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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 개편안에서 종이사전이 제외되었다는 기사는 하루 종일 나를 헛헛하게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종이사전이 거의 필요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고등학교 때, 친구들 몇몇이 친구의 친척집을 구경 간 적이 있다. 거대한 기와집의 위용에 주눅이 든 우리들은 문 앞에서 초인종 누르는 걸 서로 미루다가 솟을대문만 올려다보고는 돌아왔다. 검은 바탕에 하얀 자개로 집주인의 이름을 새겨 넣은 문패는 강물이 휘돌아나가는 듯 유려한 한문이었다. 나는 기와집의 위용보다 읽을 수 없는 한자 문패에 더 기가 죽었다.기술 발달로 종이 사전 사용 않지만집에 돌아와 온 집안을 다 뒤져서 손바닥만 한 옥편을 찾아냈다. 중학교 때 잠깐 한문을 배웠을 법도 한데 옥편 사용 방법을 모르니 첫 자부터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비닐 표지가 다 닳아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나의 사전 읽기는 시작되었다. 그 후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신기철, 신용철 편저의 『새 우리말 큰사전』을 할부로 샀다. 두 권으로 된 사전이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까만 천으로 된 표지가 너덜거릴 때까지 국어사전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전 읽기에 대한 개인적인 취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휘의 수준이 개인의 격과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에게도 사전 찾는 법을 가르치고, 모르는 단어는 반드시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한동안 사오정시리즈가 유행할 때였다. 늦게 대학에 간 내 친구는 사전을 가져오라는 말에 두툼한 종이사전을 들고 학교에 갔다가 전자사전을 들고 온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사오정이 되어 버렸다고 토로하며 반 웃고 반 울던 기억이 있다.나의 작은 서가에는 외국어 사전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우리 말 사전이 있다.『우리말 풀이 사전』, 『우리말 활용사전』, 『우리말 뉘앙스 사전』, 『주제별로 엮은 좋은 말 사전』, 『우리말 갈래사전』, 『아름다운 우리말 찾아 쓰기 사전』, 『보리 국어사전』, 『우리말 부사사전』, 『비슷한 말 반대 말 사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한국어』, 『우리말 깨달음 사전』, 『전라도 방언사전』 이런 사전들로 빼곡하다. 다양한 종류의 사전을 갖고 있고, 사전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도 지금은 종이 사전을 거의 뒤적거리지 않는다.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컴퓨터에게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사전 찾는 법은 디지털에 밀려 이젠 죽은 지식이 되었다. 종이사전이 활용도가 거의 없어졌다고 해서, 사전 찾는 법이 죽은 지식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말이 사라지진 않는다. 1949년 3월 국민당을 내쫓고 베이징으로 입성하는 마오저뚱의 짐 보따리엔 책 네 권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 중 두 권이 어휘사전인 사해(辭海)와 어원사전인 사원(辭源) 이었다고 한다.(나머지 두 권은 사기와 자치통감이었다고 한다.)우리말 지키려면 좋은 사전 만들어야한글의 역사가 600년이 되어가고 있다. 한글을 국보 1호로 지정하자는 서명도 진행되고 있다. 과학적인 창제과정이 있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말을 지키고 키우려면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언어가 국가의 근간이고 문화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전, 그리고 다양한 사전을 만드는 일은 이젠 국책사업 1순위가 되어야 한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9-13 23:02

한류는 진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는 한류가 뜨거운 감자였다.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시민들의 사회비판력을 몽롱하게 만드는 것이 대중문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탓이었다. 마르크스가 경계한 종교의 아편론과 유사한 맥락이다. 정통성은 물론이고 예술로서의 품위와도 거리가 있는 문화콘텐츠가 일본과 중국으로 날아가 우리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과연 그 한류가 우리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팽배했었다. 그런 한류가 이제 K-pop, K-arts, K-style, K-ODA에 이르기까지 진화 중이다. 세계 시민들이 우리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져 간다. 한류의 진화와 ODA의 행진거울 속에 비친 한류는 청년기를 거쳐 서서히 장년을 향해 간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세례에 의한 잠수기를 벗어나 이제 두발로 당당하게 우리 땅을 딛고 선 우리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적 혼성과 융합의 결정체들이 지구를 횡단하고 있다. 한류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전통 문화를 자긍할 수 있게 해준 신호탄이었다. 문화해방의 행진을 알리는 북치는 소년이었다. ODA(Offcial Di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는 말 그대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공적’이란 말이 붙는다. 우리도 공여국들의 ODA 덕택에 선진국이 되었다. 한편 긴급재난 시의 인도적 구호활동에는 정부나 민간기관이나 개인이 모두 참여한다. 이렇듯 민간 기관이나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도 많다. 차이가 있다면 ODA는 민간의 개발협력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산 규모가 크고, 사업의 장기적인 지속성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편이다. 또한 프로젝트형 단위사업도 있지만 종합적인 프로그램형 사업이 기획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성격을 띤다. ODA 공여국 중에서도 신흥 공여국인 우리나라는 최근 ODA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비교우위가 있는 영역과 방식에 집중하려는 K-ODA를 구상하고 있다. 문화 ODA는 두 가지 주요 방식으로 독해된다. 첫 번째는 모든 ODA가 문화적 관점을 지니고 전개되어야 한다는 차원이며, 두 번째는 타 부처 사업과 달리 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하고 있는 ODA 사업유형이다. 개도국 주민들의 삶에 녹아있는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관점은 모든 ODA 사업 수행자들에게 필수적이다. 그래서 사전에 현지문화를 관찰하고 조사하며 이해하는 정지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K-ODA 대표 될 문화ODA와 한류사업유형으로서 문화 ODA는 그들이 문화권을 향유하게 하고, 그들의 고유한 문화적 소재를 활용하여 문화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음식을 제공하고, 우리 문화콘텐츠를 권장하는 한류 확산 사업은 우리문화를 알리고 우리문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국가 홍보사업으로 문화 ODA가 아니다. 문화 ODA는 한류 자체가 아닌 한류를 발생시킨 ‘방법론’으로 그들의 류를 형성하도록 지원한다. 즉, 한류를 탄생시킨 인력양성 시스템, 방송촬영 기법, 상상력 개발법, 감정표현 방법, 문화경관과 문화자원의 활용법 등으로 ‘그들의 류’가 지구를 횡단할 수 있도록 그들의 문화를 배양시키게 된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8-02 23:02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독일의 뮌스터 포로수용소에서 러시아 군인 신분의 강홍식(姜弘植, 러시아 이름은 Gawriel Kang, 평안북도 강계군 출생)은 고향을 그리며 탄식에 가까운 노래를 부른다. 강홍식은 어떠한 사연으로 러시아 군인의 신분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을까? 그리고 무슨 이유로 낯선 독일 땅에서, 게다가 두려움이 가득한 포로수용소에서 망향의 노래를 불렀을까?독일군 포로 된 한국 출신 러시아 군인강홍식 외에도 5명의 러시아 이주 한인 포로가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리 김, 스테판 안, 니콜라이 유, 니키포르 유, 카리톤 김, 이들 모두 모병 또는 징집에 의해 러시아 군인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포로 신세가 되었다. 1914년 러시아는 전쟁을 위한 총동원령을 내린다. 이 시기 러시아에 이주하여 살고 있던 많은 한인들이 러시아 국적 없이 살고 있었다. 강홍식과 같이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러시아로 이주하여 국적 없이 살던 이들은 안정된 삶을 위해 러시아의 국적이 필요했을 것이고, 모병의 조건이었던 러시아 국적 획득은 전쟁의 참여를 결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러시아 국적을 갖기 위해서 또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기 위해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던 이들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노래를 불렀던 이유는 독일의 연구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은 세계의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의 언어와 음악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연구를 가능하게 한 과학 기술이 녹음이었다. 1878년 토마스 에디슨은 세계 최초로 소리를 녹음하여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했다. 이 획기적인 발명은 이후 레코드의 형태로 발전되며 대중화 되었다. 초기의 음반은 원통형으로 만들어졌고 곧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둥근 접시와 같은 원반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원통형 음반과 원반형 음반의 두 형태로 녹음되었으며 이 소중한 기록들은 199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독일은 비교음악학과 같은 신생 학문과 녹음·재생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는 여러 목적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홍식과 같이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 억류된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포로들이 이 프로젝트에 이용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 또는 민족의 언어로 숫자를 세거나, 이야기를 녹음하였고 알고 있는 다양한 노래를 녹음하였다. 강홍식을 포함한 6명의 러시아 이주 한인들이 부른 노래는 ‘아리랑’, ‘수심가’, ‘애원성’, ‘국문뒷풀이’ 등의 민요와 ‘대한사람의’, ‘조국강사’, ‘만났도다’ 등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노래 이외에도 숫자를 세거나 이야기를 녹음하였다. 이 녹음자료들은 당시의 언어·음악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전쟁 두려움·고향 그리움 섞어 불러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환경과 문화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목적 없는 전쟁에 참여했다 포로가 되어 격리된 상황은 공포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두려움이 가득한 포로수용소에서 자신의 신세를 처량하게 읊조리는 모습이 그들의 노래를 통해서 가슴 깊숙이 느껴진다. 노르망디의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진을 통해 만들어진 한 영화의 스토리만큼이나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역경과 삶의 애환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강홍식이 불렀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콧등이 찡해져 그 가사를 옮겨 본다. “와 왔든고 와 왔든고 타도타관 월사동이 산도 설코 물도 설코 / 금수초목 생소한 곳에 뉘길 믿고서야 / 나 울고 돌아갈 길 나 여기 왜 왔단 말이요.”△이정엽 연구관은 서울대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했으며 전남대·전주예술고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국립민속국악원 장악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7-26 23:02

모두 알고 있는 이솝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 ‘의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잭 자입스(Jack Zipes)가 편집한 우화집에서 발견한 쥐들의 대화는 의외로 자로 잰 듯 논리정연했다. 역시 우화나 동화의 일차적인 독자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통제 곤란한 과시욕과 지배욕의 함정에서 늘 일희일비하며 자맥질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듯이 이솝도 당시 어른들에게 할 말이 많았던 듯하다. 경제선진국 자기중심적 모델 반성을도시 쥐는 시골 쥐를 도시로 초청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도시로 가자!’라고 구호를 외치거나, 손을 낚아채는 등 행동을 앞세워 윽박지르지 않는다. 시골 쥐의 현재 처지를 동정하며 귀가 솔깃해지도록 권유한다. 유혹적 논리를 삼 단계로 배치한 것이다. 첫 번째 논리는 시골 쥐가 그의 귀중한 삶을 누추한 곳에서 낭비하고 있다는 상황 진단이다. 둘째, 쥐는 생명이 붙어있는 한 최고의 삶을 성취해야 한다는 삶의 목적을 제시하고, 쥐가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이므로 어서 도시로 가야한다고 좀이 쑤시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셋째, 도시에 가면 도시를 보여주고 삶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구체적인 처방으로써 도시의 삶을 이상적 모델로 던져준다. 상황진단과 지향 목표와 구체적인 처방이라는 종합 세트형 탄탄한 논리구조로 시골 쥐를 돕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시골 쥐는 불안과 공포를 매개로 한 도시의 물질적 풍요를 선택하지 않고, 귀향한다. 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해피엔딩 우화 속에 등장한 도시 쥐의 논리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기획 시 필독해야할 주의사항이 내장되어 있다. 파트너 국가인 개발도상국 지역 주민들의 가치관 등 문화에 대한 이해 자체를 누락한 비문화적 상황판단, 그들의 적응력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목표의 반강제적 권유, 그리고 공여국들이 자칫 방심하면 저지르기 십상인 자기모델에 대한 일방적 확신이다. 시골 쥐의 삶을 개선시켜보려는 자신의 선의에 도취되어, 시골 쥐의 생활문화와 정서 및 문화자원과 문화권에 대한 독해력이 마비된 도시 쥐의 상대적 우월감은 자신의 판단에 매몰되고, 자기중심적 모델을 반성 없이 추앙하기 일쑤인 경제선진국들의 민낯에서 나타날 수 있다. 물론 경제선진국의 일원인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문화영역의 공적개발원조 사업은 파트너 국가 주민들의 자긍심 증대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할 문화재 보존과 활용, 강제된 발전목표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발견할 수 있도록 표현력과 꿈과 감성을 키워줄 생활문화 활성화와 예술교육, 문화향유 공간인 작은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 문화시설 건립, 문화행정 및 예술연수, 문화상품 개발, 관광개발계획 수립, 스포츠 전문가 연수 등 그들의 수요에 따라 다각적으로 전개된다. 이 사업들은 우리의 한류가 아닌 그들 국가의 문화 류(流)를 형성하여 그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인류공동의 자산인 지구 위의 문화다양성을 증진시킨다.문화영역 공적개발원조 확대해야 2017년의 무상원조 예산 약 1조 5199억 중 적정규모가 문화영역에 안착되어, 특정 영역에의 예산편중 폐해가 해소되고 파트너 국가의 발전과 주민들의 삶에 균형의 회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정정숙 소장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연구실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문화경제학회 이사·한국문화의집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6-07-05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