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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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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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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읽고 떠오른 다양한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해서 쓰는 송준호 교수의 ‘문장의 발견’은 앞으로 매주 월요일 연재된다.

‘향전일소보 문명일대보(向前一小步 文明一大步)’, 짧은 한문이다. 공중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맞은편 벽에 눈길을 잠시 주었다가 발견한 문장이다. 물론 우리가 아니고 이웃 대륙에서다. 이 문장을 번역하면 대충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 한 발짝만 다가서면 우리도 문명화된 사회를 크게 앞당길 수 있습니다.’ 의문 하나가 슬그머니 꼬리를 물었다. 이 나라 남자들은 소변을 보다가 이런 걸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 그렇지.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아직 문명화되려면 멀었어.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도 쌔고 쌨는 걸? 그러니 이런 말이야 당연히 필요하지. 소변기에 바싹 다가서서 볼일을 보면 문명화가 된다고 했으니 나부터 실천해야지, 아암….’ 뭐, 그런?

‘한 걸음만 더…’는 요즘 공중화장실에서 흔히 별견할 수 있는 문구다. ‘깨끗이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를 덧붙인 표지판도 있다. 만약 ‘한 걸음 다가설 줄 아는 당신은 진정한 문명인입니다’라고 적혀 있다면, 그걸 읽은 우리나라 남자들은 이렇게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문명 좋아하시네. 여러분들이나 실컷 문명하세요.’ 그만큼 문명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일 것이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고 쓴 건 다분히 수사적이다. 남성성을 자극해서 ‘흘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우회적으로 당부하고 있어서다. 물론 눈물 말고도 남자라면 함부로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긴 하다. 그걸 주의하는 것이,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것이 공중도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남녀 화장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문장이다. 찻집으로 예쁘게 꾸민 어느 어느 고택(古宅) ‘칙간’의 소변기 앞에 붓으로 유려하게 적어 붙인 문구는 이랬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온 국민을 향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는 심한 자괴감이 든다고 했던 ‘그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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