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③ 무령왕릉과 실크로드] 고대 한·중·일 관계 '보물창고'…백제는 '하이테크 강국'이었다중국 남조 양나라의 무덤 양식과 비슷 / 일본 고분선 백제 관련 유물 대거 출토 / 백제, 동서문명 교류 중심지 가교 역할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2.16  / 최종수정 : 2017.02.20  17:05:59

1500년 동안 베일에 싸였던 백제사의 블랙박스를 연 대발견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백제 대외관계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단초를 제공한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무덤 양식과 비슷하다. 무령왕릉이 중국 남조문화를 수용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본 왕가 고분에서는 무령왕릉 부장품과 비슷한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백제와 일본은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을까? 무령왕릉은 백제가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한 범위가 서아시아까지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명 교류가 백제까지 이어진 구체적인 물증은 무엇일까?

△중국 남조의 최첨단 기술을 수용한 백제

양자강에 연해 있는 해상 실크로드의 중추 도시 남경(南京). ‘남쪽의 수도’라는 의미를 가진 남경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기 전까지 중국 남방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중 하나였다. 중국 전통 한족 왕조 중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남조의 수도 역시 남경이었다. 남경은 당시 ‘건강(建康)’이라고 불렸다.

무령왕은 6세기 동아시아 최강국 남조 양나라에 두 차례 사신을 파견한 바 있다. 당시 백제 선단이 황해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조류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로 ‘건강’ 즉 현재의 남경이었다. 무령왕 때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림으로 그린 ‘양직공도(梁職貢圖)’ 속에 보이는 백제 사신은 이 무렵에 그려진 것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무령왕릉이 양나라 왕실 무덤인 연꽃무늬 벽돌로 쌓은 아치형 전축분을 본 따 조성한 벽돌무덤이라는 것이다. 무령왕릉의 벽돌에 새겨진 여섯 글자 “梁官瓦爲師矣(양나라 관청 벽돌을 모범으로 삼았다.)”가 이를 입증한다. 뿐만 아니다. 무령왕릉에서는 청자육이호, 초두, 금동 허리띠와 같은 남조 시대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중국에서도 청자나 금제 장식품은 대단히 귀한 물품이어서 황제나 귀족 무덤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최첨단 물품이 그대로 백제에 유입된 것이다.

무령왕릉이 중국 전통 한족 왕조 중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문화를 일구었던 남조문화를 수용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쇠락하던 국력을 회복시킨 백제가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선진 문화를 이룩했던 남조로부터 최첨단 기술을 받아들여 하이테크 고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고분에서 무령왕릉 부장품과 비슷한 유물 대거 출토

무령왕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 규슈(九州) 인근 섬인 가카라시마(加唐島)에는 전북 익산의 화강암을 가져다 만든 ‘백제무령왕의 탄생지(百濟武寧王生の誕地)’라고 새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01년 12월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있었다. 아키히토 일왕이 생일날 회견에서 자신이 백제 무령왕의 후손임을 고백한 것이다. 실제로 고대 일본 왕가의 무덤에서는 백제와 깊은 관련이 유물이 대량 출토되고 있다. 후쿠오카(福岡)에서 구마모토(熊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에다후나야마(江船田山) 고분.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전방후원분이다. 이 고분에서 나온 금동 신발, 금귀고리, 청동 거울 등은 무령왕릉 부장품 그대로다. 금동관은 익산 입점리 고분에서 나온 유물과 크기만 다를 뿐 똑같다. 세계 최대의 무덤이자 일본 최대의 전방후원분인 오사카 인덕천황릉(仁德天皇陵). 여기서 나온 청동 거울과 환두대도는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과 판박이처럼 같다. 무령왕릉 부장품과 일본 왕가 무덤의 유물이 유사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부인할 수 없는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이 있다. 첫째, 일본 고대사는 백제와 가장 연관이 깊다는 점이다.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뒤에 백제에 와서 왕이 되었고, 일본 왕가와 지배층 무덤에는 백제계 도래인과 관계된 유물과 기록이 수두룩하다. 둘째, 백제가 중국 남조와 교역하던 무령왕 시대에는 아직 항해술이 고도로 발달하지 않아 중국과 일본이 직접 교역하기 어려웠다. 일본으로서는 한반도를 거쳐 중국과 교역하는 것이 필요했고, 백제가 그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서아시아 그리핀과 무령왕릉 진묘수

무령왕릉 입구에 놓여 있는 진묘수(鎭墓獸). 진묘수는 문자 그대로 무덤을 지키는 짐승이라는 뜻이다. 그 모습은 참으로 특이해 어떤 동물인지 알 길이 없다. 앞에서 보면 돼지 같으나 돼지가 아니다. 개 같기도 하고, 해태를 닮은 것도 같다. 머리 중앙 부분에는 닭벼슬 같은 철제 장식이 달려 있다.

진묘수는 중국 한대 이래로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뜻으로 무덤 내부 앞에 세워두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고분에서 수많은 진묘수가 출토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남북조 시대의 동서문화 교류와 무령왕릉의 관계를 연구한 민병훈 박사가 진묘수의 기원을 서아시아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ffin)과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핀은 사자의 몸에 새 머리를 한 상상의 동물이다. 몸에는 날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머리는 주로 독수리가 많다. 그리핀은 BC 2000년경 옛 시리아 레반트(Levant) 지방에서 처음 생겨나 서아시아 신전이나 무덤의 장식에 즐겨 사용되었다.

서아시아 그리핀과 무령왕릉 진묘수, 어떻게 해석함이 좋을까? 무령왕릉 진묘수는 서아시아와 지중해 일대에서 형성된 수호신으로서의 그리핀 도상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백제 묘장 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한반도를 넘어 끊임없이 해외 진출을 도모한 백제

백제는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문화를 포용하는 개방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백제의 힘이었다. 백제는 중국 남조와 밀접한 교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아시아를 넘어 서아시아 문화까지 포용하는 다문화 왕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그것은 백제가 열망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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