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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기행: 오산리역 편] 흐릿한 기억 속, 등잔 밑 간이역익산까지 3.4㎞…도심 옆 간이역의 '예정된 운명' / 여객취급중단 후 시설물 철거...사실상 버려져
권혁일  |  milpislove@jjan.kr / 등록일 : 2016.10.28  / 최종수정 : 2017.01.11  15:09:30
   
▲ 오산리역.


동쪽으로 다시 달려 군산시와 익산시의 경계를 넘는다. 철길은 완전한 직선이 되어 내달리고, 자동차는 들판 한가운데를 미끄러진다.
오산리역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같은 것은 없다. 의지할 것은 지도뿐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들판과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 코스모스, 어린이 보호구역, 공사 현장 등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역이 없어진 지는 오래됐어요. 예전에, 그러니까 제가 여기 부임할 때만 해도 열차가 서긴 했죠.”
- 김미영 오산 농협 하나로마트 점장
“(오산리역이 없어진 지)오래됐어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 인근 식당 관계자
“(오산리역이)있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 오산면사무소 관계자

존재감은 이미 희미해져 있었다.
오산리역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대야역처럼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역도 아니고, 임피역처럼 문화재가 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정표도 따로 없다.
그냥 그렇게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그것이 오산리역의 일생이다.

임피에서 넘어가려면 북쪽으로 크게 돌아 서수교차로에서 27번 국도에 올라탄 뒤 장신교차로에서 내려오는 방법과 제희미곡종합처리장 남쪽 삼거리에서 왕복 2차선 길을 타고 동쪽으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 전자 쪽 길은 속도를 내기 좋고, 후자 쪽 길은 철도와 최대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일 수 있다.
북쪽에서 내려간다면 왼쪽에 오산초등학교가 나올 무렵, 남쪽에서 올라간다면 왼쪽에 농협이 나올 무렵이면 ‘거의 다 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철도와 나란히 서쪽을 향해 뻗은, 자동차 교행이 불가능한 좁은 길을 따라 200m쯤 들어가면 ‘오산리역’이라 쓰인 역명판을 만날 수 있다. 중간에 무인건널목이 하나 있다.

   
▲ 플랫폼 방향으로 가기 위해 무인 건널목을 건넌다.

 

   
▲ 오산리역 앞 건널목.

 

   
▲ 건널목에서 바라본 오산리역 플랫폼.

 

오산리역이라는 이름은 물론 지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인데, 여기서 ‘오산’은 한자로 五山인데, 오산면 측에 따르면 이것은 처음부터 ‘다섯 개의 산’을 가리키려던 이름이 아니고, 鰲山, 그러니까 ‘자라산’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이 지역의 주산 이름이다.
‘오산역’이 아니고 굳이 마을 리 자를 붙여 ‘오산리역’으로 지은 것은 물론 다른 지역에 ‘오산역’이 있기 때문이다. 경부선 오산(烏山)역이 그것인데, 이쪽은 무려 1905년에 문을 연 데다 규모도 훨씬 크고, 지명의 단위도 ‘시’급(경기도 오산시)이니 이쪽을 우대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보이는 것은 풀이 무성한 플랫폼(이었던 콘크리트 구조물)과 ‘오산리역’이라 쓰인 역명판, 그리고 이들을 지키려는 듯 빙 둘러 있는 철조망뿐이었다.
철도산업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오산리역은 1931년 6월 15일 ‘역원무배치간이역’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냥 그랬다.
이 역은 단 하루도 ‘보통역’이 된 적 없이 일생을 간이역으로만 살았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는 역원이 배치돼 있었는데, 이 기간을 제외하면 등급은 쭉 ‘역원무배치간이역’이었다.
역원이 배치된 적이 있으니 역사(驛舍)라고 할 만한 건물이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대체로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조그만 시설물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은 옛 군산선 동지인 개정역과 비슷하다.
그러나 10월 18일 취재팀이 찾았을 때는 그 조그만 시설물조차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 시설물은 코레일 전북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철거됐다고 한다.

 

   
▲ 한때 '오산리역'이었던 공간. 시설물은 철거된 지 오래다.

 

   
▲ 역명판을 뒤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플랫폼엔 풀이 무성하다.


플랫폼 방향으로 가서 보면 (오산리역과는 딱히 관련 없는)‘기록탑’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는 조형물이 있고, 그 뒤로 조그만 공터를 남겨둔 채 민가가 자리하고 있다. 다만 꽃등에와 나방이 노란 돼지감자꽃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닐 뿐이었다.
철조망이 역을 감싸고 있었다. 그 철조망은 넝쿨이 감싸기 시작했다. 한때 사람과 작은 짐 보따리들이 오르내렸던 콘크리트 구조물은 이제는 아무도 밟을 수 없다. 사실 굳이 밟을 이유도 없다. 이곳에는 어떤 열차도 멈추지 않는다.

 

   
▲ 플랫폼을 감싼 철조망 뒤, 돼지감자꽃이 피어 있다.

 

   
▲ 승객은 없고 꽃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7년, 그러니까 군산선 통근열차가 다니던 마지막 해에 오산리역에서 열차를 탄 사람은 3128명, 여기서 내린 사람은 1724명이었다. 승하차 인원 합계가 4852명인데, 이는 개정역(3182명)보다는 조금 많고 임피역(8807명)에 비해선 절반 정도 수준이었다.
승차 인원 대부분은 군산역으로 가는 사람이었고, 상행, 그러니까 익산 쪽으로 가는 열차를 이용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다. 여기서 송학동 시가지까지의 직선거리가 2㎞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익산역은 3.4㎞, 익산 고속버스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도 비슷한 거리에 있다. 익산시내 쪽으로 가고자 한다면 차라리 면사무소 쪽으로 조금 걸어나가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25번이나 76번 시내버스를 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 오산면사무소 앞 들판. 멀리 보이는 교량은 장항선 익산~대야 복선철도.

 

   
▲ 오산면사무소를 지나 잠깐 동쪽으로 달리면 나오는 풍경. 가을이라 역시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철길 너머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 여기까지 나오면 이제 도심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데, 이런 것이 도시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간이역의 운명일까. 딛고 있는 땅이 서울이었다면 전철역으로라도 생을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옛 통근열차를 대신할 ‘전북권 광역전철’이 제안된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꿈일 뿐이다.
2008년 1월, 철도가 금강 건너 장항선과 연결되고 군산선 통근열차가 폐지되면서, 오산리역은 그날로 여객취급이 중지됐다. 임피역이 서천~익산 새마을호로 생명을 넉 달 연장한 것과도 또 다르고, 이런 점에선 오히려 군산화물선에 앉아 있는 개정역 쪽과 비슷하다.

 

   
▲ 열차는
   
▲ 오산리역을
   
▲ 그저 통과할 뿐이다.

 

남쪽 삼거리에서 동쪽 오산면사무소 방향으로 나와 평동로를 따라 약 500m를 가면, 이제부터는 철도와 도로가 마지막으로 나란히 달리는 구간이다.
여기서 들판 넘어 남쪽 지평선 위로 익산~대야 간 복선철도가 놓일 다리가 보인다. 열차는 훨씬 빨라질 것이고, 또 더 많은 수가 지나다닐 것이며, 철도는 도로와는 꽤 멀어질 것이다.
철길 옆 코스모스가 흔들흔들 춤을 추는 그 광경 뒤로 익산 도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북제일고와 이리중학교를 옆구리에 끼고, 철도는 호남에서 가장 바쁜 역, 장항선의 종착역을 향해 마지막 커브를 그린다.

   
▲ 가을 풍경은 한적하다.

 

   
▲ 그림=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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