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2016 시민기자가 뛴다
[문화&공감] 순창 '책놀이 네 자매'황호숙·김원옥·이영화·박인순씨 한마음 뭉쳐 / 3년째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수행 / 마을 찾아 노인 한글 가르치며 미술·게임 등도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6.10.17  / 최종수정 : 2016.10.17  23:10:49
   
▲ 책놀이 네 자매. 왼쪽부터 박인순, 황호숙,이영화, 김원옥 씨.
 

“군대에서 편지가 와도 읽기만 하고 답장을 못해서 한이 되어 이제라도 씁니다. 희출이 낳아 업고 있을 때 보고 싶어도 어른들 무서워 제대로 보지 못한 당신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부부인데도 어른들이 보고 있어 신발도 나란히 못 벗어놓고 저녁에 잘 때쯤 이야기 하는 게 전부였죠. 조금만 더 살았으면 우리 부부 여행도 다니고 얼마나 좋았을까요. 좋은 옷 한번 못 입어보고 그렇게 가신 것이 내 생전에 한이 됩니다.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 그때는 오래오래 함께 살아요. 다음 생에서도 당신과 부부의 연을 맺고 싶습니다.”

순창 인계의 세룡마을에 사는 조분님 할머니의 사연이다.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 하는 애틋한 사랑의 편지다. 특별난 사연이 적힌 편지는 아니다. 그러나 조분님 할머니에게는 편지를 이렇게 쓸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 짠하게 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남편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편지 한 장 써보는 게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글을 몰라 남편 생전에 그리하지 못하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오래 된 뒤에야 비로소 남편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어쩌면 평생 맺힌 한을 풀지 못할 뻔 했다. 살다보니 어쩌다, 아니 행운의 기회가 불쑥 찾아 온 것이다. 그 역할을 해준 이들이 바로 순창의 ‘책놀이 네 자매’다.

△의기투합, 책놀이 2급 자격증 따내

책놀이 네 자매는 굳이 나이순으로 호명해보자면, 왕언니 황호숙(52) 씨, 둘째 김원옥(45) 씨, 셋째 이영화(43) 씨, 그리고 막내 박인순(40) 씨, 이렇게 넷이다. 황호숙 씨는 농사꾼이자 초등 독서논술 교사다. ‘열린순창’ 기자 일을 잠시 하기도 했다. 김원옥 씨는 구연동화와 전래놀이 지도사이며 독거노인 돌보미 일을 한다. 이영화 씨는 마트를 운영하다 접고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으며 과거에 유치원 교사를 한 경력이 있다. 박인순 씨는 순창문화원에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아동센터 등지에서 각자 활동하다 의기투합해 3년 전 문화지원사업 활동을 위해 책놀이 2급강사 자격증을 따내는 열성을 보이며 책놀이 네 자매로 뭉쳤다. 그렇게 해서 순창지역 몇몇 마을의 할머니들과 만나며 책놀이 여행을 해오고 있는데, 조분님 할머니의 편지 쓰기도 그 과정에서 나온 결실이다.

△온갖 재능과 끼로 열정소통

   
▲ 할머니들과 함께 책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책놀이 네 자매는 순창문화원의 이름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주관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을 3년째 수행해오고 있다. 그 핵심 프로그램이 책놀이와 그림책 읽기다. 이들은 한 마을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매주 1회 총 30회 정도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육은 단순히 참여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마는 텍스트 읽어주기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놀이 교육활동에 대해 자긍심도 강하고 매우 열정적이며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역할 분담이 잘되어 있으면서도 넘칠 정도로 소통을 많이 하며 상호협동적이다.

네 자매 중에서 주강사 역할을 하는 황호숙 씨는 “할머니들 한 분 한 분 다 박물관이죠. 그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책놀이 여행을 함께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 할머니들의 끼를 살려내는 데 구연동화와 전래놀이에 능한 김원옥 씨나 게임, 미술, 노래, 율동에 능한 이영화 씨가 한몫들을 단단히 한다. 기획하며 실무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박인순 씨도 교육 진행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

△덜덜덜, 쿵쾅쿵쾅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관찰해보면, 그림책 읽기를 하더라도 마을의 생활세계와 연관시키고 전래 민담 따위들과 결부시켜 삶 속의 이야기로 재창조하면서 즉흥적인 상황극으로 나아가게 유도한다. 참여하는 할머니들의 숨겨진 재치와 재능이 발현되게끔 한바탕 신나는 문화 감수성(말, 글, 액션, 그림 따위들)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도록 한다. 한글 배우기나 시 쓰기, 이야기하기, 노래하기, 손 유희나 율동 따위들을 통합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그저 재미지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할머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오랫동안 억눌린 삶의 감정들을 드러내며 자신을 자발적으로 표현하길 바라서다.

그 결과 ‘무지렁이’였던 할머니들은 자기 이야기를 써나가고 어느새 시인이 되어 무한한 감동을 준다.

“나는 이름을 쓸 줄 몰랐다 / 이름을 쓰려고 / 연필을 잡으면 / 손은 덜덜덜 / 가슴이 쿵쾅 쿵쾅 / 이름을 못 쓰니 창피했다 / 한글 공부를 하고 / 이제는 이름을 쓸 수 있다 / ‘박 순 자’ / 내 이름 석 자만 봐도 / 기분이 좋다”

△할머니들, 자기 이야기를 써 나가다

   
▲ 책놀이 교육에 참가한 할머니가 쓴 시.

구림에서 책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순자 할머니가 쓴 시다. 할머니는 문학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자아를 발견하였고 자기 이름을 되찾았으며 잃어버린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주체로서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회가 비록 짧은 시간일지언정, 평생을 통해서 오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해본다는 점에서, 할머니들에겐 소중하고 값진 일이다.

이렇게 책놀이 네 자매는 순창의 마을들을 돌고 있다. 재작년에는 구림의 몇몇 마을에서, 작년에는 인계의 세룡마을에서, 그리고 올해에는 유등의 유촌마을에서 20명 가량의 할머니들을 밤마다 모아놓고 이렇게 충동질을 해왔다. 구림에서의 활동은 당시 군수에게도 감동을 크게 주어 할머니들의 작품을 군청에 전시할 정도였다.

△한, ‘열공’, 그리고 감동

할머니들의 못배운 것에 대한 한이 늙어서나마 ‘열공’으로 보여주는 것은 어딜 가나 다 같은 모양이다. 낮에 일하느라 고단한 몸이 되었어도 밤이 되면 공부하러 회관으로 모여든다. 유촌마을 할머니들은 더 열성적이다. 교육시간이 되어가는 해질 무렵부터 들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하나둘씩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그 무덥던 8월의 어느 날은 영화 〈수상한 그녀〉를 함께 보고 할머니들이 청춘사진관에 들어가게 된다면 언제 적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다. 강의숙 할머니는 “5살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싶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 기술도 배우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서야실 할머니는 “공부가 원이 돼서 꿈에서도 공부를 한다. 7살로 돌아가고 싶다. 왜냐하면 그래야 학교를 가기 때문에”라고 했다. 최봉순 할머니는 “3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받고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책놀이 네 자매의 작은 노력들에 반하여 할머니들은 어느새 마음 짠한 감동을 선사해준다. 이름 석 자 쓰기 위해 너무 오래 세월을 기다렸다.

   
▲ 고길섶 문화비평가
< 저작권자 © 전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고의 다른기사 보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고충처리인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현재 네이버에서 제공한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54931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418(금암동)  |  대표전화 : 063)250-5500  |  팩스 : 063)250-5550, 80, 90
등록번호 : 전북 아 00005  |  발행인 : 서창훈  |  편집인 : 윤석정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김재호
Copyright © 1999 전북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esk@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