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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76건)

여럿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음식점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상 위에 놓인 반찬 접시를 휘 둘러보고는 발길을 돌리면서 이렇게 한마디 툭 던졌다. “혹시 반찬 더 필요하신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그 말을 듣고 누군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보고도 모르나? 알아서 좀 갖다 주면 좀 좋아, 쯧쯧….” 이미 빈 반찬 접시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그 아주머니 말대로라면 이렇다. 더 먹고 싶은 반찬이 있으면 ‘이모!’든 ‘여기요!’든 ‘저기요!’든 주방에 대고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아무 반응이 없으면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가야 한다. 그게 번거롭거나 괜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남은 반찬이나 알뜰히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손님’이….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 김종환이라는 가수가 오래전에 불렀던 라는 노래의 일부다. 여기서 말하는 2인칭 ‘니’는 1차적으로 ‘사랑하는 그녀’일 터, 살아가는 동안 ‘나를 존재하게’ 하는 ‘니’가 어디 한둘일까.사랑에 빠진 이라면 당연히 이성인 ‘그’ 아니면 ‘그녀’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한테는 자식들이야말로 ‘존재의 이유’ 아닐까. 교사나 교수한테는 학생들이, 음식점 주인에게는 손님이 바로 ‘나를 존재하게’하는 ‘니’들이다. 정치인들한테 가장 확실하면서도 영구불변인 ‘니’는 국민일 것이고…. ‘사랑’에 대한 하고많은 정의 중 하나가 ‘as you want’ 아닐까 싶다. 자식이 바라는 부모, 학생들이 요구하는 교사나 교수, 손님이 먹고 싶은 반찬을 미리 챙겨주는 주인, 굳이 촛불을 들지 않아도 국민들이 아파하는 곳을 알아서 어루만져줄 줄 아는 정치인이야말로 ‘고객 만족’의 진정한 실천자일 것이다. 어느 음식점 벽에 걸린 ‘손님이 짜다면 짜다!’를 보고 두서없이 떠오른 생각이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8-22 23:02

순우리말 ‘딱’은 활짝 벌어진 모양 혹은 정확히 맞닿거나 들어맞는 모양을 가리킬 때 주로 쓰는 부사어다. ‘딱 벌어진 어깨’, ‘딱 맞는 옷’이 그런 예다. ‘앞을 딱 가로막다’나 ‘딱 붙은 포스터’처럼 굳세게 버티고 있거나 단단하게 들어붙는 걸 가리킬 때도 쓴다. 어떤 일을 단호하게 끊거나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낼 때도 이 ‘딱’을 쓴다. ‘딱 잘라서 거절했다’나 ‘딱 한 번만 용서한다’가 대표적인 예다.주로 용언을 꾸며주는 부사어 구실을 하는 이 ‘딱’은 서술형 어미 ‘∼이다’하고 결합해서 용언으로 쓰일 때도 있다. ‘그 일이 너한테는 딱인 것 같다.’가 그런 경우다. 그뿐 아니다. 의성어로도 자주 쓰는 말 또한 ‘딱’이다. 가벼운 게임에서 벌칙으로 가끔 애용하는 ‘딱밤’도 의성어를 활용해서 만든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딱’이 갖고 있는 이런 다양한 뜻을 적극 활용한 광고 문구가 있다.“칠 때 딱! 먹을 때 딱! 마실 때 딱! 놀 때 딱!” 야구깨나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귀에 익숙한 말일 것이다. 쭉쭉빵빵하게 생긴 젊은 여성이 몸에 딱 붙는 짧은 치마를 차려입고 나와 야구방망이를 반복해서 휘두르는 그 장면은 주로 야구 중계 광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방망이 속도만큼이나 ‘딱!’도 빠르게 반복된다. 그런 뒤 이런 마무리 멘트가 이어진다.“오빠 나랑 한 게임 딱?”정말로 야구를 ‘한 게임 딱’ 하자고 오빠한테 저런 눈길을 보내는 걸까? 액면대로라면 불과 7, 8m 앞에서 불쑥 날아오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야구공을 그 무거운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서 점수를 내는 게임일 게 분명한데, 설마 오빠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맞짱’을 뜨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평소 보아 둔 ‘오빠’의 신체 조건이나 운동 능력이 영 부실하다면 또 모르겠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야구 말고 다른 게임?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8-15 23:02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찢어진 청바지는 미련 없이 내다 버리거나 기워서 입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찢어진 청바지가 패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숫제 여기저기(심지어는 허벅지나 엉덩이 언저리까지) 잘(?) 찢어서 신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렸습니다.’ 맞다. 겨울이 찾아온 게 원인이고, 첫눈이 내린 게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눈이 내려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는 틀렸는가? 순서가 뒤바뀌었으니까? ‘당신을 보고 싶은 내 마음이 간절해서 이토록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이 또한 순전히 억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비가 쏟아진 원인이 당신을 보고 싶은 간절한 내 마음이라는 거니까. ‘내 마음’이 대자연의 섭리마저 뒤바꿔 놓았다고 했으니까. ‘얼큰한 해장국을 먹었더니 지난밤에 몽땅 마신 술이 다 깨는 것 같다.’는 애주가들이 흔히들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하지만 ‘해장국이 이렇게 얼큰할 줄 알았더라면 지난밤에 술을 몽땅 마실 걸 그랬다.’는 유머 감각이 풍부한 술꾼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가수 이문세가 부른 의 끝부분이다. 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자꾸 ‘올라간다’고 했다. 어떤가. ‘하얀 눈 하늘에서 자꾸 내려오네’라고 쓴 것하고 비교해 보라. 찢어진 청바지처럼 발상을 바꾼 문장이 때로는 훨씬 신선한 울림을 주고 있지 않은가.녹음이 짙은 느티나무 숲에서 안도현 시인이 쓴 시 한 대목을 떠올린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라고 했던…. 그렇다. 여름이 이토록 뜨거운 까닭은 삼복 절기나 기상이변 탓이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매미가 저토록 악을 쓰고 울어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8-08 23:02

커피가 생활에 뿌리를 깊이 내린 지도 꽤 오래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밥이나 김치일 것 같은데 사실은 커피라고 한다. 어느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수만 해도 10만 개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커피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믹스 커피와 카페 커피다. 1990년대 들어 대중화된 믹스 커피는 커피와 프림과 설탕을 섞어서 간편하게 타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전에는 입맛에 따라 스푼으로 각각의 양을 조절했다. 그렇게 탄 ‘양촌리 커피’를 마시고 찐 살은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아도 안 빠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코코넛에서 추출한 식물성 경화유지인 프림이 비만과 각종 실현관계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설도 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로 대표되는 카페 커피를 지금처럼 자주 마시기 시작한 건 아마 10여 년 전부터일 것이다. 웬만한 한 끼 식사 값에 버금가는 카페 커피는 종류도 맛도 다양하다. 에스프레소(espresso), 아메리카노(americano), 카페라떼(caffe Latte), 카푸치노(cappuccino), 카페모카(cafe mocha), 카라멜마끼아또(caramel macchiato) 등이 그것이다.“나는 가비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얼 먹어도 쓴맛이 났는데, 가비의 쓴맛은 오히려 달게 느껴지는구나.” 영화 에서 고종 황제는 그렇게 한탄한다.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아내 명성황후를 그리며 그는 커피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으로 즐겼던 이가 바로 고종 황제 부부였다는 항간의 ‘썰’도 있다.어느 한적한 카페 벽에는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고 적혀 있었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라고 했던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Charles-Maurice de Talleyr and)의 ‘커피 예찬’을 집약한 말이다.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감이 퍽이나 매혹적으로 여겨졌던 건, 악마에게라도 유혹을 당하고 싶어서였을까.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8-01 23:02

‘정이란 무엇일까 / 받는 걸까 주는 걸까 / 받을 땐 꿈속 같고 / 줄 때는 안타까워….’ 가수 조용필이 40년쯤 전에 불렀던 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정’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이라고 적혀 있다. 어쨌든 정은 인간 본성의 하나로서 다양한 행위를 만들어내는 속성을 지녔다. 사람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도 정이다. ‘정’은 종류도 다양하다. 붙기도 하고, 쏟기도 하며, 흐르다가 깊어지기도 하는 것이니 그렇다. 그중 가장 흔한 게 ‘온정’이다.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정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게 만드는 힘은 ‘열정’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게 오래 가지 못하고 식어 버리면 ‘냉정’해진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다 보면 ‘미운 정’도 들고 ‘고운 정’도 쌓인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있다. 분노가 극심할 때 가끔 입에 담는 말이다. ‘정’도 마찬가지다.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그게 지나치면 정이 거꾸로 솟아서 화를 버럭 내지르게 된다. 그게 바로 속 좁은 어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역정’이다. 떨어지기도 하는 게 정이다. 남녀가 헤어질 때는 일부러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정을 ‘떼려는’ 것이다. 그런 일을 자꾸 반복하는 사람한테는 나머지 정인 ‘정나미’가 떨어지게 된다. 물론 더 심해지면 ‘오만정’이 다 달아날 것이다. ‘덧정’이라는 것도 있다. ‘덧니’처럼 ‘더해지거나 덧붙은 정’이다. 한 곳에 정이 붙으면 그 주변 것까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정을 말한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고 했다. 바로 ‘덧정’을 이르는 말이다. ‘정을 쏟고 정에 울며 / 살아온 내 가슴에 / 오늘도 남모르게 / 무지개 뜨네….’ 앞서 언급했던 조용필의 은 이렇게 끝난다. 누군가에게 쏟든, 아니면 그 누군가 때문에 울든, 주든 받든, 결국은 내 가슴에 오늘도 남모르게 무지개 떠오르는 게 바로 ‘정’ 아닐까. 정에 굶주린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이들의 삶이 풍요로워 보이는 까닭이다.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7-25 23:02

형편이 어려워서 쇼핑을 꾹 참아왔던 여자가 모처럼 큰맘 먹고 백화점을 갔더란다. 호기심에 명품 브랜드 옷 매장을 들러서 요모조모 들여다보긴 했는데, 가격표를 보니 도대체 살 엄두가 안 나더란다. 매장 종업원 아가씨는 명품 백을 든 사모님한테는 상냥하게 안내를 해주면서도 자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더란다. 한참 뒤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 그 아가씨, 여자가 들여다보고 있는 옷을 시큰둥하게 설명해주더니 한마디 툭 던지더란다. “이건 좀 고가 제품이라 아주머니 같은 분이 구입하시기는 좀….” 그 소리를 듣고는 그 여자, 옷값을 즉석에서 12개월 할부로 긁어버렸다더란다.어느 한우고기 전문식당 간판을 올려다보니 ‘저희 업소에서는 5성급 이상 특급호텔에서만 사용하는 최고급 엄선된 고기만을 취급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거기 적힌 대로 최상급 품질의 한우고기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는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고기의 품질은 ‘5성급 이상 특급호텔’ 식당에서 소고기를 자주 먹어본 사람이나, 그 분야의 전문가 아니고서는 주인의 ‘처분’에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뭘까.간판에 적힌 문구에 배배 꼬인 눈길을 던지자면 대충 이런 뜻이 들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업소에서는 최고급 소고기만 취급하니까 값이 비싸다. 평소 5성급 이상 특급호텔에서 식사하시는 분들만 오시라. 큰맘 먹고 돈 한 번 제대로 쓰시고자 하는 분까지는 물론 환영이다….’ 상호로 쓴 ‘우미소’는 ‘소 우(牛)’와, 소리 없이 빙긋 웃는 걸 가리키는 한자어 ‘미소(微笑)’를 결합해서 만들었을 터. 전날 마신 술이 아직 덜 깨서였을까. ‘소가 웃을 일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었다. 간판에 그려진 소는 웃고 있지 않았는데도….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7-11 23:02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자비를 설파한 이는 부처다. 그 또한 근간은 ‘사랑’이다. 영어로는 당연히 love다. 한자어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는 이 ‘愛’를 여러 분야에 즐겨 써왔다. 애용품, 애국심, 애국가, 부부애 같은 말은 숫제 귀에 못이 박혀 있다. 그 옛날 호방한 선비들한테는 애첩(愛妾)이 있었다. 영화 제목 ‘애마부인’과, 북쪽 사람들이 즐겨 쓰는 ‘경애하는’까지 ‘愛’는 어디든 갖다 붙이면 좋은 말이었다.여자들 이름에도 자주 썼던 ‘애’는 두말할 것 없이 모두 ‘사랑 愛’다. 요즘에는 여자들 이름으로 ‘愛’는 찬밥 신세다. 촌스러워서일까. 그렇다고 예로부터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에 뿌리를 튼실히 내린 가운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게 최고의 미덕임을 철석같이 믿어 왔던 우리가 그 좋은 말을 함부로 내칠 리는 없을 터….여자들 이름에서 속절없이 밀려난 ‘愛’가 최근 들어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광고나 선전 문구가 대표적이다. ‘음악愛 빠진愛’, ‘가을은 독서愛 계절’, ‘나愛 사랑’ 같은 식으로 마구 쓰는 것이다. 그림의 ‘흡연 愛티켓 / 차茶에도 예절이 있듯이 / 흡연에도 예절이 있습니다’도 거기에 해당된다. ‘愛티켓’에 쓴 한자 ‘愛’의 뜻은 당연히 ‘사랑’이다. 이걸 우리말로 바꾸어 읽으면 ‘에’가 아니고 ‘애’다. 요즘 愛들이 한자를 아무리 몰라도 그 정도는 누구나 안다. ‘예의’를 뜻하는 영어 ‘etiquette’의 우리말 표준 발음 또한 ‘애티켓’이 아니라 ‘에티켓’이다.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서 한자말 ‘愛’를 우리말 ‘애’와 ‘에’로 모두 쓰기로 정한 적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愛티켓’이 무슨 ‘사랑(愛)을 나누는 티켓(ticket)’이라는 뜻도 아니지 않은가. 기왕지사 愛를 갖다 쓸 바에는 ‘흡연 愛티켓 / 차茶愛도 愛절이 있듯이 / 흡연愛도 愛절이 있습니다’와 같은 식으로 ‘愛’를 원 없이 쓰고 볼 일 아니었을까.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7-04 23:02

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한 사람이나 사물을 뜻하는 수식어로 ‘국민’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국민배우는 안성기, 국민가수는 조용필, 국민타자는 이승엽이라는 식이다. 국민야식은 치킨, 국민중화요리는 짜장면이다. 국민술은 모르긴 해도 막걸리보다는 소주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안주는? 입맛이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자리의 임자는 삼겹살이지 싶다.일찍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 아, 이것마저 없다면’이라고 쓴 바 있는 ‘국민시인’ 안도현의 두 줄짜리 짤막한 시가 그 증거라고 하면 논리가 좀 궁색할지 모르겠다. 하긴 쓰는 시 따로, 좋아하는 안주 따로이긴 한가 보다. 시인을 잘 아는 이의 귀띔에 따르면 그는 삼겹살보다 생선회를 더 선호하는 편이라니…. 그럼에도 시인이 소주와 삼겹살의 궁합을 맞춰 시를 쓴 까닭은 우리 술꾼들의 보편적인 취향이나 정서가 그러해서일 것이다.왜 아니겠는가. 직장 회식을 비롯한 여러 모임의 술과 안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건 누가 뭐래도 소주와 삼겹살이다. 특히 우리 술꾼들의 소주와 삼겹살 애호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들이객들이 피워내는 삼겹살 지글거리는 냄새는 어김없이 소주를 부른다. 소주 안주로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 게 채 30년도 안 되었다는 걸 요즘 젊은 술꾼들은 제대로 알기나 할까.삼겹살은 단백질과 산성 기름 덩어리이기 때문에 사실은 같은 산성인 소주하고 궁합은커녕 함께해서는 안 될 상극이라는 식품연구가들도 있다지만 그까짓 게 무슨 대수랴. 누구 말처럼 짜장면에는 단무지, 생맥주에는 치킨인 것을…. 시인의 발상처럼 가까운 이들과 정겹게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상추에 풋고추와 마늘을 얹고 쌈장을 발라 먹는 삼겹살이 없었더라면 이 땅의 술꾼들은 이 풍진 세상을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왔을까 싶기도 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 아, 이것마저 없다면’을 다시 읽는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는가, 이 시의 제목이 이라는 사실을….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6-27 23:02

‘안녕(安寧)’은 탈 없이 편안한 상태를 이르는 한자어다. 그 말에서 비롯된 ‘안녕하세요?’는 일상화된 우리 식 인사말이다. 역사적으로 외침이 잦았던 탓에 밤새 혹은 못 본 사이 별 탈 없이 잘 지냈느냐고 묻는 것이 반갑게 건네는 인사말이 되었을 거라는 항간의 ‘썰’도 있다. 하긴 요즘에도 밥 먹었느냐고 묻는 인사말을 버젓이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영어권 사람들은 시간대에 따라 ‘굿 모닝’, ‘굿 에프터눈’, ‘굿 이브닝’ 따위의 인사말을 쓴다. 이웃 대륙 사람들의 인사말도 그들과 꼭 닮았다. 아침에는 ‘자오샹 하오[朝上好]’, 오후에는 ‘씨아우 하오[午後好]’라고 한다. 밤에는 물론 ‘완샹 하오[晩上好]’다. 일본 사람들도 비슷하다. ‘오하요 고자이마쓰’, ‘곤이찌와’, ‘곰방와’로 나눠 쓰기 때문이다.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안녕하세요?’다. 그 다섯 음절로 정겨운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녕하세요?’는 밝고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건네는 게 좋다. 주저하거나 망설일 까닭이 없다. 물론 거기에 몇 마디 덧붙이면 금상첨화겠다. “안녕하세요, 선배님?”이라고 호칭도 붙이고, “와아…, 부장님, 지금 매고 계신 넥타이 정말 잘 어울리는데요?”라는 말까지 덧대면 친근감을 높여서 소통이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싶다.아랫사람이 인사할 때도 무뚝뚝한 어조로 “응.”이나 “그래.”라고만 대답하지 말 일이다. “역시 우리 박 대리의 패션 감각은 남다르단 말이야?”와 같은 몇 마디 말로 후배의 심장을 뜨겁게 데워줄 줄 아는 센스 만점 선배나 직장상사가 되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하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안녕하세요?’라면서 봄꽃 같은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는 이를 향해 이맛살을 구겨 보이는 일은 누구도 쉽지 않다. 어느 찻집에 들렀다가 ‘내가먼저 건넨인사 돌아오는 밝은미소’라고 적힌 문장을 발견했다. 전통적인 4·4조 음률에 전체 16글자짜리 그 빤한 내용의 표어가 왠지 정겨웠다. 세상이 밝아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일까?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6-20 23:02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빨강 ….’ 박성우 시인이 쓴 이라는 시의 일부다. 시인은 수많은 색깔 중 하나인 ‘빨강’으로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이미지를 시 속에서 재미나게 그려냈다. 빨강은 원초적이다. 빨강 불덩이 태양은 생명의 근원이다. 빨강은 신성한 권위의 상징이다. 괴테는 빨강을 ‘색의 왕’이라고 했다. 교황과 주교들의 귀여운 빵모자도 빨강이다. 은막의 스타들을 영화제에 이끄는 것도 빨강(레드) 카펫이다. 원수들이 의장대를 사열할 때도 빨강이다. 빨강은 사랑을 뜨겁게 달구는 심장이다. 사랑하는 그녀를 향해 불타는 사랑을 전달하는 데는 빨강 장미가 안성맞춤이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 했으니 빨강은 또 아름다움 자체다. 매혹과 유혹의 색이다. 에로티시즘이다. 야해 보이고 싶은 여인들은 입술에 빨강을 칠한다. 빨강은 굳은 결의와 죽음을 상징한다. 과거 독립투사들은 거사에 앞서 손가락으로 혈서를 써서 결의를 굳게 다졌다. 노동자들도 파업 때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가다듬으며 머리에 빨강 띠를 두른다. 사망하면 호적에 빨강 줄을 긋는다. 전과 경력 또한 빨강 줄이다. 빨강은 악귀를 몰아내는 신통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동짓날에는 빨강 팥죽을 쑤어먹는다. 서원이나 향교에는 빨강 문(홍살문)을 세웠다. 점집이나 사찰에서 발급하는 각종 부적도 빨강이다. 다가올 사고를 조심해야 하므로 빨강 신호등이 켜지면 자동차를 세워야 한다.경기장에서 비신사적 행위를 한 선수에게 심판에 내미는 것도 빨강(레드) 카드다. 언필칭 악귀야, 썩 물렀거라다. ‘좌파’들의 ‘불온서적’도 ‘빨강 책’이라고 했다. 19금 도색잡지 또한 빨강 책으로 비유했다. 마녀사냥을 당한 사람에게 찍는 낙인도 ‘빨강(주홍) 글씨’다. 그림 속의 경고문도 아주 그냥 순전히 빨강이다. 담배 한 대를 맛나게 피우며 비탈로 꺾어진 ‘급커브길’을 지나다가 이렇게 빨강 일색인 경고문을 발견한 운전자는 과연 거기 적힌 대로 ‘천천히 운행’해서 ‘골재’나 ‘토사’가 ‘쏟아지지 않도록’ 더 조심하게 될까. 의문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피니언 | 기고 | 2017-06-13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