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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 기고
  • 승인 2016.08.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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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김영 시인

갑자기 강가를 찾아 가더군. 강물은 깊고 부드러웠다네. 자네의 굽은 등이 조용히 출렁이는 걸 지켜보았지. 자네가 염려스러웠다네. 내가 하나님께 가리라고 예감은 했겠지만, 예감한 이별도 막상 닥치면 슬프다네. 자네는 우두망찰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 연민은 넘치고, 나는 이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난 사람이어서 자네의 이모티콘이라도 되어 위로해 주고 싶었다네. 이젠 목 놓아 우는 일도 쉽지 않아서 이모티콘, 바람, 비를 빌려 운다던 자네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지.

예감한 이별도 막상 닥치면 슬프다네

강가에 앉은 자네는 내 사진을 자꾸 만지작거리데. 추억의 주머니를 열데. 자네가 흘린 눈물로 강이 한 뼘은 더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 노을은 아직 익지 않은 채 자네를 물끄러미 건너다보고 있더군. 묵묵히 앉아있는 자네 등을 나비 한 마리가 몇 번이나 쓰다듬더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자네는 시고 떫은 순간들까지 천천히 뒤적거리더군. 그만하시게. 잘 익었네.

조금씩 몸을 뒤채며 강물이 속살거리자 자네도 뒤척뒤척 강을 떠나데. 천천히 걸어서 노을 카페에 들어가 차를 주문하데. 그리고는 이제는 만져지지 않는 웃음을 불러 차를 따르데. 잘 마셨네. 충분히 따뜻했고 향기로웠다네. 그래도 자네와 나 사이의 시간이 식는 것은 아쉬웠다네.

내가 자네 곁을 떠나던 날, 찔레꽃이 뽕나무 밭두렁을 더듬어 피고 있데. 자네도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데. 가난한 살림에 대학은 엄두도 못 냈지만, 자네는 뽕나무 덕분에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지. 뽕잎을 따다 같이 찔레꽃을 바라보곤 했지. 걸핏하면 입술이 부르트고 근육이 욱신거렸지만 재미졌지. 떠나는 내 등 뒤에 대고 자네는 말했네.

‘내가 꼭 물렁게 같어, 등딱지를 잃어버렸어, 슬픔이 뼈 속까지 함부로 들어와 휘젓고 댕겨, 설움으로 발끝까지 저릿저릿혀. 걸핏허먼 가스 불 잊어먹고, 국물은 튀어 넘치고, 생선은 팟싹 태워버려, 어느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고, 어떤 순간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결정을 내려주던 사람을 잃어버렸어, 내 뜻과 달라도 아무 걱정 없이 선뜻 따라갈 믿음을, 생의 절대적인 지표를 잃어버렸다고’

그만 우시게. 내 새끼, 엇나가던 눈길, 서로의 중심에서 비켜서던 순간까지도 나는 자네를 깊이 사랑했네. 세상에 이렇게나 폭삭 늙은 어미가 자네 등딱지가 되었던가? 고맙네.

이젠 그만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보시게. 지금 자네 주위에는 춥고 배고픈 시간을 견디는 어린 물렁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아무도 바다로 이끌어주지 않아서 그들은 날마다 방황하고 있네.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게. 그들과 눈을 맞추시게. 손을 잡아 주시게. 자네가 어미를 놓치고 보니 어머니 없는 아이들의 하루가 얼마나 겁나고 슬플 지 짐작이 좀 가는가? 저녁나절 이웃집 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에 그들의 뼈가 얼마나 삭아 내리는지 가늠해 보았는가? 예약하지 않고도 늘 발부리에 몰려와 있는 어둠과 밥 냄새는 얼마나 끈질긴가? 벌겋게 부어오른 목울대에 우겨 넣는 마른 밥 한 술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인가? 그들에게 물 한 모금 따라 주시게.

이제 그만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시게

끝내 파쇄하지 못한 울음과 눅눅함을 데리고 자네가 호남선을 타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네. 곧 괜찮아질 걸세. 강물은 흘러 흘러 다른 슬픔에게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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