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11-22 20:01 (금)
미적미적 늑장 대처, 살처분만 거침없이
미적미적 늑장 대처, 살처분만 거침없이
  • 기고
  • 승인 2017.01.02 2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I긴급행동지침 무시 / 선제적 대응에만 치중 / 무능한 정부 방역 실패
▲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세밑, 김제시 용지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이 일대는 122농가에서 455만수를 기르는 대표적인 산란계 단지다.

그런데 무려 70농가에서 기르던 163만 마리가 사흘 만에 떼죽음을 당했다. 이중 고병원성 AI가 걸린 농장은 2농가에 16만여 마리다. 나머지 147만 마리는 AI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다. 예방적 살처분 때문이다.

AI가 발생한지 한 달반 만에 살처분 된 가금류는 531농가에 2614만수를 넘어섰다.

2014년 1월16일부터 2015년 11월15일까지 669일 동안 809호 농가에서 살처분된 1937만2000수를 한 달 반 뛰어 넘었다. 보상금 역시 같은 기간 1392억원을 훌쩍 뛰어 넘어 1558억 원에 이르렀다.

사육환경이 열악하고 밀식률이 높은 산란계의 피해가 컸다. 죽은 산란계는 2041만수로 전체의 78.1%를 차지했다. 달걀 값도 한판에 만원, 3배 가까이 치솟았다. 문제는 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AI가 발생한 일본은 초기에 바로 ‘심각’ 단계로 대응한 결과 6개 농가 90만 마리 살처분에 그쳤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AI가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나고, 2000만마리가 죽고서야 ‘경계’ 에서 ‘심각’ 으로 격상시켰다. 늑장도 이런 늑장이 있을 수 없다.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은 초동 대처의 중요성을 뼈아프게 보여준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도 제자리걸음 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쓰레기 처분하듯, 불량 공산품을 폐기처분 하듯 싹쓸이 하는 살처분은 방역의 효과는 크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오히려 살처분에 참여하는 일용인부에 의한 전파 가능성이나, 작업 과정에서 바이러스의 확산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본과 미국은 발생 농장만 살처분 하고 있다. 범위 결정도 시장·군수의 권한이다.

AI SOP(긴급행동지침)도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하여 예방적 살처분은 500M 이내에로 제한하고 농가 차단 방역에 집중하는 쪽으로 개정 되었다.

그런데 농림부는 ‘선제적 대응’이라는 말을 써가며 사실상 김제시에 용지면 143만 마리를 예방적 살처분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과도한 살처분으로 정부의 초동 방역 실패와 무능을 덮어버리려 한 것이다.

AI는 이미 토착화된 가축전염병으로 봐야한다. 2003년 처음 발생한 이후 거의 매년 발생했다. AI 발생 농장의 재발 율이 26%에 이른다. 20도가 넘으면 사멸한다는 AI가 여름철에도 발생했다. 현재까지 살 처분한 가금류는 무려 7110여만 마리에 이른다.

그런데도 여전히 역학조사는 철새를 유입원으로 지목한다. 하나마나 한 말이다. 야생 조류는 AI바이러스의 숙주다. 그렇다고 철새를 다 없앨 것인가? 가장 중요한 예방책은 차단 방역이다. 대부분 농장 출입과 방문, 배설물 등 분비물의 이동과 날림, 농장으로 유입, 유출되는 물과 공기가 원인이다. 사람의 노력에 따라 AI 확산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장식 밀식 사육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AI는 계속 될 것이고, 언젠가 종간 장벽을 넘어 사람을 감염 시킬지도 모른다.

예방적 살 처분을 하던 작은 농장에서 맞닥뜨린 장면 하나. 살 처분을 하고 있는 옆 계사의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 닭들이 사료를 쪼아 먹고 있었다. ‘ 마지막 가는 길, 배라도 부르라고 주인이 사료를 주었으리라…’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렸을 농민에게나, 아무 영문도 모르는 닭들에게도, 참 못할 짓이다.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다. 그만 하자, 살처분.

△이정현 사무처장은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전북환경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