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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315건)

△김덕남씨는 전주 용소초등학교장으로 퇴임했다. ‘물사랑 공모전’ 은상, ‘글벗문학회 공모전’ 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아람 수필문학회’ 부회장, ‘대한 문학 작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어디 가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집 아줌마가 방긋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저-기요” 나는 우물쭈물하다 건성으로 대답했다.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간다는 사적인 일까지 그녀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아, 네-” 하며 나의 무성의하고 애매한 대답에도 충분히 알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제 갈 길을 갔다. 그녀도 나에게서 명확한 대답을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라 그저 습관적이고 의례적인 인사치레에 불과했다.우리가 흔히 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전쟁이 잦았던 우리의 역사 속에 밤새 아무 변고 없이 잘 자고 일어났느냐는 뜻의 애환이 섞인 의식적 안부 인사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보면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인사말도 애환의 의미가 담겼지만, 꼭 식사를 했느냐는 물음보다는 친근감에서 통용되어오던 인사말이다. 우리가 주고받는 인사말 중에는 이같이 통념적인 인사를 주고받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데 ‘어디 가느냐?’는 인사말은 친근감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 인사를 받고 ‘굳이 개인적인 행보까지 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충 성의 없이 얼버무림을 할 때가 있다. ‘어디 가세요?’ 보다는 ‘옷이 잘 어울려요.’ ‘인상이 참 좋으세요.’ 등 가볍고 현실적인 인사를 해 주면 참 좋을 텐데 굳이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거나 참견하고 싶어 하는 인사말이 우리 세대의 인사다. 계산이 빤한 도시 깍쟁이보다 정이 넘치는 순수한 시골 아낙들일수록 더 그렇다. 재치 있고 경위 바른 젊은 세대들은 그런 일이 적은 편이다. 정말 궁금하여 가는 곳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타인의 목적지까지를 묻는 사생활 침해적인 그런 인사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서구 문화가 많이 접목된 요즈음은 ‘좋은 아침입니다.’ ‘반가워요.’ 등 밝고 경쾌한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런데 간혹 소비자 서비스 차원에서 아리따운 여인이나 멋스러운 남자가 느닷없이 ‘사랑합니다.’라는 닭살 돋는 인사말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어느 공공 기관과 통화를 했을 때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받고 무척 쑥스러웠는데 이제 그 인사말이 상점까지 심지어 우리 교회 신부님과 신자 상호 간의 인사로까지 발전되어 많이 익숙해졌다. 우리 일상에서 이렇게 습관화되지 못해 어색했던 인사말도 생활화되면 의식이 바뀌고 그 의미가 더욱 정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며칠 전 은행에 갔을 때였다. 촌로가 들어와 번호표를 뽑고 소파로 다가오더니 앉아 있던 또래의 노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이, 자네 여긴 어쩐 일인가?” 은행에 무슨 일로 왔는지 알고 싶어 묻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안 그 노인도 “응, 그냥 왔네.”라는 허망한 답변을 건넸다. 진정으로 궁금해 알고 싶었다면, 그런 대답으로 충분했을까?“언제 밥이나 한번 먹세.” 인사를 건넸던 노인은 또 부질없는 기약의 인사를 던진 뒤, 무관심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가 버린다. 그날 은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랫집 처녀와 마주쳤다. “유정 씨, 어디가?” “네. 안녕하세요?” 내가 묻는 인사말과는 아랑곳없는 인사를 던지고 해맑게 뛰어간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나 또한 무엇 때문에 남의 목적지를 궁금한 것처럼 물어봤을까? “안녕!” 또는 “잘 지냈어?”라는 적절한 인사말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사말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고,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영위하는데 필요하다. 따라서 인사말의 기본은 길이와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 인사말들은 무엇일까? 항상 서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6-23 23:02

긴긴밤 국민들의 손에 들린 촛불의 열매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논공행상이 이뤄질 무렵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분이 정권교체를 이루어 주신 것으로 제 꿈은 달성되었습니다. 정권교체는 갈구했지만, 권력은 탐하지 않습니다.”라는 감동적인 몇 마디 말들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신 분들…. 대통령의 패권이라는 분들이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그분들을 닮은 사례가 우리 고장에도 있었다. 90년대 전주시에 치매 병원과 보건소를 지어 시민들의 건강을 보살피려고, 치매 가족들의 짐이 버거워서 부양의무를 포기하려는 의도에서 전주에 국고를 지원받아 치매 병원을 신축하려고 보건소장이 복지부에서 받아온 국비의 덫에 걸렸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국고를 환수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이라도 나서서 그 일을 해내도록 하려면 내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상의가 다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4급 보건소장직을 버리고 어느 보건소 관리의사로 갔던 그분은 자신의 사생활보다는 먼저 시민들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기반 구축에 노력하는 지도자였다. 치매 병원이 시민들에게 줄 혜택을 생각하고 자기희생을 감수했다. 문 대통령의 패권이라 지칭되던 삼철도 “친문 프레임, 삼철 낡은 언어 거둬 달라.”며 스스로 사라지듯,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떠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는 말이 뇌리에 스친다. 대통령의 정치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떠난 멋있는 분들, 왠지 그분들의 뒷모습을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의로운 나라, 위대한 국민들의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국민이 이기는 통합의 나라,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를 염원했고, 그 품은 뜻을 이뤄냈으니 여한이야 없겠지만 떠난다는 것이 홀가분하기만 했을까. 생각하면 그때처럼 짠하다. 그 후 대통령 행보에서 ‘이런 대통령도 있구나.’ 감탄하며 보름이 지났다. 국민들의 빈 마음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새 정부의 인사 발표에 감동했다. 파격적인 탕평인사다. 사람마다 이번 대통령은 멋지게 잘해 낼 거라며 신뢰를 보낸다. 특히 인사가 만사라는데, 이번에 대통령의 10대 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성 평등한 대한민국”이다. 전에 여성 공무원들 근무하던 곳이 주로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 식품의약부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장관인사가 파격이다. 유엔 내에서는 입지전적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비외무고시 출신인 여성이 외교부장관에 발탁되고,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며 육군 최초 여성 헬리콥터 조종사를 국가보훈처장으로 발탈하다니…. 뭔가 달라도 다른 통념을 뛰어넘은 통합, 탕평, 파격 인사다. 여성들의 그 단단했던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여성도 사회적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곳,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여성을 승진시키고 싶어도 경력 단절이 문제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진정으로 탕평이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여성 공무원들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7~80년 당시 여성 공무원들은 승진이란 걸 몰랐다. 이유는 근평을 남자직원에게 양보해야 했고, 양보를 거절하는 여직원은 조직에서 따돌림을 받았다. 남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가 양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고착되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대개 7급 정년을 하였고 후에 6급 정년이 몇 명 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대통령의 인사 기조에 맞춰 시군에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들에게도 4급, 5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 국민과 소통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새 시대의 인사답게 남녀 차별을 두지 않는 통합적인 탕평적인 파격적인 멋진 인사를 기대해 본다.△ 박귀덕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잃어버린 풍경이 말을 건네오다’ 등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부회장과 전북수필 회장을 맡고 있으며 〈작촌문학상〉을 받았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6-09 23:02

△김두성씨는 수필가이자 교육학박사다.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해 수필집 ‘나의 작은 행복’ 등을 냈다. 한국문인협회 남원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남원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어머님! 어머님께서 자나 깨나 심혈을 기울여 키워주신 큰아들 두성이가 어머님 영전에 섰습니다. 그동안 쏟아주신 어머님의 정성과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서도 생활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며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영전에서 지금까지 불효가 실감이 납니다.어머니께서 떠나시던 날 아침, 한동안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 그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뵈었던 모습과 말씀들은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먼 곳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버팀목이 되어주셨는데, 이제 어떻게 지탱해 나갈지 모르겠습니다.어머님의 부음을 받고 달려오신 이모들과 외삼촌들께서 하신 말씀들이 생각납니다. 다섯 시누이 틈 속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집살이를 하셨다던 말씀을 듣고 새삼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울컥 쏟아지는 울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같은 아파트 통로에 살 때, 내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주차를 확인하신 후에 밤잠 이루셨다던 어머님…. 7년이 넘게 대상포진, 간경화, 간암 등의 질환으로 고생하시면서 정신력으로 버티어 오시다가, 끝내는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시던 어머님! 그런 와중에서도 손주 녀석, 등록금 걱정을 해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새삼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느꼈습니다.이런 정성과 사랑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습니까?저희들 몸과 마음, 여기저기에 깊숙이 묻어있는 어머님의 관심과 정성을 저희가 만 분지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님! 처음에 이 글을 쓰다가 한참 동안 쏟아지는 눈물이 뒤범벅되어 다시 썼습니다.한마디로 저는 어머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유난히도 못난 이 자식을 사랑해 주셨던 어머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잘못 하였을 때 “내가 어떻게 키워왔는데 이 모양이냐” 하고 한탄하시던 말씀이 종종 생각납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분발하려고 무던히 발버둥 쳤습니다. 어머님, 아시죠? 어머님! 비록 76년간의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어머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깨끗하고, 정직하고, 용감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 봉사 하셨던 어머님에게 최고의 사랑을 보내면서, 어머님께서 항상 함께하셨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어머님!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못다 사신 어머님 몫까지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주위 사람, 나아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욱 인정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더욱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어머님의 자식이 되겠습니다.부디부디 편히 천국의 하늘나라에서 모든 근심 걱정 벗어버리시고, 저희 내외, 손주, 손녀 잘살아가는 모습, 자랑스럽게 되어가는 모습, 즐거운 마음으로 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어머님! 저희들, 항상 어머님과 함께하겠습니다.어머님의 큰아들, 두성이가 이글을 드립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6-02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