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세 남편 폭력서 도망친 곳 13년 무일푼 노동70대 말기암 지적장애 여성 기구한 삶…"갈 곳 없었다"
남승현 기자  |  reality@jjan.kr / 등록일 : 2016.10.19  / 최종수정 : 2016.10.20  15:06:11

19일 오전 10시 전주시 평화동 모 요양병원. 항암 치료 때문에 몸이 부쩍 야윈 전모 씨(70)는 김제의 한 식당에서 13년간 일하고도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갈 곳이 없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일 못 한다고 동료한테 구박은 받았지만, 주인한테 맞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월급으로 받은 돈은 없구요. ”

김제시 요촌동의 한 정육점 겸 식당에서 지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3년간 일을 한 전 씨는 오전 9시부터 12시간 동안 청소, 설거지 등을 했다. 어쩌다 늦게 일어나거나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동료 종업원에게 구박받은 적은 있지만, 주인 내외의 가혹 행위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 음식점에서 일을 시작할 때 한 달에 30만원씩 받기로 했다는 전 씨는 13년 동안 4680만 원(최저시급 기준 1억5000만 원)의 월급을 전혀 받지 못했고, 식당 손님들로 부터 팁으로 받은 60여만 원을 주인에게 빌려줬지만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13년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며 숨죽여 인생을 살아온 전 씨에게는 장애(지적장애 3급)와 함께 남아있는 과거가 있었다.

전남 신안이 고향으로 신안군에서 결혼해 1남 4녀의 자녀를 둔 전 씨. 그러나 남편의 폭행이 심해 막내딸과 함께 가출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남편에게도 폭행을 당하자 막내딸과도 이별하고 지인의 소개로 김제의 한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 전 씨를 찾은 건 지난 2007년 전 씨의 남동생이었다. 당시 김제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전 씨와 인상착의가 비슷한데 연락을 해보라”는 말이 단서가 됐다. 당시 누나를 거둘 형편이 못된 전 씨의 동생은 “누나가 김제를 떠나기 싫어했고, 또 식당 주인이 ‘죽을 때까지 누나를 챙겨 주겠다’고 했다”며 “식당 안주인도 누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식당에서 큰 문제 없이 지냈지만 올해 초 속이 쓰려 찾아간 병원에서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4월에 수술을 받은 뒤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으며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전 씨의 사연이 알려진 것은 막내딸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 경북 경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전 씨의 막내딸(36)이 수소문 끝에 어머니를 찾았고, 십 수년간 자신의 어머니가 월급도 못받고 일한 것에 분개해 지난달 21일 식당 주인을 김제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13년간 전 씨를 종업원으로 고용하면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혐의(장애인복지법 위반)로 식당 주인 A씨(64)를 불구속 입건했다.

그러나 A씨는 “오갈데 없는 전 씨와 가족처럼 지내면서 가게 일과 의식주를 함께 했다”며 “처음 전 씨를 맡았을 때 월급을 주겠다고 약속한 일이 없고 13년간 함께 지내면서 돌봐왔는데 임금착취라는 죄명으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요양병원에서 오랜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낸 전 씨. 가정 폭력에서 시작된 그의 슬픈 과거가 식당에서 지내온 13년의 삶보다 더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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