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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퇴진 전북 비상시국회의’는 매주 도민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비상시국회의 상임대표 4인 중 한 명인 이세우 목사(57)는 “이번 도민총궐기는 도민들이 함께 참여한 이 시대의 시민혁명이라 말할 수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결을 시민의 힘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 목사는 이번 도민총궐기를 계기로 전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또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큰 힘을 얻었다고 평했다. 이 목사를 만나 그동안의 비상시국회의 이야기와 향후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비상시국회의가 주도한 도민총궐기대회가 계속 열리고 있습니다. 이 협의체의 출범은 어떻게 계획했습니까.“기존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박근혜 정권의 정책을 평가하며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간헐적으로 비판적인 입장들을 내왔습니다. 국정교과서와 GMO, 위안부 합의 등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며 여러 단체도 함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석달 전 최순실 사건이 터지자 이 문제는 한 단체가 중심이 돼 대응하기에는 너무 중대하다고 판단, 도내 여러 단체와 협의한 결과 함께 힘을 합쳐 대응하자는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처음에는 3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였고 최근에는 70여 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내 여러 단체가 결합하는데 어려움도 있었을텐데요.“도내에서도 기존에는 박근혜 정권이 정책적 잘못을 했을 뿐 근본적 잘못은 아니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정권 퇴진과 관련해서도 서로 입장이 달랐죠. 최순실 사건 이후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권 퇴진만이 답이라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이후에도 퇴진 방식에 대해 이견이 많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 단체 대표들이 모여 단체의 크기와 영향력과 별개로 일방적 강요 없이 모든 단체가 동의할 때 행동하자고 마음이 모였고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자주 모이다 보니 어색함과 과거의 앙금이 사라지고 한 단계씩 나아가는 방향으로 간격이 좁혀졌습니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도민총궐기대회에 많은 이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셨나요.“기존 집회들을 볼 때 이렇게 많은 도민이 나오실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전북지역 사회단체가 모두 모여 함께하는 집회는 처음이기 때문에 앞서 총궐기를 기획했던 서울이나 다른 지역의 집회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지금의 사태와 집회는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에 우리 지역에서만 독자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많은 시민이 모이게 된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저는 중·고등학생과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집회를 관망하던 청년들이 중·고등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동참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시민에게 외면받던 언론 매체들이 이러한 상황을 보도하면서 예상보다 더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계속 보도를 하니까 그 모습을 본 도민들도 집회에 폭발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참여자가 늘수록 주최 측의 고민도 적지않았을 것 같은데요.“학생들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안전문제로 학교 측과 마찰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했음을 알게 됐고 원하는 학생의 경우는 무대에서 발언 기회를 주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무턱대고 분노하고 당위적으로 주장만 했었는데 청중과 호흡을 맞추고 유머와 위트를 섞어가며 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한 단체는 도민들에게 무대만 제공할 뿐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러한 방침에 반발하는 단체도 있을 것 같은데요.“처음 시국회의를 결성할 때 정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단체들이 공평한 목소리를 듣고, 우리가 도민들을 위해 무대는 마련하지만 절대로 앞에 나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국회의가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면 호응도 있겠지만 반발하는 시민도 있을 수 있다는 게 모든 단체의 판단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단체의 목소리는 배제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습니다. 정당과 정치인들의 무대 발언을 수용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현 시국이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 동력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떨어진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 이룬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치지 않고 도민들 누구 하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물론 주최 측도 도민 여러분의 의견을 계속해서 반영해야겠죠. 도민총궐기 시간과 장소를 변경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농촌문제, 환경문제, 교육문제 등 사회 참여를 많이 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텐데요.“신학대학원 시절 농촌 문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농촌을 떠나는 농민과 자살하는 농민이 많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왜 그같은 현상이 생기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어 지역에 내려와 함께 농사도 짓고 생활하면서 농업의 기반인 땅,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 문제들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직접적인 참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요.“처음 완주에 왔을 때 인근 중학교가 폐교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을에서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 자체의 활기가 떨어지게 되죠. 마을 주민과 학교, 교육청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힘을 실어주는 주민들도 생겨나고 선생님들과 가까운 지역의 주민들도 도와줘 학생 수를 점차 늘려갔습니다. 현재도 그 학교가 폐교되지 않고 계속 운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활동들을 이어나가실 생각이십니까. “이번 계기를 통해서 더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 청년들은 낭만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성찰을 통해 제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현재 한쪽으로 치우쳐진 부의 왜곡을 해결하고, 낮은 수준이라도 사회 기반들이 도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진다면 우리 지역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당장은 경제적으로 다른 곳보다 어려울 수 있어도 그 어떤 지역보다 큰 힘이 생기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다지는 일에 제가 도움된다면 어떠한 활동이든 계속 할 계획입니다.”● [이세우 목사는] 농촌 관심 갖고 활동하다 지역 사회문제 뛰어들어1959년 서울에서 5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이세우 목사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원까지 서울에서 마친 서울 토박이다. 1989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농촌에서의 목회 활동을 위해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다니다 전북에 무작정 내려와 정착했다.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들녘교회에서 목회자로 활동하며 직접 농사도 짓는다.농촌 빈곤과 자살 문제 해법을 고민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를 고안하고, 친환경 농법을 이용한 생산도 하고 있다.학교 급식에 유기농 농산물을 공급하는 방식을 끌어냈고 이는 농촌 마을 주민들의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 시스템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그 후부터 전북 지역 사회문제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농촌, 교육, 사회문제 활동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이 목사는 지난 2009년 ‘전북 녹색연합’을 설립해 지역사회 환경문제에도 앞장서고 있다.현재 한미 FTA 기독교 대책위원회 대표, 한국종교연합 전북대표, 반 GMO 상임대표, 교육발전 민관협력위원회 위원장인 이 목사는 최근 전북 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획 | 천경석 | 2016-12-26 23:02

라승용 농촌진흥청 차장은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해 37년만에 1급까지 오른 인물이다. 김제출신인 그는 농촌진흥청 공공기관 지방 이전 초대추진단장을 맡아 전북혁신도시의 농업분야 R&D 기관의 집적을 이뤄냈다. 농촌진흥청 이전은 전북혁신도시 농생명연구단지가 조성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라 차장은 연말이면 40년 6개월 간 몸담아 왔던 공직을 떠난다. 전북출신으로 처음 농촌진흥청 차장에 오르기까지 우려곡절도 많았다.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라승용 차장은 40년 공직생활 동안 보람된 일도 물론 많았지만, 그 만큼 아쉬운 점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공직을 떠나는 심경과 그 동안의 소회, 한국농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오랜 공직생활을 마치는 소회가 누구보다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농촌진흥청을 떠나시는 느낌이 어떠신지요.“일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지난날 내 발자취에 대해 돌아보니 만족보단 아쉬움이 남습니다. 막상 공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오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반성과 일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된 일과 가장 후회됐던 일은 무엇입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40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정말로 이 일만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농촌진흥청의 전북이전에 온 힘을 쏟은 것이죠. 혁신도시 사업은 참여정부시절 낙후된 지방을 살리는 한편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됐습니다. 저는 농촌진흥청에서 초대지방이전단장으로 오면서, 제 자리를 걸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맡으면서 온갖 비난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전북혁신도시에 제대로 자리 잡은 농촌진흥청과 산하기관 시설을 둘러볼 때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제가 연구직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위한 연구를 많이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연구서비스와 행정지원파트에서 보냈습니다. 연구에 깊이 빠져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어떤 위치에 가서든지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병해충 방재기술, 친환경 농약개발 등 당시에 하고 싶은 연구들을 못해본 것이 미련이 남습니다.“-앞서 말씀하셨다시피 농촌진흥청의 전북이전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혁신도시 사업이 시작될 때, 정부는 농촌진흥청 본청을 비롯한 7개 소속기관을 각 도에 하나씩 따로 이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과 같은 연구기관은 흩어지면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에 저는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모든 기관의 집단이전을 주장해 관철시켰습니다. 특히 본청을 전북으로 올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투쟁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라승용이 고향전북에 업적을 세우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 등의 숱한 오해와 음해도 많이 받았죠. 농진청이 수원에 자리잡은 지 52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는 것은 단지 시설과 직원의 공간적·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농업연구의 역사와 전통·정신을 새로운 연구시설과 청사에 담아 전북혁신도시로 옮겨 농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세계적 농업연구의 중심이 될 새로운 농업연구 메카를 만들고자 한 것이지요. 우여곡절 끝에 이전이 완료된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저와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에 입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저는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장학금을 받고 김제농고에 진학했습니다. 그 당시 농고는 3학년이 되면 실습을 통해 취직했죠. 저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포기하고 서울에서 농림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 후 합격했습니다. 그 후 못 이룬 꿈을 위해 일을 하면서 방통대 학사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와 보니 어언 40년이 지났습니다.” -공직사회에서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셨는데요. 후배 공직자 분들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흙수저·헬조선 등 노력이 타고난 스펙을 앞지른다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래도 아직까진 열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의 인사권은 당신이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다’고 말입니다. 누가 인사권자로 오든지 간에 농촌진흥청의 경우 논문과 각종 실적이 승진의 기준이 됩니다. 최근 ‘멘토’라는게 유행했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멘토가 누구였냐고 많이 물어봅니다. 저는 ‘내가 만난사람 모두 멘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배웠습니다.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고 꾸준한 열정을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내 인사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발전하길 바랍니다.” -공직을 떠난 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은퇴를 앞두고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네요. 저는 아직 현직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능력을 한국농업발전을 위해 쓰자’는 다짐입니다. 정년이 다가오니까 몇몇 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제안도 왔습니다만, 저는 후학양성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자칫 연구활동을 오래 떠난 제가 ‘낡은 학문’을 가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농진청 국장급 이상 퇴직 동기들하고 뜻을 같이 한 것이 있습니다. 전북에 남아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우리의 재능을 기부하자고요. 저는 전북에 온 사람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저는 수원에 있던 집을 다 정리했습니다. 전북에 남아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가끔 찾아와서 ‘차장님 이제 노는 것 좀 연습하세요’라고 하는데 천성이 놀지 못하는 체질인가 봅니다.”● [라승용 차장은] 근성·뚝심으로 9급서 1급까지라승용(59) 농촌진흥청 차장은 김제 출신으로 김제중앙초, 김제중학교, 김제농고(현 김제자영고)를 졸업했다. 영농학생으로 학비를 절약, 각종 장학금을 받으며 김제농고를 졸업한 뒤 1976년 농림직 9급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첫 발령지로 국립 부산생사검사소에 발령받은 그는 군 전역 후 국립자재검사소에 잠시 머물다 농촌진흥청 농약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연구원의 삶을 시작했다. 고졸 신분으로 농림부에 9급 공무원으로 들어온 후 방송통신대를 10년 동안 다녀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농진청 본청 연구기획과장과 정책과장에 이어 참여정부 시절 농진청의 전북 이전을 총괄하는 지방이전지원단장을 역임했다. 그 후 본청 연구정책국장과 국립축산과학원장에 이어 지난해부터 국립농업과학원장으로 일했으며, 지난 2013년 제24대 차장으로 임명됐다. 라승용 차장을 대변하는 단어는 ‘근성’과 ‘뚝심’이다. 라 차장은 열등감을 열정의 원천으로 삼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40년 인생을 농업발전에 바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기획 | 김윤정 | 2016-12-19 23:02

침체일로에 빠져있는 태권도계를 일신할 새 지도부가 꾸려졌다. 선두에는 전북 익산 출신의 최창신(72) 신임회장이 있다. 그는 국가대표 출신이면서 문화체육부 차관보를 지내 엘리트와 생활체육 태권도를 관장하는 데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선소감도 “체육계에서 태권도의 위상이 높아지고, 세계에서 한국 태권도가 무시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 만큼 현 체육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태권도계는 최 회장이 어떤 역할을 해줄 지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생활속의 태권도 정착, 태권도계의 적폐 청산 등을 강조했으며 무주 태권도원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제28대 대한민국태권도협회장으로 취임했는데 소감 한말씀 부탁합니다.“27대까지는 시·도 협회 및 가맹 연맹을 대표하는 20여 명의 대의원 투표로 회장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사상 처음으로 지도자, 선수, 심판, 일선 도장 관장 등까지 선거인단으로 포함된 선거에서 선출됐습니다. 엘리트 태권도와 생활태권도가 합병된 이후 처음으로 회장선거를 하게 돼서 특이한 방식의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새로운 장이 시작된 것입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이 이전하고 상당히 다르다고 느낍니다.”- 문화체육부 차관보, 대한체육회 이사 등 많은 자리를 두루 거쳤습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 태권도를 통합 관장하는 데 적격이라는 평가입니다.“정부에 있을 때도 엘리트 체육이나 국민 건강을 위한 체육 쪽에 늘 신경을 써왔지만 시대적인 여건 때문에 많이 부각되진 않았습니다. 사실 해보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인구감소와 불경기 악재로 도장의 아이들이 계속 감소하는데 행정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도보단 생활 속에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태권도 기본동작은 근육을 완만히 발전시키고 폐활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노인을 위한 체육활동이라든지 태권도를 활용한 다이어트 프로그램 개발 등을 방향으로 잡고 연구해 볼 계획입니다.”-체육부 차관보를 지낸 행정가로서 어떤 태권도 행정을 표방하고 있습니까.“선수육성에 중점을 두고 힘쓰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2020년 올림픽 출전 선수가 이미 정해진 세계연맹의 규정은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랭킹포인트 제도 때문에 우수한 신인을 발굴해 훈련시키는 것이 벽에 놓여 있습니다.”-태권도계가 뿌리깊은 반목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과 돈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관원이 늘고 돈이 쌓이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점진적이고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예산 1원이라도 합리적인 부분에 쓰고, 규정과 행정행위를 원칙과 상식에 맞게 해야 합니다. 아직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반드시 개혁할 것입니다.”- 협회장 취임 공약으로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동승보호자 탑승의무 폐지, 국가대표선발 및 훈련 체계 정비, 심사제도 개선 등 3가지입니다. 이유는 뭔가요.“동승자 제도 의무화는 대부분의 도장에서 자발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타면 태권도 사범이나 관장이 반드시 동승합니다. 월급을 줘야 하는 성인 동승보호자를 굳이 둘 이유가 없습니다. 영세한 도장에서는 생계유지 하는 데도 빠듯합니다. 국가대표 선발과 훈련체계도 과학적인 부분이 필요합니다. 특히 훈련체계가 그렇습니다. 지도자로 하여금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팀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게 첫걸음이라 봅니다. 심사제도는 다소 잡음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규정과 행정행위를 원칙에 맞고 상식적으로 만들어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밖에 대회를 이상적으로 치르기 위한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기장의 크기나 구조가 경기를 하기엔 적절치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매트도 부족하고 규모도 적습니다. 태권도 붐을 조성하기 위해 주로 지방에 개최권을 많이 주는데, 선수도 보호할 수 있고 관중도 흡족할 수 있는 체육관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일단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시설 개선이 필요합니다.”- 제한된 범위 내의 시설 개선이란 뭔가요.“경제여건 상 막대한 돈을 들여 곧바로 고치긴 힘듭니다. 일단은 경기장 문화부터 고쳐야 합니다. 경기가 없을 경우 관중이나 관계자가 신발이나 슬리퍼를 신고 매트 위를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분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매트는 태권도 선수들에겐 안방과 같은 곳입니다.” - 내년에 무주에서 내년도 세계태권도 대회가 치러집니다. 향후 과제는“무주는 태권도의 성지를 자처하면서 태권도원을 만들고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태권도와 연관성이 있는 전북이 큰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나 대회를 찾는 선수단이 편하고 안전하게 경기를 마쳐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또 관람객을 위한 교통이나 숙박을 어떻게 준비하느냐도 관건입니다. 즉 세계를 향한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본을 보이는 기회이고, 나라로서나 전북을 봐서도 중요한 행사입니다. 다행히 전라북도에서는 유소년 초등학생 중학생 유소년 대회를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좀 더 발전된 노하우를 붙이면 잘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태권도협회도 무주 대회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하겠습니다.” -무주에 있는 태권도원에 대해 평가해주신다면.“유럽에서 온 세계태권도 연맹관계자들하고 방문할 때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안정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어떤 목표 의식을 가지고 어떤 용도로 쓰기 위해 지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태권도에 있어서 전북의 위상은. “한국 태권도가 본격적으로 경기단체로 시작한 게 1961년입니다. 그 때부터 55년이 지났는데 초창기 때 1960년대 중반에는 국가대표 선수단을 구성하면 제일 핵심주력멤버가 전북 선수들이었습니다. 이승완 대한태권도협회 전 회장, 최형렬 전 경희대 교수 등 쟁쟁했었습니다. 과거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지만 현재는 많이 평준화됐습니다.● [최창신 회장은] 선수 출신 드물게 행정 노하우 겸비최창신 신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72)은 익산 황등면 출신이다. 청소년 때 상경해 경기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이후 고려대학교 영문과, 한양대 석사, 고려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려대학교는 체육 특기생이 아니라 직접 시험을 치러 입학했다. 최 회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1960년대 말까지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다. 전업운동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학업을 병행하며 선수활동을 하느라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는 선수시절 뒤돌려차기와 옆차기를 잘했다. 전국대회 우승을 했고, 국가대표로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해 가라데 등 세계 여러 격투기와 겨루기도 했다. 대학졸업 후 서울신문 기자, 체육부 대변인·지도국장, 문화체육부 차관보를 거쳤으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2002 한-일월드컵 사무총장, 대한체육회 이사, 태권도신문 고문, 국기원 이사, 서울FC유나이티드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세계태권도연맹(WTF)상임고문으로 위촉됐으며, 전자호구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체육행정 고위공무원의 노하우를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도 국내 태권도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잘 아는데다 해법도 갖고 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 태권도를 통합 관장하는 새 협회의 수장으로는 적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함께 타고난 부지런함과 유관기관과의 유대관계도 원만해 그가 기본정책으로 내세운 태권도 지도자들의 신분과 권익보장, 도장활성화 사업 등도 무난히 추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기획 | 김세희 | 2016-12-12 23:02

칼바람 부는 이맘때면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종성 회장(72)은 더욱 바빠진다. 이 회장은 전주시 덕진동 종합경기장 사거리에 사랑의 온도탑이 설치되는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석 달이 기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한국 정치와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이 회장은 “그 중 가장 기초 체력이 약한 전북지역의 기부가 출렁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이종성 회장으로부터 그동안의 소회와 전북공동모금회 운영방향 등을 들어봤다.-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전북공동모금회)’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시죠.“공동모금회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완하는 대표적인 민간 지원단체입니다. 작년 전북도 모금액이 총 144억3189만 원이었는데 올해 이 성금으로 저소득층 집 지어주기, 긴급지원, 사회복지시설 차량 배분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희망 2017 나눔 캠페인’이 시작됐는데 그동안의 경과는 어떻습니까.“희망 2017 나눔 캠페인 출범식을 통해 연말연시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주시 덕진동 종합경기장 사거리를 가보면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져 있는데, 도민들이 올해 목표액(59억8000만원)의 1%인 5980만 원을 기부하면 1도가 오르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2일 현재 6.1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요동치는 ‘최순실 게이트’ 가 기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최근 어지러운 정국의 여파로 지난해보다 기부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전국적으로도 현재 모금액이 전년 동기의 13% 수준에 불과한 수치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북은 올해 열흘가량 앞당겨 집중 모금에 돌입했음에도 전년 동기 모금액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군산 조선업계의 위기가 지역 기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군산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현대중공업과 OCI, 한국GM 등 군산지역 기업들이 줄줄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전북지역 기부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기업들인데 가장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익산과 완주의 산업단지 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합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할 혜안이 있습니까.“역설적이지만 전북의 기부 비율은 독특합니다, 다른 시도의 기부 비율은 기업 70%, 개인 30%인데 전북은 개인 70%, 기업 30%입니다. 기업이 부족해 기부 비율이 낮은 것은 슬픈 현실이지만, 개인의 비율이 높은 점을 잘 살려야 합니다. 즉 십시일반 도민들이 힘을 합하면 위기의 돌파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는 얼마나 되나요.“5년 이내에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개인 기부자를 ‘아너 소사이어티’라고 일컫는데 전북지역에서는 언론 공개를 꺼리긴 하지만, 10월 말 최철 21세기병원장님이 28호 아너로 가입해 주셨습니다. 전국에는 1300여 명의 아너 가입자가 있는데, 전북의 아너 회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예비 아너 소사이어티들도 있다고 들었는데요.“아직 언론 공개가 되지 않았지만, 온라인 여성의류 쇼핑몰 (주)육육걸즈 박예나 대표와 전라북도상공회의소협의회 이선홍 회장이 각각 29호, 30호 아너로 가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12월중 가입식이 열릴 예정인데 올해 전북에서는 총 10명의 고액기부자를 배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언론인 출신이신데, 공동모금회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공동모금회가 운영된 지 올해로 18년이 됐습니다. 18년 전에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공동모금회 배분분과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 참여했는데, 그렇게 인연을 맺어 지금의 회장직에 이르게 됐습니다.”- 내년에 기대해볼 만한 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전기세 등 에너지사용량을 줄일 때마다 생기는 마일리지를 기부하는 ‘탄소포인트제 기부’가 있습니다. 또 기부자가 급여에서 자동으로 기부금이 공제되는 ‘착한 일터 캠페인’이 있습니다. 현재 전북도청, 전주시의회, 현대차 전주공장, 세아베스틸, 군산의료원 등 79개 기관 1만1392명이 참여 중인데 도내 개인기부 비율이 높은 풀뿌리 기부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도민들께 하실 말씀이 있다면.“전북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경제가 어렵고 나라도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국민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때일수록 우리 주변엔 항상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던 도민 여러분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 이웃들의 따뜻하고 희망찬 내일을 위해, 도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이종성 회장은] 오랜 언론생활 후 행복 전도사 변신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종성 회장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고와 중앙대 심리학과를 졸었했다. 1969년 서해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1971년 기자로 전직했으며, 1974년 전주MBC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취재부장, 편집부장, 보도제작팀장, 기획홍보부장, 심의홍보부장, 보도제작국장, 보도위원 등을 거쳤으며 전주영상축전(CIMA) 사무국장, 전주게임엑스포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금강방송(주)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현재 고문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2년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에 취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이 회장은 “전주시는 서농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를 중심으로 기부 문화가 깔린 좋은 도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며 “공동모금회는 보이지 않은 천사로부터 시작해 얼굴을 나타내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도민의 힘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에게 ‘배려·나눔·행복 바이러스’ 전도사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획 | 남승현 | 2016-12-05 23:02

지난 8월 취임한 정황근(56) 농촌진흥청장은 “전북혁신도시 정착단계가 끝나는 시점에 왔다”며“전북에서 새로운 각오로 한국농업의 도약을 위해 온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국립농업과학원을 포함해 국립식량과학원·국립원예특작과학원·국립축산과학원 등 산하기관의 전북혁신도시 이전이 모두 완료됐다. 농촌진흥청 이전으로 종자산업 R&D 인프라 구축을 위한 김제 민간육종단지와 익산 국가식품 클러스터 등이 연계되면 전북은 명실상부한 농업생명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GMO재배지를 개방하는 파격행보에 이어 국정감사를 받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한 정 청장은 농산업 신(新)가치 창조와 지속 성장을 위한 ‘TOP5 융복합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정황근 농촌진흥청장을 만나 그 동안의 소회와 함께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취임 후 바로 국정감사를 소화하는 등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전북혁신도시에서 석달간의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이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영광스러우면서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우선 그 동안 혁신도시 이주가 채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현장 중심의 농업 연구개발 보급에 애쓰신 전임 이양호 청장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북은 전통적인 농도입니다. 전북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은 농업 발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단 것입니다. 이 열정을 토대로 전북이 농생명 연구의 신성장 동력 메카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국정감사서 지적됐듯 아직까지 연구를 위한 연구, 현장과 괴리된 기술개발, 일선의 기술보급 기능 약화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제 농촌진흥청은 그동안 이뤄놓은 바탕에 더해 ‘TOP5융복합 프로젝트’를 중점 추진해 농업을 첨단 산업으로 육성하고 실제 농업과 연계된 연구개발보급에 박차를 가할 방침입니다. 또한 전북도와 긴밀한 협력으로 지역농업 발전을 위한 노력 또한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논란에도 불구하고 취임 후 그동안 언론에 개방하지 않았던 GMO 연구현장을 개방하셨습니다. 개방의 취지는 무엇입니까.“유전자변형작물 연구에 따른 지역주민과의 오해의 장벽을 깨고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당장은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GMO개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농촌진흥청은 GMO시험재배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해왔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신뢰를 위해 환경영향조사는 정부합동으로 실시하는 한편 지자체와 지역주민에게도 참여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GMO 연구는 기존 육종기술로 해결이 어려운 기상이변 등에 대응해 전 세계에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우리나라가 기술종속국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미래를 대비한 기술력과 육종소재 확보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은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절대로 유전자 변형 작물의 일반 재배는 실시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앞에서 언급하셨듯이 ‘TOP5 융복합 프로젝트’를 출범하셨습니다. 청장 부임 후 가장 중점사업이라 볼 수 있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 ‘TOP5 융복합 프로젝트’는 농산업의 미래성장 산업화와 수출 산업화, 경쟁력 제고, 농업·농촌의 활력 증진 등을 포괄하는 사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농산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를 위해 스마트팜, 빅데이터, 무인이동체 등의 연구를 추진해 ICT 융복합 첨단 기술농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식의약 기능성 소재, 바이오신약, 종자 등의 연구를 통해 BT기반 그린바이오산업을 육성해 치유농업, 반려동물, 식용곤충, 도시농업 등 유망 신산업을 키운다는 전략도 포함됩니다. 쌀 공급과잉에 따른 쌀값 하락 대응책도 결국 Top 5 융복합 프로젝트와 직결 됩니다. 쌀 재배면적은 매년 2%씩 줄고 있지만, 쌀 수요량은 그보다 더 많이 감소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밀처럼 세포구조가 둥근 쌀 품종을 개발하고 도정기계도 맞춤형으로 새로 개발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개별 연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을 평가했지만 이제는 넓게 보는 융복합이 중요합니다. 농촌진흥청은 ‘Top 5 융복합 프로젝트’를 통해 뛰어난 성과를 도출할 경우 직원들에게 인센티브와 승진·승급 등으로 적극 보상할 방침입니다.”-도널드 트럼프의 미국대통령 당선으로 수출 농가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저장·유통 기술 확보가 중요합니다. 항공운송보다 물류비용이 1/3 수준인 선박을 이용하면 수출 경쟁력이 생기는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선도 유지입니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은 수출현장의 애로해결 기술지원과 수출농산물 안전선 확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농가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서 지역특화품목을 육성하고, 해상운송 선도유지기술 개발을 통한 한국농산물의 신뢰도 확보가 중요합니다. ”-요즘 농업의 6차 산업화가 화두입니다. 어떻게 육성시켜나갈 계획이신지요.“농업의 6차 산업화는 농촌지역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고용을 창출한다는데 의미가 깊습니다. 6차 산업 농가의 소득은 일반농가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이를 촉진하기 위해 시범농가 참여 확대와 6차 산업 우수 경영업체의 비즈니스 성공사례를 확산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농진청의 전북이전 완료로 지역경제 생산 유발효과와 고용창출을 견인할 것이란 기대가 높습니다. 지역상생발전을 위한 계획은 무엇입니까.“공무원 시험의 특성상 지역대학 출신자에 대한 우대는 없지만, 전북이전 후 전북지역 대학 졸업자들의 응시율과 합격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정규직은 공채와 경력채용을 병행하여 선발하고, 농업연구 현장에서 시험연구를 보조하는 인력은 전북도민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지역인재 채용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지자체는 물론 지역 교육기관과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무한한 가치를 가진 새만금과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육성을 위해 김제 민간육종단지 조성에도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농촌진흥청과 전북지역의 상생발전이 현실화하면 전북은 명실상부한 농생명산업의 메카로 발전할 것을 자신합니다. 이를 위해 전북도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정황근 농촌진흥청장은] 기술관료 출신 농정 전문가, 업무 시야 넓고 추진력 강해정황근 농촌진흥청장은 기술관료 출신의 농정 전문가다. 충남 천안 출신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국방대학원 국방관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정 청장은 1984년 기술고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해 농림부 농촌인력과장, 총무과장, 친환경농업정책과장, 혁신인사기획관, 대변인, 농촌정책국장, 농업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또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과 청와대 농축산식품 비서관을 역임했다.정 청장은 업무 시야가 넓고 선이 굵으며 업무 추진력도 강하다는 평이다.그가 새 수장으로 취임한 이후 농진청 안팎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일고 있다. 조직문화는 연구 성과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정 청장은 취임 직후 빠른 조직 장악력을 보이며, 직원들로부터 원칙이 확실하고 강단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획 | 김윤정 | 2016-11-21 23:02

지난 2006년 2006-2007 ISU 쇼트트랙월드컵대회 이후 10년 만에 전북에서 대규모 국제 체육 행사가 개최된다. 전북 무주에서 열리는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태권도 성지인 무주 태권도원이 2014년 개원한 뒤 세계 태권도인과 함께하는 ‘첫 집들이’이기도 하다.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이종석 사무총장은 집들이 준비로 분주하다. 특히 이번 집들이는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한 전체 206개국을 초대할 계획이다. 지난 3월 22일 사무총장으로 정식 임명된 후 230일이 지났고, 2017년 6월 22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 전까지 227일이 남았다. 정확히 중간 지점에 와있는 셈이다.그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유치 이전에는 전북도 대외협력국장으로 유치 업무를 총괄하고, 유치 이후에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개최 준비 업무를 도맡고 있다. ‘박치기왕’ 김일(1929~2006)이 피나는 훈련을 통해 트레이드 마크인 박치기를 완성했듯, 그도 맨땅에 헤딩하면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완성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이종석 사무총장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준비 현황과 향후 과제 등을 들어봤다.-태권도와의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요즘은 초등학생이 태권도를 배우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1960년대에는 태권도장 다니는 것이 흔치 않았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접하고, 고등학교 때 초단을 땄다. 당시 김일 선수가 유명했는데, 태권도장 시멘트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열심히 이마를 단련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는 전북도 대외협력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유치 실무를 담당했다. 이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부임하면서 유치 이후의 개최 준비까지 맡게 됐다.”-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유치 활동 막판에 터키 삼순과 경쟁이 치열했는데.“대회 유치 기간이 한두 달로 짧았다. 2월 말 유치 의향서를 제출했고, 5월 10일 개최지가 결정됐다. 그런데 2월 26일 아버지께서 작고하셨는데, 2월 28일 유치 의향서 제출 마감날 터키 삼순이 접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우리나라는 2011년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이어 6년 만에 또 유치전에 뛰어든 반면 터키는 처음이었다.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외국에서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부담이 컸다. 유치 활동 당시 터키 한국영사관을 통해 터키의 유치 의지나 열기 등을 파악하려 했다. 그런데 이를 ‘종주국의 압력’으로 오해한 터키 측의 반발과 세계태권도 유럽연맹의 항의로 한때 위축된 적이 있다. 그러나 전북도지사가 러시아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추진 의지를 호소하면서 유치 활동한 점이 주효했다. 터키 측은 태권도 관계자만 오고, 고위 관계자나 단체장이 방문하지 않아 대비가 됐다.”-당시 제안한 조건은 잘 이행하고 있나.“유치 활동 시 제안 조건은 경제 곤란국 선수를 위한 점심·저녁 식사 비용 등 지원 방안, 집행 위원 초청 비용, 세계태권도청소년캠프 개최 등이다. 현재는 약간 변형해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 곤란국 선수 점심·저녁 식사 비용 지원을 태권도 기반 취약 국가 초청 및 연수 프로그램으로 변경했다. 통상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전체 206개국 가운데 140개국 내외가 참여했다. 2011·2013·2015년까지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곳이 46개국, 2011·2013·2015년간 한 번 참석해 참석 여부가 불투명한 곳이 24개국이다. 이들 70개국을 초청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가·연수시키는 것이 목표다. 세계태권도선수권 조직위원회는 한시적인 조직이지만, 태권도 진흥·보급이라는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현재 어느 수준까지 준비됐나.“우리나라가 태권도 종주국이니 이번 대회를 역대 대회보다 알차고 짜임새 있게 치러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지고 있다. 취임 후 6개월간은 조직·예산·사업 등 기본적인 틀을 확립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전북은 1997년 동계 U-대회와 2006-2007 ISU 쇼트트랙월드컵대회 이후 사실상 국제 대회 경험과 노하우가 없다. 조직위에 파견된 공무원도 경험이 부족해 타 지역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관련 전문가와 토론하면서 대회 추진 방향을 모색했다. 또 WTF, 대한태권도협회, 전북태권도협회 등 태권도 단체와 교육청,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더 나아가 경기뿐만 아니라 한국과 전북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로 생각하고, 개·폐막 공연과 부대행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준비 과정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단일 종목 대회도 세계대회를 하려면 적어도 개최지를 3~4년 전에 선정한다. 그러나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기획재정부 승인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유치 의향서를 제출한 뒤 사후 승인을 받았다. 절차를 밟을 시간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뜻이다. 충분한 신청 기간을 주고 준비하도록 해야만 대회의 의미를 전달하고, 지역 예산 확보 등과 관련해 대회를 활용할 수 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도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한 만큼 최소한 4년 전에 개최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2023년 열리는 세계잼버리는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7년간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무주 태권도원은 국비 등 2500억원이 투입됐다. 6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불리함을 안고 유치 활동에 뛰어든 이유는 무주 태권도원 활성화에 있다. 동쪽 태권도원, 서쪽 새만금, 가운데 전주한옥마을을 전북의 관광 거점으로 삼아 국가시설을 조속히 활성화해야 한다.”-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끝나도 상징시설 건립, 민자유치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계기로 무주 태권도원이 안고 있는 미비점, 문제점을 계속 노출해 활성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대회를 유치한 것은 태권도원 활성화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태권도원 개원 초기에 국내·외적인 관심을 갖게 하는 하나의 작업이다.”-전북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태권도가 스포츠 경기로 자리 잡은 시발점은 1963년 전주에서 열린 44회 전국체육대회다. 이 전국체전을 계기로 태권도가 혼자 하는 무도가 아닌 공식 경기가 된 것이다. 태권도가 무도에서 경기로 전환한 것은 오늘날 태권도가 세계화하는 데 가장 큰 전기로 평가된다. 또 전북 태권인에 의해 호구와 경기 기술 등이 개발됐다. 전북이 종주도인 셈이다. 태권도 성지인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리는 대회는 여러모로 태권도 종주도인 전북에 큰 의미를 지닌다. 많은 도민들이 대회 기간 태권도원을 방문해 태권도 정신과 한국인의 자긍심을 현장에서 느끼길 바란다.”● [이종석 사무총장은] 문화·예술·체육·대외 홍보 분야 베테랑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이종석 사무총장은 문화·예술·체육, 대외 홍보 분야의 베테랑이다. 그의 주요 경력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는 고창 출신으로 고창고와 전북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고창군 문화공보실장, 전북도 문화예술과장·문화체육관광국장, 익산시 부시장, 전북도 대외협력국장·의회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3월 22일에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6월 명예퇴직했다.그는 전북도 간부로 재직하던 시절, 김완주 전 지사와 송하진 지사의 리더십 철학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송 지사는 공심·균형 감각·조감 능력, 김 지사는 타이밍·홍보를 강조했다”며 “특히 김 지사는 타이밍과 관련해 ‘망건 쓰다 장 파한다’, 홍보 미흡과 관련해 ‘비단옷 입고 밤길 걷는 격’이라는 속담을 쓰면서 타이밍과 홍보의 중요성을 설파했다”고 회고했다.이에 더해 그는 수비적인 입장을 강조한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 절차 이행, 사전 협의를 통해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받으라는 뜻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공직 생활을 관통해왔다. 언론이나 의회의 지적도 늘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고 믿어왔다.이 같은 신념으로 문화·예술·체육, 대외 홍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의 유치부터 개최까지 총괄하게 됐다.1992년 정부 모범 공무원 표창, 2001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기획 | 문민주 | 2016-11-07 23:02

△창극 ‘이성계, 해를 쏘다’ 공연 △학술세미나 ‘지나온 30년, 함께 할 300년’ 개최 △개원 30년사 발간 △보존자료 복각음반 ‘풍류방의 명인들-송영석의 판소리와 신쾌동 거문고 산조’ 제작 △국악원 소식지 복간호 발간. 전북도립국악원이 개원 30주년을 맞아 굵직하게 펼쳐내고 있는 사업들이다.지난 28일 전국 최대 규모의 예술단을 운영하고 있고 대통령상을 14번이나 수상한 단원을 배출한 도립국악원의 수장, 곽승기 원장을 찾았다. 곽 원장은 “지난 30년을 바탕으로 다가올 국악 300년을 꽃피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먼저 도립국악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펼친 주요 사업 가운데 가장 인상깊은 행사는 어떤 것인지요. 또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지요.“단연 개원 30주년 기념공연, 창극 ‘이성계, 해를 쏘다’ 공연입니다. 86명의 국악원 예술단원 및 스텝, 각 분야 50여명의 객원이 투입된 대형작품입니다. 도민들의 크나 큰 성원 덕분에 지난 15~16일 한국소리문화전당 모악당에서 1500여 명의 관객이 찾은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단원들이 뛰어난 맨 파워를 발휘했으며 무대 장치와 장면 전환 등도 돋보여 전북을 대표하는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갈등과 서사의 조화 부족으로 작품 전반부 지루함을 유발한 점, 공연내용과 영상의 불일치 등을 보완해 내년에 도내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며 내후년에는 타시·도 공연도 추진할 계획입니다.”-다른 30주년 기념 행사도 평가해주시죠.“ ‘지나온 30년, 함께 할 300년’ 주제로 지난 6월 29일 전북대학교 건지아트홀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 도립국악원 30년의 활동과 과제, 예술단의 발전방안, 국악교육 중심기관의 위상과 역할 등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또 국악원 개원 30년사를 다룬 책 〈지나온 30년, 다가올 300년〉을 내달에 발간 예정입니다. 국악원 발자취와 이야기보따리, 사진으로 보는 30년 등이 수록됩니다.국악원 보존자료의 복각음반인 ‘풍류방의 명인들 - 송영석의 판소리와 신쾌동 거문고 산조’도 제작했습니다. 서봉 허순구 선생이 자신의 풍류방에 국악 명인들을 불러 직접 녹음한 릴테이프를 복각한 것으로 국악 학계에서 매우 뜻 깊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악원 소식지인 〈국악이을〉도 복간했습니다.” - 국악원의 가장 큰 과제가 우리의 음악인 국악의 활성화라고 생각됩니다. 국악을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계획이 있는지요.“송하진 지사가 사철가 등 단가를 멋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멋지다’, ‘품위 있다’, ‘나도 배워야겠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실 도민들에게는 국악에 대한 친숙함이 배어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악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곁에 전해오면서 익숙함의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색하다가도 한 번 보고 두 번 접하다 보면 흥이 생기고 신명이 납니다.이러한 친숙함을 바탕으로 도민에게 다가가는 다양한 공연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시·군지역의 공연장 규모에 맞게 공연계획을 수립하고 지역 축제에 맞춰 다양한 공연을 추진하겠습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군에 대해서는 지역 실정에 맞게 찾아가는 공연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다문화가족, 노인복지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에도 출장 공연을 진행하겠습니다.”-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만.“국악은 한 번 접해본 사람이 친밀감을 갖고 공연장을 찾는다든지 소리나 악기를 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국악을 접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에 운영하는 국악체험교실을 확대하고, 각종 공연에서 학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교육청과도 협의해 나가겠습니다.”- 우리 소리나 악기를 배우는 것도 우리 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국악 교육 활성화 방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국악원에서는 현재 성악, 현악, 관악, 타악, 무용 등 13개 과목 90개 강좌를 진행, 매일 1543명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국립국악원에서도 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 지역만의 특화된 교육시스템입니다. 또한 지난 30년 동안 연수생 7만558명을 배출했으며 국악체험교육에는 145개 단체·9100명, 청소년 국악교실과 찾아가는 국악연수에는 100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국악원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사이버 국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악원 개원 30주년을 발판 삼아 향후 국악원이 중점 추진할 사업 계획은.“주위의 전통국악인의 소리를 찾아내고 보전하는데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명인·명창들의 보존자료를 복각한다든지, 명인들의 삶을 구술을 통해 정리, 국악의 과거와 미래를 잇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단원 근무환경 개선과 질 높은 작품 제작 여건의 조성을 위해 연습실을 확대하는 한편 공연 홍보 및 마케팅 분야의 전문 인력을 확충, 우리나라 국악교육 중심기관으로서 위상과 역할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소중한 우리 음악이 널리 퍼질 수 있길 가장 간절히 원하고 있을 터인데 바람이 있다면.“무엇보다도 도민들이 국악을 배우고 공연장을 찾아주는 것입니다. 전북도립국악원이 전국 최고의 예술단체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국악인들의 노고와 열정도 있었지만, 그동안 국악원을 찾아 국악을 배우고, 공연장을 찾아주신 도민들의 덕이라 생각합니다. 명창들도 고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고수 2.명창’ 이라고 말한 바 있으나 이제 관객이 없는 공연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도민들이 국악원을 찾아 국악을 배우고 일상에서 국악을 즐기는 한편 명인·명창 ‘명무들이 꾸미는 국악 공연장을 찾아 추임새도 넣어 주면서 격려해주길 당부 드립니다.”● [곽승기 원장은] 순창부군수 재직 때 메르스 원활히 극복올해 1월 부임한 곽승기 도립국악원장은 임실 출신이며 전북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온화한 성품으로 국악원 내외에서도 명망이 높다. 임실군에서 처음 공직을 시작, 서울사무소장, 순창부군수를 거쳤다. 전북도 예산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용자원 확보를 위해 전국 최초로 재정사업자율평가를 실시했으며 순창부군수 재직 때에는 순창읍 장덕마을에서 발생한 메르스를 원활하게 극복했다는 평도 받았다. 온라인 강좌로 단소를 배웠다는 곽 원장은 즉석에서 한 소절을 불기도 했다.곽 원장은 앞으로 도립국악원장으로 있으면서 전통 국악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의 시류에 맞는 국악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획 | 진영록 | 2016-10-31 23:02

지난 10일 취임한 진홍(58) 전북도 정무부지사는 “민선 6기가 뿌린 씨앗을 거둘 때“라며 “중앙정부에서 쌓았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전북도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재직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했던 진 부지사는 탄소산업을 예로 들며 “전북이 경쟁 우위에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 부지사는 “전북에서 처음으로 공직을 맡게 돼 부담이 크다”면서도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고향에서 일하면 보람도 더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진 부지사를 만나 도정의 현안과 과제, 정무부지사로서의 포부 등을 들어봤다.-전북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입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전주가 고향이라 자주 왔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부담도 큽니다. 정무부지사를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고민이 많았었는 데 부친께서 권유하신 것도 있어서 내려왔습니다. 고향 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전북의 경제 여건이 어려워 일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럴수록 잘하면 더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앙부처에서만 30년 가까이 공직에 몸 담았습니다. 최우선했던 가치가 무엇입니까.다른 사람보다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부하 직원 등에게 뭔가를 요구할 때, 항상 스스로를 먼저 돌아봤습니다. 모든 일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일도 잘 풀렸습니다. 취임사를 통해 말했듯이 조직 구성원간 신뢰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내겠습니다. 멀리 조감하는 능력에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눈을 길러 도정의 변화를 선도하겠습니다. 또, 항상 협업하며 함께 하는 직장문화를 만들겠습니다. 이젠 똑똑한 리더가 이끄는 시대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융합하고 협업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정무부지사의 방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일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나 고민을 나누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열린 정무부지사가 될 것입니다.”-전북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산업 기반 자체가 열악합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산업자원부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었는 데, 지금은 이런 정책들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이 시점에선 전북이 경쟁 우위에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합니다. 전북에는 농업 분야에서 관련 연구기관들이 다수 있고, 산업 쪽에서는 자동차가, 신산업 분야에서는 탄소산업에 대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농·산업 기반들을 육성해 지역발전을 꾀해야 합니다.”- 앞으로 도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시는지요. “실질적으로 국제교류·협력을 비롯해 언론·전북도의회 대응 등 대외 업무를 맡습니다. 특히 도의회와 언론은 도민들의 의사가 표출되는 곳입니다. 도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 도민의 의사에 맞는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힘을 쏟겠습니다. 이를 위해 각 유관기관간 진정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또, 도정 현안별로 빠른 업무 파악을 통해 지지부진하거나 동력을 상실한 사업의 문제점을 진단할 것입니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현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또,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도정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도정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분야가 무엇입니까.“새만금입니다. 새만금개발은 국책사업으로 정부에서 맡아 추진해야 할 국가의 중요한 미래사업인 데, 내부 개발이나 기업 투자 유치가 지지부진합니다. 정부에서 새만금 사업을 핵심 정책으로 삼아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선 정치력에 더해 의사결정자의 인식도 변해야 합니다.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내부적으로 새만금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살펴보고, 투자 활성화를 위한 해법을 모색하겠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계획한 대로 개발이 될 것이라는 ‘신뢰’를 투자자에게 심겠습니다. 탄소나 자동차산업 등 전북의 핵심사업의 추진과정상 애로사항에 대해서도 점검할 것입니다.”-탄소법 제정을 계기로 전북 탄소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습니다. “내년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탄소소재 융복합 기술개발 등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전북 핵심사업이 포함될 수 있도록 차질없이 대응하겠습니다. 또, 탄소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과제나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에 관련 위원회나 태스크포스(TF)팀과의 협업이 중요한 과제로 보입니다.”-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가 대두됩니다. 복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지방소멸은 국가적 문제인 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의 공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는 대책 뿐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으로 지역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역에서도 차별화된 기업 유치, 생산성 향상, 저출산·고령화 대책 발굴 등을 위해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홍 정무부지사는] 경제·산업분야 중앙 요직 거쳐전주 출신인 진홍 정무부지사는 전주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행정고시(25회)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그는 전북도 수습사무관, 총무처 사무관, 산업자원부 지역산업균형발전기획관,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지식경제부 정책기획관 등을 두루 거쳤다.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그는 2011년 12월부터 4년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을 지냈다.경제·산업 분야 중앙부처 요직을 두루 거친 진 부지사는 산업통상자원부 내 탄소산업 전담부서 설치를 비롯한 신성장 동력 산업 육성, 각종 국제대회 및 기업 투자 유치, 새만금 개발 촉진 등 민선 6기 도정 핵심 업무를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진 부지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최고의 생산성을 거둘 것”이라며 “반환점을 돈 민선 6기 전북도정의 성과 창출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진 부지사는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창의적 도정을 만들 것이다”면서 “중앙정부에서 쌓았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전북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돼 마음가짐이 남다르다”며 “기존 사업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정 역점 사업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진 부지사는 대대로 고창에 세거한 여양 진(陳)씨로, 부친은 전북일보 사장을 지낸 진기풍 선생이다. 또 진의종 전 국무총리, 진념 전 경제부총리,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진동섭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비서관 등이 일가다.

기획 | 최명국 | 2016-10-17 23:02

전북대는 오는 15일 개교 69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내년이면 지역 거점대학으로서 70년의 역사를 기록한다. 전북대는 그동안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토대로 긴 호흡 속에 중단 없는 성장,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창조적인 명품 브랜드 창출과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조성 등 ‘성장을 넘어 성숙’을 지향하는 대학의 비전도 구체화하고 있다.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이끌고 있는 이남호 총장을 만나 대학의 현재, 그리고 미래 비전을 들어보았다. - 최근 QS와 타임스 고등교육 등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의 세계 대학평가에서 연이어 좋은 성과를 내면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같은 성과가 있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나요. “대학 평가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연구와 교육 여건입니다. 교수들의 수준 높은 연구와 학생들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대학평가에서 부산대에 이어 국립대 2위라는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대학은 학생 1인당 교육지원비로 지난해 1633만 원을 썼습니다. 이는 서울대를 제외한 국립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학생 등록금의 4배에 달합니다.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거의 다 유치했기에 가능한 투자였습니다.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고, 이같은 투자를 통해 여러 평가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다시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취임과 함께 ‘모범생을 넘어 모험생을 키우는 대학’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로운 인재 브랜드를 제시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를 소개해 주신다면.“모험생은 스스로 일을 찾아 주변 사람과 협력하면서 새로운 방법으로 추진하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의미합니다. 우선 학생들이 이같은 대학의 비전에 대해 공감하고 스스로 역량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속속 나오고 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확산된 만큼 학생들을 해외에 파견해서 외국어와 함께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오프 캠퍼스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친환경 생태·경관 캠퍼스 조성 청사진을 밝혔는데,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요.“예산은 상당부분 확보했습니다. 대학의 하드웨어를 바꾸는 부분이어서 설계와 시공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업이 완료되면 대학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선 대학 정문에서 옛 정문∼덕진공원 구간의 인도가 숲으로 바뀌고 인도를 학교 안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추진됩니다. 이는 경계를 허물고 지역·시민과 하나가 되겠다는 의미로, 국내에서는 최초의 시도입니다. 또 캠퍼스와 건지산 사이에 4차선 도로가 지나가는데 이 곳에 생태통로를 만들 계획입니다. 아울러 한옥 정문 신축사업, 분수대 전통정원 조성사업, 그리고 박물관 앞 옛 연못 복원 계획도 있습니다. 대학과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한옥 정문은 내년에 상량식을 갖고 2018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명품 캠퍼스 조성 사업을 통해 대학에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요.“대학의 브랜드 창출입니다. 대학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브랜드가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대학에는 아직 없습니다. 각종 평가에서 우리 대학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평판도와 인지도입니다. 브랜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북대만이 할 수 있고, 그리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자는 생각에서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생태·경관 캠퍼스 조성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대학은 생태자원이 잘 갖춰져 있고 지역 전통문화 자원도 풍부합니다. 이같은 자원을 활용해서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전북대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생각입니다.”- 내년 개교 70주년을 맞습니다. 기념 사업의 의미와 방향을 설명해 주시죠.“ ‘70년의 성장, 100년의 성숙’이라는 슬로건으로 개교 7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미 학칙 기구로 개교 70주년 기념사업추진단을 조직했습니다. 기념사업은 대학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대학과 지역사회의 역량을 결집해서 미래 100년을 향한 포부와 비전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대학의 역사를 조명하고 또 이를 새로 세우는 과정입니다. 학문탐구와 인재양성 등 우리 대학이 가야 할 100년의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통도시와 캠퍼스의 조화 방향도 제시할 생각입니다. 도전과 모험, 봉사와 협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국제 교류·협력사업도 추진합니다. 이밖에 각종 학술행사와 출판, 지역민과 함께하는 공연 등 다채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학의 입학 정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무엇보다 외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유학생 관리를 위해 단과대학으로 가칭 ‘국제종합대학’ 신설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조만간 교육부에 신청해서 승인이 나면 2018년부터 운영할 계획입니다. 모든 유학생들을 국제종합대학으로 입학시켜 1년간 한국어 교육과 함께 전공탐색 기회를 갖도록 하고 2년 째부터 학과를 선택하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유학생들이 대학과 학업에 제대로 적응하도록 돕자는 취지이며, 국내 대학 최초의 시도입니다.” - 대학과 지역사회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전북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굳이 외국 대학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대학은 지역의 중요한 상품입니다. 전북대의 연구·교육 인프라와 위상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며,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명품 대학이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 도민의 관심과 성원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전북대, 캠퍼스가 달라진다이남호 전북대 총장은 취임 직후 전통문화 도시에 걸맞는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그리고 지역의 생태자원을 활용한 ‘생태·경관 캠퍼스’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대학의 역사를 복원하고 나아가 전북대만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대학과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대규모 한옥 정문과 한옥 구조의 국제컨벤션센터 신축, 중앙광장 조성, 건지산 도시숲 생태통로 조성 사업 등이 청사진에 포함됐다. 이같은 청사진은 그동안의 꾸준한 준비과정을 거쳐 개교 70주년을 맞는 내년 가시적 성과를 낼 전망이다. 대학 측은 올해 국비를 포함한 관련 사업 예산을 상당 부분 확보했고, 부족한 금액은 기부를 통한 발전기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조성사업△국제컨벤션센터 신축 - 총사업비: 187.6억원 - 용도: 컨벤션홀, 세미나실, 전시실, 레스토랑, 카페 등 - 규모: 지하 3층 지상 2층(6,000㎡) - 구조: 지상-한옥, 지하-철근콘크리트△한옥 정문 겸 큰사람교육개발원 신축 - 총사업비: 60억원(국비 35억원) - 용도: 교수학습개발센터, 교육과정개발 평가관리센터, RC교육센터, 인성예절교육실 등 - 규모: 지상 3층(900㎡) - 구조: 한옥+철근콘크리트△법학전문대학원 신축 사업 - 총사업비: 177.4억원 - 규모: 지하 1층, 지상 8층(9,000㎡) - 구조: 한옥+철근콘크리트△개교 70주년 기념 중앙광장 조성 - 총사업비: 49.8억원(국비 10억원) - 규모: 12,000㎡ - 사업내용 : 누각, 분수, 상징조형물, 보도 조성 및 차도 개선◇아트 그린 캠퍼스 조성사업△녹색예술의 거리(신정문∼구정문) 조성 - 총사업비: 6.5억원 (국비·지방비) - 사업내용: 예술의 거리 및 커뮤니티 공간, 유학생 콘테이너 매장, 산책로, 환경조형물, 가로등 설치△무장애 나눔길 조성 - 사업내용: 구정문~덕진공원간 보도 및 녹지를 활용한 무장애길 조성 - 총사업비: 8.6억원 신청(녹색자금:6억, 전주시:2.6억)△건지산 도시숲 생태통로 조성 - 사업내용: 전주천∼덕진호수∼건지산을 연계하는 생태녹지축 조성 - 위치: 학군단~ 건지산 사이 도로 - 총사업비: 40억원△박물관 앞 연못 복원 - 사업비: 3.6억원(2017년 국비 확보) - 규모: 1,000㎡ - 사업내용: 연못조성, 조경석, 조명 등

기획 | 김종표 | 2016-10-10 23:02

창립 30주년을 맞은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양영두(66) 위원장은 남다른 고향사랑과 전통문화 계승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본래 정치인으로 출발한 그이지만 최근 나이가 들면서 소충사선문화제 전통이 끊어질세라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추진하지 않고 주민이 발굴한 전설을 바탕 삼아 지난 30년간 성공적인 문화축제로 이끌어 왔기에 동정심도 생긴다.특히 초창기 20여년은 지자체 보조금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기부와 협찬으로 축제를 치러왔기에 그의 애착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소충사선문화제를 창립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임실군 신평면이 고향인 손주항 전 국회의원이 제 2대 도의원 시절 임실군민에게 사선문화제 창립을 선언했습니다.당시 지역 어르신들이 사선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신선들의 전설이 깃든 곳이라는 말씀을 들었다며 축제 창립을 결심했습니다.하지만 당시에는 손의원은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후로도 정치생활에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 저에게 진행해 줄것을 당부했습니다.1986년에 당시 이형로 전 군수님이 문화제 본부장을 맡으셨고 저는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창립 목적은 나라사랑과 고향사랑을 최우선으로 하고 전통문화 창달과 지역발전, 인재양성에 앞장선다는 내용입니다.당시에는 주민과 기업들의 기부금 및 협찬으로 이듬해인 1987년에 제 1회 사선문화제를 개최했습니다.”-소충사선문화제가 지역발전에 공헌했다면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선 농촌지역 주민들에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했다는 것과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린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섰고 향토문화의 보존과 육성에도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당시에는 민간인 주도의 문화축제가 도내에서는 전무할 정도였으나 사선문화제로 인해 진안과 무주,순창 등지에서도 다양한 전통축제가 추진됐다는 것입니다.당시만 해도 유명가수와 탈렌트, 영화배우 등 연예인들은 TV와 라디오에서만 보고 들었기 때문에 소충사선문화제 방문객은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임실고추와 치즈는 물론 각종 특산품 홍보도 병행된 축제여서 지역 홍보와 경제활성화에도 공헌했다고 생각합니다.특히 사선문화상은 전국의 유명인사를 대상으로 각 분야에 걸쳐 지방에서 시상하는 보기드문 사례로 생각합니다.”-문화제로서 자랑할 만한 치적이 있다면?“한국의 농악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중의 으뜸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임실의 필봉농악입니다. 소충사선문화제는 지난 30년간 전국농악대회를 통해 필봉농악의 참맛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했습니다. 또 농악대회에는 문체부장관과 교육부장관상을 유치해 품격을 높이고 농악의 진수를 전파하는 것에 공헌했다고 자부합니다.사선녀 선발과 향토음식, 임실고추 및 임실치즈와 함께 추석특집 등은 TV 생방송을 통해 전국에 임실을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장기간에 걸쳐 축제 운영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아는데요.“1회 축제시는 3000만~4000만원 정도가 소요됐는데 당시 손주항 전 의원의 지원과 축제위원회 임원 및 지역민의 협조로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이후 축제부터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도 연간 2000만원 정도를 지원했고 기타 국내 유명기업들의 후원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하지만 1999년부터는 소충제와 사선문화제가 통합되면서 자치단체의 보조금과 협찬금으로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문제는 해가 갈수록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최근에는 3억원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부득히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실정입니다.”-그동안 축제를 진행해 오면서 고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앞에서도 말했지만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후원이 요구됩니다.수년전까지는 보조금 50%와 자부담 50%로 축제를 이어 왔는 데 최근에는 보조금 30%, 자부담이 70%로 추진되고 있어 협찬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더욱이 최근에는 기업들도 경영상의 문제점을 들며 기부를 회피하고 있기에 갈수록 지원금 확보에 난항을 겪는 실정입니다.때문에 문화축제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 운영상의 불안요소 해소에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본인의 경우는 애초 정치인이기에 창립과정에서 추진하고 발판을 마련하는 교두보 역할에 그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정치는 뒷전이 되고 문화제 전통살리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그동안 문화축제를 이어 오면서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갖가지 억측과 음해, 무고로 수많은 고통도 겪었습니다.하지만 이제는 나이도 있고 정치야망도 시든 상태여서 오로지 소충사선문화제가 지역의 대표축제로 거듭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소충사선문화제의 개선점과 발전방향이 있다면 무엇입니까.“주민 주도로 지역축제를 30여년간에 걸쳐 추진한 사례는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임실에는 자랑할만한 문화축제가 치즈축제와 의견제, 소충사선문화제가 있습니다.치즈축제가 지역민의 소득향상을 위한 경제활성화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면 의견제는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불신풍조를 퇴치하는 충성과 의리를 널리 알리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소충사선문화제는 구한말 의병들이 구국일념으로 희생한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워 주고 사선문화제는 전통문화 계승과 고향사랑을 심어주는 군민화합의 주춧돌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이같은 축제들이 어느 한곳에 편중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도록 행정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요구됩니다.훌륭한 문화유산과 경제자원을 고루 갖춘 임실지역의 축제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미래의 후손들은 우리들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으로 확신합니다.”● [양영두 위원장은] 정치 오랜 꿈 접고 통일 사업에 주력임실군 관촌면 회봉리에서 태어난 양영두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위원장은 전주 중앙초등과 서울 양정중·고를 거쳐 방통대와 연세대 정치학 석사를 이수했다.졸업 후 손주항 전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근무 중 1980년 국회 해산에 따라 강제 해직되면서 광주민주화사건으로 모진 고문도 당했다.옥에서 풀려난 뒤에는 지인의 도움으로 당시 나산실업 전무로 근무, 기업운영에 앞장섰고 민추협 운영위원과 신민당 임순남지역 위원장도 맡았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민당으로 대선을 치를 때에는 전북도당 대변인을 맡았고 이후 4번에 걸쳐 국회위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임실군이 무진장 지역과 선거구가 통합된 뒤에는 현 정세균 의장과 당시에 맞섰으나 역부족, 이후에는 출마를 중단했다.현재 흥사단민족통일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통일사업에 주력하고 전통축제인 소충사선문화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기획 | 박정우 | 2016-09-2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