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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퇴진 전북 비상시국회의’는 매주 도민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비상시국회의 상임대표 4인 중 한 명인 이세우 목사(57)는 “이번 도민총궐기는 도민들이 함께 참여한 이 시대의 시민혁명이라 말할 수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결을 시민의 힘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 목사는 이번 도민총궐기를 계기로 전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또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큰 힘을 얻었다고 평했다. 이 목사를 만나 그동안의 비상시국회의 이야기와 향후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비상시국회의가 주도한 도민총궐기대회가 계속 열리고 있습니다. 이 협의체의 출범은 어떻게 계획했습니까.“기존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박근혜 정권의 정책을 평가하며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간헐적으로 비판적인 입장들을 내왔습니다. 국정교과서와 GMO, 위안부 합의 등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며 여러 단체도 함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석달 전 최순실 사건이 터지자 이 문제는 한 단체가 중심이 돼 대응하기에는 너무 중대하다고 판단, 도내 여러 단체와 협의한 결과 함께 힘을 합쳐 대응하자는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처음에는 3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였고 최근에는 70여 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내 여러 단체가 결합하는데 어려움도 있었을텐데요.“도내에서도 기존에는 박근혜 정권이 정책적 잘못을 했을 뿐 근본적 잘못은 아니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정권 퇴진과 관련해서도 서로 입장이 달랐죠. 최순실 사건 이후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권 퇴진만이 답이라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이후에도 퇴진 방식에 대해 이견이 많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 단체 대표들이 모여 단체의 크기와 영향력과 별개로 일방적 강요 없이 모든 단체가 동의할 때 행동하자고 마음이 모였고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자주 모이다 보니 어색함과 과거의 앙금이 사라지고 한 단계씩 나아가는 방향으로 간격이 좁혀졌습니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도민총궐기대회에 많은 이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셨나요.“기존 집회들을 볼 때 이렇게 많은 도민이 나오실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전북지역 사회단체가 모두 모여 함께하는 집회는 처음이기 때문에 앞서 총궐기를 기획했던 서울이나 다른 지역의 집회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지금의 사태와 집회는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에 우리 지역에서만 독자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많은 시민이 모이게 된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저는 중·고등학생과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집회를 관망하던 청년들이 중·고등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동참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시민에게 외면받던 언론 매체들이 이러한 상황을 보도하면서 예상보다 더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계속 보도를 하니까 그 모습을 본 도민들도 집회에 폭발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참여자가 늘수록 주최 측의 고민도 적지않았을 것 같은데요.“학생들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안전문제로 학교 측과 마찰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했음을 알게 됐고 원하는 학생의 경우는 무대에서 발언 기회를 주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무턱대고 분노하고 당위적으로 주장만 했었는데 청중과 호흡을 맞추고 유머와 위트를 섞어가며 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한 단체는 도민들에게 무대만 제공할 뿐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러한 방침에 반발하는 단체도 있을 것 같은데요.“처음 시국회의를 결성할 때 정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단체들이 공평한 목소리를 듣고, 우리가 도민들을 위해 무대는 마련하지만 절대로 앞에 나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국회의가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면 호응도 있겠지만 반발하는 시민도 있을 수 있다는 게 모든 단체의 판단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단체의 목소리는 배제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습니다. 정당과 정치인들의 무대 발언을 수용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현 시국이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 동력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떨어진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 이룬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치지 않고 도민들 누구 하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물론 주최 측도 도민 여러분의 의견을 계속해서 반영해야겠죠. 도민총궐기 시간과 장소를 변경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농촌문제, 환경문제, 교육문제 등 사회 참여를 많이 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텐데요.“신학대학원 시절 농촌 문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농촌을 떠나는 농민과 자살하는 농민이 많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왜 그같은 현상이 생기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어 지역에 내려와 함께 농사도 짓고 생활하면서 농업의 기반인 땅,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 문제들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직접적인 참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요.“처음 완주에 왔을 때 인근 중학교가 폐교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을에서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 자체의 활기가 떨어지게 되죠. 마을 주민과 학교, 교육청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힘을 실어주는 주민들도 생겨나고 선생님들과 가까운 지역의 주민들도 도와줘 학생 수를 점차 늘려갔습니다. 현재도 그 학교가 폐교되지 않고 계속 운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활동들을 이어나가실 생각이십니까. “이번 계기를 통해서 더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 청년들은 낭만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성찰을 통해 제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현재 한쪽으로 치우쳐진 부의 왜곡을 해결하고, 낮은 수준이라도 사회 기반들이 도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진다면 우리 지역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당장은 경제적으로 다른 곳보다 어려울 수 있어도 그 어떤 지역보다 큰 힘이 생기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다지는 일에 제가 도움된다면 어떠한 활동이든 계속 할 계획입니다.”● [이세우 목사는] 농촌 관심 갖고 활동하다 지역 사회문제 뛰어들어1959년 서울에서 5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이세우 목사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원까지 서울에서 마친 서울 토박이다. 1989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농촌에서의 목회 활동을 위해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다니다 전북에 무작정 내려와 정착했다.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들녘교회에서 목회자로 활동하며 직접 농사도 짓는다.농촌 빈곤과 자살 문제 해법을 고민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를 고안하고, 친환경 농법을 이용한 생산도 하고 있다.학교 급식에 유기농 농산물을 공급하는 방식을 끌어냈고 이는 농촌 마을 주민들의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 시스템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그 후부터 전북 지역 사회문제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농촌, 교육, 사회문제 활동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이 목사는 지난 2009년 ‘전북 녹색연합’을 설립해 지역사회 환경문제에도 앞장서고 있다.현재 한미 FTA 기독교 대책위원회 대표, 한국종교연합 전북대표, 반 GMO 상임대표, 교육발전 민관협력위원회 위원장인 이 목사는 최근 전북 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획 | 천경석 | 2016-12-26 23:02

라승용 농촌진흥청 차장은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해 37년만에 1급까지 오른 인물이다. 김제출신인 그는 농촌진흥청 공공기관 지방 이전 초대추진단장을 맡아 전북혁신도시의 농업분야 R&D 기관의 집적을 이뤄냈다. 농촌진흥청 이전은 전북혁신도시 농생명연구단지가 조성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라 차장은 연말이면 40년 6개월 간 몸담아 왔던 공직을 떠난다. 전북출신으로 처음 농촌진흥청 차장에 오르기까지 우려곡절도 많았다.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라승용 차장은 40년 공직생활 동안 보람된 일도 물론 많았지만, 그 만큼 아쉬운 점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공직을 떠나는 심경과 그 동안의 소회, 한국농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오랜 공직생활을 마치는 소회가 누구보다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농촌진흥청을 떠나시는 느낌이 어떠신지요.“일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지난날 내 발자취에 대해 돌아보니 만족보단 아쉬움이 남습니다. 막상 공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오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반성과 일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된 일과 가장 후회됐던 일은 무엇입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40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정말로 이 일만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농촌진흥청의 전북이전에 온 힘을 쏟은 것이죠. 혁신도시 사업은 참여정부시절 낙후된 지방을 살리는 한편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됐습니다. 저는 농촌진흥청에서 초대지방이전단장으로 오면서, 제 자리를 걸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맡으면서 온갖 비난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전북혁신도시에 제대로 자리 잡은 농촌진흥청과 산하기관 시설을 둘러볼 때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제가 연구직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위한 연구를 많이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연구서비스와 행정지원파트에서 보냈습니다. 연구에 깊이 빠져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어떤 위치에 가서든지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병해충 방재기술, 친환경 농약개발 등 당시에 하고 싶은 연구들을 못해본 것이 미련이 남습니다.“-앞서 말씀하셨다시피 농촌진흥청의 전북이전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혁신도시 사업이 시작될 때, 정부는 농촌진흥청 본청을 비롯한 7개 소속기관을 각 도에 하나씩 따로 이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과 같은 연구기관은 흩어지면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에 저는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모든 기관의 집단이전을 주장해 관철시켰습니다. 특히 본청을 전북으로 올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투쟁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라승용이 고향전북에 업적을 세우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 등의 숱한 오해와 음해도 많이 받았죠. 농진청이 수원에 자리잡은 지 52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는 것은 단지 시설과 직원의 공간적·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농업연구의 역사와 전통·정신을 새로운 연구시설과 청사에 담아 전북혁신도시로 옮겨 농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세계적 농업연구의 중심이 될 새로운 농업연구 메카를 만들고자 한 것이지요. 우여곡절 끝에 이전이 완료된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저와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에 입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저는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장학금을 받고 김제농고에 진학했습니다. 그 당시 농고는 3학년이 되면 실습을 통해 취직했죠. 저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포기하고 서울에서 농림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 후 합격했습니다. 그 후 못 이룬 꿈을 위해 일을 하면서 방통대 학사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와 보니 어언 40년이 지났습니다.” -공직사회에서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셨는데요. 후배 공직자 분들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흙수저·헬조선 등 노력이 타고난 스펙을 앞지른다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래도 아직까진 열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의 인사권은 당신이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다’고 말입니다. 누가 인사권자로 오든지 간에 농촌진흥청의 경우 논문과 각종 실적이 승진의 기준이 됩니다. 최근 ‘멘토’라는게 유행했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멘토가 누구였냐고 많이 물어봅니다. 저는 ‘내가 만난사람 모두 멘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배웠습니다.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고 꾸준한 열정을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내 인사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발전하길 바랍니다.” -공직을 떠난 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은퇴를 앞두고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네요. 저는 아직 현직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능력을 한국농업발전을 위해 쓰자’는 다짐입니다. 정년이 다가오니까 몇몇 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제안도 왔습니다만, 저는 후학양성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자칫 연구활동을 오래 떠난 제가 ‘낡은 학문’을 가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농진청 국장급 이상 퇴직 동기들하고 뜻을 같이 한 것이 있습니다. 전북에 남아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우리의 재능을 기부하자고요. 저는 전북에 온 사람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저는 수원에 있던 집을 다 정리했습니다. 전북에 남아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가끔 찾아와서 ‘차장님 이제 노는 것 좀 연습하세요’라고 하는데 천성이 놀지 못하는 체질인가 봅니다.”● [라승용 차장은] 근성·뚝심으로 9급서 1급까지라승용(59) 농촌진흥청 차장은 김제 출신으로 김제중앙초, 김제중학교, 김제농고(현 김제자영고)를 졸업했다. 영농학생으로 학비를 절약, 각종 장학금을 받으며 김제농고를 졸업한 뒤 1976년 농림직 9급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첫 발령지로 국립 부산생사검사소에 발령받은 그는 군 전역 후 국립자재검사소에 잠시 머물다 농촌진흥청 농약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연구원의 삶을 시작했다. 고졸 신분으로 농림부에 9급 공무원으로 들어온 후 방송통신대를 10년 동안 다녀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농진청 본청 연구기획과장과 정책과장에 이어 참여정부 시절 농진청의 전북 이전을 총괄하는 지방이전지원단장을 역임했다. 그 후 본청 연구정책국장과 국립축산과학원장에 이어 지난해부터 국립농업과학원장으로 일했으며, 지난 2013년 제24대 차장으로 임명됐다. 라승용 차장을 대변하는 단어는 ‘근성’과 ‘뚝심’이다. 라 차장은 열등감을 열정의 원천으로 삼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40년 인생을 농업발전에 바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기획 | 김윤정 | 2016-12-19 23:02

침체일로에 빠져있는 태권도계를 일신할 새 지도부가 꾸려졌다. 선두에는 전북 익산 출신의 최창신(72) 신임회장이 있다. 그는 국가대표 출신이면서 문화체육부 차관보를 지내 엘리트와 생활체육 태권도를 관장하는 데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선소감도 “체육계에서 태권도의 위상이 높아지고, 세계에서 한국 태권도가 무시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 만큼 현 체육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태권도계는 최 회장이 어떤 역할을 해줄 지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생활속의 태권도 정착, 태권도계의 적폐 청산 등을 강조했으며 무주 태권도원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제28대 대한민국태권도협회장으로 취임했는데 소감 한말씀 부탁합니다.“27대까지는 시·도 협회 및 가맹 연맹을 대표하는 20여 명의 대의원 투표로 회장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사상 처음으로 지도자, 선수, 심판, 일선 도장 관장 등까지 선거인단으로 포함된 선거에서 선출됐습니다. 엘리트 태권도와 생활태권도가 합병된 이후 처음으로 회장선거를 하게 돼서 특이한 방식의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새로운 장이 시작된 것입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이 이전하고 상당히 다르다고 느낍니다.”- 문화체육부 차관보, 대한체육회 이사 등 많은 자리를 두루 거쳤습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 태권도를 통합 관장하는 데 적격이라는 평가입니다.“정부에 있을 때도 엘리트 체육이나 국민 건강을 위한 체육 쪽에 늘 신경을 써왔지만 시대적인 여건 때문에 많이 부각되진 않았습니다. 사실 해보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인구감소와 불경기 악재로 도장의 아이들이 계속 감소하는데 행정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도보단 생활 속에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태권도 기본동작은 근육을 완만히 발전시키고 폐활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노인을 위한 체육활동이라든지 태권도를 활용한 다이어트 프로그램 개발 등을 방향으로 잡고 연구해 볼 계획입니다.”-체육부 차관보를 지낸 행정가로서 어떤 태권도 행정을 표방하고 있습니까.“선수육성에 중점을 두고 힘쓰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2020년 올림픽 출전 선수가 이미 정해진 세계연맹의 규정은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랭킹포인트 제도 때문에 우수한 신인을 발굴해 훈련시키는 것이 벽에 놓여 있습니다.”-태권도계가 뿌리깊은 반목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과 돈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관원이 늘고 돈이 쌓이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점진적이고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예산 1원이라도 합리적인 부분에 쓰고, 규정과 행정행위를 원칙과 상식에 맞게 해야 합니다. 아직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반드시 개혁할 것입니다.”- 협회장 취임 공약으로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동승보호자 탑승의무 폐지, 국가대표선발 및 훈련 체계 정비, 심사제도 개선 등 3가지입니다. 이유는 뭔가요.“동승자 제도 의무화는 대부분의 도장에서 자발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타면 태권도 사범이나 관장이 반드시 동승합니다. 월급을 줘야 하는 성인 동승보호자를 굳이 둘 이유가 없습니다. 영세한 도장에서는 생계유지 하는 데도 빠듯합니다. 국가대표 선발과 훈련체계도 과학적인 부분이 필요합니다. 특히 훈련체계가 그렇습니다. 지도자로 하여금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팀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게 첫걸음이라 봅니다. 심사제도는 다소 잡음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규정과 행정행위를 원칙에 맞고 상식적으로 만들어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밖에 대회를 이상적으로 치르기 위한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기장의 크기나 구조가 경기를 하기엔 적절치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매트도 부족하고 규모도 적습니다. 태권도 붐을 조성하기 위해 주로 지방에 개최권을 많이 주는데, 선수도 보호할 수 있고 관중도 흡족할 수 있는 체육관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일단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시설 개선이 필요합니다.”- 제한된 범위 내의 시설 개선이란 뭔가요.“경제여건 상 막대한 돈을 들여 곧바로 고치긴 힘듭니다. 일단은 경기장 문화부터 고쳐야 합니다. 경기가 없을 경우 관중이나 관계자가 신발이나 슬리퍼를 신고 매트 위를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분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매트는 태권도 선수들에겐 안방과 같은 곳입니다.” - 내년에 무주에서 내년도 세계태권도 대회가 치러집니다. 향후 과제는“무주는 태권도의 성지를 자처하면서 태권도원을 만들고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태권도와 연관성이 있는 전북이 큰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나 대회를 찾는 선수단이 편하고 안전하게 경기를 마쳐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또 관람객을 위한 교통이나 숙박을 어떻게 준비하느냐도 관건입니다. 즉 세계를 향한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본을 보이는 기회이고, 나라로서나 전북을 봐서도 중요한 행사입니다. 다행히 전라북도에서는 유소년 초등학생 중학생 유소년 대회를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좀 더 발전된 노하우를 붙이면 잘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태권도협회도 무주 대회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하겠습니다.” -무주에 있는 태권도원에 대해 평가해주신다면.“유럽에서 온 세계태권도 연맹관계자들하고 방문할 때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안정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어떤 목표 의식을 가지고 어떤 용도로 쓰기 위해 지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태권도에 있어서 전북의 위상은. “한국 태권도가 본격적으로 경기단체로 시작한 게 1961년입니다. 그 때부터 55년이 지났는데 초창기 때 1960년대 중반에는 국가대표 선수단을 구성하면 제일 핵심주력멤버가 전북 선수들이었습니다. 이승완 대한태권도협회 전 회장, 최형렬 전 경희대 교수 등 쟁쟁했었습니다. 과거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지만 현재는 많이 평준화됐습니다.● [최창신 회장은] 선수 출신 드물게 행정 노하우 겸비최창신 신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72)은 익산 황등면 출신이다. 청소년 때 상경해 경기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이후 고려대학교 영문과, 한양대 석사, 고려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려대학교는 체육 특기생이 아니라 직접 시험을 치러 입학했다. 최 회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1960년대 말까지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다. 전업운동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학업을 병행하며 선수활동을 하느라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는 선수시절 뒤돌려차기와 옆차기를 잘했다. 전국대회 우승을 했고, 국가대표로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해 가라데 등 세계 여러 격투기와 겨루기도 했다. 대학졸업 후 서울신문 기자, 체육부 대변인·지도국장, 문화체육부 차관보를 거쳤으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2002 한-일월드컵 사무총장, 대한체육회 이사, 태권도신문 고문, 국기원 이사, 서울FC유나이티드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세계태권도연맹(WTF)상임고문으로 위촉됐으며, 전자호구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체육행정 고위공무원의 노하우를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도 국내 태권도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잘 아는데다 해법도 갖고 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 태권도를 통합 관장하는 새 협회의 수장으로는 적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함께 타고난 부지런함과 유관기관과의 유대관계도 원만해 그가 기본정책으로 내세운 태권도 지도자들의 신분과 권익보장, 도장활성화 사업 등도 무난히 추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기획 | 김세희 | 2016-12-12 23:02

칼바람 부는 이맘때면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종성 회장(72)은 더욱 바빠진다. 이 회장은 전주시 덕진동 종합경기장 사거리에 사랑의 온도탑이 설치되는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석 달이 기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한국 정치와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이 회장은 “그 중 가장 기초 체력이 약한 전북지역의 기부가 출렁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이종성 회장으로부터 그동안의 소회와 전북공동모금회 운영방향 등을 들어봤다.-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전북공동모금회)’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시죠.“공동모금회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완하는 대표적인 민간 지원단체입니다. 작년 전북도 모금액이 총 144억3189만 원이었는데 올해 이 성금으로 저소득층 집 지어주기, 긴급지원, 사회복지시설 차량 배분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희망 2017 나눔 캠페인’이 시작됐는데 그동안의 경과는 어떻습니까.“희망 2017 나눔 캠페인 출범식을 통해 연말연시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주시 덕진동 종합경기장 사거리를 가보면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져 있는데, 도민들이 올해 목표액(59억8000만원)의 1%인 5980만 원을 기부하면 1도가 오르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2일 현재 6.1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요동치는 ‘최순실 게이트’ 가 기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최근 어지러운 정국의 여파로 지난해보다 기부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전국적으로도 현재 모금액이 전년 동기의 13% 수준에 불과한 수치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북은 올해 열흘가량 앞당겨 집중 모금에 돌입했음에도 전년 동기 모금액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군산 조선업계의 위기가 지역 기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군산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현대중공업과 OCI, 한국GM 등 군산지역 기업들이 줄줄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전북지역 기부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기업들인데 가장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익산과 완주의 산업단지 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합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할 혜안이 있습니까.“역설적이지만 전북의 기부 비율은 독특합니다, 다른 시도의 기부 비율은 기업 70%, 개인 30%인데 전북은 개인 70%, 기업 30%입니다. 기업이 부족해 기부 비율이 낮은 것은 슬픈 현실이지만, 개인의 비율이 높은 점을 잘 살려야 합니다. 즉 십시일반 도민들이 힘을 합하면 위기의 돌파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는 얼마나 되나요.“5년 이내에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개인 기부자를 ‘아너 소사이어티’라고 일컫는데 전북지역에서는 언론 공개를 꺼리긴 하지만, 10월 말 최철 21세기병원장님이 28호 아너로 가입해 주셨습니다. 전국에는 1300여 명의 아너 가입자가 있는데, 전북의 아너 회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예비 아너 소사이어티들도 있다고 들었는데요.“아직 언론 공개가 되지 않았지만, 온라인 여성의류 쇼핑몰 (주)육육걸즈 박예나 대표와 전라북도상공회의소협의회 이선홍 회장이 각각 29호, 30호 아너로 가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12월중 가입식이 열릴 예정인데 올해 전북에서는 총 10명의 고액기부자를 배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언론인 출신이신데, 공동모금회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공동모금회가 운영된 지 올해로 18년이 됐습니다. 18년 전에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공동모금회 배분분과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 참여했는데, 그렇게 인연을 맺어 지금의 회장직에 이르게 됐습니다.”- 내년에 기대해볼 만한 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전기세 등 에너지사용량을 줄일 때마다 생기는 마일리지를 기부하는 ‘탄소포인트제 기부’가 있습니다. 또 기부자가 급여에서 자동으로 기부금이 공제되는 ‘착한 일터 캠페인’이 있습니다. 현재 전북도청, 전주시의회, 현대차 전주공장, 세아베스틸, 군산의료원 등 79개 기관 1만1392명이 참여 중인데 도내 개인기부 비율이 높은 풀뿌리 기부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도민들께 하실 말씀이 있다면.“전북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경제가 어렵고 나라도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국민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때일수록 우리 주변엔 항상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던 도민 여러분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 이웃들의 따뜻하고 희망찬 내일을 위해, 도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이종성 회장은] 오랜 언론생활 후 행복 전도사 변신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종성 회장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고와 중앙대 심리학과를 졸었했다. 1969년 서해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1971년 기자로 전직했으며, 1974년 전주MBC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취재부장, 편집부장, 보도제작팀장, 기획홍보부장, 심의홍보부장, 보도제작국장, 보도위원 등을 거쳤으며 전주영상축전(CIMA) 사무국장, 전주게임엑스포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금강방송(주)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현재 고문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2년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에 취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이 회장은 “전주시는 서농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를 중심으로 기부 문화가 깔린 좋은 도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며 “공동모금회는 보이지 않은 천사로부터 시작해 얼굴을 나타내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도민의 힘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에게 ‘배려·나눔·행복 바이러스’ 전도사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획 | 남승현 | 2016-12-05 23:02

지난 8월 취임한 정황근(56) 농촌진흥청장은 “전북혁신도시 정착단계가 끝나는 시점에 왔다”며“전북에서 새로운 각오로 한국농업의 도약을 위해 온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국립농업과학원을 포함해 국립식량과학원·국립원예특작과학원·국립축산과학원 등 산하기관의 전북혁신도시 이전이 모두 완료됐다. 농촌진흥청 이전으로 종자산업 R&D 인프라 구축을 위한 김제 민간육종단지와 익산 국가식품 클러스터 등이 연계되면 전북은 명실상부한 농업생명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GMO재배지를 개방하는 파격행보에 이어 국정감사를 받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한 정 청장은 농산업 신(新)가치 창조와 지속 성장을 위한 ‘TOP5 융복합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정황근 농촌진흥청장을 만나 그 동안의 소회와 함께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취임 후 바로 국정감사를 소화하는 등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전북혁신도시에서 석달간의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이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영광스러우면서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우선 그 동안 혁신도시 이주가 채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현장 중심의 농업 연구개발 보급에 애쓰신 전임 이양호 청장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북은 전통적인 농도입니다. 전북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은 농업 발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단 것입니다. 이 열정을 토대로 전북이 농생명 연구의 신성장 동력 메카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국정감사서 지적됐듯 아직까지 연구를 위한 연구, 현장과 괴리된 기술개발, 일선의 기술보급 기능 약화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제 농촌진흥청은 그동안 이뤄놓은 바탕에 더해 ‘TOP5융복합 프로젝트’를 중점 추진해 농업을 첨단 산업으로 육성하고 실제 농업과 연계된 연구개발보급에 박차를 가할 방침입니다. 또한 전북도와 긴밀한 협력으로 지역농업 발전을 위한 노력 또한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논란에도 불구하고 취임 후 그동안 언론에 개방하지 않았던 GMO 연구현장을 개방하셨습니다. 개방의 취지는 무엇입니까.“유전자변형작물 연구에 따른 지역주민과의 오해의 장벽을 깨고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당장은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GMO개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농촌진흥청은 GMO시험재배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해왔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신뢰를 위해 환경영향조사는 정부합동으로 실시하는 한편 지자체와 지역주민에게도 참여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GMO 연구는 기존 육종기술로 해결이 어려운 기상이변 등에 대응해 전 세계에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우리나라가 기술종속국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미래를 대비한 기술력과 육종소재 확보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은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절대로 유전자 변형 작물의 일반 재배는 실시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앞에서 언급하셨듯이 ‘TOP5 융복합 프로젝트’를 출범하셨습니다. 청장 부임 후 가장 중점사업이라 볼 수 있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 ‘TOP5 융복합 프로젝트’는 농산업의 미래성장 산업화와 수출 산업화, 경쟁력 제고, 농업·농촌의 활력 증진 등을 포괄하는 사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농산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를 위해 스마트팜, 빅데이터, 무인이동체 등의 연구를 추진해 ICT 융복합 첨단 기술농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식의약 기능성 소재, 바이오신약, 종자 등의 연구를 통해 BT기반 그린바이오산업을 육성해 치유농업, 반려동물, 식용곤충, 도시농업 등 유망 신산업을 키운다는 전략도 포함됩니다. 쌀 공급과잉에 따른 쌀값 하락 대응책도 결국 Top 5 융복합 프로젝트와 직결 됩니다. 쌀 재배면적은 매년 2%씩 줄고 있지만, 쌀 수요량은 그보다 더 많이 감소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밀처럼 세포구조가 둥근 쌀 품종을 개발하고 도정기계도 맞춤형으로 새로 개발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개별 연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을 평가했지만 이제는 넓게 보는 융복합이 중요합니다. 농촌진흥청은 ‘Top 5 융복합 프로젝트’를 통해 뛰어난 성과를 도출할 경우 직원들에게 인센티브와 승진·승급 등으로 적극 보상할 방침입니다.”-도널드 트럼프의 미국대통령 당선으로 수출 농가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저장·유통 기술 확보가 중요합니다. 항공운송보다 물류비용이 1/3 수준인 선박을 이용하면 수출 경쟁력이 생기는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선도 유지입니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은 수출현장의 애로해결 기술지원과 수출농산물 안전선 확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농가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서 지역특화품목을 육성하고, 해상운송 선도유지기술 개발을 통한 한국농산물의 신뢰도 확보가 중요합니다. ”-요즘 농업의 6차 산업화가 화두입니다. 어떻게 육성시켜나갈 계획이신지요.“농업의 6차 산업화는 농촌지역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고용을 창출한다는데 의미가 깊습니다. 6차 산업 농가의 소득은 일반농가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이를 촉진하기 위해 시범농가 참여 확대와 6차 산업 우수 경영업체의 비즈니스 성공사례를 확산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농진청의 전북이전 완료로 지역경제 생산 유발효과와 고용창출을 견인할 것이란 기대가 높습니다. 지역상생발전을 위한 계획은 무엇입니까.“공무원 시험의 특성상 지역대학 출신자에 대한 우대는 없지만, 전북이전 후 전북지역 대학 졸업자들의 응시율과 합격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정규직은 공채와 경력채용을 병행하여 선발하고, 농업연구 현장에서 시험연구를 보조하는 인력은 전북도민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지역인재 채용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지자체는 물론 지역 교육기관과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무한한 가치를 가진 새만금과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육성을 위해 김제 민간육종단지 조성에도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농촌진흥청과 전북지역의 상생발전이 현실화하면 전북은 명실상부한 농생명산업의 메카로 발전할 것을 자신합니다. 이를 위해 전북도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정황근 농촌진흥청장은] 기술관료 출신 농정 전문가, 업무 시야 넓고 추진력 강해정황근 농촌진흥청장은 기술관료 출신의 농정 전문가다. 충남 천안 출신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국방대학원 국방관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정 청장은 1984년 기술고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해 농림부 농촌인력과장, 총무과장, 친환경농업정책과장, 혁신인사기획관, 대변인, 농촌정책국장, 농업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또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과 청와대 농축산식품 비서관을 역임했다.정 청장은 업무 시야가 넓고 선이 굵으며 업무 추진력도 강하다는 평이다.그가 새 수장으로 취임한 이후 농진청 안팎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일고 있다. 조직문화는 연구 성과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정 청장은 취임 직후 빠른 조직 장악력을 보이며, 직원들로부터 원칙이 확실하고 강단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획 | 김윤정 | 2016-11-2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