들도 파업 때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가다듬으며 머리에 빨강 띠를 두른다. 사망하면 호적에 빨강 줄을 긋는다. 전과 경력 또한 빨강 줄이다. 빨강은 악귀를 몰아내는 신통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동짓날에는 빨강 팥죽을 쑤어먹는다. 서원이나 향교에는 빨강 문(홍살문)을 세웠다. 점집이나 사찰에서 발급하는 각종 부적도 빨강이다. 다가올 사고를 조심해야 하므로 빨강 신호등이 켜지면 자동차를 세워야 한다.경기장에서 비신사적 행위를 한 선수에게 심판에 내미는 것도 빨강(레드) 카드다. 언필칭 악귀야, 썩 물렀거라다. ‘좌파’들의 ‘불온서적’도 ‘빨강 책’이라고 했다. 19금 도색잡지 또한 빨강 책으로 비유했다. 마녀사냥을 당한 사람에게 찍는 낙인도 ‘빨강(주홍) 글씨’다. 그림 속의 경고문도 아주 그냥 순전히 빨강이다. 담배 한 대를 맛나게 피우며 비탈로 꺾어진 ‘급커브길’을 지나다가 이렇게 빨강 일색인 경고문을 발견한 운전자는 과연 거기 적힌 대로 ‘천천히 운행’해서 ‘골재’나 ‘토사’가 ‘쏟아지지 않도록’ 더 조심하게 될까. 의문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6-13 23:02

삼시끼니를 모두 챙겨 먹는 집이 별로 많지 않다. 아침은 과일이나 빵조각으로 대충 때운다. 점심은 식당에서 해결한다. 집에서 차려 먹는 반찬도 조금씩 사다 먹는다. 아파트 상가마다 반찬가게 하나쯤은 다 있다. 마트나 백화점에도 없는 반찬이 없다. 맛도 좋다. 번창일로다.동네 반찬가게 이름 중에는 ‘장모’나 ‘처가’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것들이 많다. ‘장모님 손맛’, ‘장모님 반찬가게’, ‘친정엄마 손맛’, ‘처갓집 반찬’, ‘친정어머니의 정성’ 같은 것들이다. ‘시어머니’나 ‘시댁’을 갖다 쓴 이름은 찾을 수 없다. 대형 식품 제조업체 상표가 붙은 반찬 포장지에서도 ‘시어머니 손맛’이니 ‘시집 전통의 맛’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식당 이름도 마찬가지다. ‘장모님 곰탕’, ‘장모님 김치찌개’, ‘장모님 밥상’, ‘처갓집 된장맛’ 같이 써 붙인 걸 자주 발견하게 된다. ‘처갓집 양념치킨’이나 ‘장모님 치킨’이라는 프렌차이즈 상표까지 있다. 그 옛날 어느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서 기름에 튀겨준 적 있었는지 모르겠다. 음식점 상호가 거두절미하고 ‘처갓집’인 곳도 여럿이다.어느 반찬가게 간판 한쪽에 ‘친정엄마의 정성으로 반찬을 만듭니다’라고 적힌 문구를 보았다. 반찬을 주로 사 가는 딸들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서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딸 내외에 대한 친정엄마나 장모의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이고 반찬이니 믿고 잡수시라는 얘기일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결혼한 딸과 아들이 있는 어머니는 장모이면서 동시에 시어머니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시어머니’나 ‘시댁’이라는 이름은 맛있는 음식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사위한테 음식을 해먹일 때는 온갖 정성을 다하니까 없던 음식 솜씨까지 저절로 생기고, 며느리한테는 대충 해서 먹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시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아파트 관리실에 맡긴 반찬이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풍속을 개탄한 어느 신문기사가 갑자기 떠오르는 건 또 무슨 까닭일까. ‘장모님 설렁탕’이라고 적힌 어느 음식점 간판을 바라보다가 조목조목 떠오른 생각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6-06 23:02

‘객기(客氣)’라는 말이 있다. 공연히 부리는 호기다. 무모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했던가. 그 또한 일종의 객기다. ‘객기’의 ‘객(客)’은 무슨 뜻인가. ‘손님’ 아니면 ‘여행을 떠난 사람’이다. 손님이나 여행자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바로 객기다. 그러니까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도 객기다. 객기는 용기의 원천이다. ‘뻔뻔하다’는 말도 있는데 이건 좀 다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적반하장’이다.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뜻이다. 방귀 뀐 사람이 큰소리치는 것하고 다르지 않은 이치다. 그러므로 뻔뻔한 것과 객기 부리는 건 크게 다르다. 잘못한 게 없으면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다.“누가 보면 어때요? 다 남인데…” 어느 광고 카피다. 바로 그거다. 나 아니면 누구나 남이다. 낯선 곳에 여행을 왔으므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없던 자신감까지 저절로 생기게 만드는 것이 객기다. 그뿐인가. 객지에 나가면 영혼도 자유로워진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데는 그런 까닭도 있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객지 술’이 으뜸이라고 힘주어 강조하는 술꾼도 적지 않다.“주변에 고백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딱지 맞을까 봐 겁나니까 가만히 있어야 돼요? 그건 아니지요. 민주주의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거 여러분도 잘 아시지요?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표현 아닙니까? 그러니까 가서 고백을 하는 거예요. 나, 너 사랑한다. 우리 사귀자. 단, 고백을 하되, 민주국가에서는 거절할 수 있는 자유도 있으니까 상대방이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그 사람의 소중한 자유를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나는 거예요. 어때요, 하나도 어렵지 않죠?”방송인 김제동이 강연 자리에서 대학생들에게 들려준 말의 일부다. 예의를 지킬 줄 아는 것, 진중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시민의 기본적 덕목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객기도 부려보는 것이다. 이토록 환장하게 화사한 봄날에는 특히….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5-29 23:02

‘친오빠도 아니고, 친척 오빠도 아니고, 사귀는 오빠도 아니고, 모르는 오빠도 아닌, 자신과 미묘한 관계에 있는 오빠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쓰는 호칭.’ 대학로 어느 전봇대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아는 오빠’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오빠’가 그만큼 흔해졌다는 뜻일 것이다.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땅의 수많은 여자 대학생들은 ‘조용필 오빠’를 제외하면 아무한테나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자 선배는 ‘선배님’이라고 가리키고 불렀다. 서너 살 차이가 지는 선배한테 즐겨 쓴 호칭은 따로 있었다. 바로 ‘형’이었다. 남자들끼리 쓰는 그 ‘형’이라는 말을 여자들이 입에 달고 살았다.요즘에는 남자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는 대학생 또래의 여자들은 없다. ‘남친’이나 ‘여친’은 애인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이 또한 아무한테나 쓰지 않는다. 대신 과거에는 거의 금기시했던 ‘오빠’를 남자선배들에게 주저 없이 갖다 붙인다. 집집마다 하나나 둘만 낳고 말기 일쑤여서일까. 친오빠가 귀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선배도, 직장 선배도 오빠다. 그렇다고 친오빠만큼 친근감을 느끼거나 ‘어린 아빠’라는 뜻으로 쓰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 호칭을 쓸 때의 전후 맥락을 살펴야 진짜 오빠인지, 선배인지, 장래를 약속한 애인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빠’는 본디 손아래 여자가 손위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 어원을 ‘어린 아빠’에서 찾는 이도 있다. 동요 의 ‘서울 가신 오빠’는 애틋하고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아내의 나갈 길을 지키라고 했던 의 오빠는 또 아빠처럼 듬직했을 것이다.며칠 전 5·18 광주항쟁 기념식장에서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던 이가 있었다. 추모사를 마친 뒤 대통령의 품에 안겼던 김소형 씨는 “아버지의 품처럼 따뜻했다.”라고 말했다. 이 땅의 수많은 그녀들의 피맺힌 아픔을 아버지처럼 기꺼이 안아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대통령의 모습에서 ‘국민오빠’를 떠올린 건 나 혼자뿐이었을까.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5-22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