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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복수정답 파동
[오목대] 복수정답 파동
  • 전북일보
  • 승인 2003.12.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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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초 태조에서 세종까지 4대에 걸쳐 명 재상(宰相)을 지낸 황희(黃喜)정승, 그가 남긴 일화 한 토막은 너무 당연하기도 하고 또 너무 황당하기도 하여 '명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하루는 황희정승이 퇴궐하여 집에 오니 두 가비(家婢)가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한 계집이 자초지종을 고하며 시비를 가려주기를 청하자 '네 말이 맞다'고 하였다. 이에 화가난 다른 계집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며 하소연하니 정승은 이번에도 '네 말이 옳다'고 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정승의 부인이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으면 대체 누구의 말이 맞다는 말이오'라고 묻자 황희는 '그래 부인 말도 맞소'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후세 사가(史家)들은 황희정승이 오로지 나라일을 걱정하여 사소한 일에는 간여하지 않는 대인다운 풍모가 있기 때문 이라는 평가와, 후흑(厚黑)의 도(道)를 깨우쳐 누구에게도 싫은 말을 하지 않는 처세술의 대가이기 때문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 어느 쪽 평가가 더 진실에 가까운지 알 수 없으나, 이 말도 전자와 후자 모두 '맞는 말'이라고 한다면 지하의 황희정승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난 1994년 수능제도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한 문제에 두개의 정답을 인정하는 해괴한 사건이 벌어져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더구나 문제가 된 언어영역 17번 문항에 정답시비의 불을 붙인 최모교수의 딸이 5번을 정답으로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3번 정답자'들이 평가원에 대한 감사청구는 물론 법정투쟁도 불사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어, 복수정답 파동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아무도 예단하기가 어렵다.

본래 시험이란 정답 같은 오답과 오답 같은 정답을 출제하여 수험생들의 변별력을 테스트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출제자들은 확실한 정답 하나, 매력있는 오답 두개, 알쏭달쏭한 오답 하나, 확실한 오답 하나를 섞어 문제를 내는 것을 정석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모든 시험에서 가장 확실한 정답 하나를 골라 씀으로써 자신의 변별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한데 67만명에 가까운 학생이 치르는 그 중요한 수능시험에서 이 답도 맞고 저 답도 맞다는 결정을 하다니, 죽은 황희 정승이 되살아 왔는가,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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