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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퇴임 앞둔 라승용 농촌진흥청 차장 "고향에 남아 농업발전 위해 혼신 다할 터"농촌진흥청 전북이전 열정 쏟은 일 가장 보람 / 연구직이면서 새 기술 연구 많이 못해 아쉬워
김윤정 기자  |  kking152@jjan.kr / 등록일 : 2016.12.18  / 최종수정 : 2016.12.18  23:33:16
   
▲ 올 연말 퇴임을 앞둔 농촌진흥청 라승용 차장이 공직생활 소회와 퇴직 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라승용 농촌진흥청 차장은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해 37년만에 1급까지 오른 인물이다. 김제출신인 그는 농촌진흥청 공공기관 지방 이전 초대추진단장을 맡아 전북혁신도시의 농업분야 R&D 기관의 집적을 이뤄냈다. 농촌진흥청 이전은 전북혁신도시 농생명연구단지가 조성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라 차장은 연말이면 40년 6개월 간 몸담아 왔던 공직을 떠난다. 전북출신으로 처음 농촌진흥청 차장에 오르기까지 우려곡절도 많았다.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라승용 차장은 40년 공직생활 동안 보람된 일도 물론 많았지만, 그 만큼 아쉬운 점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공직을 떠나는 심경과 그 동안의 소회, 한국농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는 소회가 누구보다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농촌진흥청을 떠나시는 느낌이 어떠신지요.

“일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지난날 내 발자취에 대해 돌아보니 만족보단 아쉬움이 남습니다. 막상 공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오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반성과 일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된 일과 가장 후회됐던 일은 무엇입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40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정말로 이 일만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농촌진흥청의 전북이전에 온 힘을 쏟은 것이죠. 혁신도시 사업은 참여정부시절 낙후된 지방을 살리는 한편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됐습니다. 저는 농촌진흥청에서 초대지방이전단장으로 오면서, 제 자리를 걸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맡으면서 온갖 비난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전북혁신도시에 제대로 자리 잡은 농촌진흥청과 산하기관 시설을 둘러볼 때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제가 연구직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위한 연구를 많이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연구서비스와 행정지원파트에서 보냈습니다. 연구에 깊이 빠져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어떤 위치에 가서든지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병해충 방재기술, 친환경 농약개발 등 당시에 하고 싶은 연구들을 못해본 것이 미련이 남습니다.“

-앞서 말씀하셨다시피 농촌진흥청의 전북이전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혁신도시 사업이 시작될 때, 정부는 농촌진흥청 본청을 비롯한 7개 소속기관을 각 도에 하나씩 따로 이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과 같은 연구기관은 흩어지면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에 저는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모든 기관의 집단이전을 주장해 관철시켰습니다. 특히 본청을 전북으로 올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투쟁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라승용이 고향전북에 업적을 세우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 등의 숱한 오해와 음해도 많이 받았죠. 농진청이 수원에 자리잡은 지 52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는 것은 단지 시설과 직원의 공간적·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농업연구의 역사와 전통·정신을 새로운 연구시설과 청사에 담아 전북혁신도시로 옮겨 농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세계적 농업연구의 중심이 될 새로운 농업연구 메카를 만들고자 한 것이지요. 우여곡절 끝에 이전이 완료된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저와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에 입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장학금을 받고 김제농고에 진학했습니다. 그 당시 농고는 3학년이 되면 실습을 통해 취직했죠. 저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포기하고 서울에서 농림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 후 합격했습니다. 그 후 못 이룬 꿈을 위해 일을 하면서 방통대 학사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와 보니 어언 40년이 지났습니다.”

-공직사회에서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셨는데요. 후배 공직자 분들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흙수저·헬조선 등 노력이 타고난 스펙을 앞지른다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래도 아직까진 열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의 인사권은 당신이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다’고 말입니다. 누가 인사권자로 오든지 간에 농촌진흥청의 경우 논문과 각종 실적이 승진의 기준이 됩니다. 최근 ‘멘토’라는게 유행했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멘토가 누구였냐고 많이 물어봅니다. 저는 ‘내가 만난사람 모두 멘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배웠습니다.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고 꾸준한 열정을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내 인사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발전하길 바랍니다.”

-공직을 떠난 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은퇴를 앞두고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네요. 저는 아직 현직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능력을 한국농업발전을 위해 쓰자’는 다짐입니다. 정년이 다가오니까 몇몇 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제안도 왔습니다만, 저는 후학양성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자칫 연구활동을 오래 떠난 제가 ‘낡은 학문’을 가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농진청 국장급 이상 퇴직 동기들하고 뜻을 같이 한 것이 있습니다. 전북에 남아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우리의 재능을 기부하자고요. 저는 전북에 온 사람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저는 수원에 있던 집을 다 정리했습니다. 전북에 남아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가끔 찾아와서 ‘차장님 이제 노는 것 좀 연습하세요’라고 하는데 천성이 놀지 못하는 체질인가 봅니다.”

● [라승용 차장은] 근성·뚝심으로 9급서 1급까지

라승용(59) 농촌진흥청 차장은 김제 출신으로 김제중앙초, 김제중학교, 김제농고(현 김제자영고)를 졸업했다. 영농학생으로 학비를 절약, 각종 장학금을 받으며 김제농고를 졸업한 뒤 1976년 농림직 9급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첫 발령지로 국립 부산생사검사소에 발령받은 그는 군 전역 후 국립자재검사소에 잠시 머물다 농촌진흥청 농약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연구원의 삶을 시작했다.

고졸 신분으로 농림부에 9급 공무원으로 들어온 후 방송통신대를 10년 동안 다녀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농진청 본청 연구기획과장과 정책과장에 이어 참여정부 시절 농진청의 전북 이전을 총괄하는 지방이전지원단장을 역임했다.

그 후 본청 연구정책국장과 국립축산과학원장에 이어 지난해부터 국립농업과학원장으로 일했으며, 지난 2013년 제24대 차장으로 임명됐다.

라승용 차장을 대변하는 단어는 ‘근성’과 ‘뚝심’이다. 라 차장은 열등감을 열정의 원천으로 삼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40년 인생을 농업발전에 바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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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주
40여년 짧지않은 공직생활 정말고생많이하셧습니다 저도77년10월에 수원수성중학교에서 공무원시험을
봣는데 필기시험은 만점맞았는데 군복무미필로 불합격처리되었습니다 고생하시었습니다

(2016-12-22 10: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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