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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되나요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6.12.01  / 최종수정 : 2016.12.01  23:55:18
   
▲ 백봉기
 

‘눈이 내릴 때 삶의 무상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가짜 시인 행세를 한 적이 있다. 한 쪽에 모아두었던 시집을 꺼내어 정독을 하고, 감정 떠오르는 대로 시 쓰기를 흉내 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시의 소재였고, 수필 쓰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기만 시인이 던진 말이 가슴을 찔렀다. “함부로 시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다가 안 되면 결국 가짜 시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비 시인이 너무 많아서 행복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K시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선생님의 평가는 더 냉혹했다. “시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시 50편은 외우고난 다음에 써야한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며 30여 편 중에서 대여섯 편만 남기고 나머지는 빨간 볼펜으로 엑스선을 그었다. 창피했다. 그 뒤로 짝퉁 시인 행세를 그만 두고 글 가는 대로 사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엊그제 우연히 컴퓨터를 뒤지다가 수년 전에 사장시킨 그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해도 되나요’라는 시가 울컥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 글을 쓰던 때의 혼령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리워해도 되나요 꿈에서라도

그대 가슴에 얼굴 묻고 / 따뜻한 체온 느껴도 되나요

길을 걷다가도 / 문득 문득 떠오르는 당신

사랑한다는 말 / 염치없지만 / 단 한번 단 한번만이라도 해도 되나요

내 뜨거운 심장으로 / 그대를 온통 멍들게 해도 되나요

내 그리운 이여 / 견디다 못해 지쳐 쓰러질 때

당신 사랑했다는 말 진정 해도 되나요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것 같다. 꿈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문득 떠오를 만큼 만나고 싶었던 이. 사랑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로 가슴 벅찬 짝사랑은 아니었는지. 손에 잡힐 듯 말 듯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느껴지고,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다시 멀어지는 슬픈 사랑이야기인 듯싶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를 향해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했고, 그 열정은 뜨거웠던 것 같다. ‘그리워해도 되나요’ ‘느껴도 되나요’ ‘사랑해도 되나요’ 이루지 못할 사랑일지라도 진정 사랑했다는 말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두 사람의 만남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가슴 설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이 시의 제목은 ‘시애詩愛’이었다. 시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애절하던 때였다. 마치 시인이나 된 것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릴케가 되고 소월이 되고, 때로는 설렘과 번민과 가슴앓이로 밤잠을 설칠 때였다.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시어詩語 하나를 목마르게 갈망하던 때였다. 결국 포기해야 했다. 시는 수필보다 더 가시밭길이었다. 사랑이 핑크빛만은 아니듯 시창작의 길도 끝없는 고뇌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도 되나요〉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던 내 지난날의 초상인 듯하다. 누구에게 답답한 심정을 고백하고 의지하며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읊조렸던 것이리다.

누군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망설일 때가 있다. 나 또한 인생의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했고 결국 나 스스로 갈 길을 결정하면서 살아왔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과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갈림길에서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했든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잘못된 선택이었더라도 그것은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픔이 컸던 만큼 더 성장할 수가 있었다.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앞으로 펼쳐질 내 운명에 또 어떤 선택의 갈림길이 있을지. “이렇게 해도 되나요?” 그저 신의 뜻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백봉기 수필가는 군산 출생이며 한국산문 수필공모에 당선됐으며 KBS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현재 전북예총 사무처장으로 있으며 수필집 '팔짱녀'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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