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④ 이야기의 보고, 새만금 - 굽이굽이 펼쳐진 고군산 절경…'최치원' 설화 숨어 있었네황금돼지 탄생설화·이순신 장군 이야기…/ 역사·문학적 배경 수 많은 보물 널리 분포
진영록  |  chyrr@jjan.kr / 등록일 : 2017.02.09  / 최종수정 : 2017.02.09  23:11:47
   
▲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단등교.
“돛 걸고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 만리나 멀리 불어온다

뗏목 타니 한나라 사신 생각 약초 캐니 진나라 동자 생각

세월은 무한의 밖 천지는 태극의 안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고 나는 또 신선 노인을 찾아간다”

- 최치원, 「바다에 배 띄우니」

몇 해 전 한국과 중국 간 정상회담이 있었을 때 중국 시진핑 주석이 직접 인용하여 화제가 된 최치원의 시이다. 시구 말미에 언급된 봉래산은 중국 <사기(史記)>에도 기록된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로 신선이 살며 불사의 영약이 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릉도원에서의 삶이 눈앞에 그려지는 시의 묘사를 따라가면 최치원의 전설이 서린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에 이른다. 고군산군도는 이름 그대로 군산의 오래 된 섬의 무리들로, ‘신선이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선유도를 비롯한 총 63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고군산군도는 과거에는 사람의 접근이 힘들었던 섬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새로운 ‘약속의 땅’이라는 조선시대 <정감록>의 예언이 이뤄진 것인지 1991년 새만금방조제가 착공되고 몇몇 섬들이 육지와 교량으로 이어지면서 이 일대의 운명은 변하게 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활력이 없던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고, 새만금이 우리나라 국토의 균형발전 및 전라북도 성장 동력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가 정부와 지역 내부에서 잔뜩 감돌았다. 기존의 빼어난 경관은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잠재가치가 큰 관광지로의 도약을 꿈꾸게 했다. 심지어 군산 앞바다를 전진기지로 중국, 나아가 동북아시아 지역의 거점으로 보다 거대한 비전을 그리기까지도 하였다.

부푼 기대와 다르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발길을 끌어오는 일은, 단지 땅을 고르고 도로등 건설 인프라를 조성하고, 더불어 해외와 민간의 투자 유치를 벌이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새만금을 선점하려는 지자체들의 입장이 있고, 기업 유치를 위한 현실적인 조건들, 또한 이곳에 새로 뿌리를 내린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한 정주 요건의 마련 등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지역의 뿌리이자 정체성으로 자리잡아온 이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함께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다. 지역의 역사·문화가 함께 어우러지지 않는 개발은 사상누각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군산군도는 지역의 이야기자원들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의 지형만 봐도, 만경강과 동진강의 두 물길을 따라 전라북도의 이야기들이 모여들고, 또한 수려한 장관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섬마다 제각기 그만의 이야기가 스며있어 개별적이고도 종합적인 장소성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지역의 가치가 담긴 이야기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고군산군도에 남겨진 최치원의 설화는 특별하다. 최치원은 우리 역사 속 대학자로 과거 중국에 이름을 알린 바 있지만, 그 명성은 앞선 시진핑 주석의 인용에서도 보았듯이 지금의 중국에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양주에 최치원 기념관이 있을 정도이다. 신라말엽의 문장가이자 대석학이었던 최치원은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시조이자 동방문학의 시초를 이룬 문호이다. 이러한 최치원은 그의 탄생설화를 포함한 이야기들을 고군산군도에 남겼다. 원래 경주최씨의 시조는 금빛 나는 돼지(금돈)에서 낳았다 하여 일명 ‘돼지 최씨’로 불린다. 단군이 곰에서 나왔다는 전설과 또 신라의 박혁거세가 박 속에서 나왔다는 설화와 함께 황금돼지 민속설화가 남겨져 있는데, 이 사연이 최치원과 관련된 이야기인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최치원이 태어나기 전 그의 부친은 고군산군도에 있는 내초도에 사냥을 나갔다가 오히려 황금빛이 나는 암퇘지에게 붙들려 토굴에서 몇 달을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황금돼지가 새끼를 배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바로 최치원이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육지로 나오려고 했지만 매번 황금돼지에 가로막혀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황금돼지가 이웃 섬으로 사냥을 나가고 없는 사이 다섯 살이 된 최치원에게 아버지가 “너를 육지로 데리고 나가 공부를 시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빠져나갈 재주가 없다”고 한탄을 했다. 그러자 최치원은 황금돼지가 해놓은 나무토막을 몰래 엮어 배를 만들어 도망가자고 제의하였고 이윽고 두 사람은 어린 최치원의 기지에 따라 탈출에 성공했다 한다.

신시도의 월영대는 최치원 선생이 피리를 불고 시를 읊으면 그 글 읽는 소리가 중국 황제의 귀에까지 들렸다는 전설의 장소이다. 신시의 명칭 자체가 최치원이 글을 읽으며 ‘새로움을 다짐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새만금에는 내초도와 신시도에 남겨진 황금돼지와 최치원 이야기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곳은 이순신장군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설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와 문학의 배경이 된 수 많은 이야기 보물창고다. 새만금의 비전은 먼 곳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남겨진 이야기가 바로 지역의 힘이되어 복을 불러오는 원천으로 활용 될 때 새만금의 의미와 비전도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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