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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개봉영화 '천년호' 시나리오 작가 홍주리씨
지난 달 개봉영화 '천년호' 시나리오 작가 홍주리씨
  • 최기우
  • 승인 2003.12.09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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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개봉한 영화 '천년호'(감독 이광훈)의 작가는 전주에서 나고 생활하는, 게다가 이 지역에서 현직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홍주리씨(28·원광여중 국어교사)다. 자신이 3년째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벌써 두 편의 화제작을 쓴 시나리오 작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창작의 꿈을 꾼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필름에 담고 싶은 시나리오 창작의 꿈. 연애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다가 시나리오가 되고 영화가 됐다는 성공담이 흔하게 들리지만, 이런저런 시나리오 공모전은 여전히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고, 충무로 입성도 허무한 결과를 안기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가끔 꿈을 이룬 사람이 발견되기도 한다. 홍씨도 1997년 제2회 우리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그보다 당혹스러운 마음이 먼저였다”는 그는 당시 시나리오를 처음 써 본 스물 두 살의 대학생(전북대 국어교육과). 우연하게 읽은 공모기사. 작가를 꿈꾸던 꿈 많은 여대생이 한번쯤 꿈꿔 볼만한 일이었다.

그의 첫 영화는 1999년 개봉된 판타지 '자귀모'(감독 이광훈). '자살한 귀신들이 동아리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바람둥이 애인에게 복수하는 귀신, 성폭행 당한 뒤 얼굴이 하얗게 변한 귀신 백지장, 몸이 뚱뚱해 자살한 다이어티, 자귀모 '삐끼' 영업귀신, 영혼치료사인 철학적인 귀신 칸토라테스, 영업귀신들의 천적 저승사자 등 작가의 발랄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심사위원들도 작가의 기발한 발상, 풍성한 디테일을 높이 평가해 이 작품을 만장일치로 뽑았다고 전한다.

"주변 인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해서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지요. 대사가 반복되지만 그만큼 생생한 대사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천년호'는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판타지 무협 멜로물. 리메이크 작품이지만 작가의 말처럼 이전 작품에서 기본 테마를 빌렸을 뿐 전적으로 다르다.

"판타지를 좋아해요.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판타지라면 더 좋겠죠. '자귀모'는 장난기가 있었지만, 애절한 사랑이 담긴 '천년호'는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다고 할까요”

그는 판타지를 공상과학 정도로만 치부하는 현실이 아쉽다고 말한다.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장르인데 아직 여건이 좋지 않단다. 이번 작품에 투자한 시간은 6개월 정도. 실제 제작과정에선 아끼던 대사나 장면들이 삭제되기도 했다.

"장르의 특성을 이해해야지요. 개인의 판단만으로 밀기엔 위험이 많아요. 스탭들과 치밀한 기획회의를 하면서 쓰여졌다고 해도 대본을 연출에게 넘기고 나면 그때부터는 연출이나 다른 스탭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기업'이잖아요”

시집 '하늘바라기'(도서출판 대도대한)를 펴내기도 한 그는 원래 소설가를 꿈꾸던 문학 지망생. 지금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해 꾸준히 '습작' 중이다.

"쉼표 하나에 따라 느낌이 다르잖아요. 나름대로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작가의 의도를 직접 전달할 수도 있고…. 시나리오의 매력과는 또 다른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독특한 상상과 필력으로 새로운 화법을 제시해 21세기 한국 영상산업의 밑그림을 그릴 설계자로 주목받고 있는 신인. 그와의 대화는 러닝타임 때문에 미처 다 소개되지 못한 영화의 '속살'을 내보이듯 그만큼 흥미진진했다. 그의 세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시집, 첫 번째 소설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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