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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을 바라보며
모악을 바라보며
  • 기고
  • 승인 2016.06.21 23: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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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상 소설가

모악(母岳)을 생각한다. 얼마 전에 모습을 드러낸 지역 출판사 ‘모악’과 첫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를 아껴가며 오래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양 시인의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는 한국 근대사의 ‘헛디디며 헛짚으며’ 펼쳐진 풍경이 담겨 있다. 헛디디고 헛짚은 근대사의 변방에서 살아온 젊은 날의 어느 겨울, 평화동의 어느 큰 집에서 유리창이 없는 철창으로 아침마다 모악의 맨 얼굴을 만났었다. 어떤 날은 먼 길을 떠나는 고집 센 선비의 얼굴로, 어떤 날은 밥을 지어놓고 수백 년 동안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악은 보여주곤 했었다. 모악을 넘어 금산사에 간 것은 평화동의 큰 집을 나와서도 한참 후였다.

사회적 타살이 흔한 시절에

며칠 전에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온몸으로 구조 활동을 했던 잠수사가 죽음의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더 며칠 전에는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작업을 하던 열아홉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고로 변을 당했다. 모두 사회적 타살이다. 요즘처럼 사회적 타살이 감기처럼 흔한 시절일수록 모악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갑오년,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나섰다가 우금치에서 패배한 이후로, 호남은 지독한 사회적 타살에 시달려야 했다. 동학잔당을 뿌리 뽑겠다고 전라도의 오지까지 토벌군이 밀어닥쳤다.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서기 전에도 조선은 사회적 타살이 만연했던 국가였다. 국민을 타살하는 국가였으니, 당연히 항쟁의 깃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깃발을 들었다는 이유로 인해 다시금 사회적 타살의 폭풍이 휘몰아쳤던 것이다. 사회적 타살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영혼의 폐허가 남았다. 그 폐허 한 복판에 모악이 있다.

모악은 민중생명사상의 자궁이었다. 금산사에는 미륵이 있고, 그 아래 마을에서는 강증산이 살았고, 또 원불교의 소태산이 금산사에서 짚신을 삼았다. 금산사의 미륵은 거대한 가마솥 위에 서 있다. 왜 솥일까? 〈주역〉 50번째 괘는 화풍정(火風鼎)이라는 정괘(鼎卦)에 풀이가 있다.

“혁(革)은 옛 것을 버리는 것이요, 정(鼎)은 새 것을 취하는 것이다. 새 것을 취하여 그 사람에 맞게 하고, 옛 것을 바꾸어 법제가 정돈되고 밝아진다.……정이라는 것은 변화를 완성하는 괘이다.……삶는 것은 솥이 하는 일이다. 혁은 옛 것을 버리고 정은 새 것을 이루므로, 삶아 익히고 맛을 내는 그릇이다.”

모악은 어머니산이며 동시에 솥의 산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 솥에 밥을 짓는다.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절망에 빠진 민중들의 삶을 보듬어주기 위해 미륵은 솥 위에 서 있고, 박중빈은 ‘솥의 산’을 음차(音借)하여 소태산이라고 법호를 지었다. 강증산의 시루도 결국 솥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 솥 위에 시루를 얹고 떡을 쪄내야 하는 것이니.

새로운 것 완성하는 '솥' 정신을

이런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이광재의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와 김형수의 〈소태산 평전〉이다. 사회적 타살이 흔하디흔한 이 시절에, 가죽의 이름을 바꿔 옛 것을 버리는 혁(革)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마솥에다 날마다 새 밥을 짓는 어미의 정(鼎), 새로운 것을 완성한다는 ‘솥’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 평전들이다. 한 번 손에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할 정도로 문학적 완성도도 높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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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아중 2016-06-21 00:27:05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멋진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