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② 돈황 벽화 속 백제인] 턱끈 없는 야구모자 비슷한 '무후책' 쓰고 불교 전파신라·고구려인 새 깃털 꽂은 '조우관' 착용 / 벽화의 다양한 인물상 백제 유민 이주 추정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2.02  / 최종수정 : 2017.02.20  17:05:46

동서양으로 통하는 거대한 길 ‘실크로드’. 실크로드의 여러 도시 가운데 ‘실크로드 교역의 오아시스’, ‘문명 교류의 요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돈황이다. 그런데 최근 돈황 벽화에서 고대 한국인 그림이 대거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가운데는 백제인 모습도 보인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도시 돈황에 왜 고대 한국인의 족적이 남아 있는 것일까? 벽화 속 백제인은 어떤 모습일까?

△돈황 막고굴, 사막 위에 건립된 위대한 미술관

 ‘돈황’은 광활한 중국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 1500년 전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돈황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전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을 ‘돈황학’에 빠져들게 한 것은 실크로드가 낳은 최고의 금자탑인 막고굴(莫高窟) 때문이다. 수천 개의 불상이 있다 하여 일명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불리는 막고굴은 세계적인 불교유적지요 사막 위에 건립된 위대한 미술관이다.
 

   
▲ 돈황 벽화 속 고구려인(98굴 백라관,85굴 청라관, 138굴 자라관).


△돈황은 한국과 밀접한 관계

돈황은 한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막고굴 제17굴에서 신라의 구도승(求道僧) 혜초(慧超)가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과 원효 스님이 저술한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필사본이 발굴되어 고대 한국과의 연관성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최근 막고굴 벽화에서 고대 한국인의 복식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돈황연구원의 중국학자 리리신(李立新) 연구원이다. 그는 둔황 지역의 석굴을 10여년 동안 조사한 결과 막고굴 38개, 유림굴과 서천불동 각 1개에서 고구려·백제·신라·고려인이 그려진 그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은 향후 진위여부에 대한 정확한 검증을 요한다. 다만 돈황 벽화 중 한국 관련 그림을 10여년간 직접 조사한 유일한 연구자인 만큼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돈황 벽화 속 고구려인

   

이번에 공개된 40여 점의 인물상은 고구려인이 가장 많은데, 대부분 새 깃털을 꽂아 만든 모자인 조우관을 쓰고 있다. 일찍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Afrosiab) 궁전 벽화에서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 그림이 발견된 바 있는데, 돈황 벽화 속 고구려 인물상도 비슷한 조우관을 착용하고 있다.

그런데 리 연구원이 공개한 조우관 인물상은 이제까지 알려졌던 통상적인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이제까지 발견된 조우관 인물상은 보통 두 개의 새 깃털을 모자에 꽂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인물상에서는 세 개 또는 네 개의 깃털을 꽂은 경우도 있었다. 또 새의 깃털이 아니라 꼬리를 꽂은 조미관(鳥尾冠), 흰색 비단으로 만든 백라관(白羅冠), 청색 비단으로 만든 청라관(靑羅冠), 자주색 가죽으로 만든 자라관(紫羅冠) 등 매우 다양했다.

△돈황 벽화 속 신라인과 고려인

막고굴 제61굴의 오대산도(五臺山圖)는 돈황 석굴 가운데 가장 큰 벽화 중 하나인데, 특이하게도 시대가 다른 신라인과 고려인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그 이유는 중국 오대(五代·907~960) 말기에 제작된 오대산도는 밑그림이 만들어진 시기가 신라와 고려가 공존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오대산도의 오른쪽 아랫부분에 있는 ‘신라송공사(新羅送供使·신라에서 보낸 공양 사신)’라는 그림에는 통역원, 사신, 두 명의 관원, 마부 등 신라 사신 일행 5명이 그려져 있고 오른편에는 이들을 맞고 있는 두 명의 중국인 관리가 보인다. 또 이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 ‘고려왕사(高麗王使)’라는 그림에는 연락관, 사신, 짐꾼 등 3명의 고려 사신 일행과 이들을 안내하는 여관 주인이 그려져 있다.

△돈황 벽화 속 백제인, 무후책을 쓰다

   
▲ 돈황 벽화 속 백제인(왼쪽부터 237굴,115굴,335굴).

이번에 발견된 돈황 벽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백제인 인물상이다. 현재까지 회화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백제인 인물상은 중국 양(梁)나라 시대에 그려진 사신도인 양직공도(梁職貢圖)였다. 양직공도 이후 또다시 백제인 인물상이 나타난 것이다. 돈황 벽화 속 백제인은 두 가지 형태의 모습을 보인다.

먼저 막고굴 제335굴 벽화에는 문수보살과 유마거사가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조우관을 쓴 사람이 두 명 보인다. 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새 깃털 두 개가 꽂힌 푸른색 모자를 쓰고 있는 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리 연구원은 북풍을 막는 옷깃을 한 사람은 추운 지방에서 온 고구려인이고, 열린 옷깃을 한 사람은 따뜻한 남쪽에서 온 백제인으로 봤다.
그는 고대 백제인은 고구려와 신라처럼 조우관을 쓰기도 했지만 턱끈이 없는 오늘날 야구 모자와 비슷한 ‘무후책(無後   )’을 쓰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막고굴 제237굴 벽화에는 곱슬머리 외국 사신 위의 인물이 무후책을 쓰고 있다. 이 사람이 바로 백제인이다. 막고굴 제115굴 벽화는 부처님이 열반했을 때 각국에서 조문단을 파견해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 조우관을 쓴 인물과 무후책을 쓴 두 인물이 보인다. 조우관을 쓴 사람이 신라 혹은 고구려인이고, 무후책을 쓴 사람이 백제인이다.

그러면 백제인이 돈황 벽화에 대거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리 연구원은 그 연유를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각국의 다양한 인물상을 대거 벽화에 집어 넣으면서 자연스레 백제인 인물상도 들어갔고, 한편으로는 백제 유민(遺民)이 돈황으로 이주해서 살았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백제, 세계 문명과 교류한 글로벌 국가

   
▲ 양직공도 속 백제 사신도.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돈황 벽화에 등장한 백제인. 백제는 굳게 닫혀진 나라가 아니었다. 백제는 바다 건너 세계 문명과 교류한 문화적 개방성을 띤 글로벌 국가였다. 실크로드에서 만나는 백제 이야기는 중국을 지나 인도양을 넘어 그리스까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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