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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기행: 군산역 편] 시간이 멈춘 곳, 금강 물은 흐르네(2)
권혁일 기자  |  milpislove@jjan.kr / 등록일 : 2016.09.03  / 최종수정 : 2016.09.09  09:40:57

1919년, 구암동산의 함성

다시 금강을 따라 하류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바람은 왠지 아까보다 더 세진 듯했다.
원래 누워 있던 것인지 아니면 바람이 너무 세서 누워버린 것인지, 강변의 소나무 몇 그루가 피사의 사탑보다도 더 위태로운 모양새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 문제의 그 나무. 나무가 바람에 휘청이면 뿌리가 박혀 있는 흙바닥이 들썩들썩했다.

 

구암동 방향으로 나오면 건설 중인 동백대교(가칭 ‘군장대교’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3월 ‘동백대교’가 공식 명칭으로 결정됐다)의 아치형 구조물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 왼편, 그러니까 안쪽에 군산항을 비롯한 군산 구도심이 놓여 있는데, 이쯤 되면 아무래도 ‘강’이라기보단 ‘바다’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이었는지, 구암동 쪽으로 접어들면서는 약간 비릿한 바다내음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 동백대교 모습이 명확히 보인다. 왼쪽은 군산시 구도심 지역, 오른쪽은 충남 서천군 장항읍이다.

 

   
▲ 강변로 합류지점에서 경암동 쪽을 바라본 모습.

 

구불길이 찻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다시 서쪽으로 100m쯤 걸어가면, 구불길 이정표가 묘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웬 아파트 단지 같은 곳으로 안내하는 이 푯말을 따라가면, 다시 웬 놀이터를 지나 웬 산길에 다다르게 된다.

   
▲ 정말 묘한 위치다.

 

   
▲ 산길?


따라 올라가면 이번엔 널따란 잔디밭이 나오고, 다시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조형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한강 이남 최초의 3·1운동’이라고 하는 ‘구암 3·5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구암동산이다. ‘구암 역사공원’으로 조성돼 있는 이곳에는 이를 기리는 조형물과 관련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 구암 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조형물.

 

   
▲ 좀 더 크게 보자.

 

1899년 군산항이 열림으로써 군산은 ‘개항장’이 됐다.
대한제국이 확실한 주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개항장이 됐다면 ‘국제도시’로서 우뚝 서고 좋았겠지만, 물론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애초 개항 자체가 일본의 압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니 군산은 순식간에 ‘수탈의 장’이 되고 말았고, 이는 1910년 한일 병탄 이후 더욱 심해졌다.
군산에 철도가 놓인 것부터가 ‘원활한 수탈’을 위한 것이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군산의 인구는 1만3614명이었는데, 한국인은 6581명이었고 일본인은 6809명, 외국인이 214명이었다.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228명 많았다.
군산에서 ‘한강 이남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데에는 아무래도 이런 배경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구암 역사공원 인근에는 구암 3·1운동 기념관도 있으니 함께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 구암 역사공원에는 스탬프도 마련돼 있으니 한 번 찍어보고 가자.

 

   
▲ #대한독립만세스타그램 #구암동산 #스탬프 #구불길

 

   
▲ 구암 역사공원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 바다, 산, 들, 아파트가 공존하는 군산을 압축한 듯하다.

 

열차 대신 사람이 밟는 경암동 철길

구암동에서 서쪽으로 계속 걸으면 더는 금강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이 나온다. 아직 연안도로가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공사장에서 날아오는 흙먼지를 적절한 움직임으로 피하며 ‘구암3·1로’라는 이름이 붙은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연안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그 오른쪽이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 도보 여행 중에 이런 쉼터를 만나면 반갑다.

 

   
▲ 구름의 분포가 묘하다.

 

바닥에 깔려 있는 철길은 원래 ‘세풍제지선’ 또는 ‘페이퍼코리아선’이라 불리던, 군산선의 지선이다. 경암동 페이퍼코리아 공장으로 들어가는 철도로, 2008년 6월까지는 화물열차가 지나곤 했다.
1944년 처음 이 선로가 깔릴 때만 해도 철길 주변은 군산이라는 도시의 ‘외곽’에 해당했겠으나, 이후 해방과 산업화를 거치며 도시 속으로 묻혔다.
단선 철길에 겨우 중형 기관차와 화차 몇 량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간격으로 따닥따닥 집들이 붙어 있었는데, 위험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열차 소음과 진동은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 이쪽이 페이퍼코리아 방향인데, 사진에서 보듯 철길은 '확실하게' 끊어져 있다.

 

   
▲ 경암동 철길마을의 연안사거리 쪽 입구.

 

   
▲ 간이역 모양으로 된 쉼터.

 

관광객이 여럿 보였다. 딱 평일 느낌으로, ‘붐비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떤 이는 셀카봉을 손에 쥐고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지나갔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군산에 왔다는 정모 씨(23)·조모 씨(24) 일행은 ‘개강 전 마지막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사진 찍기에 예쁜 곳이 많다고 해서 왔는데, 붐비지 않고 좋네요.”
   
▲ 사진 찍기 예쁜 곳.

 

그런가 하면 대전에서 온 백모 씨·김모 씨(25) 커플은 교복을 입은 채 철길을 걷고 있었다. 버스로 군산에 와서 근대역사박물관을 들렀다가 경암동 철길마을로 왔다고 했다. 군산엔 초행이었는데, 역시 ‘개강 전 마지막 여유’를 즐기는 중이라고 했다.

“다른 도시보다 보존이 잘 돼 있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일본식 가옥이나 철길에서 옛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보통 관광지라고 하면 명소 한 군데만 꾸며놓는데, 군산은 그쪽(근대역사문화지구) 분위기가 다 그래서 좋아요.”

열차가 다니지 않는 지금은 공공디자인 활성화 사업 등을 거쳐 관광지가 됐다. 곳곳에 옛날 교복을 빌려주는 곳이 있고, 공방과 소품 가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4년께 자원봉사자들이 그려놓은 벽화와 곳곳에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기능적인’ 용도를 잃은 레일은 ‘문화적인’ 용도를 얻었다. 흰 수정펜으로 적힌 수많은 관광객의 낙서 조각들은 이곳의 ‘현재’를 압축해 보여주는 듯하다.

   
▲ '휘빵뿡빵'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페이퍼코리아선의 길이는 전체 2.5㎞로, 대명동 옛 군산역(군산화물역)까지 이어지지만, 실질적으로 관광지라 할 만한 부분은 진포사거리~연안사거리 간 약 500m 정도 구간이다. 진포사거리 너머로도 철길은 이어지지만, 그쪽은 평범한 ‘철길이 지나는 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 신호등이 있는, 꽤 큰 사거리가 나온다.

 

   
▲ 횡단보도를 건너면 이런 모습이 나온다.

 

철길은 화력발전소 방향으로 뻗다 만 지선 하나를 더해 서쪽으로 달린다.

철길을 따라 걷는 사람도, 철길 위에 쌓인 시간도 따라 뻗는다.

   
▲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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