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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로 귀향, 장편소설 〈문신〉 집필 중인 윤흥길 소설가 "6·25 전쟁 뒤 사회문제 소설 주안점으로 부각"송광사 인근 3년여 칩거…하반기 5권 완간 예정 / 한민족 정체성 귀소본능·기독교 본향의식 다뤄
진영록  |  chyrr@jjan.kr / 등록일 : 2017.01.22  / 최종수정 : 2017.01.22  23:07:55
   
▲ 완주 소양 송광사 인근에서 장편소설 〈문신〉의 집필을 마무리 중인 윤흥길 소설가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며 웃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블랙리스트 파문 등 어지러운 시국 속에서 소설 <완장>이 재부각되고 있다. 198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권력의 실체와 속성을 파헤친 작품이지만, 권력이 폭력이 되는 세상과 그 ‘권력’ 에 대해 걸쭉한 입담과 해학으로 풀어낸 점이 현 시국과 맞아떨어지면서 ‘이 시대 꼭 읽어야 할 소설’로 다시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현대사회의 모순을 낱낱이 파헤친 작품들을 써온 윤흥길 소설가가 고향에서 책을 쓰고, 또 이를 고향에서 출간하고 싶어 3년전 완주 소양으로 내려왔다. 지인들과도 거의 왕래를 끊고 칩거하다시피 하며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작가가 올해 하반기 출간 예정인 장편소설 <문신>에 대해 처음으로 전북일보에 상세하게 공개했다. 고향에서 출판하는 책의 내용을 고향의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것도 고향을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먼저 귀향하게 된 배경부터 말씀해주시죠.

“정읍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익산으로 이사해 성장기 대부분을 보내다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동안 고향을 떠나 작품활동을 했지만 한시도 고향을 잊지않았습니다. 고향을 작품의 무대로 삼아 고향집과 사람들, 사투리가 담겨진 토속적인 고향 이야기를 주로 써왔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니 고향을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마지막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고향에 돌아오니 마음이 푸근해지고 또한 좋은 일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지난해에는 손주가 태어났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는 겹경사들도 이어졌습니다.”

- 올 하반기에 완간 예정인 대작 소설의 소재를 문신으로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옛날에는 문신을 부병자자라 했습니다. 병정으로 뽑혀나갈 때 있었던 관행입니다. 난리가 나거나 전쟁이 발생하면 타지에서 객사하거나 비명횡사할 것에 대비해 입영 직전에 몸에 문신, 죽으면 자기 시신을 식별해내서 고향 선산에 묻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는게 가장 큰 바람이지만 죽어서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묻히길 소망하는 마음이 담긴거죠.”

- 소설 〈문신〉의 내용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문신은 우리 한민족에만 있는 특징으로 종교적 의미와 주술적 의미, 둘다 가지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종교적인 의미로 문신을 하고, 전사들은 용기를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조폭들에게는 위협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죠. 그러나 시신이 고향에 묻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문신을 하는 것은 우리 만의 뼈아픈 사연이 담긴 것이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표시로 새겼던 우리 조상들의 풍습인 문신은 고향으로의 귀소본능입니다. 이번 작품은 일제말 강제 인력동원된 사람들이 문신을 행했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본향의식을 연결했습니다.”

- 장편소설 〈문신〉을 고향에서 마무리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너무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또 사연도 많은 책입니다. 오래 전부터 구상해오던 것을 1990년도에 처음으로 집필해 오며 두 권 분량을 썼지만 출판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저작권 분쟁문제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후 다시 3년 째 연재해오던 곳마저 폐간되면서 재차 저작권 분쟁에 휩싸이게 됐고 결국 계약금을 배상하고 판권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그러다 3년전 고향에 내려오면서 그 동안에 써왔던 내용을 다시 전면 수정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써온 내용을 전면적으로 뜯어 고치라는 뜻에서 내린 시련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봄에서야 출판사와 계약돼 3권 분량은 출판에 돌입했고 나머지 2권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 그동안 발표해온 현대사적 작품들과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 같은데요.

“작품생활 10년동안 일관된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 작품의 원초적 기억은 6·25에서 출발합니다. 9살 때 6·25를 겪었고 이는 사회적 자아가 싹트기 이전인 소년 시절이었기에 강렬하게 머물러 있습니다. 7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이후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을 빌미로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습니다. 토지 수용과정에서도 쉽게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사회불평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GNP 수준에 비해 복지·문화·교육수준은 취약해졌고 북한과 대립한다는 명목으로 국방비가 과다지출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전쟁과 분단문제에서 못벗어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전쟁 후유증을 목격한 저로서는 사회문제가 소설의 주안점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었죠.”

- 우리 근·현대사의 문제와 아픔을 주로 다룬 작가께서 블랙리스트에 빠진 것이 의아해집니다.

“글쎄요. 분명 전에는 리스트에 올랐었는데 왜 지금은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늙어서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나(웃음).”

- 3년여 만에 돌아온 고향의 모습은 어떤지요.

“지난 1961년 전주사범 졸업 후 춘포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습니다. 문학의 꿈을 키운 곳이죠. 또 동반자가 된 부인 유계영 권사와 인연을 맺게 해준 곳이기도 하죠. 최근 그곳을 찾았습니다. 옛 모습이 없지만 위치는 그대로였습니다. 더구나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만경강 하천관리사업의 일환으로 만경강가에 이야기 공간을 조성해 매우 흡족했습니다. 춘포문학마당에 있는 가람 이병기 선생과 홍석영·정양·안도현 작가 등의 문학비는 우리의 삶과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새겨, 지역의 정서를 올곧이 담아냈더군요. 익산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향후 작품 구상도 밝혀주시죠.

“객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고향이 더 잘 보여 고향에 대한 작품을 많이 썼어요. 그러다 고향에 내려오니 고향에 대해 쓸 이야기가 더 많아졌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걸 꿈꾸는 아리랑인 ‘밟아도 아리랑’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또 손자가 생기다 보니 동화도 쓰고 싶어지구요. 여기는 새나 짐승들이 사람을 피해 도망을 가지 않을 만큼 전원적입니다. 이곳 생활에 대해서도 쓰고 싶습니다. 차기 작품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는 내용은 ‘전주 한지’입니다. 한지의 고장인 소양에 살고 있으니 보답해야죠. 고향이 저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쓰고 싶은게 너무 많아 지금은 쓰고 싶은거 다 쓰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 [윤흥길 소설가는] 독특한 리얼리즘, 한국 현대사 예리하게 통찰

   
▲ 윤흥길 소설가의 방 안 전경.

1942년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으며, 1977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로 제4회 한국문학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는 〈완장〉과 〈에미〉 등 많은 작품에서 독특한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한국 현대사를 예리하게 통찰해냈다. 기행문집 〈윤흥길의 전주 이야기〉를 통해 지역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소설집으로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장마〉, 〈꿈꾸는 자의 나성〉, 〈소라단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 〈묵시의 바다〉, 〈에미〉, 〈완장〉, 〈낫〉 등이 있다. 한국창작문학상과 현대문학상, 제6회 21세기문학상, 제12회 대산문학상,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소설부문)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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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
어린시절 테레비문학관에서 완장을 본 기억이 나네요 이대근이었던가요 그 완장을 찬 역을 했던분이
(2017-01-24 1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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