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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옥보고 거문고 축제 학술대회
악성 옥보고 거문고 축제 학술대회
  • 최기우
  • 승인 2003.12.10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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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보고의 활동 연대를 통해 그의 음악세계와 삶을 조명하는 연구자들의 작업이 시작됐다.

"옥보고는 경덕왕 당시에 가장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고 따라서 그를 경덕왕때의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9일 오후 1시 춘향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1회 악성 옥보고 거문고 축제(집행위원장 이상호)의 한 테마인 '전국 옥보고 학술대회'에서 전남대 김우진 교수는 "한 사람을 어느 시대의 인물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 인물이 대표적으로 활동했던 시기를 지칭해야 한다”며 현재 학계에서 일고 있는 552년설('동국통감'기록), 원성왕(785)∼현덕왕(825) 등의 이설은 이런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보고의 연대 재검토'를 주제 발표한 김교수는 옥보고의 지리산 입산시기에 대해서도 "옥보고의 금법(琴法)을 계승한 속명득(續命得)의 제자인 귀금선생(貴金·신라시대 음악가)이 지리산에 들어간 시기는 민애왕(838-839) 사건이 일어난 때로 보아야 하며, 사건이 평정된 뒤에도 지리산에서 나오지 않은 이유는 경주의 정세(情勢)가 계속 불안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또 '국사대사전'과 '한국음악통사', 학자 송방송씨와 장사훈씨의 주장을 예로 들며 귀금선생이 안장과 청장에게 거문고를 가르친 시기도 윤흥이 죽은 866년 무렵이 아니라, 9세기 전반인 문성왕대로 추론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연도를 살피고, 가정과 예시·비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이 주장은 지금까지 옥보고의 활동 연대와 이후 전승시기에 대한 설이 분분하던 학계에서 진일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옥보고의 가장 오랜 기록은 '삼국사기'(현금 조). 그러나 옥보고의 활동연대와 그 이후 전승 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고 그 이후 옥보고의 활동연대를 기록한 문헌은 '세종실록'(목판본 55권 25책)이며, 이 문헌에는 옥보고가 경덕왕 때 인물임이 추가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 중 옥보고의 활동연대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자료다. 이 기록은 남효온이 기록한 '세종실록'(150권)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토론자로 나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영운 교수는 "당시 신라인들의 평균수명이나 학문·예술가들의 전승관계(사승관계) 등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며 의의를 제기, 아직 검토할 문제가 남아있음을 시사했다.

고려대 유영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학술대회에서 전주교대 이상규 교수는 거문고 구음법의 변천과정 이해를 바탕으로 구음과 음운의 상관성을 고찰한 '거문고 구음의 음운 연구'를 발표, "국악기의 구음법은 주법과 음운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시대마다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악학궤범 소재 현금 조현법의 현대적 활용 가능성'을 발제한 청주대 정화순 교수는 "거문고음악의 창작에서 기존의 조현법에 고착되지 않고, 새로운 조현법을 개발하여 개방 4현이 주선율과 조화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으로 응용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70여명의 청중이 몰렸던 이 날 학술대회는 경북대 이동복 교수, 국립민속국악원 서인화 학예연구사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한편 학술대회로 시작된 악성 옥보고 거문고 축제는 오후 7시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창극공연 '옥보고'(작가 최정주·연출 지기학)가 무대에 올라 의미를 새롭게 했다. 10일 오전 9시부터는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제1회 전국옥보고거문고경연대회가 열리며, 오후 7시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창극공연 '옥보고'의 두 번째 공연이 마련된다.

거문고 명인인 김무길 운영본부장은 "지리산 섬진강 줄기마다 품었던 거문고 소리가 이번 축제를 통해 국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씻고, 저마다 자신 속에서 울리는 초음(超音)의 소리를 듣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063)626-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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