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병든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차선우 소설집 〈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
진영록  |  chyrr@jjan.kr / 등록일 : 2016.12.01  / 최종수정 : 2016.12.01  23:55:20
   
 
 

‘계단을 빼고는 전부 벽이다. 그 벽에 난 철문들은 하나같이 굳게 닫혀 있다.… 문득 자신을 둘러싼 벽과 문들이 싸늘하게 느껴진다. 자신은 그 벽이 뱉어낸 오물처럼 여겨진다.’

거대한 사회로 진입하려 애쓰지만 벽에 가로막힌 인간의 모습. 그 사회로부터 내쳐졌지만 진입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

차선우 소설가의 첫 소설집 <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는 그러한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성을 고발한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사회를 낱낱이 파헤치며 그 속에 담긴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저자는 선량한 사람이 착하게 살아가지만 전혀 복을 받지 못하고, 또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사회속에서 더 곤경에 빠지는 세상의 현실, 그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표제작인 ‘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는 부부의 성폭력 문제를 다룬 소설로, 물리적 힘을 가진 강자에 대한 약자의 응징을 그려 독자들이 ‘통쾌했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단다.

등단작인 ‘더미’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며 과학에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 ‘인간 더미’를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의 특수성을 실험하는 도구로 보고 있다.

기계에 잠식당하는 인간, 기계를 누리고 살면서도 그에 종속되는 삶을 그린 ‘W’는 일본 만화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스탠드 어론(Stand alone) 콤플렉스’처럼 네트워크 상에서 이탈되어 혼자일 때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을 묘사한 소설이다.

요양원에 자원봉사하면서 노인들의 심리를 파악해 쓴 ‘수상한 대합실’, 선을 위장한 악과 악을 위장한 선을, 착한 사람이 반드시 착한 것만은 아닌, 그래서 오히려 착함이 불편을 끼치는 문제점들을 묘사한 ‘악어를 사주세요’ 등은 겉보기와는 다른 인간의 내면 사회 속성을 표현한 소설로 인간 내면의 선이 진짜 선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마지막 소설 ‘보람의 끝’은 미스터리 쇼퍼가 약자를 힘들게하며 오히려 강자를 돕게 된다는 내용으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게임에 빠져 현실과 단절된 모습, 정확한 판단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의 삶, 취업못한 청년 이야기, 마음 속에서 이상향을 꿈꾸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이상향이 벽에 갇히게 되는 삶, 현실 만을 요구하는 사회 등은 이 단편소설들에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들이다.

김양호 소설가(숭의여대 교수)는 “작가는 삶의 질곡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들의 면면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일상적 삶에서 훼손되어가는 인간성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회복하려는 방법론 모색에 힘을 쏟는다”며 “수식화되어가는 사회현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는 비장하면서도 처연하고, 의연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평했다.

   

첫 작품집을 낸 소설가는 이제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교묘하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단다.

차선우 소설가는 익산 출생으로 50세에 소설을 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 원광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 쓰기를 배웠다.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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