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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451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성하도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아니하므로 흘러서 내를 이루어 바다에 가느니’ 1449년(세종 31년)에 간행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2장에 전하는 내용으로 뿌리가 깊은 나무와 샘물이라는 자연물이 아무리 센 바람과 가뭄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찬란히 꽃을 피우며 시내를 이루는 강한 생명력처럼 조선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어진 전통이 깊은 나라라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무가 태어나고 성장하기까지 여러 선조들의 뿌리가 있었고 그 좋고 튼튼한 뿌리를 기반으로 나라가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과 열매가 성하다는 의미로써 조선 왕조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튼튼한 국가의 기반과 문화가 융성해 그 결실이 풍부함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청년 일자리·창업적 문화 지원 시급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현 사회는 어떠한가. 이제야 좋은 모종을 땅에 심어 뿌리가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듬는 상황으로 새 정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일 것이다. 그 중 가장 첫 번째가 청년의 일자리창출 및 창업적인 문화지원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 되어야 한다. 우리 세대는 새로운 직업 뿐 아니라 새로운 목적을 찾아 개혁을 해야 하는 세대이다. 과거에 존재하던 직장의 개념은 포화상태이며, 고여 있을 뿐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각 분야마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사업화하여 이를 통해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타 분야와는 달리 특히 예술 계통의 학문으로 진학하는 전공자들은 나름의 목적의식을 갖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예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현 사회 구조가 이를 모두 수용할 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 세대는 우리가 갈고 닦은 다양한 능력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개발·개혁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개개인 및 단체의 노력을 정부는 충분히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한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원하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열쇠이자 사회를 진보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청년과 장년 및 노년이 분리되어 있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것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바로 문화다. 문화는 한쪽으로 편향된 문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갖춘 제대로 된 ‘진짜 문화’로 거듭나야만 한다. 예향의 고장 전라북도와 문화선진도시 전주시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개발해 우리 지역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진짜 문화’ 도시로 우뚝 서야만 한다. 정부·지방자치단체, 청춘들 지원을뿌리 깊은 나무는 바로 청년 시절 마음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순수함과 열정이 아닌가. 그 목적의식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단발성으로 지켜만 줄 것이 아니라, 뜨거운 열정이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충분한 재정적 지원과 체계적인 정책을 통해 이 땅의 청춘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필자는 상반기 청춘예찬 칼럼을 집필하며 ‘개인’을 이루는 가장 극명한 시기인 ‘청춘’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펼쳐왔다. 변화의 시작은 작은 곳에서 이뤄지며, 튼튼한 뿌리를 내려 어떠한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땅 청춘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지역사회의 든든한 청춘 예찬론자로서 남고 싶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5-29 23:02

2015년 언제인지 모를 어느 날, 점점 몸이 약해지시는 엄마와 번듯한 직장도, 결혼생활도 않고 있는 자식들과 아직 어린 손녀까지 있는 집에서 오랜 시간 다니던 직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하러 나서시던 아빠의 가슴을 억누르는 책임과 압박의 무게는 과연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차가운 현실과 비슷한 모습 ‘예술가 신은미’라는 여섯 글자와 ‘돈’과는 놀랍도록 아무 상관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서른까지 나는 대학의 감투를 써오다 이제 막 예술가인척 하려던 당신의 백수 딸이었다. 나의 화려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 한결 한결에는 당신의 깊은 주름들이 패여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전주까지 홀로 뛰쳐나온 이유다. 예술가라는 잡기 힘든 꿈도 꿈이지만, 이제는 당신에게 고생의 주름보다 웃음의 주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그렇게 뛰쳐나온 처음 만난 예술가의 현실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내가 그린 그림을 살 때 만 원 짜리 한 장도 쉽게 쓰는 일이 없었다. 월세는 무서웠고, 만만하게 시작했던 현실 예술가의 길은 통장 잔고가 계속 0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던 어느 날 밤에 나는 마감을 하려던 나의 가게에서 작은 쥐며느리가 뒤집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뭇 분위기가 심각하다. 어쩌다가 몸이 뒤집어진 건지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얼른 휴지로 감싸서 버렸겠지만, 이번에는 자세하게 보고 싶어졌다. 꼭 전주 한복판에서 아등바등 하는 나의 모습 같았다. 온몸에 돋아있는 수많은 다리들과 더듬이가 그대로 드러난 채 발버둥치는 움직임이 신박하기까지 했다. 몸을 둥글게 움츠렸다 피는 반동을 이용해보기도 하고 한쪽 다리들만 움직여서 몸의 중심을 옮겨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지쳤는지 이따금씩 미동이 없어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금방 다시 그 움직임들을 반복한다. 한낱 미물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작은 생명체가 살기위해 꽤 현명하게 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수 분 동안 보고 있노라니 성공할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에는 내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고 어느 순간 진심으로 그 쥐며느리의 뒤집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져 결국 내 작은 힘을 보태기로 한다. 나에게는 힘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정도의 손가락 움직임이었지만 그로인해 그 쥐며느리는 생명을 되찾았다. 자유를 얻은 쥐며느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열심히 기어 내 손 옆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마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불과 몇 분 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 손이다. 나는 조심스레 종이로 그 녀석을 들어 올려 문밖의 편평한 땅위에 내려주었다. 징그러운 벌레에 불과했던 그 쥐며느리는 나에게 작은 응원가를 보내주고 있었다.할 수 있는데까지 혼자 힘으로 노력을누구든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있다. 그럴 때 금방 포기하고 남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 수 있는데 까지 혼자 힘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와 후자 중 누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로인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과연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왔나. 가장 하찮게 여기던 그 벌레 한마리가 준 감동을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느끼도록 행동했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 유사시 부모의 방어막 속에 숨어버리는 자라족, 그리고 일할 의지조차 없는 니트족이 매년 늘어가고 있다. 정부제도의 문제를 당당히 외칠 수 있을만큼, 앞서 그대는 노력으로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오피니언 | 기고 | 2017-05-22 23:02

사회생활을 할수록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또 그 속에서 많은 오해들로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을 때는 좋은 감정, 좋은 관계, 좋은 인연을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관계를 맺고 같이 지내다 보면 사사로운 오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잘 못 이해해서 생기는 오해,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잘못 전달되어 생기는 오해, 각자의 시선에서 상대를 바라보면서 생기는 오해 등 다양한 이유로 생기는 오해들로 인해 결국 관계가 끊어지거나 최악에는 적이 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사회생활서 대화하고 관계 맺기 중요그러면 이러한 오해들로 생긴 서로의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 사실 대부분 오해를 풀려고 시도하는 것은 대화이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가 오히려 오해가 더 커져 불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러한 경우는 오해를 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대화를 시도하면 그런 경우가 다반사 인 것 같다. 오해를 풀러 가기 전에는 먼저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바로 상대방의 배려, 상대방의 입장 등을 고려하며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잘잘못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은 오히려 오해를 더 키우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다 좋은 관계로만 지낼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오해를 잘 풀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더 나아가 관계를 잘 지속하는 능력이 있어야 사회생활에서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제는 오해를 풀고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사회생활에서 너무나 중요한 스펙이고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주변 사람들과의 트러블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관계속의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고 지친 삶을 살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을 찾아보면 인간관계가 빠지지 않는 항목으로 나온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것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어려움의 요인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성격의 문제, 의사소통의 문제 등 하지만 필자는 그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능력 이라고 본다. 보통 서로의 부딪힘이 생기는 이유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본다. 그러니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훨씬 더 원활한 관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상대방 배려하고 입장 존중해줘야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관계를 맺을 때는 우리 모두 긍정적인 목적, 이상적인 관계를 위해서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는 입장차이, 시선의 차이로 인해 반드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입장을 존중해주며 대화를 통해서 오해를 푼다며 반드시 아무리 큰 오해도 다시 화합하며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오해를 푸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끈끈해질 것이라고 본다. 관계를 맺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오해가 너무 많은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5-15 23:02

전주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KTX로 약 1시간 30분. 집인 인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또한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대학 진학 후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거의 매일같이 인천에서 서울, 왕복 3시간씩을 오갔던 나다. 그런 나였기에 전주에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인천 그까짓 거 하며 자주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가는 수준이라니. 며칠 전 역시나 두 달 만에 집에 올라갔다.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올라와놓고 엄마 얼굴 보자마자 맛있는 거 해달라는 철없는 딸내미의 주문에 엄마는 분주하게 장을 봐 오신다. 고작 2박 3일 머무는데 장을 두 번 보신다. 두 번째 장바구니는 고스란히 딸내미 챙겨 보낼 찬거리가 된다.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엄마의 마음무겁다고, 과일은 가서 사먹어도 된다며 챙기지 마시라는 말에도 이게 달고 맛있다며 한보따리 가득 우겨넣으신다. 이따 전주에 내려가면 비가 올 거라며 우산까지 내미시는데 그놈의 우산 챙기기는 어쩜 이리도 항상 귀찮은 건지. 마다하는 걸 엘레베이터 앞까지 나오셔서 챙겨가라는 통에 하릴없이 받아오며 투덜거린다. 그렇게 전주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 싫은 소리 들어도 내 새끼 비 맞게 하기 싫은 어미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툭 가라앉는다. 유리창에 새겨지는 빗자국과 함께 내 볼에 눈물길이 생기고 있었다. 난 여느 딸내미들처럼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수 적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매번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 하던지 간에 끝은 항상 비슷한 엄마의 잔소리로 마무리 되는 것이 싫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층 한층 벽을 쌓아갔고 그 벽으로 인해 끝없는 대립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난 그렇게 일정부분이 결핍된 채로 성장했고 그 결핍은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자주 연락드리는 것조차 익숙지 않은 나를 만들었다. 마냥 듣기 싫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당신만의 대화 방식이란 걸 이제는 안다. 엄마 또한 나의 그것과 닮은 결핍으로 인해 굳어진 연약한 사람이었으리라.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는 어미의 몸짓으로 이미 나에게 따뜻한 대화를 건네고 계셨다.항상 한결같이 나를 보듬어주시는 아빠. 말없이 내려오고 나면 저녁쯤 치킨 사왔는데 벌써 갔냐며 전화해서 아쉬워하시는, 언제나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주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은 존재. 전주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면 그냥 정리하고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제 일하며 잘 버티고 있는 딸이 대견해 허허 웃어 보이시는 당신. 무심한 딸보다 항상 먼저 전화하시어 자주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애틋해 고운 손수건에 고이 담아 심장 가까운 곳에 보관해놓고 당신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다.부모님을 보며 더 잘 되겠다고 다짐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가 생기면 내 새끼 때문에 더 힘을 내서 일을 하고 생활을 하게 된다지만 나는 부모님을 보며 내가 더 잘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와 방송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으시던 그 모습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처음으로 나를 믿고 응원해주신 그 모습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아마 지방에 홀로 떨어져 생활 해보지 않았다면 쉽게 알지 못했을 감정이었으리라. 아직도 녹록치 않은 전주생활이지만 지금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엄마가 싸준 반찬이 맛있어서 힘이 나서 그런지 오늘 일도 잘 풀릴 것 같다고 말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4-24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