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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616건)

며칠 전 일본 하네다 공항 출국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점심도 먹어야 했고, 오랜 만에 귀국 선물도 살 겸 상점가를 둘러보았다. 에도시대 풍으로 외관을 꾸민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우연히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화지로 만든 목욕용 타올이었다. 아이디어 상품으로 상까지 받았다는 선전과 함께 진열대 위에 소복이 싸여 있었다. 목욕용 타올로는 비싼 편이었지만, 만원이 안 되다 보니 여행선물로는 괜찮은 가격이었다. 전통 기술·현대 문화 접목해 만든 상품홍보영상물까지 돌아가고 있어서 한참을 그 제품 앞에 서 있었다. ‘이 타올이 진짜 종이로 만든 것 맞을까요?’라는 그리 낯설지 않은 멘트를 들으면서, 그래도 이 제품은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로 만든 양말이나 넥타이 보다는 훨씬 실용가치가 크다는 점이 먼저 떠올랐다. 목욕할 때 사용하는 타올이므로 까칠까칠한 질감이 좋을 것이고 몸에 직접 닿는 것이니 화학섬유보다는 천연 제품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서 색다르게 느껴진 것이로구나. 현대인들의 생활문화를 꿰뚫어 보면서 전통 종이 제조기술의 우수성까지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전주시가 한지를 보전·전승시키려는 노력을 떠 올리면서 한참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최근에는 한지장의 신규 지정, 흑석골 한지생산단지 조성사업, 한지 임용장·표창장 사용 정책 등을 발표했다. 그런가하면 한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올리고자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선조들이 만들어 왔던 물건들을 현대에서 쓰임새 있게 하려면 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요구한다. 전통과 현대문화 모두를 깊이 이해해야만 전통 기술의 전승자나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다. 화지 목욕 타올은 비록 하찮은 생활용품이지만, 전통 기술과 현대의 문화가 마주해서 만든 상품이다. 목욕이 생활화되었고, 천연제품에 대한 요구가 높은 현대의 소비자들의 생활문화를 꼭 집어 낸 것이다. 그러나 한지섬유로 만든 상품들은 전통이든 현대든 문화를 접어 둔 채 개발된 경우가 많다. 전통 기술을 이용해서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전승과 산업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면 여러 영역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야만 한다. 제조기술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종이 문화에 대한 면밀한 검토, 그리고 상품화 전략에 대한 초감각적인 아이디어 등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어느 한 부분만 특화시켜 개발하기 보다는, 융합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인들 따로, 연구자 따로, 상품기획자 따로, 이처럼 따로 따로 개발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예산만 무한히 낭비한 채 곧장 어느 기관의 보관창고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작은 생활용품에 스며있는 전통문화전통기술과 현대의 문화를 융합해서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든 경우가 적지 않다. 독일의 헹켈사가 만든 칼은 대장장이 마을이 그 원조이다. 스위스의 시계도 디지털시계의 출현으로 고전하는 줄 알았더니 여전히 최고의 수공업 시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바틱제품들 역시도 전통기술과 현대문화를 접목시켜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한 케이스이다. 공항 안 한 점포에서 우연히 마주친 목욕용 타올 때문에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하지만, 작은 생활 용품 속에 전통문화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2-28 23:02

선생들에게 많이 맞고 자랐다. 6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장교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에서 학교는 또 하나의 병영이 되어 ‘일사불란 총화단결’을 말단까지 관철했다. 교사들은 거대한 폭력체계의 끝자락에서 지극한 ‘사랑의 매’로 아직 솜털이 부성부성한 아이들의 맨살을 수시로 터지게 했다. 그날따라 기분이 몹시 안 좋았던 선생이라면 맨손으로 얼굴을 후려치는 것도 부족하여 대나무 뿌리, 슬리퍼로 아이들을 잡았다. 감히 말대꾸를 하면 그야말로 먼지 나게 맞았다. 그 무차별의 폭력 아래 부서져 내린 교실에서 우리는 김칫국물 흐르는 도시락을 까먹고, 교련 선생의 베트남 참전 야사를 무한반복으로 전해들으며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우지 못해 조바심을 쳤다. 그것을 바꿀 수 없는 세상의 질서로 알고 살았다. 천박한 자들에게 굴신해 온 우리들어디 학교뿐이었을까. 집집의 식단과 성생활, 불러야 할 노래, 두발과 치마의 길이까지 관여하는 ‘관’은 무소불위의 힘이었다. 김남주 시인이 “집안에 면서기 하나 순사 하나 산감 하나 나면 왠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썼듯 공무원은 출세의 권력이었고 나라 자체와 같았다. 87년 6월항쟁은 일방통행이었던 국가권력에 수십 년 만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제6공화국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제 손으로 선출하는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되찾았고 91년 지방자치선거를 거치면서 지방권력을 일부 제어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아래로부터 교사조합이 시도되면서 학교 현장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87년 대선의 패배로 낡은 것을 제대로 한 번 청산할 기회를 놓치고 긴 우회를 거치면서 수구세력은 더 교묘하고 강건하게 살아남았다. 박근혜의 집권은 수구세력이 이제 시대정신까지 장악하며 완벽하게 복귀한 것만 같았다. 저들의 웃음소리가 권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모욕하는 집권자의 변설을 귀에 담자니 하루하루가 참으로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랬는데 기적처럼 구중궁궐의 권력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다. 오만과 무지가 만든 제 수렁에 빠진 것이다. 매일 더 추악한 민낯이 폭로되는 박근혜 세력을 보면서 이들이 사태를 명민하게 알아차리고 일찌감치 퇴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행정부, 검찰 등의 공안기관, 언론 곳곳에 틀어박혀 있던 적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낼 수 있었다. 후안무치인 저들의 항변권을 법이 허용하는 데까지 보장하고 매우 답답하게 진행되는 탄핵 절차를 지켜가는 것도 ‘공화국’의 실체와 한계를 몸으로 겪어내는 소중한 시간이다. 마침내 공포 기술자 김기춘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머리칼을 싹둑 자르고 슬리퍼로 모욕하며 몽둥이 찜질을 가했던 평범한 얼굴의 교사들, 경찰들, 지극한 냉소의 눈빛을 흐트러뜨리지 않던 검사와 판관들이 떠올랐다. 악몽이 참으로 길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선생들을 용서하지 못한다. 작은 김기춘들, 부역한다는 죄의식도 없이 완장을 찬 자들. 아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용서하지 못한 것은 저토록 천박한 자들에게 턱없이 굴신해온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 오랜 모욕의 시간, 확실하게 선 그어야다가오는 선거에서는 유신의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50대가 캐스팅 보터라고 한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 이 오랜 모욕의 시간에 확실하게 선을 그을 사람. 오십의 나이가 자랑스러울 그 시간을 기다린다. △ 이재규 작가는 치유의 글쓰기워크숍 ‘작가의 방’기획자이고, 저서는〈시와 소설로 읽는 한국현대사〉 〈사람의 숲에서 길을 묻다〉 등을 썼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1-24 23:02

어느 선배 우체국장 이야기다. 야근하는데 택배 하나가 작업장을 마구 돌아다니더란다. 잔뜩 긴장하고 달려들어 붙잡았는데, 열어보니 살아있는 닭이었다. 닭발이 포장지 사이로 빠졌고, 놀란 닭이 상자를 둘러쓰고 마구 뛰어다녔다는 이야기다. 야근에 지친 나머지 헛것을 봤거나, 졸다가 꿈을 꾸었거나, 상상했거나……? 정말 닭이었을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2017년 설을 앞두고 다이어트 하는 택배가 여럿 있음을 보게 된다. 아직 기간이 남아있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더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다. 이들은 서로 말도 한다. “너는 어디서 왔니. 처음 보는데?”질문을 받은 택배가 답한다. “나이 먹더니 눈이 나빠졌구나.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그걸 못 알아본다는 말이야?” “…….”인간은 아름다워지고 싶어 은유 쓴다우체국에서 오래도록 도어 투 도어(화물운송에서 물건이 있는 출하지부터 최종 목적지의 수하인에게까지 서비스하는 것을 말함)를 하다 보니 택배가 생명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침 작업장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뛰고 있는 택배를 보고 있자면 온 세상이 다 그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경건해진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일정한 수량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또한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절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익산우체국의 경우 평상시 하루 평균 4000여 건을 접수하고 4000여 건을 배달한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집배원을 뜻하는 이 영화에는 세계적인 명성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귀양살이하는 집 전담 집배원 ‘마리오’가 나온다. 시인은 마리오에게 시 쓰기를 권하며 은유를 가르친다. ‘은유는 사람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마술과 같아.’라며. ‘들판에서/ 밀의 귀들이 바람의 입속에서 울리고 있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은유를 배운 마리오는 급기야 짝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당신의 미소는 장미, 부서지는 은빛 파도.’라는 기막힌 은유를 써서 마음을 얻는다. 촌뜨기 총각의 은유는 섬 전체를 숨 쉬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다이어트 한 택배가 묻는다. “나 예뻐요?” 이렇게 답해준다. “앙증맞고 귀여워. 그러니 몸매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처음에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어.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이지.” ‘백곰 효과’라는 게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북극의 백곰을 절대로 상상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은 백곰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생각을 억누를수록 백곰 생각은 더욱 커졌다. 교수 연구팀은 백곰이 생각날 때마다 빨간색 폭스바겐을 떠올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백곰을 생각하는 빈도가 훨씬 줄었다고 한다. 생각을 가둬놓고 키우는 '백곰효과'규율을 어기지 않는 것 보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리라. 백곰과의 한판 승부도 같은 맥락의 고민 때문일 것이다. 갈등하는 설……. 답을 쉽게 찾자. 내 마음이 택배다. 머릿속에서 형상화 된 장면이 떠오르고 그것이 가슴을 흔드는 것이면 된다.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마리오. 택배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것은 물건이라기보다 노래요, 이미지 아닐까. 지금부터 이들의 노래를 적어둬야 하겠다. △이승수 지부장은 익산우체국장으로 저서로는영화에세이 〈울면 지는거야〉, 영화치료 전문서 〈영화치료의 기초 : 이해와 활용〉 등이 있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1-17 23:02

민주주의를 사수하려는 시민들의 힘은 위대하다. 영하의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을 들고 전국의 거리를 메우고 있는 이들의 수가 백만 명을 훌쩍 넘는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외치는 시민들의 소리가 제야의 종소리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펴졌다. 새해에는 평화의 촛불시위가 승리하여 시민들의 힘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되기를 소망한다. 대립의 구도로 몰아가려는 세력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에 기실은 걱정이 된다. 그러나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여 만든 큰 함성의 힘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시민의 큰 함성 쉽게 사그라지지 않아시민혁명이 서양의 역사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고 시민의식이 성장한 곳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작은 힘들이 뭉쳐서 분연히 일어난다. 세계가 우리나라의 촛불집회를 보도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평화로운 시민투쟁의 과정과 그 결말에 대한 궁금함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CNN, BBC, NHK, CCTV 등 세계 굴지의 뉴스 앵글이 부패문화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시민들에게 향해 있다. 백만이 넘는 집회의 규모에 놀라워하거나 인산인해를 이룬 속에서도 평화로운 축제의 한마당을 벌리는 광경에만 놀라워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이 짧은 기간 내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문화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비단 외국인들만 궁금한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사실은 알고 싶은 부분이다. 정경유착의 뿌리깊은 관행과 부패의 문화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른 바 패거리문화라 하는 정치권과 재벌의 유착관계를 과연 쉽게 끊어 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패거리 조직과 의식구조가 국가를 경영하는 가장 윗선뿐만 아니라 중간 허리들 그리고 시민들을 직접 상대하는 아래선 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과 부패의 ‘문화’가 만연했기에 ‘김영란법’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어느 국제 조사기관이 여러 나라들을 대상으로 국가이미지를 조사해 보았다. 국가의 청렴도를 물었는데, 가장 깨끗해 보이는 나라에게는 1점을 주고 부패의 정도를 숫자로 누적해 가는 방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37점을 받았다. 국가의 청렴도 이미지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명한 사회 시민들 힘으로 가능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법만 가지고는 더 더욱 어렵다. 오로지 시민들의 힘 즉 문화를 만들고 바꾸어가는 사람들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권력을 동원해서 금방 올라선 이들이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에 절망하기 쉽다. 이 어두움 속에서도 수천 명이나 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 그리고 촛불을 들고 결연히 일어서는 이들이 있어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의 날카로운 필력이,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이상향을 그리는 화폭이 그리고 마침내는 촛불의 함성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함한희 교수는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이며 무형문화연구원 원장이다.

오피니언 | 기고 | 2017-01-03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