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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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전문가 강동진 경성대 교수 "전북의 도시 '작음의 미학, 다름의 경제학' 가치 지녀"
김은정 기자  |  kimej@jjan.kr / 등록일 : 2016.06.23  / 최종수정 : 2016.06.23  22:59:35
   
▲ 도시재생 전문가 강동진 경성대 교수는“도시재생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아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며 절제와 방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봉주 기자
 

도시재생이 화두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낙후되고 쇠퇴했던 공간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현실적인 과제가 되었다. 도시재생을 정책으로 실현한 영국을 선두로 이미 오래전부터 낡은 공간들을 동력으로 삼아 힘을 잃어가던 도시를 살려낸 사례는 더 이상 새롭거나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낡고 빈 공간으로 남아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옷을 입힌 공간을 가진 도시들은 모든 도시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도시 재생으로 죽어가던 강과 도시가 살아나고 공동화되어가던 옛 도심이 생기를 되찾았으며 가난했던 도시가 문화와 관광의 도시가 된 사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오래된 공간, 방치되었던 공간을 재생시켜 도시를 살리는 작업은 이제 세계 모든 도시들의 목표가 됐으니 이쯤 되면 도시의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너나없이 재생을 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길을 실천하거나 모색하고 있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도시재생의 과정과 실질적인 목표다.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힘을 얻는 것일 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미 도시재생에 나선 우리나라 도시들을 돌아보면 그 도시와 공간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를 것 없는 내용과 형식이 그렇고, 자생의 힘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차별성 없는 콘텐츠의 구현이 그렇다.

강동진 경성대 교수(52)를 만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강 교수는 90년대 초반부터 세계 도시들의 마을만들기와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 정책과 실행의 결과를 주목해 현장을 찾아다니며 실질적인 연구를 해온 도시재생 전문가다. 그는 2006년, 산업유산으로 다시 살린 일본의 도시 이야기를 엮은 책을 펴냈다. 90년대 초부터 15년 동안 30여회 이어진 답사의 결과물이다. 27개 크지 않은 도시들을 주제별로 엮은 이 책 앞에 이런 글이 있다.

‘이들 도시는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버려진 것들과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재활용해서 다시 회복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도시들이다. -중략- 일본의 이런 도시들에 비해 우리 지방 도시들은 힘들게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뭔가’를 잡기 위해 조바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박수를 쳐주고 싶은 도시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각 도시마다, 각 사안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고, 해법 또한 다를 터인데도 우리의 지방도시들은 결과만을 벤치마킹 하려한다.’

이 책을 펴낸 지 10년. 강 교수가 우려했던 문제는 이제 해결되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30년 가깝게 도시를 들여다보아온 그가 들려주는 건강한 도시재생의 길이 더 환하게 보였다.

“ 이 분야를 공부하면서 ‘작음의 미학, 다름의 경제학’의 가치를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독창적인 전라북도의 도시들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도시들인데,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말고 그 길을 어떻게 열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축에서 도시 연구로 길을 바꾼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전공을 바꾸었어요. 본격적으로는 석사 논문으로 경주의 구시가지 역사 환경을 보존하는 연구를 하면서부터 도시를 공부했습니다.”

-도시재생 연구도 그 연상이었겠군요.

“그렇죠.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논문 주제를 고민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양동마을’을 던져 주시더군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양동마을을 문화재 관점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음 다음 세대까지 어떻게 하면 지속해서 살게 할 수 있을까를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요즈음 이야기하는 재생의 관점이었지요. 특히 저는 컬티베이션(cultivation), 이를테면 ‘변화를 인정하는 보존’을 주목했어요. 그때 역사 경관과 함께 사람으로 관점이 확장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낯설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제를 잘 잡으셨던 것 같습니다.(웃음)

“건축을 전공한데다 도시 공부를 시작한 대학원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해외에서 도시를 제대로 공부한 40대 초반의 연구자들이었는데 얼마나 치열하게 가르쳤는지 그때의 2년이 제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놓았죠.”

-그런 점에서 교수님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 같군요.

“그래서 저도 그 흉내를 내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쉽지도 않고요. 그때는 학부에서 건축 조경 법학 경제를 전공한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자기 베이스를 가지고 전문적인 지식을 같이 탐구를 하다 보니 그 효과가 놀라웠거든요. 교수님들이 가르쳤던 수업 방식이 요즘 이야기 하는 참여형이었는데,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당시에는 문화충격이었어요. 그때 배웠던 것이 공공성과 공익이었죠. 그래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도시마다 도시재생이 과제입니다. 무분별한 개발이 문제더니 지금은 난립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들이 또 새로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중요한 것은 재생에 관심은 있는데, 본질을 이야기 하고 무엇을 어떻게 재생해야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거든요. 특히 지방도시들의 경우 재생의 대상이 모두 오래된 것이고 낡은 것이다 보니 다음세대가 할 수 있는 대상조차 재생이란 명목으로 파괴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의미가 새롭습니다.

”저는 도시재생에 있어서는 ‘방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방치’가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거든요. 지금은 낡은 공간을 방치해두는 일을 못견뎌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빨리 바꾸어 사업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다보면 다음 세대가 할일이 없어집니다. 요즘 습관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많이 쓰는데, 그 뜻이 뭘까요. 저는 그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후손이 손 댈 수 있는 땅을 남겨놓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가 개발할 수 있도록 남겨 놓는 것.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끊임없이 개발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 또 그 다음세대도 손을 댈 수 있고,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절제하자는 뜻이 더 강합니다.”

- ‘방치’는 곧 개발을 절제하는 방식이기도 하겠습니다.

“ ‘방치’나 더 나아가 ‘절제’라는 말이 사실은 재생의 키워드가 되어야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당장 모든 것들을 재생의 대상으로 끌어당기면서 그것을 다 풀어내는데 조급하거든요. 게다가 스스로 해야 될 일을 거의 모두 국가 의존적으로 풀어가죠. 국가에서 사업을 따오는 형식인데, 국가에서 돈을 받게 되니 어떤 결과가 당장 나와야하고, 그 결과를 나오게 하려니 1년 단위로 보여야하는 하드웨어 사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소프트웨어 사업이 있다하더라도 요식행위에 그치기 일쑤고.”

-이런 식으로 나가다보면 도시재생의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겠습니다.

“물론이지요. 이런 방식은 지속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개발을 우선시했던 시기에 나타났던 부작용들이 다시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저는 도시재생 사업이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마다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작음의 미학, 다름의 경제학’의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어요.”

-도시마다 이루어지는 도시재생 공간이나 건축물을 보면 왜 저렇게 같은 길을 계속 갈까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왜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결과죠. 현실적으로 왜 하는가를 따져보면 결국은 국가 돈을 받아쓰려고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거죠. 진정으로 그 지역을 위해서 지역의 재생과 미래에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서 이 일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어 정착되어야하는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예산을 따와 쓰는데 급급한……. 참으로 아쉬운 현실이죠.”

-교수님께서는 특히 산업유산을 주목하고 계시던데요.

“산업유산은 부산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어요. 2001년 즈음부터 산업유산을 연구하기 시작했었는데, 산업유산이라는 용어로 논문을 쓴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산업유산은 앞으로 도시마다 큰 과제일 것 같은데, 바람직한 활용의 방식이 궁금합니다.

“저는 산업유산이라면 작동을 멈춘 지 적어도 10년 정도는 묵혀놓아야 한다고 봐요. 외국의 경우는 20년 30년도 그대로 묵혀 놓습니다. 당장 활용한다고 리모델링에 나서거나 손을 대버리면 그 시점에서의 발상밖에 나오지 않거든요. 국가의 예산에 기댄 것이라면 그 예산만큼만 할 수 밖에 없게 되고요. 그 예산이나 그 시간에 맞는 아이디어 밖에 쓸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다 욕심을 부려 모든 것을 다 손 댑니다. 전국적으로 그런 식으로 예산을 허비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아요. 콘텐츠를 보세요. 다 비슷비슷하죠. 창조적인 답을 찾지 못하니까요.”

-교수님 말씀대로 현실적으로 주어진 예산과 시간 안에 창조적인 답을 찾는 일이 쉽지 않죠.

“창조적인 답을 찾으려면 10년, 20년 그곳을 원래 상태에서 최소한의 변화로 활용하거나 시민들이 이용하면서 그 시대에 맞는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한꺼번에 몇몇 사람의 머리로, 또 자기가 알고 있는 몇몇 외국 사례를 응용해서 하려다 보니 비슷한 답 밖에 못 찾게 됩니다. 그대로 놓고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비엔날레나 문화행사 등으로 활용하면서 그곳을 잘 지키고 유지하면서 공간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예가 많습니다. 에너지를 결집해 쏟아부을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지역의 자산이 되고 재생 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방식도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정부 부처의 방식이 거의 비슷한데, 공모로 경쟁을 시키고 선택을 해서 예산을 주는 방식으로 모든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치단체마다 난리가 아니에요.”

-그런 방식이 오히려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업의 바탕이 되는 조사 작업은 소홀히 하고 늘 보이는 내용으로 사업의 중심을 세우거든요. 다른 나라를 보면 재생사업을 할 때 조사만 열심히 하겠다는 프로젝트에도 지원을 합니다. 조사결과가 큰 성과거든요. 조사가 잘 이루어지면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생각이 모아질 수도 있고, 새로운 발상이 나올 수도 있고.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우리는 용역으로 바로 들어가니 조사가 한두 달 정도, 계절 조사도 제대로 안하는 일이 허다하죠. 그렇다보니 앞의 보고서 베낄 수밖에 없고. 공간이 갖고 있는 본질은 없어지고 예산이 투입되니 오히려 본질이 약해지고 왜곡되기 일쑤입니다. 손을 안대는 것만 못한 결과가 되는 것이죠.”

-도시재생도 결국은 시민들의 의식이 중요할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람이죠. 성공사례를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좋은 시민단체나 좋은 공무원이 꼭 있습니다.”

-일본은 그나마 산업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죠.

“우리와는 좀 다르죠. 우리는 그 시절 힘들게 일했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다는 부정적 기억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똑같은 프로세스를 거쳐도 지난 과거나 역사, 어떤 시설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와는 다르죠.”

-우리 재생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대부분 아웃사이더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아닐까요.”

-아웃사이더라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죠. 전문가나 행정가들. 일본은 반대예요. 대부분이 그 안에 있는 주민들이 일을 시작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죠.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한꺼번에 한다는 것이에요. 도시재생법을 만들어서 권한을 갖게 하고 돈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그 법을 만들다보니까 끊임없이 매년 사업을 해야 하고 그런 바탕에서 움직이다 보니 비슷한 아이템들이 계속 도출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시재생에서 절제의 힘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절제’와 ‘방치’가 사실은 진짜 도시재생입니다. 다음 세대에 기회를 주는……. 방치는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활용하면서 공간의 가치를 지켜내는 방식으로서의 방치를 말합니다.”

강 교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 연구〉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다.

“우리의 근대를 다시 찾는 일입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근대의 유산들을 조사하고 가치를 규명해내는 연구지요. 이 작업만 해놓으면 그래도 중요한 일은 마무리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국의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그가 찾아낸 우리의 근대유산이 곧 우리 앞에 놓일 것이다. 그의 작업이 가져올 의미와 가치가 새롭다.

● [강동진 교수는] 도시재생 시민보존 운동 참여…각종 프로젝트 대안 제시

   

강동진 교수의 고향은 통영이다. 통영에서도 충무 바닷가 강구안, 아름다운 마을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목선을 만드는 재료를 공급하는 목재소를 운영하셨는데, 덕분에 집 앞에 있던 공장이며 톱밥 창고, 나무를 실어나르는 레일까지 모든 공간이 그의 놀이터였다. 그는 아직도 초등학교 시절의 삶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특별한 고민 없이 건축을 전공하고 도시설계를 공부하게 된 바탕이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목선이 철선으로 바뀌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목재소가 도산하게 되자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전학을 간 이후 고향은 늘 그리워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갈때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특별한 목표 없이 건축공학과(성균관대)를 택했다. 공대에서는 그래도 가장 공학스럽지(?) 않고 생각하고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던 자신에게 맞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졸업할 즈음, 고민이 생겼다. 그즈음 읽은 책의 영향이 컸다. 김홍식의 〈민족건축론〉과 하싼 화티의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누구편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시민과 주민, 공공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그때 다졌다. 도시를 공부하고 싶었던 그에게 도전해보라며 용기를 준 사람은 대학시절 은사였다. 스승은 유학보다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할 것을 권했다.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인생의 좋은 스승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도시에 대한 관심을 더 증폭시킨 것은 주거환경 수업으로 진행한 서울의 마포 도화동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생각에 큰 변화를 얻었다. 석사논문으로 경주 양동마을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600년을 지켜온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다음 600년을 이어가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는데, 1년 넘게 양동마을에서 살다시피하며 연구한 덕분에 150가구의 양동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온전히 안게 됐다. 논문으로 끝난 줄 알았던 양동마을은 후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면서 그와 다시 인연이 됐다. 양동마을이 201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에는 2년 동안 학생들과 마을 신문을 만들어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으로 봉사했다.

첫 직장인 대구한의대에서 3년 근무하다 2001년 경성대로 옮긴 이후 줄곧 부산의 도시재생에 애정을 쏟고 있는 그는 특히 도시의 산업유산을 주목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개발에 대항하다보니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그는 부산으로 옮겨온 초반부터 영도다리, 하야리아 부대, 동천, 북항, 산복도로,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등 각종 도시재생 시민보존 운동에 참여해왔으며 한국의 역사마을과 남한산성,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작업을 이끌어 왔다. 학문적 연구와 국내외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하고 조사하는 현장 연구를 병행해온 덕분에 우리나라 도시들의 재생 프로젝트 문제점을 실질적으로 분석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도시재생 전문가로 꼽힌다.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이야기〉, 〈세계의 도시디자인〉 〈도시재생〉 〈한국건축 개념 사전〉을 비롯한 10여권의 저서를 전문가들과 함께 펴냈으며, 2006년에는 산업유산으로 다시 살린 일본의 도시 이야기를 엮은 〈빨간 벽돌창고와 노란전차〉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국토교통부 국토디자인시범사업 민간전문가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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